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40(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9. 17. 02:20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40(손진길 소설)

 

185726일 밤에 기생 명월이 행수로 있는 종로의 기방에서 복면 괴한들의 습격을 받은 바 있는 3사람이 다음날 27일 낮에 병조 참의의 회의실에서 은밀하게 만나고 있다. 3품 참의 벼슬을 지니고 있는 홍재덕 영감이 그날 호조의 정4품 장령 벼슬에 올라 있는 김유진과 김포군수인 종4허굉필 첨정에게 그 사건의 배후에 관하여 상의하고 있는 것이다.  

어젯밤 검은 복면이 벗겨진 한사람의 괴한의 정체를 알아본 인물이 김유진 장령이다. 그가 먼저 2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자는 분명히 내가 쌍문점의 주인 김학수를 만났을 때에 호위무사로 동행하고 있었어요. 그러니 살인청부업을 경영하고 있는 김학수가 어떤 자의 의뢰를 받고서 대규모 암살단을 보낸 것이지요. 과연 그 의뢰자가 누구일까요?... “;

그 말을 듣자 홍재덕 참의가 말한다; “김학수는 오늘날 한양에서 밤의 지배자로 불리고 있지만 그 부친이 이조판서를 지낸 김용범 대감이지요. 그러니 부친을 돕는다는 생각이 없으면 그와 같은 대규모 암살단을 내보내지 아니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김대감과 척을 지고 있는 인물이 과연 누구일까요?... “.

순간 김유진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중얼거리듯이 말한다; “김용범 대감과 사이가 좋지 아니한 인물이라고 하면 금위대장을 지낸 조명우 영감이 첫손에 꼽히고 있는데그런데 어째서 그를 치지 아니하고 우리들을 노리고 암살단이 쳐들어온 것일까요? 거참 이해하기 힘든 일이군요... “.

그 말을 들은 홍재덕 참의의 얼굴이 굳어지고 있다. 그러한 홍참의의 표정의 변화를 그 앞에서 허첨정이 의미심장하게 읽고 있다. 그리고 그는 내심 한가지 생각의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그의 추리를 간추려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첫째, 강화도령을 조선의 임금으로 옹립하여 세도정치를 계속 강화하고 있는 가문이 안동 김씨이다. 그들의 정적이 될 수 있는 상대가 조정은 물론 왕족에 있어서도 별로 없다. 구태여 손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조정에서는 역시 외척의 자리에 있는 풍양 조씨남양 홍씨 정도이다. 그리고 왕족 중에는 별로 남아 있는 집안이 없다. 기껏해야 오래 전에 죽은 은신군(恩信, 정조의 둘째 이복동생)봉양자(奉養子, 죽은 조상의 제사나 받드는 양자)로서 지금 한양에 살고 있는 남연군의 아들들 정도이다. 그 가운데 똑똑한 인물이 흥선군이라고는 하지만 그도 맞아 죽지 아니하기 위하여 지금은 파락호로 지내고 있다;

 그러므로 안동 김씨의 실세인 김용범 대감이 비밀리에 크게 움직일 필요가 없다고 본다.

(2)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외아들 김학수에게 지시하여 대규모 암살단을 보내어 오래간만에 기방출입을 한 홍참의를 한밤중에 없애려고 한다.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유능한 참모로부터 특별한 정보를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유능한 참모가 누구이며 그 정보의 내용이 무엇일까?...

(3)  셋째, 허첨정은 자신의 경험 가운데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있다. 그것은 김용범 대감에게는 그 옛날에 심복으로서 장천웅(張天雄) 교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자의 뒤를 깨어볼 필요가 있다. 그가 어떤 정보를 얻었기에 김대감을 움직여서 쌍문점의 암살자들을 동원한 것일까? 확실한 정보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풍양 조씨인 조명우 영감, 남양 홍씨인 홍재덕 영감, 그리고 파락호로 보이고 있는 흥선군 사이에 모종의 움직임이 있는 것을 그가 파악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하면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역시 해답은 금상(今上, 지금의 임금) 후의 후계구도일 수밖에 없다!...

그와 같은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허굉필이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생각을 함부로 발설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안동 김씨인 김유진 장령이 자리를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김장령이 그러한 허첨정의 내심을 알아차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 자리에서 허첨정이 다음과 같이 부드럽게 말한다; “형님들, 이 자리에서 당장은 그 해답을 얻을 수가 없겠군요. 그러니 은밀하게 각자 정보를 수집한 다음에 이틀 후 29일에 여기 다시 모여서 각자의 수집정보와 생각을 말하고 함께 토론하는 것이 어떻겠어요?... ”.

그의 의견이 받아 들여져서 그날의 모임이 그렇게 싱겁게 끝나고 있다. 그런데 다음날이 되자 허첨정이 느닷없이 병조의 홍재덕 참의를 찾아가고 있다. 홍참의가 깜짝 놀라서 다른 사람을 물리고 허첨정과 단독으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그 자리에서 허첨정이 다음과 같이 운을 떼고 있다; “형님, 혹시 장천웅(張天雄)이란 인물을 알고 있습니까? 최근에 그와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하신 것입니까?... “. 그 말을 듣자 갑자기 홍재덕이 상당히 놀란 눈으로 허굉필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렇지만 허첨정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어쩔 수가 없는지 홍재덕이 말한다; “굉필이 아우는 최근에 내가 장천웅을 만난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 그가 이조(吏曹)에서 참의로 근무하고 있는데 유달리 나에게 친절하더군. 그래서 내가 한가지 부탁을 하고자 그를 만났지… “.

그 정도만 말하고 홍재덕이 입을 닫는다. 그것을 보고서 허굉필이 조심스럽게 질문한다; “형님, 혹시 그 부탁이란 것이 인사 청탁이고 그것은 흥선군과 관련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 홍재덕은 의아한듯이 허첨정을 바라본다. 그리고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맞아요. 흥선군이 내게 부탁한 간단한 인사 청탁 건이지요… “.

그제서야 허굉필이 빙그레 웃으면서 홍재덕에게 말한다; “장천웅은 본래 김용범 대감의 유능한 참모입니다. 그가 이조 참의의 자리에 있으면서 병조 참의인 형님에게 친절한 이유는 남양 홍씨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지요. 그런 줄을 모르고 무관 출신인 형님이 그 자에게 왕족인 흥선군과 관련되어 있는 인사를 청탁한 것이지요. 그러니 그 사단이 난 것으로 보이는데요!... “.

그 말을 듣자 홍재덕이 소리를 내어 정확하게 말한다; “그렇군. 내가 그것을 몰랐군. 그자의 정체를 진작에 알았더라면 결코 흥선군이 부탁한 일을 그에게 말하지 아니했을 것인데이거 뒷수습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

허굉필이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형님, 김용범 대감이 현직에서 물러나 있지만 여전히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핵심 인물입니다. 그의 외아들이 쌍문점의 주인이고 한양의 밤을 지배하고 있으니 암살단이 김대감의 수중에 들어있다고 보아야지요. 그러므로… “.

잠시 말을 멈추고서 허굉필홍재덕의 표정의 변화를 살피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한다; “김대감은 장차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자들을 사전에 제거하고 있어요. 물론 그의 심복이 이조 참의인 장천웅이고요;

 그러니 형님이 살기 위해서는 한가지 방법밖에 없지요. 그것은… “.

허굉필은 자신의 생각을 더이상 말하지 아니하고 있다. 그러나 말하지 아니하고 있는 그 대목의 뜻이 무엇인지를 홍참의가 충분하게 알아듣고 있다. 따라서 그가 결심을 한 듯이 말한다; “굉필 아우, 내가 충분히 알아 들었어. 그 자의 입에서 중요한 정보가 새어 나가고 있다고 한다면 내가 그의 입을 아예 봉할 수 밖에 없겠군. 그래 내게 더 하고 싶은 말씀은 없으신가?... “.

순간 허굉필이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리고 결심한듯이 말한다; “사실은 한가지 묻고 싶은 것이 더 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것도 있고요. 그 옛날 함께 동래에서 적들과 싸우던 그 심정으로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한가지 질문은 혹시 형님께서 도모하시고자 하는 그 일에 풍양 조씨 집안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습니까?... “.

그 말을 듣자 홍참의가 조용히 고개를 끄떡인다. 긍정의 뜻이다. 그의 답변이 솔직한 것을 보고서 허첨정이 말한다; “잘 알겠습니다. 저에게 진심을 토로하고 계시니 제가 정직하게 저의 부탁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의 처가가 사실은 안동 김씨에 의하여 절단이 나버리고 말았어요. 그러니… “.

마침내 허첨정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한다; “훗날 기회가 되시면 억울하게 멸문이 된 저의 처조부 하용만(河勇萬) 판관의 신원회복을 부탁드립니다. 그 일이 걸려 있기도 하고 또한 형님의 장래가 걸려 있으므로 제가 앞으로 최선을 다해서 형님의 일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홍참의가 자리에서 일어나 허첨정의 손을 다정하게 잡으면서 말한다; “굉필 아우, 오늘 내가 천군만마를 얻었어. 우리 힘을 합쳐서 한번 조선의 내일을 밝혀보자고. 새로운 시대가 오면 아우가 바라고 있는 그 일이 분명히 이루어질 것이야!... “.

그와 같은 합의가 있은 다음날 김유진 장령과 더불어 두사람이 다시 병조의 참의 집무실에서 다시 만난다. 그날 김장령은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공유하고자 말한다; “김용범 대감은 지금도 금위영 대장 출신인 조명우 영감과 사이가 좋지 않아요. 현직을 떠나서 은퇴생활을 하고 있는 그들인데 어째서 그런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들의 아들인 김학수조항준(趙恒俊)의 사이도 좋지가 못해요. 그래서 쌍문점의 주인인 김학수조항준을 제거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의 말을 듣자 홍참의가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그런데 허첨정이 김장령에게 질문한다; “유진이 형, 그런데 조항준은 어디서 어떤 직급으로 근무하고 있지요?”. 김유진이 대답한다; “금위영에서 계급이 높아요. 3품인 대호군 부장이니까요. 4품 장령인 나보다 한 품계가 더 높아요”.

그 말을 받아서 홍참의가 부연 설명한다; “금위영에서는 10년내에 조항준 부장이 부친의 뒤를 이어 금위영 대장이 될 것으로 보고 있어요. 그는 무예 뿐만 아니라 지모도 상당하기 때문이지요. 내가 일찍이 금위영에서 그와 함께 지내보아서 그의 능력과 성품을 잘 알고 있어요”.

그 다음에 홍참의가 김장령에게 질문한다; “그 밖에 달리 얻은 정보는 없어요?... “. 김유진이 자신의 머리를 긁으면서 대답한다; “재덕이 형, 내 능력으로는 더 이상 파악을 할 수가 없어요. 쌍문점의 김학수가 무슨 마음으로 숙적인 조항준을 치지 아니하고 수하를 보내어 우리를 치고자 한 것인지 말입니다. 그것 참, 김학수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없고… “.

그 말을 듣자 홍재덕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굉필 아우는 외직인지라 한양의 형편을 잘 모르고 하니, 우리는 이 문제를 이 정도에서 덮고 그냥 지나가도록 합시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의 한계가 그 정도이니 어쩔 수가 없군요. 그러니 각자 자신의 안보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향후 서로 도울 일이 있으면 즉각적으로 돕도록 합시다. 그러면 다음에 또 만납시다!”.

그 정도의 결론 아닌 결론을 맺고서 3사람은 헤어지고 있다. 그리고 다음날 210일 오후에는 허굉필이 최다모와 함께 윤일윤의 집을 방문한다. 허굉필은 자신이 신세를 지고 있는 최경수의 집과 이웃하고 있는 동네에 윤일윤의 집이 있으므로 찾아가기에 편리하다.

그곳에서 허굉필과 최다모는 반가운 인물들을 두루 만난다. 그 옛날 한성부의 4군자인 허굉필(), 윤일윤(尹日潤), 한우진(韓宇進), 그리고 심한수(沈漢水)대과(大科) 동기들이므로 흉허물이 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날 허첨정은 그들에게서 어떠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