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더말 아재42(작성자; 손진길)
1972년 봄부터 경주에서는 일본에서 오는 관광객들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접객업소들이 호황을 맞이한다. 현동 양반의 자제들이 운영하고 있는 ‘서린호텔’이 크게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선더말 아재가 경주시내의 여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풍림’을 인수한다. 그리고 그보다는 규모가 작은 ‘은하여관’도 인수를 한다;
그리고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식사를 제공할 수 있는 요정을 두 군데에 개점한다; 하나가 사정동에 위치하고 있는 큰 요정 ‘희정’이다. 또 하나는 쪽샘에 있는 큰 요정으로서 그 이름이 ‘별궁’이다;
일본관광객들이 어찌나 많이 몰려오는지 경주사람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러한 현상을 보고서 교리 최부자의 후손 한사람이 해서는 안되는 일을 저지르고 있다. 그것이 이름하여 ‘기생파티’이다. 그는 조상들이 남긴 유서가 깊은 교촌 마을에 기생파티를 할 수 있는 고급요정을 설치한다. 그 이름이 ‘요석궁’이다. 그 옛날 신라시대 교리 앞 남천내의 다리위에서 원효대사를 유혹한 ‘요석 옹주’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작명한 것이다;
그러한 성적인 타락이 경주지역에서 발생하는 것을 보고서 민족의식이 있는 기독청년들이 먼저 들고 일어난다. 그들은 1972년 여름부터 일본인들의 ‘매춘관광’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거리시위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저 관광수입만 많이 얻으면 그만이라는 태도이다. 따라서 민족의식이 강한 대학생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1972년 가을부터 서울에서는 ‘성령의 바람’이 ‘서울대학교 총 기독학생회’에 강하게 불고 있다. 그 진원지는 ‘서울공대 기독학생회’의 지도목사를 역임한 바 있는 ‘오대원’ 선교사의 ‘예수전도단’이다. 그는 성령충만한 대학생들을 인솔하여 종로거리에서 찬양을 하면서 전도를 하고 있다. 그 과감한 시도가 ‘성령의 바람’을 서울시내에 불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1970년대를 맞이하여 ‘서울대학교 총 기독학생회’도 열심히 움직인다. 1972년 여름수련회를 상도동에 있는 ‘총신대학 건물’을 일부 빌려서 개최한다. 임원진들이 초빙한 강사가 두 사람이다; 한사람은 충현교회의 담임인 ‘김창인’ 목사이다. 또 한사람은 국회부의장을 지낸 ‘황성수’ 목사이다. 그리고 특별강사로 서울대 출신 동문을 한사람 모셨는데 그가 바로 야당 원내총무인 ‘김영삼’ 의원이다;
김영삼 의원은 자택이 그곳 상도동이다. 그는 1972년 8월 17일부터 발생하고 있는 폭우와 한강이 범람하는 물난리에도 불구하고 그 빗속을 뚫고서 보좌관들과 함께 약속대로 후배들이 신앙수련회를 개최하고 있는 총신대학을 방문한다. 그래서 기독학생회에서는 그를 환영한다;
김영삼 의원은 자신의 프로필을 대학생들에게 나누어 준 다음에 무려 2시간 동안이나 쉬지않고 한국의 민주주의와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에 대하여 강연을 한다. 그래서 그는 패기가 있는 40대의 유망한 정치인으로 후배인 기독학생들에게 각인이 되고 있다.
당시에 그 일에 앞장을 선 총 기독학생회 회장이 공대 기계공학과 3학년인 ‘이석형’이고 부회장이 가정대 3학년인 ‘황인경’이다. 그리고 각 단과대학 기독학생회장들이 상임위원회를 구성하여 총단 임원들의 활동을 돕고 있다.
손진길이 서울공대에 입학을 한 1971년도에는 총 기독학생회장이 음대 재학생인 ‘김한식’이다. 그는 나이가 좀 있는 편이다. 음대를 졸업한 후에는 목사가 되어 ‘세 사랑회’ 운동을 하다가 나중에는 ‘한 사랑회’ 운동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한번은 대통령 후보가 되기도 한다.
1960년대 말에는 총 기독학생회장의 이름이 문리대의 ‘김영한’이다. 그는 1960년대 후반에 캬톨릭의 교황이 시도한 ‘에큐메니칼 운동’의 영향을 받았는지 서울대학교에서 기독학생회를 중심으로 ‘크리스챤 엘리트 운동’을 전개한다. 그리고 졸업한 다음에는 철학박사가 되어 숭전대학교에서 종교학자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
그렇게 서울대학교 총 기독학생회는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 1972년 여름에는 수련회를 마치고 농촌봉사활동을 떠난다. 때마침 한강물이 범람하여 어수선하기 그지 없는 시기이다. 그래서 버스를 대절하여 충청도 홍성군 청양면으로 들어가는데 시냇물이 넘쳐서 운행이 순조롭지가 못하다.
그러나 마을에서 나온 이장님의 도움으로 저녁에 목적지에 도착하여 그 다음날부터 농촌봉사를 시작한다. 그때 서울대학교 총 기독학생회는 두가지 봉사활동을 한다; 하나는, 의대와 치대생들이 중심이 되어 ‘의료봉사’를 시행하는 것이다. 거기에 소요가 되는 약품은 임원들이 제약회사를 방문하여 기부를 받았는데 특히 ‘한독약품’에서 좋은 연고를 한 박스나 기증하여 그것을 현지에서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또 하나는, 저녁에 지역교회에서 ‘부흥회’를 개최한 것이다. 그때 두각을 나타낸 부흥강사가 서울사대 2학년인 ‘김남수’이다. 그는 동기들보다 나이가 조금 더 있다. 대학에 들어와서 기독교를 믿었다고 하는데 그의 신앙이 무척 뜨겁다. 그래서 청중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그는 그 다음해에 서울대학교 총 기독학생회 회장이 되어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또한 예수전도단에서도 열심히 일한다. 훗날 총신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수원 근처에서 큰 교회를 개척하게 된다.
서울대학교 총 기독학생회에 성령의 바람이 크게 불어온 때는 1972년 겨울이다. 그때 두가지가 나타난다; 첫째로, 12월초에 ‘세계청년선교단’(YWAM)이 한국에 들어온 것이다. 그들은 아무 것도 지닌 것이 없이 마치 복음서에 기록이 되어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전도와 선교에 임하고 있다;
오로지 함께 모여서 기도함으로써 모든 문제의 해답을 얻고자 한다. 전도와 선교도 기도를 통하여 실천하고 있다. 순례자를 닮은 그들의 삶의 방식이 한국대학생들에게 무언의 본이 된다. 특히 그들 가운데 많은 수가 ‘서울공대 기독학생회관’에서 잠을 자고 있기에 서울공대 기독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때 서울공대 항공학과 대학원생인 ‘김봉수 선배’가 외국에서 온 ‘YWAM’ 젊은이들에게 ‘터어키 통조림’을 사다 주기도 한다. 훗날 김봉수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항공학박사가 되고 ’NASA’에서 근무한다. 그렇지만 나중에는 신학을 공부하고서 미국인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시무하게 된다. 동시에 한국인 유학생들을 신앙적으로 돌보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 서울대학교 총 기독학생회가 주최하는 1972년도 겨울수련회가 불광동 뒷산에 있는 ‘우국기도원’에서 열리게 된다. 그때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는 광경을 기독학생들이 직접 목격하게 된다. 당시 귀신을 쫓아내는 주강사가 ‘김기동’ 목사이고 수련회의 설교를 담당한 목사가 ‘오대원’ 선교사이다.
당시만 해도 김기동 목사는 큰 텐트를 가지고 전국을 돌면서 축사의 기적을 보이고 부흥회를 인도한다고 해서 크게 명성을 얻고 있다. 그런데 나중에는 귀신에게서 들은 소리를 가지고 복음을 제마음대로 해석을 하는 우를 범하여 그만 이단성이 있는 목사라고 낙인이 찍히고 만다.
그러한 충격적인 축사의 광경을 보고서 미국에서 성령운동을 배워왔다고 하는 오대원 선교사도 숨을 죽인다. 선더말 아재의 차남인 손진길이 그 광경을 보고서 나름대로 미신과 기독교와의 차이가 무엇인지 그것이 알고 싶어서 성경을 다시 보면서 깊은 생각에 빠진다.
그래서 홀로 ‘우국기도원’의 강당에서 기도를 하다가 하나의 환상을 보게 된다. 그것이 바로 유년시절에 ‘경주제일교회’의 담벼락에서 보았던 커다란 플랜카드의 그림이다. 어린양을 품에 안고 계시는 예수님의 그림이 갑자기 살아나서 자신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손진길’의 이름을 부른다;
손진길이 깜짝 놀란다. 그 즉시 마음 깊은 곳에서 한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네가 어렸을 때부터 너의 이름을 알고 있다. 이제 너의 이름을 부른다. 너는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믿으라. 그리하면 내가 너와 평생 함께할 것이다”. 그러한 영적인 깨달음이 가슴속에서 밀려오자 갑자기 눈물이 난다.
죄인인 자신에게 크나큰 회개와 주님의 임재가 주어진 사실을 깨닫고 감격의 눈물을 흘린 것이다. 한참을 울고 난 다음에 강당 바깥에 나와서 한밤중의 먼산을 쳐다본다. 그러자 검은 산 위에 흰구름이 나타난다. 흑암이 결코 희고 밝은 것을 이기지 못한다. 그것을 보고서 손진길이 속으로 중얼거린다; “이제 1973년에는 내가 앞장을 서서 주님의 일을 해야 하겠구나!...”.
1972년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에 서울공대 기독학생회의 회장인 ‘박일수’ 선배가 총무인 손진길과 함께 농촌봉사단을 꾸린다. 장소는 강원도 횡성군 ‘대관대리’이다. 그 지역에는 ‘남궁’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리고 감리교회가 하나 있다. 국민학교도 있으며 큰 시내도 흐르고 있다.
여름이라 대학생 봉사단들이 교회에서 잠을 자면서 주일학교도 하고 시골동네를 돌면서 소독도 한다. 마을 주민들의 호응이 뜨겁다. 오지마을에 전기도 들어오지 아니하는 형편이라 농촌봉사가 처음이라고 한다. 그래서 봉사단에게 잘해주면서 내년에 다시 오라고 한다.
그 약속을 지켜서 1973년 여름에는 손진길이 공대기독학생회의 회장이 되어 하계농촌봉사를 그곳으로 다시 간다. 그때에는 전기가 들어와 있고 흑백티비를 보고 있는 집도 있다. 참으로 한국의 농촌의 변화가 획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이왕 농촌봉사를 하는 김에 기념물을 하나 남기자고 모두들 입을 모은다. 그래서 임원들이 횡성읍에 나가서 국기봉과 태극기를 사오고 시멘트를 몇 포 구입해서 온다. 그것을 가지고 마을회관 앞에 태극기 게양대를 만든다;
그 아래 시멘트에 ‘서울공대 기독학생회 증정’이라고 적는다. 그리고 그 마을을 떠나온다.
그때 손진길과 함께 수고한 임원들이 한해 후배들이다. 경주 안강 강동마을 사람이며 부산고등학교를 나와서 화공학과에 재학중인 ‘손석원’, 대구 경북고등학교 출신이며 ‘자동차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변종문’, 광주일고 출신인 ‘김규철’, 그리고 변종문의 친구인 ‘권승철’ 등이다.
그렇게 선더말 아재의 차남이 학교공부를 하랴 기독학생회 일을 하랴 바쁜데 1972년 10월에 국가적으로 비상사태가 발생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10월 유신’을 감행한 것이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다음에 비상국무회의에서 ‘유신헌법’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 주요내용은 비용이 많이 드는 직선제 대통령선거를 없애고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간선제로 뽑는다는 것이다. 2,359명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전국적으로 선출하여 그들이 체육관에 모여서 6년제 대통령을 선출한다. 국회를 해산하고 유신헌법을 제정한다고 하니 놀랍게도 국민들의 찬성이 91%나 나온다. 그래서 확정이 된 유신헌법 공포식 장면이 다음과 같다;
그리고 제8대 대통령으로 박정희 단일후보를 선출하는데 있어서는 대의원 가운데 99%가 찬성이다. 그것으로 박정희는 종신대통령을 지낼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게다가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유정회’라는 이름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를 거쳐 대통령인 자신이 선발하는 대권까지 행사하게 된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은 박씨의 왕조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러한 폭거의 명분은 일본처럼 고도경제성장을 지속하여 명치유신이 이룬 성과를 박정희 대통령 자신이 당대에 한국에서 이룩한다는 것이다. 그의 야심이 과연 끝까지 열매를 맺을 수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유신시대에는 법률에 우선하는 대통령의 긴급명령이 남발이 되고 재야인사와 대학생들이 무수하게 탄압을 받게 된다;
그러한 야수와 같은 시대를 맞이하여 선더말 아재의 차남인 손진길은 어떠한 인생을 살고자 하는 것일까? 경주 고향에 남아 있는 선더말 아재가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차남 손진길을 걱정하고 있다. 그래서 서울에 볼일이 있으면 반드시 차남의 하숙집을 방문하여 하룻밤 같이 자면서 아들의 동태를 안보는 것처럼 하면서 나름대로 관찰을 한다.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경찰에서 오랜 정보계장 생활을 했기에 표가 나지 않게 잘도 감시감독을 하고 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손진길은 부친에게 일체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저 평범하게 서울공대에서 공부하고 졸업하면 직장을 얻어 기술자로 살아갈 것이라고 말씀드린다.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주면 좋으련만 자꾸만 선더말 아재는 차남의 장래가 걱정이 된다. 고집이 세고 끈질기게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파헤치려고 하는 차남의 성격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벌써 머리가 굵어진 아들이니 잠잠이 지켜볼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1972년이 지나가고 1973년 여름도 무사히 지나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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