봉천 할매(손진길 소설) 57

봉천 할매37(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37(작성자; 손진길) 1945년 8월 16일에 일본 시모노세끼에서 부산을 통하여 고향인 내남에 돌아온 너븐들 사람들은 사실 그 다음날부터 모두들 바빴다. 그 이유는 논에서 벼가 한창 익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벽 일찍 일어나서 논으로 나가 물꼬를 살펴보아야 하고 벼가 잘 자라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낮에도 여물어가고 있는 벼 이삭을 새가 날아와서 까먹지 아니하도록 새를 쫓아버리고 허수아비를 만들어 세운다. 5년전에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했던 농사일을 그들이 다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제는 보람이 있다. 왜냐하면, 조선총독부가 더 이상 벼를 공출하라고 강요하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탄광과 삼판 등지에서 중노동을 하여 그들 너븐들 시골의 젊은이들이 벌어온 돈으로 나..

봉천 할매36(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36(작성자; 손진길) 다음날 곧 1945년8월 22일에 아침식사가 끝나자 손해선은 딸 이문자와 남편 이도성과 함께 친정부모님께 하직인사를 올린다. 그 자리에서 손영주가 한마디를 한다; “이서방, 나는 자네가 듬직하고 또 학문이 높아 사위로서 내 맘에 들어. 하지만 고향에 이미 처자식이 있다고 하니 그것이 참으로 걱정이야. 자네는 이렇게 조선이 해방이 되고 고향으로 돌아갈 줄을 미처 모르고 일본에서 내 딸과 백년해로를 하겠다는 각오로 살림을 차렸지만 자네의 생각대로 일이 그렇게 안된 것이니 이제는 어찌할 것인가?”. 이미 모두들 알고 있는 말씀을 왜 또 하시는가 했더니 장인 손영주의 말씀은 이제부터 그것이 아니다; “이서방, 자네야 참으로 오래간만에 고향을 방문하는 것이고 또한 오랜 세월 일본에..

봉천 할매35(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35(작성자; 손진길) 손수석이 고향에 돌아온 날이 1945년 8월 21일 늦은 오후이다. 8월 15일 일본 천황이 정오방송으로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지 꼭 일주일만이다; 그가 내남 너븐들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부모님께 귀가보고를 하고 큰절을 올린 것이다. 그 다음에는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백부집을 찾아가서 백부와 백모에게 큰절을 드린 것이다. 먼저 부모님께 큰절을 올리고 귀국보고를 하였을 때에 부친 손영주는 ‘그동안 수고 많았다. 푹 좀 쉬도록 하라…’고만 말씀하셨는데 봉천 할매 정애라는 그것이 아니다. 그녀는 지난 6월달에 오사카로 건너가서 아들 얼굴을 보고 이제 거의 2개월만에 고향에서 다시 아들 수석의 얼굴을 본다. 그러한 그녀가 아들 손수석에게 할말이 많다; “수석아, 정말 수..

봉천 할매34(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34(작성자; 손진길) 6. 일제의 항복과 고향으로 돌아오는 너븐들 사람들 1945년 8월 15일 정오에 히로히토 천황이 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무조건 미국을 위시한 연합군에게 항복하기로 발표함으로써 아시아 태평양 전쟁이 일본제국의 패배로 끝난다; 전쟁의 종결로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되는 집단은 군부와 방산업체이다. 그 가운데 병참을 담당했던 홋카이도 비바이의 석탄회사들이 포함이 되어 있다. 당장 생산한 석탄을 군부가 수입해가지 아니하고 외상을 받을 길도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석탄회사는 탄광에 대해서는 조업단축을 하고 광부의 수와 직원의 수를 줄여야만 한다. 회사의 분위기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으므로 쯔끼모도는 사표를 낸다. 사직을 하기에 좋은 기회인 것이다; 그러자 회사에서는 강제퇴직 전에 자진..

봉천 할매33(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33(작성자; 손진길) 1945년 6월말에 손수석은 북해도 미쯔비시 석탄회사에 돌아와서 경리일을 보고 있지만 그 머리속에서는 여전히 며칠 전 오사카에서 만난 모친 정애라가 자신에게 전해준 이야기가 맴돌고 있다. 모친이 오예은으로부터 얻은 최신정보에 따르면, 지난 4월에 벌써 미군을 위시한 연합군이 필리핀을 탈환했다는 것이다. 일본군이 결사항전의 각오로 방어를 했으나 제공권과 제해권을 전부 빼앗긴 상태에서 20만명 이상의 희생자만 내고 필리핀을 연합군에게 내주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일본 열도 가까이 미군이 들어와 있다. 남쪽 바로 코 앞에 미군과 연합군이 들어와서 일본 열도에 상륙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며칠에 한번씩 동경과 오사카 등 대도시에 미군의 거대한 폭격기 ‘B..

봉천 할매32(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32(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 정애라는 본래 국제정세에 대하여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일본제국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조선에서 오래 살다가 보니까 일제가 수년간 진행하고 있는 그 전쟁이 과연 승산이 있는 것인지 궁금하기 이를 데가 없다. 구체적으로, 1937년부터 중국대륙으로 일본의 군대가 진격을 했다고 했는데 7년의 긴 세월이 지나 1944년이 되었지만 아직 완전히 점령하지를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 옛날 1894년에 벌써 청국과 전쟁을 쳐서 승리한 바가 있는 일본제국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것일까? 더구나 일제가 만주와 동 몽골까지 차지하고 있다고 자랑을 하고 있는데 어째서 전쟁물자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조선백성들의 숟가락과 놋그릇까지 모조리 징발해가고 있는가? 도대체 알 수가..

봉천 할매31(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31(작성자; 손진길) 5. 죽창과 가미가재 그리고 B29와 원폭 일본제국은 중국대륙과 동남아 그리고 태평양상에서 벌이고 있는 자신들의 전쟁을 서양 제국주의 세력을 몰아내고 아시아사람들에 의한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기 위한 ‘거룩한 성전’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그 전쟁의 성격을 군국주의 일본이 동아시아와 동남아를 정복하고 영구히 지배하고자 하는 야욕 때문에 일으킨 전쟁으로 보고서 그것을 지역적으로 ‘아시아 태평양전쟁’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의미는 서로 완전히 반대가 되는 것이다; 일본제국에서는 서양의 세력이란 한마디로 외세이며 침략자들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시아 태평양의 여러 나라와 민족들은 서양의 식민지 노릇을 하지 말고 떨치고 일어나서 서양세력을 함께 몰아내야 ..

봉천 할매30(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30(작성자; 손진길) 다음달 곧 1944년 2월이 되자 손수석이 예견한대로 ‘미쯔비시 비바이 석탄회사’에서 오래된 광부들의 임금을 조정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급료를 깎는 조정안이다. 당시 일본은 군부가 내각을 완전 장악하고 ‘아시아태평양전쟁’을 한창 수행하고 있는 처지이므로 군국주의 일본군부의 지시를 받고 있는 방위산업체 석탄회사가 광부들의 임금을 깎는 일에 대하여 아무도 반론을 제기할 수가 없다. 미쯔비시 탄광에서는 임금에 불만이 있는 광부들은 회사를 떠나도 좋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조선인 광부들이 일본말도 서툴고 또 일본에는 달리 연고가 없기 때문에 광산을 떠날 수가 없을 것으로 보고서 큰 소리를 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오래된 조선인 광부들이 회사를 관두고 떠났으..

봉천 할매29(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29(작성자; 손진길) 손수석은 1944년 1월 2일 당일에 ‘관부연락선’으로 시모노세끼 항에 도착한다; 사촌 여동생 손자옥을 데리고 인근 식당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한 후 시모노세키 곧 하관 역으로 가서 오사카로 가는 열차를 함께 탄다; 그는 오사카에 살고 있는 배인근을 만나고자 하는 것이다. 손자옥은 생전 처음 일본을 방문하고 있는 중이라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평소 일년에 두세 차례 고향을 방문하는 사촌 오라비 손수석을 통하여 일본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것은 처음이다. 조선의 시골 내남 너븐들에서 자란 그녀이기에 일본의 대도시 오사카를 보자 입이 떡 벌어진다. 그러나 성격이 차분하고 호들갑을 떨 줄 모르는 그녀인지라 그저 ‘어머머’하고 한번 탄성을 지르고는 ..

봉천 할매28(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28(작성자; 손진길) 청년 손수석이 환갑이 막 지난 안용운과 함께 부산항에 도착한 때가 1943년 12월 26일이다. 두사람이 곧장 안성기 교장의 집으로 들어갔더니 병석에서 안성기 교장이 매우 위독하다. 그 옆에는 부인 이다연이 병석을 지키고 있는데 의사분과 안용운의 형 안용환이 부인과 함께 환자를 보면서 걱정스럽게 서있다. 모두들 안색이 어둡다; 안교장의 장남인 안용환은 동생 안용운보다 4살 연상이며 1880년생이다. 그는 평생 교직에 몸담고 있었는데 여러 해 전에 퇴직하여 진주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부친이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곧장 부인과 함께 부산으로 달려와서 며칠째 병상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가까운 의원에서 의사가 정기적으로 왕진을 오고 있다. 벌써 병원에서 사용하는 침대까지 저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