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38(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9. 14. 11:40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38(손진길 소설)

 

185723일에 김포군수인 첨정 허굉필은 이방 정조민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이방에게 내가 긴히 할 말이 있습니다. 한 열흘 정도 한양을 다녀오려고 합니다. 작년 3월에 이곳의 군수로 부임하여 일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왕도인 한양을 한번도 방문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미 아시겠지만, 나는 한성부에서 오래 근무했어요. 따라서 이번에 벗들을 좀 만나보고 싶군요. 아무쪼록 부재중에 업무대행을 부탁드립니다!... “;

개인적으로 특별히 부탁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 말을 듣자 정이방이 허허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허, 먼저 말씀하지 아니하시더라도 저희 육방의 장들이 새해도 되었고 하니 한양을 한번 방문하시라고 군수께 말씀을 드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무 염려하지 마시고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

그 말에 허첨정이 자신의 허리를 굽히면서 정이방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참으로 고마운 말씀입니다. 상하관계를 떠나서 나는 이방어른이 좋습니다. 군민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면 물불을 가리지 아니하고 뛰어드는 그 열정적인 자세를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차제에 일찍이 한성부에서 함께 근무했던 최다모를 데리고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양해를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이방 정조민이 기분 좋게 말한다; “제게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최다모와 함께 움직이셔도 됩니다. 한양에 인접하고 있는 김포군의 수령이 모처럼 도성을 방문하고 오겠다고 하는데 어느 누가 흉을 보겠습니까? 이제부터는 좀 자유스럽게 행동을 하시지요, 사또 나으리. 제가 별로 힘은 없지만 최대한의 지원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정이방의 모습에서 허군수는 지난 한해동안 열심히 군정을 돌본 것이 결코 허무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고 있다. 가장 가까이에서 자신을 보좌하고 있는 김포군의 토박이 정조민 이방의 마음이 그와 같다고 하면 다른 향리와 육방관속의 마음도 그러할 것이다.

이튿날 24일에 허첨정최다모와 함께 아들 지서(知西)를 데리고 한양으로 길을 떠난다. 시간을 아끼기 위하여 두사람은 각각 말을 타고서 달린다. 처음에는 최다모가 아들을 등에 업고서 말을 몰았다. 그런데 나중에는 허첨정이 아들을 앞가슴에 띠로 묶고서 말을 달리고 있다;

그들이 가고 있는 방향은 남대문 가까이에 있는 옛날 하숙집이다. 그 집의 주인 최경수(崔慶水)가 대문을 들어서는 허굉필을 보고서 얼마나 반기는지 모른다; “이게 누구신가? 어젯밤 꿈이 유달리 좋더니 헤어진 지 9년만에 허나리를 다시 만나게 되다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

그 옆에 서있던 안주인 안성댁허굉필과 함께 들어서는 최다모와 그녀의 아들을 보고서 크게 반긴다; “아이고, 우리 허나리가 이제는 처자식과 함께 한양나들이를 하고 있군요. 어서 오세요. 정말 반가워요!... “.

집주인 최경수는 얼른 자신이 거처하고 있는 사랑방으로 허굉필을 데리고 간다. 그리고 안성댁최다모 모자를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 사이에 허굉필최다모가 타고 온 말 두 필은 그 집의 아들 최한주(崔漢州)가 고삐를 끌고서 마구간으로 간다.

사랑방에 들어서자 허굉필이 얼른 최경수에게 절을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가 지난 9년간 외직을 떠도느라고 한양에 전혀 들리지를 못했습니다. 작년 3월에 가까운 김포군의 수령으로 부임하여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제서야 아저씨를 찾아 뵙고 이렇게 절을 올립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

최경수도 맞절을 하면서 말한다; “허허, 내 나이가 벌써 쉰이 넘었어요. 자네도 이제는 30대이겠구만! 세월이 빨라요그대가 이곳에서 하숙생활을 하면서 한성부에서 한참 날리고 있던 그때가 나는 그리워요!... 우리집 장남 한주는 벌써 성가를 하고 이곳에서 함께 살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 내외는 좀 편해진 셈이지요… “.

그 말을 듣자 허굉필이 말한다; “아저씨, 말씀을 듣고 보니 이제는 며느리와 한집에 살고 있는 시아버지가 되어 있군요. 하하하, 축하합니다. 저는 처자식과 함께 이번에 한양에 온 김에 한 열흘정도 푹 쉬고 갈 생각입니다. 혹시 빈방이 있습니까?... “.

그 말에 최경수가 껄껄 웃으면서 말한다; “자네는 언제나 환영이야! 빈방이 없으면 나하고 사랑방에서 함께 거처해도 되지요. 그리고 자네 처자식은 내 안사람과 함께 안방을 사용하면 되고요. 무엇이 문제인가요? 껄껄껄“.

다음날부터 허굉필최다모와 함께 말을 타고서 한양의 이모저모를 살핀다. 그들의 품속에서는 3살이 다 되어가는 아들 허지서가 한양구경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그 옛날 한성부에서 근무할 때에 4대문 안쪽을 밤중에 순찰하던 생각이 난다. 그때는 야간근무였고 지금은 주중에 주마간산격으로 시가지와 골목길을 누비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주막에 들린 김에 식사를 하면서 백성들이 떠드는 소리를 유심히 듣고 있다. 그리고 광화문에서 한성부 사이에 있는 관청의 거리를 천천히 오가면서 관료들이 지나가면서 하고 있는 이야기를 또한 관심있게 듣고 있다;

저녁에 그들은 하숙을 치고 있는 최경수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날 허굉필이 남산골에 오래 살고 있는 터줏대감 최경수에게 한양의 소식을 묻는다. 탁배기를 나누면서 최경수가 외직에 나가 있는 허굉필에게 도움이 될 만한 소식을 간추려서 다음과 같이 들려준다; “무엇보다도, 금상이 문제이지요! 벌써 즉위한지 9년이고 춘추도 27세가 되어 있어요. 그런데도 초기 수렴청정의 시대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요“.

 최경수가 끌끌 혀를 차면서 이어 말한다; “학문이 부족하면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되는데 그것이 아니고요. 아예 국정을 전부 원로대신들에게 맡겨 놓고 임금이 국사에 관여하지를 아니하고 있어요. 그러니 세도정치가 계속 판을 치고 있지요. 조정에서는 안동 김씨에 대한 견제세력이 없어요.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요!... “.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허굉필이 슬쩍 물어본다; “대왕대비는 안동 김씨이지만 대비는 헌종 임금의 계비였던 남양 홍씨가 아닙니까? 그 집안도 만만하지가 아니할 터인데 조정에서 안동 김씨를 견제하기에는 역시 역부족인 모양이지요?... “.

그 말을 듣자 최경수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조정에서 남양 홍씨라고 하면 대비의 당숙인 홍재덕 참의가 병조에서 일하고 있지요. 그렇지만 병조의 판서와  참판이 모두 안동 김씨이니 홍참의가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어요. 그러니 그는 왕족 가운데서 힘 받이를 얻으려고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아요!... “.

그것 참 흥미로운 대목이다!’, 허굉필의 촉이 날카롭다. 따라서 은근슬쩍 최경수에게 물어본다; “한양에서 왕족은 씨가 말랐을 텐데, 그것이 아닌가요? 금상에게는 가까운 왕족이 전혀 없지 않습니까?... “. 최경수가 조용히 입을 뗀다; “한사람 있기는 하지요… “.

허굉필이 아연 긴장하면서 귀를 기울인다. 최경수가 음성을 낮추어서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이곳 남산골에서 하숙생을 오래 치다가 보니 나름대로 얻어 듣고 있는 이야기가 좀 있어요. 금상의 조부가 본래 정조 임금의 이복동생인 은언군인데 그쪽 자손은 진작부터 안동 김씨의 탄압을 받아 유배생활 끝에 온 집안이 박살이 나고 말았다고 해요. 하지만… “;

 최경수허굉필이 경청하는 모습을 보고서 이어 말한다; “은언군의 동생이 은신군인데 그의 사후에 먼 일가가 양자로 들어왔지요. 그가 새로 왕족이 된 남연군인데 친가로 보면 그 옛날 임금 인조의 삼남인 인평대군6대손이지요. 우리 조선에서는… “.

최경수의 설명이 상당히 구체적이다; “왕자의 증손자까지 3대에 한하여 왕족으로 인정하고 ()의 칭호를 주고 있어요. 따라서 남연군의 조부와 부친은 왕족이 아니라 전주 이씨에 불과했지요. 하지만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 그가 은신군의 제사를 받드는 양자가 되었기에 그의 아들들이 왕족이 되고 또한 어린 손자들까지 왕족 대접을 받고 있어요. 그 가운데 4남인 흥선군이 기인입니다. 왜냐하면“;

최경수가 잠시 허굉필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말한다; “내가 알기로는, 흥선군의 나이가 그대보다 그저 3살 정도 연상이지요. 그가 안동 김씨의 견제에서 벗어나고자 일부러 기인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 같아요. 권신인 안동 김씨에게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리고 도저히 왕족이라고 볼 수 없는 주책을 부리고 있어요. 따라서… “.

정작 허굉필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는 정보가 다음과 같이 최경수의 입을 통하여 흘러나오고 있다; “아무도 흥선군을 가까이하지 아니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홍참의가 은근히 그에게 친절합니다. 그 이야기는 흥선군과 어울리고 있는 내 집안의 조카가 나에게 해준 것이니 틀림이 없지요!... “.

허굉필의 표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안색의 변화가 없다. 그러나 그는 속으로 그 인과관계를 영민하게 따지고 있다. 그의 생각이 좁혀지고 있다; ‘세도가 안동 김씨의 관심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흥선군, 그리고 세력이 약하여 안동 김씨를 제대로 견제할 수가 없는 홍참의, 그 두사람이 은연중에 만나고 있다. 그렇다면… ‘.

그의 결론이 다음과 같다; ‘그렇다고 하면, 두사람은 벌써 금상의 뒤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야! 그들의 계획이 성사만 된다면 새로운 조선이 탄생할 수도 있어. 그것은 우리 조선으로서는 산업근대화로 나아갈 수가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게다가 나는 개인적으로 그들에게 처가의 신원회복을 부탁해볼 수도 있을 것이야!... ’.

이튿날 다시 한양의 거리로 나온 허굉필최선미는 종로통으로 들어선다. 아들 허지서는 안성댁에게 하루 맡겨 놓았기에 말을 타고서 종로거리를 누비는 그들의 모습이 한가로워 보인다. 허굉필이 기억을 더듬어서 그 옛날 호조판서를 지낸 김형술(金亨述) 대감의 저택을 찾고 있다.

대문간에서 이리 오너라!’고 외치는데 행랑채에서 중년의 머슴이 나와서 문을 열어준다. 그에게 허굉필이 묻는다; “혹시 그 옛날 집사 김호길(金好吉) 어른을 만날 수가 있을까요?”. 처음 보는 머슴의 대답이 곧 들려온다; “대감께서 5년전 조정에서 물러 나시자 김집사가 이곳을 떠났지요. 벌써 수년째 내왕이 없습니다”.

이왕 질문한 김에 허굉필이 하나 더 물어본다; “그러면 김대감님의 자제분인 김유진(金維珍) 나리는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여기에 부모님과 함께 살고 계시는지요?... “.

그 말을 듣자 머슴이 머리를 조아리면서 대답한다; “, 잘 찾아오셨습니다. 저녁에 퇴청하여 이 집으로 오실 것입니다. 혹시 전달하실 말씀이라도 계시는지요?... “. 허굉필이 다음과 같이 묻는다; “김유진 나리가 어느 관청에서 일하고 계시는가요? 알려주시면 직접 관청으로 가서 찾아 뵙겠습니다”.

머슴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대답한다; “호조(戶曹)에서 정4장령()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호조가 여기서 멀지 않으니 그렇게 하시지요. 그러면 살펴가십시오”. 허굉필은 머슴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서서히 종로통을 벗어나고 있다. 그는 과연 그날 김유진을 호조에서 만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