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31(작성자; 손진길)
5. 죽창과 가미가재 그리고 B29와 원폭
일본제국은 중국대륙과 동남아 그리고 태평양상에서 벌이고 있는 자신들의 전쟁을 서양 제국주의 세력을 몰아내고 아시아사람들에 의한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기 위한 ‘거룩한 성전’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그 전쟁의 성격을 군국주의 일본이 동아시아와 동남아를 정복하고 영구히 지배하고자 하는 야욕 때문에 일으킨 전쟁으로 보고서 그것을 지역적으로 ‘아시아 태평양전쟁’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의미는 서로 완전히 반대가 되는 것이다; 일본제국에서는 서양의 세력이란 한마디로 외세이며 침략자들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시아 태평양의 여러 나라와 민족들은 서양의 식민지 노릇을 하지 말고 떨치고 일어나서 서양세력을 함께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일본제국의 군대가 그 앞장을 서고 있으므로 서로 힘을 합쳐야만 한다고 선전선동을 하고 있다.
그 반면에 미국과 영국 등 서양의 열강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유럽에서 1939년에 독일의 나치와 이태리의 파쇼가 동맹을 맺고 여러 나라와 전쟁을 벌였는데 그 유럽전쟁의 발생이유와 일본제국이 아시아와 태평양에서 일으키고 있는 전쟁의 이유가 똑같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침략전쟁으로 자신들의 내부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다만 전쟁발생지역이 서로 다르므로 하나는 ‘유럽전쟁’이라고 부르고 또 하나는 ‘아시아 태평양전쟁’이라고 부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미국과 영국은 그 지역전쟁 둘을 합하여 구태여 ‘세계 제2차대전’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일찍이 1914년에 독일이 일으킨 유럽전쟁을 아메리카의 미국이 유럽의 영국에 병참지원을 하여 승리로 이끈 바가 있다;
그러므로 영국과 미국은 자신들이 합작하여 그 전쟁에서 승리하였기에 그 승전을 기념하여 그 국지적인 유럽전쟁을 굳이 ‘세계 제1차대전’이라고 부르고 있다;
따라서 그 다음의 전쟁은 ‘세계 제2차대전’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보면, 세계의 중심국가는 여전히 미국과 영국이다. 그들이 승전을 하고서 전쟁의 이름까지 통일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세계질서를 깨면서 과연 일본제국이 동양을 차지할 수가 있을까? 그것은 일본의 국력이 미국과 영국을 합한 것만큼 강한 것이 아닌 경우에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1년에 일본제국은 대대적으로 만주를 침략하고 그 다음해에 만주와 동 몽골에 괴뢰국가를 수립한다. 1937년에는 육군과 해군을 동시에 동원하여 중국대륙을 침략한다. 일찍이 일본제국은 동양에서 유일하게 산업화와 근대화를 이룬 국가로서 선진국 대접을 받아 영국 및 미국과 협정을 맺고 서로 사이 좋게 아시아에서 식민지를 나누어 가지기로 합의를 하였다. 그 결과 독자적으로 조선반도를 자신들의 식민지로 병합한 것이다.
당시 미국과 영국은 조선반도만 일제의 식민지로 양해를 하면 그들의 군사적인 침략은 그 정도에서 멈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일본의 산업생산의 규모와 군국주의의 등장을 전혀 고려하지 아니한 견해이다. 막대한 외자를 유치하여 명치원로들이 일본 열도를 산업화의 기지로 만들고 말았기에 그 생산량이 엄청나다. 그들이 생산한 물건을 모두 팔기에는 조선의 시장규모가 너무 작은 것이다. 그러므로 만주와 중국대륙으로 진출하여 소비시장을 개척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1917년에 러시아혁명이 발생하고 그 앞서 1911년에 중국인들의 신해혁명으로 청왕조가 멸망을 하고 말았다. 그 영향을 일본제국이 그대로 받고 있다. 러시아의 노동자와 농민을 부추겨서 1917년에 세계최초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성공시킨 공산주의 사상가들은 러시아에서 황제정치를 끝내고 ‘소비에트 연방’을 창설한다. 그리고 주변의 식민지 국가에 대하여 자신들처럼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하라고 부추기고 있다.
그 영향으로 조선과 일본에서 공산주의 사상가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이 발생한다. 그들은 노동자와 농민을 조직적으로 동원하여 먼저 사회주의 운동부터 일으키고 있다. 1918년부터 일본에서는 쌀을 달라고 하는 명분으로 사회적인 소요가 발생하고 이어서 민중들의 목소리가 자꾸만 커지고 있다. 그러한 사회적인 소요와 불안을 지켜보던 군부가 1930년대부터 차츰 정치일선에 나서게 된다.
군부대신이 내각에서 그 목소리를 높이다가 급기야는 내각을 군부가 지배하기 시작한다. 결국 ‘군국주의 일본’이 탄생하면서 만주와 중국대륙에 대한 침략전쟁을 시작하고 마는 것이다. 일본의 대륙에 대한 침략전쟁을 가능하게 한 것은 그러한 내부적인 요인도 있지만 또 하나의 요인은 1911년에 발생한 청국의 멸망과 중화민국의 출범이다.
그 옛날 만주에서 시작이 된 청왕조가 1911년 한인들의 신해혁명으로 무너졌지만 그들의 군대는 지방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지방의 군대는 중앙의 청왕조가 사라졌기에 이제는 자신들의 세상이 된 것이다. 주둔지역에 할거를 하면서 군대의 장군들이 군벌로 행세하게 된다. 주둔군의 사령관들이 각 지역의 왕처럼 행세를 하고서 그 지역의 맹주가 되고 만 것이다.
중국대륙이 분열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중화민국의 지도자인 손문과 중화의 군대를 지휘하게 된 장개석은 각 지역의 군벌을 타도하고 다시 천하통일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러한 중국대륙의 분열을 틈타서 일본제국의 군대가 만주와 중국으로 진출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군국주의 일본이 성립된 것은 그것이 해외에 더 많은 식민지를 개척하고 일본 열도의 사회주의 세력을 뿌리 뽑는 유일한 처방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본의 군부는 이제 전쟁을 통하여 중국대륙을 정복하고 아시아의 맹주가 되어 단숨에 국내적인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자신들이 집권해야만 하는 정치적인 명분을 공고하게 쌓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군국주의 일본은 ‘대동아 신 질서 건설’이라든가 ‘대동아 공영권’이라고 하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그것은 내부적으로는 동양에서 유일한 산업선진국인 일본이 아시아의 패권을 행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서양의 제국주의 세력을 아시아와 태평양에서 몰아내고 영구히 일본제국이 동양을 통치하는 그것이 바로 군국주의 일본이 꿈꾸고 있는 ‘대동아공영권’의 건설인 것이다.
그런데 조선과 만주 그리고 중국대륙 및 동남아 여러 나라의 입장에서는 서양의 제국주의나 일제의 제국주의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똑같이 선진화된 군사력으로 자신들을 침략하고 식민지로 삼고 있는 것이다. 자원과 노동력을 수탈하면서 제국의 상품을 무지하게 비싸게 팔고 있다.
그와 같이 똑 같은 모습으로 착취를 당하고 있는데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유일한 차이라고 한다면, 서양의 열강에게 당하고 있느냐? 아니면 동양의 일제에게 당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 일본제국이 식민지 지배가 아니라 식민지의 해방을 위한 정책을 추진했다면 문제가 달라지겠지만 그것이 전혀 아닌 것이다.
군국주의 일본은 1941년 12월 7일에 미국의 태평양사령부가 있는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적으로 폭격하고 8일에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필리핀을 공격하였다. 선전포고보다 먼저 이루어진 일제의 기습공격으로 1942년 봄까지는 인도양과 태평양에서 일제가 제해권을 잠시 행사한다. 그 결과 중동에서 수입하고 있는 석유와 기타 지역에서 수입하고 있는 지하자원의 수송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1942년 6월 하와이 북서쪽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에게 패퇴함으로 말미암아 일제가 차츰 제해권을 잃기 시작한다. 결국에는 중동의 석유와 기타 남방의 자원을 획득하지 못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약 80%의 에너지와 자원을 얻지 못하게 되는 일본제국은 전쟁수행능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이제 그들은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그래서 1944년부터 등장하고 있는 것이 일제의 죽창과 가미가재 작전이다. 일본제국의 영토에 미군이 상륙하지 못하도록 일본군은 탄약이 떨어지면 총검으로 백병전을 치르고 민간인들은 모두 죽창을 들고서 인해전술로 싸우겠다는 결사항전의 의지 그것이 이른바 목숨을 내건 일본 천황의 충성된 신민들의 대규모 ‘옥쇄작전’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일본제국은 미군에게 제해권 뿐만 아니라 제공권까지 빼앗기고 만다. 따라서 이제는 마지막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그것이 ‘가미가재’ 작전이다. 일본을 수호하는 신이 일으킨 바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가미가재’가 역사적으로 그 능력을 발휘한 것은 1274년과 1281년에 몽고병이 고려군과 함께 배를 타고 일본을 공격한 때이다.
두차례 모두 공교롭게도 폭풍이 일어나 배가 서로 부딪쳐서 깨어지면서 몽고와 고려의 군대가 대패를 하고 물러간 것이다. 그것을 일본은 자신들의 수호신이 바람을 일으켜서 원나라와 고려의 침입군을 물리친 것으로 믿고 있다. 따라서 그와 같은 수호신의 가호를 입자면 일본제국의 젊은이들이 천황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야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젊은이들이 조그만 비행기를 타고서 적의 군함이나 적진에 돌격하여 ‘자살특공대’의 역할을 수행해야만 한다;
천황이 하사한다고 하는 술을 한잔 얻어 마시고 그렇게 조그만 비행기와 함께 연합군의 전함과 충돌하는 것이다;
그렇게 가미가재 작전으로 산화해간 일본의 젊은이와 조선청년의 수가 1945년에 1,000명이 넘는다. 그때문에 미군이 중심이 되고 있는 연합군의 전함이 400척 가까이 피해를 입었으나 항공모함이 침몰되지는 않는다.
가미가재 ‘자살특공대’를 대거 투입하여 일제는 필리핀을 방어하고 오키나와를 지키고자 사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필리핀을 빼앗기고 일본 열도만을 근근이 사수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제해권과 제공권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을 위시한 연합군의 작전은 무엇일까? 1945년 4월 30일에 히틀러의 죽음으로 유럽전쟁을 끝낸 연합군은 이제 일본제국의 항복을 얻기 위하여 마지막 작전을 사용하고자 한다. 그것이 끊임없는 공습과 원자폭탄의 제조인 것이다.
미국의 거대한 폭격기 ‘B29의 공습’은 무서운 것이다;
예를 들면, 일본의 천황이 살고 있는 동경의 황궁까지 일부가 파손이 된다;
그리고 오사카의 경우에는 도시의 3분의 1이 파괴가 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국주의 일본은 결코 미국과 영국 등 연합국과의 전쟁에서 굴복할 수가 없다. 그것은 일본이 다시 왜소한 섬나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944년부터는 이를 악물고 죽기 살기로 전장에서 버티고자 한다. 그 때문에 일본사람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도 크지만 그들의 식민지로 살아가고 있는 여러 나라의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그 고통의 정도가 훨씬 심각한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백성들이 조선인들이다. 그 피해를 그대로 당하고 있는 와중에서 봉천 할매의 가족이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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