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75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45(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45(손진길 소설) 1858년 늦은 봄과 여름 그리고 초가을에는 김포군수인 허굉필이 공무로 상당히 바쁘다. 어업을 주로 하고 있는 연안지역은 이제 무관인 통진 도호부사 조항준이 자신의 관할로 삼고 있기에 김포군수는 농업지역인 내륙의 들판만 잘 보살피면 된다. 그에 따라 정4품 장령 벼슬을 가지고 있는 허군수는 늦은 봄 모내기철부터 논에 나가서 군내의 농정을 돌보기에 여념이 없다. 특히 그는 치수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김포평야가 한강 하류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그 풍부한 수량을 농업용수로 끌어들이는 시설을 사전에 보강하는 것이 풍흉의 관건이 되고 있다. 여름철 내내 허군수는 아침 일찍 기상하여 관내의 하천과 보 그리고 농수로를 살피고 다닌다. 군수보다 더 일찍 첫새벽에 부지런..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44(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44(손진길 소설) 허굉필이 최제선에게서 빌린 서책을 다음날 아침식사를 끝내고 돌려주자 그가 깜짝 놀라서 말한다; “저녁시간이 아니라 아침나절에 되돌려 주시니 정말 말씀하신 대로 밤새 이 서책을 다 읽으신 모양이군요. 어떻게 이해가 되는 대목이 더러 있습니까?... “. 그 말을 듣자 허굉필이 최제선을 보면서 간략하게 대답한다; “서양에서 들어온 천주학(天主學)의 주장과 우리 조선에서 조상 대대로 전해지고 있는 유불선(儒佛仙)의 주장을 서로 비교하면서 그 차이점과 공통점을 잘 정리하고 있더군요. 실로 탁견입니다.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자신의 가치판단을 보류하면서 단지 그 서책의 내용을 그와 같이 간단하게 요약하여 말하고 있는 허굉필이다. 그의 조심스러운 언급..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43(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43(손진길 소설) 11. 허굉필이 우연히 최제선을 만나다 허굉필은 1857년 10월 하순에 동래의 초량에 있는 김준우 부부의 료칸에서 4일간 머물고 있다. 하루는 저녁시간에 일찍 식사를 끝내고 7살 아들 허지동의 손을 잡고 료칸의 마당에서 산책을 한다; 그때 어느 방에서 어떤 선비가 낭랑하게 서책을 읽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린시절부터 한학을 배워서 많은 서적을 독파한 허굉필이다. 그러므로 대강 남이 글 읽는 소리만 들어도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감을 잡는다. 하지만 그 선비가 읽고 있는 내용은 처음 듣는 것이다. 흥미가 발동한 허굉필이 그 방의 툇마루에 앉아서 아예 그 내용을 청취한다. 그 결과 그것은 천주학의 내용을 가지고 조선의 유학과 불교 그리고 도교의 사상을 다시 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42(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42(손진길 소설) 1857년 2월 중순에 허굉필이 한양에서 과거시험 동기들을 만나고 김포 관아로 돌아오자 열흘도 안되는 부재기간 중에 군수인 그의 결재를 기다리고 있는 문서들이 꽤 쌓여 있다. 허첨정은 서류의 결재부터 먼저하고 있다. 그의 옆에서는 이방 정조민이 군수의 결재를 돕고 있다. 서류에 미처 기록되어 있지 아니한 배경설명과 자신이 군수를 대리하여 대충 처리한 내용을 요령 있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허군수는 정이방의 설명을 참조하면서 문서에 기록된 내용을 빠르게 파악한다. 그리고 자신의 수결을 하고 있다. 머리가 영민한 허굉필이므로 매사 일처리가 빠르고 정확하다. 그러한 허군수의 천재성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20살이나 연상인 이방 정조민이 마치 사랑스러운 조카를 ..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41(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41(손진길 소설) 그날 저녁 이조 좌랑 윤일윤의 자택에서 만난 그 옛날 한성부의 4군자는 그동안의 안부를 서로 묻고 술잔을 돌리느라고 바쁘다. 특히 한양에서 계속 근무하고 있는 3사람 곧 윤일윤과 한우진 그리고 심한수는 8년이 지나서 대과 동기인 허굉필을 만났으므로 그의 지나온 이야기를 듣느라고 바쁘다. 대강의 이야기는 벌서 윤일윤을 통하여 들은 바가 있지만 소상한 이야기는 처음인 것이다. 따라서 허첨정은 벗들에게 지난 8년동안 구례현감과 영덕 현령의 자리를 거쳐서 작년부터 김포군수로 근무하고 있는 자신의 외직(外職)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간추려서 해준다. 물론 영덕에서 일본을 방문한 이야기나 구례에서 개천가의 땅을 개간하면서 개인적으로 일천 마지기의 땅을 확보한 이야기는 생..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40(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40(손진길 소설) 1857년 2월 6일 밤에 기생 명월이 행수로 있는 종로의 기방에서 복면 괴한들의 습격을 받은 바 있는 3사람이 다음날 2월 7일 낮에 병조 참의의 회의실에서 은밀하게 만나고 있다. 정3품 참의 벼슬을 지니고 있는 홍재덕 영감이 그날 호조의 정4품 장령 벼슬에 올라 있는 김유진과 김포군수인 종4품 허굉필 첨정에게 그 사건의 배후에 관하여 상의하고 있는 것이다. 어젯밤 검은 복면이 벗겨진 한사람의 괴한의 정체를 알아본 인물이 김유진 장령이다. 그가 먼저 2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자는 분명히 내가 쌍문점의 주인 김학수를 만났을 때에 호위무사로 동행하고 있었어요. 그러니 살인청부업을 경영하고 있는 김학수가 어떤 자의 의뢰를 받고서 대규모 암살단을 보낸..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39(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39(손진길 소설) 허굉필이 최선미와 함께 육조거리로 들어와서 호조(戶曹)를 찾는다. 19세기 중엽인 당시 조선의 임금이 거처하고 있는 창덕궁에서 서편으로 나서면 육조거리가 북에서 남으로 펼쳐지고 있다; 왼편으로는 이조, 예조, 호조가 자리를 잡고 오른쪽으로는 병조, 형조, 공조가 위치하고 있다. 1844년에 대과에 급제한 약관의 허굉필이 어전에서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아깝게 차석을 했다. 당시 장원을 한 인물이 안동 김씨 문중의 김호선(金好善)인데 그는 33개의 어사화가 장식이 된 관모를 사용했다. 차석을 한 김해 허씨 문중의 허굉필은 23개의 어사화가 있는 관모를 머리에 쓰게 되었다. 그때 한양에 머물면서 허굉필은 육조거리의 배치의 특징을 익히게 되었다; 그 옛날 경복궁 ..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38(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38(손진길 소설) 1857년 2월 3일에 김포군수인 첨정 허굉필은 이방 정조민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이방에게 내가 긴히 할 말이 있습니다. 한 열흘 정도 한양을 다녀오려고 합니다. 작년 3월에 이곳의 군수로 부임하여 일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왕도인 한양을 한번도 방문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미 아시겠지만, 나는 한성부에서 오래 근무했어요. 따라서 이번에 벗들을 좀 만나보고 싶군요. 아무쪼록 부재중에 업무대행을 부탁드립니다!... “; 개인적으로 특별히 부탁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 말을 듣자 정이방이 허허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허, 먼저 말씀하지 아니하시더라도 저희 육방의 장들이 새해도 되었고 하니 한양을 한번 방문하시라고 군수께 말씀을 드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의..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37(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37(손진길 소설) 1856년 3월 중순에 김포군수로 부임한 종4품 첨정 허굉필은 한해동안 굉장히 바빴다. 김포평야를 가지고 있는 김포군의 군수이기에 풍작을 이루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치수(治水)사업에 있어 만전을 기하고자 노력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늦은 봄과 초여름의 모내기철 그리고 가을 추수의 시기에는 군관민(軍官民)이 하나되어 농촌의 일손을 돕자고 군수인 허첨정이 부르짖으면서 스스로 팔을 걷어붙이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군수인 허첨정이 먼저 농사의 현장에 직접 뛰어들자 향리들과 관군들 그리고 지역유지들이 크게 호응을 했다. 군수인 첨정 허굉필은 본래 시골 출신이다. 그것도 경상도에서 나름대로 평야지대가 있는 남부의 김해(金海)가 그의 고향이다. 한마디로, 넓은 김해평야가..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36(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36(손진길 소설) 1856년 3월 중순에 김포군수로 업무를 시작한 허첨정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방 정조민으로부터 군내의 현황보고를 청취하고 6방의 업무내용을 파악하는데 이틀이 소요가 되고 있다. 그 다음에 허군수는 얼른 동헌의 서편에 다소 떨어진 장소에 자리를 잡고 있는 향청(鄕廳)을 방문한다. 미리 신임군수가 문안을 갈 것이라고 포교 강원수를 보내어 통지를 했기에 향청 좌수(座首)의 집무실에서 공인후(公仁厚) 진사(進士)가 기다리고 있다. 연세가 쉰 정도인데 김포의 향청에서 우두머리가 되고 있는 이유는 그의 집안이 김포 공씨이며 또한 개인적으로 학문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공진사가 허군수의 큰 절을 받으면서 맞절을 한다. 종4품 첨정의 벼슬을 지니고 있는 군수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