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더말 아재(손진길 소설) 48

선더말 아재48(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48(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는 1977년 2월 7일 오전에 국민은행 경주지점장실에 들린다. 아침부터 매우 추운 겨울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지점장실에 들어서니 히터가 잘 작동이 되고 있는지 따뜻하다. 그리고 지점장이 여직원을 시켜서 가지고 온 차를 한잔 마시니 갑자기 몸이 노곤해진다. 바깥 날씨가 무척 추운데도 불구하고 선더말 아재는 오토바이를 타고서 시내에서 일을 보다가 국민은행 경주지점에 들린 것이다. 매서운 추위 다음에 갑자기 따뜻한 열기가 몸에 퍼지자 자신도 모르게 몸이 옆으로 쓰러지고 만다. 다시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오른쪽 팔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픽 쓰러져 있다. 그것을 보고서 지점장이 매우 놀란다. 그는 급히 ‘엠블런스’를 불러서 ‘경주기독병원’ 응급실로 선더..

선더말 아재47(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47(작성자; 손진길) 9. 시련과 천명 1976년 2월에 선더말 아재는 기쁜 소식을 하나 얻는다. 그것은 4남인 손진웅이 대구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기 위하여 일명 ‘뺑뺑이’라고 불리고 있는 ‘추첨’을 했는데 그 좋은 ‘경북고등학교’에 배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마침 선더말 아재의 고명딸인 손정애가 ‘경주여자고등학교’를 마치고 대구에 가서 요리를 배우겠다고 전문대학에서 가정학을 공부하고 있다. 따라서 선더말 아재는 대구 대명동에 방을 얻어 주고서 오누이가 자취를 하도록 조치를 취한다; 4남인 손진웅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둘째형이 그렇게나 입학하고 싶어했던 그 ‘경북고등학교’에 자신이 진학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추첨을 통하여 그 명문고등학교에 배정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경북고등..

선더말 아재46(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46(작성자; 손진길) 1975년 2월 26일에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차남 손진길의 서울대학 졸업식을 구경하고 가족과 함께 경주 황오동 집으로 돌아온다. 상경할 때에는 고속버스로 올라갔지만 귀가할 때에는 그것이 아니다. 장남인 손진목이 경주에서 미리 신청해 놓은 승용차 ‘브리사’를 시흥 기아자동차공장에서 한대 뽑고 아예 새로운 ‘시트커버’까지 입혀서 그것을 몰고서 경주로 향한다. 선더말 아재가 고향인 경주에서는 알부자로 그리고 부동산이 많기로 은근히 입소문이 나 있지만 자신의 생활은 검소하기 그지없다. 여전히 ‘근검절약’을 가장 강조하면서 자수성가형의 사업가로 계속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남인 손진목은 그것이 아니다. 그는 1973년 2월에 영남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봄부터 문화중..

선더말 아재45(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45(작성자; 손진길) 1974년 가을에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서울서 차남 손진길이 보내어온 돈을 받는다. 21만원이나 되는 큰돈이다. 당시 경주시내의 기와집 한 채 값이 200만원 상당이므로 그것은 적은 돈이 아니다. 차남 손진길은 자신이 최근 몇 달 과외를 하여 번 돈과 남는 돈을 합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부친에게 그냥 드리는 것이므로 사업에 사용하시라고 전화상으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선더말 아재는 아들이 보내어온 돈을 그렇게 함부로 사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받은 날짜와 금액을 표시하여 자신의 비망록 ‘채무란’에 잘 기입해 둔다. 앞으로 전망이 좋은 사업에 투자를 하는 ‘종자돈’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돈을 그냥 아비에게 부처온 것은 아들의 뜻이지만 선더말 아재 자신으로서는 애비가..

선더말 아재44(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44(작성자; 손진길) 1974년에 선더말 아재 손수석의 4남인 ‘손진웅’은 경주 문화중학교 2학년이고 5남인 막내 ‘손진희’는 경주 황남국민학교 5학년이다. 손진웅도 공부를 꽤 잘하지만 막내인 손진희는 학교성적이 대단하다. 국민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한번도 전교 1등의 성적을 놓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선더말 아재가 아들 5명을 슬하에 두고 있지만 그 정도로 대단한 학업성적을 보이고 있는 아들은 막내가 처음이다. 그래서 큰 기대를 가져본다. 서울공대에 다니고 있는 차남 손진길은 대기만성형이다. 처음 국민학교에 입학하였을 때에는 ‘수’가 하나 밖에 없었다. 당시에 그는 물론 2달남짓 학교에 나가지를 못했다. 왼쪽 다리의 뼈가 금이 가서 기부스를 하고서 줄곧 집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

선더말 아재43(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43(작성자; 손진길) 1972년 가을에 선더말 아재는 일본에 살고 있는 의리로 맺은 두 분의 형님 곧 배인근과 안춘근에게 한국을 한번 방문하시라고 초청을 한다. 여름부터 자신이 경주에 여관과 요정을 운영하고 있으니 잘 모시겠다고 말씀을 드린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에 올 시간이 없다고 똑같이 대답을 하고 있다. 안춘근은 동경과 오사카에 대규모 냉동냉장공장을 가지고 있기에 양쪽을 오가느라고 바쁠 것이다. 배인근은 오사카에 큰 쇼핑센터를 경영하고 있으므로 역시 그 일이 바쁠 것이다. 일본의 고도경제성장이 계속되고 있으므로 사업가인 두사람이 바쁜 것이 틀림이 없다; 그러나 잠시 한국을 다녀갈 시간은 있을 터인데 그것이 어렵다고 하니 어쩐 일일까?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자신이 일본에 있을 때에 두 형..

선더말 아재42(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42(작성자; 손진길) 1972년 봄부터 경주에서는 일본에서 오는 관광객들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접객업소들이 호황을 맞이한다. 현동 양반의 자제들이 운영하고 있는 ‘서린호텔’이 크게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선더말 아재가 경주시내의 여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풍림’을 인수한다. 그리고 그보다는 규모가 작은 ‘은하여관’도 인수를 한다; 그리고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식사를 제공할 수 있는 요정을 두 군데에 개점한다; 하나가 사정동에 위치하고 있는 큰 요정 ‘희정’이다. 또 하나는 쪽샘에 있는 큰 요정으로서 그 이름이 ‘별궁’이다; 일본관광객들이 어찌나 많이 몰려오는지 경주사람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러한 현상을 보고서 교리 최부자의 후손 한사람이 해서는 안되는 일을..

선더말 아재41(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41(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의 차남인 손진길이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여 1년간 교양과정부에서 공부하고 있는 1971년에는 학원가에서 학생시위가 그리 많이 발생하고 있지 아니하다. 그 이유는 1960년대 중반에 발생한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둘러싼 학생들의 강력한 반대와 같은 그러한 굵직한 이슈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껏해야 ‘학생 교련반대’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데모를 하고 있는 정도이다; 되짚어보면, 1968년에 무장공비들이 서울의 중심부까지 산을 타고서 침투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러자 정부에서는 그때부터 예비군을 만들고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에게 군사교육을 받도록 조치한다. 1971년이 되도록 학원가에서는 그것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1971년 4월 하순에 치루어진..

선더말 아재40(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40(작성자; 손진길) 한국의 1970년대는 60년대에 시작이 된 2차례의 경제개발5개년 계획의 열매를 얻고 있다. 그것은 일본에서 1955년부터 시작이 된 ‘정부 주도형 고도경제성장정책’을 그대로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제3공화국은 해외수출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하여 차관을 들여와서 대도시주변에 대규모 공단을 조성하는 한편 농촌의 유휴인력을 활용하여 1972년말부터는 시골에 가까운 소도시에도 ‘새마을공장’을 많이 지어 나간다; 그에 따라 농촌인력이 도시주변에 있는 공업단지에 취업하여 계속 빠져나간다. 이른바 ‘이촌향도’ 현상이 크게 발생하고 있다. 농촌의 인구는 급격하게 감소를 하고 도시의 인구가 크게 늘어나는 것이다. 동시에 공단에 취업을 한 자녀들이 고향으로 송금을 해오자 ‘새마을..

선더말 아재39(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39(작성자; 손진길) 1971년 봄에 선더말 아재 손수석의 차남인 손진길은 동숭동 서울대학교 문리대 운동장에서 거행하는 입학식에 참석한다. 그는 서울공대 앞에 있는 공릉동 하숙집을 아침 일찍 나와서 시내버스를 타고 종로로 들어온다. 종로에 내려서는 도보로 ‘이화예식장’을 지나 서울 문리대 정문까지 간다; 당시 동숭동에는 서울법대와 문리대가 있고 그 앞에 서울의대 캠퍼스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좀 떨어져서 서울상대가 있다. 따라서 편리하게 ‘서울대학본부’가 문리대 구내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정원에 ‘마로니에’ 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래서 그 나무가 마치 서울대학교의 상징처럼 불리고 있다. 그 문리대 운동장에서 그날 거행하는 입학식에 참석하는 서울대학교 신입생들은 전부 ‘서울대 교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