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75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75(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75(손진길 소설) 서기 1,900년 정월 초순에 허선비 부부는 홍콩에서 통통배를 타고서 북상하여 조선의 동래로 찾아가고 있다. 남쪽 홍콩에서 출발한 때에는 아직 따뜻한 날씨였는데 조선의 남해안 가까이 접근하자 겨울의 바닷바람이 상당히 차다; 두사람은 정월 20일에 동래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장남 허지동(許知東)의 회사에 들린다. 금년에 쉰 나이가 되는 허지동은 손위 동서인 최강일과 함께 스즈키 방직공장을 여전히 잘 경영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허선비가 회사의 공동대표인 두사람에게 말한다; “내 나이가 금년 가을이면 벌써 일흔 일곱이야. 이제는 신변과 살림살이를 정리할 때이지. 그래서 말인데!… “. 허지동과 최강일은 그 말씀이 바로 방직공장의 설립자인 허선비 부부의 재산의..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74(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74(손진길 소설) 때는 1899년 3월 15일 화창한 날이다. 지난 3월초에 조선을 떠나 신식 터빈을 장착한 통통배를 몰고서 허선비 부부는 무려 5천리가 넘는 바닷길을 남진하여 홍콩의 연안에 진입하고 있다. 그들이 가진 신식 통통배는 성능이 좋아서 하루에 5백리를 너끈하게 달린다. 그렇지만 도중에 작은 항구에 정박하여 연료를 보충해야 하므로 홍콩의 연안에 도착하기까지 보름이 걸리고 있다. 이제는 한시진이면 항구에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때 허선비 부부는 신기한 광경을 그 연안바다에서 보게 된다. 그것은 허선비 부부가 소유하고 있는 신식 터빈형 통통배와 똑같은 모양의 어선을 그곳에서 본 것이다. 마치 같은 공장에서 찍어낸 것과 같다. 더구나 그 어선에서는 끊임없이 ..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73(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73(손진길 소설) 1896년 9월말에 허선비 부부와 이인용 부부는 빅토리아호를 타고서 홍콩에 도착한다. 지난 7월 15일에 테임즈 강 하구의 선착장에서 빅토리아호를 타고서 영국을 출발하였는데 목적지 홍콩에 도착하는데 무려 2개월 반이 걸린 것이다. 물론 도중에 여러 나라의 도시를 들렸다; 지난 4월초에 홍콩을 출발하여 목적지 영국으로 가는 도중에 들린 도시들을 다시 관광한 것이다. 처음 방문했을 때보다는 감흥이 못하지만 그래도 유럽대륙의 관문인 도시, 아프리카 남단의 도시, 인도남부의 도시, 말라카 해협의 도시, 중립국 태국의 도시 등을 재차 관광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경험이다. 따라서 홍콩에 도착하자 그곳에서 사돈인 이인용의 통통배를 타고서 조선으로 돌아오면서 ..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72(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72(손진길 소설) 1896년 허선비 일행은 여름이 시작된 6월 15일에 드디어 영국에 상륙한다. 기선 빅토리아호는 승객을 테임즈(Thames) 강 하구의 틸버리(Tilbury) 선착장에 내려주면서 안내방송을 한다; “우리 빅토리아호는 정확하게 한달 후 7월 15일 정오에 이 선착장에서 손님을 태우고 다시 홍콩으로 출발합니다. 왕복표를 가지신 손님께서는 그날 오전 10시까지 이곳에 오셔서 승선을 준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영국에서 한달간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짐을 챙겨서 항구에 내리자 그때부터 영국출신인 버터필드(Butterfield) 부부가 앞장을 선다. 그들은 가장 먼저 인원과 짐을 점검한다. 인원은 허선비 부부, 이인용 부부, 그리고 버터..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71(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71(손진길 소설) 18.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허선비 부부 때는 조선의 고종 33년인 1896년 봄이다. 정월에 통통배를 타고서 동간도(東間島)의 도문(圖們)에서 조선의 동해안 경상도의 울산(蔚山)으로 들어온 허선비 부부는 말을 타고 경주부(慶州府)의 시골 내남(內南) 곧 부남면(府南面)으로 들어와서 모처럼 집에서 푹 쉬고 있다. 춘3월 봄이 되니 따뜻한 바람이 남쪽 울주(蔚州)방향에서 불어오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부남면의 월산리(月山里)는 남쪽의 앞산 바로 아래에 자리잡고 있어서 그런지 봄바람의 기세가 많이 꺾이어 있다. 그래서 허선비가 아내 최선미를 바라보고서 한마디를 한다; “허허, 바위가 많은 앞산 때문에 봄기운이 빨리 오지를 못하고 있군요. 춘래..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70(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70(손진길 소설) 간도(間島)지역 연길(延吉)의 강남(江南)에 위치하고 있는 심씨부락(沈氏部落)의 서당(書堂) 겸 신식학교에서는 2학기제를 운영하고 있다. 제1학기는 5월초부터 7월말까지이고 제2학기는 10월초부터 12월말까지이다; 여름방학이 8월과 9월 2달간이고 겨울방학이 정월부터 4월말까지 4달간이다. 겨울방학이 여름방학보다 2배로 긴 것은 간도지역이 워낙 추워서 겨울철이 길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반반이다. 6개월 수업하고 6개월은 방학인 것이다. 따라서 허선비 부부는 여름에 2달간 그리고 겨울에 4달간을 조선에 들어가서 제2의 고향으로 정하고 있는 경주부 내남의 시골집에서 주로 지내고 있다. 그들은 간도와 울산 사이 그 먼 길을 바닷길 직선거리로 빨리 다니기..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69(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69(손진길 소설) 강천무의 말이 허선비의 예상을 가볍게 넘어서고 있다. 왜냐하면 그가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굉필이 형님, 저는 40년전에 형님을 모시고 한성부에서 무관생활을 하던 젊은 시절이 자꾸 생각납니다. 그때 저는 정말 신나는 한시절을 보냈기 때문이지요. 비록 60대 초반의 나이가 되었지만 그때의 경험을 다시 해보고 싶어요. 따라서 저는… “. 강무관이 20대였던 당시의 젊은 시절을 추억하고 있다. 한성부 야경담당 허굉필 나리와 함께 한밤중에 한양의 골목길을 누비던 그 시절이 좋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가 이어 말한다; “지금 당장 새로운 개척지 용정(龍井)으로 형님을 모시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68(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68(손진길 소설) 1885년 10월 중순에 허선비 부부는 심한수가 교장으로 있는 학교에서 오후수업을 마치고 심씨부락(沈氏部落)에 있는 자신들의 숙소에서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 바로 그때에 부락 중앙광장에 설치되어 있는 종각에서 급한 종소리가 사방으로 터질 듯이 울리고 있다; 그것은 외적의 기습이나 큰 화재가 발생한 경우에 울리는 경보의 종소리이다. 그 점을 생각하면서 허선비와 최선미가 얼른 학교로 달려간다. 혹시 그곳에서 화재라도 발생했는지 염려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교는 멀쩡하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일까?... 굳이 동네주민을 붙잡고 물어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갑자기 심씨부락의 북녘에서 연거푸 총소리가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67(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67(손진길 소설) 허선비는 작년에 그리고 아내인 최선미는 금년 1884년에 만으로 60세이다. 조선나이로는 환갑이 지나고 진갑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건강하고 업무추진능력이 또한 대단하다. 따라서 허선비 부부는 1884년 갑신년(甲申年) 4월말에 연길(延吉)의 주막에서 심한수가 서당을 운영하고 있는 심씨(沈氏)부락으로 거처를 옮기고 당장 그곳의 학동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두사람은 그해 5월초부터 7월말까지 무려 3달간 집중수업을 진행한다. 그 서당의 학동들은 오전에는 심한수로부터 한문을 배우고 아울러 조선과 청국의 역사와 정치 그리고 경제 등에 관하여 두루 배우고 있다. 오후시간에는 허선비로부터 1시간반 신학문을 배우는데 그것이 영어와 영국의 역사 및 산업혁명에 ..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66(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66(손진길 소설) 조선의 고종 21년인 1884년 4월 하순에 허선비 부부는 간도지역 조선인들의 중심도시인 연길(延吉)시내를 둘러보고 있다. 1870년대에 개발되기 시작한 성읍이 연길인데 많은 조선인들이 계속 두만강을 넘어 간도로 들어오자 그 도시의 발전속도가 빠르다. 따라서 이제는 3만명이 넘는 조선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 새로운 삶의 터전이다; 중심지역에는 나름대로 새로 건설한 넓은 도로 곧 신작로(新作路)가 뚫리어 있다. 그 이유는 우마차가 사람과 물자를 빠른 속도로 실어나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간도지방의 북쪽에는 광활한 만주 벌판이 마치 하나의 대륙처럼 넓게 펼쳐 있다. 그 면적이 자그마치 조선반도의 4배가 넘는다. 그러니 신작로를 통하여 사람이 말을 타고 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