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35(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9. 7. 11:15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35(손진길 소설)

 

10. 김포 군수 허굉필이 현지에서 시도하는 일들

 

18561월 중순에 경상감사를 통하여 영덕 현령인 허굉필에게 조정에서 발행한 관보와 함께 새로운 품계에 따른 호패가 전해지고 있다. 5정랑()인 허굉필이 드디어 종4첨정()의 벼슬에 오르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호패에는 4품 첨정 허굉필’(宗四品 )이라고 새겨져 있다.

그런데 그 벼슬은 사실 한양 조정의 이조(吏曹)에서 관리하고 있는 신분에 불과하다. 이제는 그 벼슬에 상응하는 직책이 주어져야 한다. 따라서 한달 후에 새로운 보직이 허첨정에게 주어지고 있다. 그것이 경상도를 떠나 멀리 경기도로 전출이 되어 한양의 서쪽 80리에 자리잡고 있는 김포군’(金浦郡)군수’(郡守) 자리를 맡는 것이다;

허굉필외직(外職)을 선호하고 있으므로 그를 김포군수로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영덕 현령에서 이제는 승차하여 멀리 김포군수로 떠나가야 하는 허첨정이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한가지 못다한 아쉬움이 옹이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허굉필1854년에 일본의 죠슈번 하기시를 다녀온 이후 당시 함께 동행했던 곽병방, 곽생원, 그리고 장통역과 함께 자주 현령의 집무실에서 은밀하게 만나면서 한가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논의를 거듭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영덕에서 하기시와 비슷한 산업선진화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문제였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 이유는 일본의 영주인 다이묘(大名)는 비록 중앙의 견제를 받고는 있지만 그래도 자신의 영지를 현지에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다이묘는 실제적으로 지방에 있는 자신의 영지에서는 작은 ()과 같은 존재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근세 일본이란 마치 중세시대의 구라파처럼 지방분권이 뚜렷한 봉건사회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은 그와 정반대이다. 다음과 같이 철저한 중앙집권제 왕정국가인 것이다;

첫째, 지방의 수령이란 결코 세습제가 아니다. 그가 다스리고 있는 지방에 자신의 봉토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중앙에서 녹봉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지방의 수령이란 어디까지나 중앙에서 파견하는 관리의 신분에 불과한 것이다.

둘째, 중앙에서 지방수령을 단기로 복무하도록 순환보직으로 돌리고 있다. 따라서 2계급 승진하면 무조건 새로운 임지로 떠나야 한다. 지방직인 현감, 현령, 군수, 부사, 감사 등이 그러한 단계로 이미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셋째, 지방의 수령은 결코 가족을 대동하여 부임할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군식구를 데리고 부임하는 경우가 불가피하게 있을 수가 있지만 그것은 개인적으로 흠집이 된다. 왜냐하면, 조정에서 그것을 좋지 아니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극히 조심해야 한다. 다행히도 허굉필은 다모 최선미의 신분이 관비이므로 그녀를 대동하고서 부임할 수가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일본의 지방영주인 다이묘와 조선의 지방수령 사이에 그러한 큰 차이가 존재하고 있기에 아무리 궁리를 해보아도 영덕 현령인 허굉필이 조직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산업근대화 방안이 없다. 그러므로 허굉필은 다른 차원에서 그 문제를 접근해 보고자 결심한다.

그것은 한양의 조정대신에게 그 문제를 인지하고 대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고민을 하고 있는 허굉필이기에 18562월말에 영덕 현령의 자리를 떠나 경기도 김포군수로 부임하면서 나름대로 한가지 꿈을 지니고 있다.

그와 같은 허굉필의 고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동지들이 사실은 영덕현에서 생활하고 있는 곽병방곽생원 그리고 장통역이다. 따라서 그들 3인은 허현령이 영덕을 떠나기 며칠 전에 환송을 겸한 그들만의 자리에서 은밀하게 자신들의 뜻을 전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우리들은 관()의 도움이 없이 개별적으로 산업근대화를 위하여 나름대로 움직일 것입니다. 그러니 현령께서는 아무쪼록 한양 가까이 가셔서 조정대신들에게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일으켜 주세요. 우리 조선도 일본의 서남번 못지 아니한 산업근대화를 이룰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 조선이 일본에게 훗날 침탈당하지 아니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허굉필은 지방수령인 자신이 참으로 무능하다고 느끼고 있다. 중앙조정에서 결정해주지 아니하면 지방수령은 산업근대화에 조직적으로 나설 수가 없다. 서양의 선진기술과 신식군대가 코앞에 다가오고 있는데 조선은 마치 청나라처럼 그 앞에 아무 대비가 없이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서 있을 따름이다.

그와 같은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는 허굉필이므로 그는 영덕현을 떠나올 때에 김좌수를 비롯한 지방유지와 현민들 그리고 6방 관속들이 매우 아쉬워하면서 송별에 나섰지만 그것을 일일이 기억할 수가 없다. 그저 어떻게 하면 김포군수로서 한양의 조정대신들에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인가를 마음속으로 계속 궁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허굉필이 김포군수로 부임하기 위하여 관비인 최다모와 그녀의 아들 지서를 데리고 먼 길을 떠나면서 사전에 파악하고 있는 김포군의 특징이 크게 보아 3가지이다;

첫째, 왕도인 한양에 가까이 있으면서 나름대로 넓은 들판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농업이 천하지대본인 고장이다. 둘째, 서해에 접하고 있으므로 군수가 어업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셋째, 조정대신들과 한양의 명문가들이 인접한 김포에 농지를 많이 소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김포군수가 그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허첨정이 쌍두마차를 몰고 최다모 모자와 함께 경상도 영덕현에서 경기도 김포군까지 가는데 참으로 시일이 많이 걸린다. 도로가 겨우 마차가 다닐 정도로 좁다. 그것도 추풍령고개를 넘어야 하기에 얼마나 교통이 불편한지 모른다. 그러므로 지방관들이 한양의 조정에 지방특산물을 진상하자면 참으로 힘이 드는 것이다.

그와 같이 조선의 조정에서 신작로를 정비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그 옛날 선조시대와 인조시대에 일본의 군대와 청나라의 군대에 의하여 침략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길이 좋으면 적군이 도성으로 들어오는데 시간이 단축되므로 그것을 사전에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발상인가? 산업선진화를 위해서는 도로의 정비가 최우선으로 필요한데 조선은 그와 정반대인 은둔의 왕국인 것이다. 그 점을 절실하게 느끼면서 허굉필이 쌍두마차를 몰고서도 열흘이상이나 걸려서 겨우 김포군에 도착한다.

허첨정은 최다모 모자와 함께 김포군에 들어서기 전에 가까운 주막에서 일박을 한다. 그리고 이튿날 조반을 마친 다음에 허굉필이 최다모의 도움을 받아서 관복으로 갈아입는다. 3품부터 정6품까지는 관복의 색깔이 청색(靑色)이다;

 그러므로 그는 현령 시절의 관복을 그냥 입을 수가 있다. 최다모의 경우에는 언제나 그 복장이 동일하다. 그러므로 별도로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허첨정은 마차에서 말 한 필을 떼어내어 자신이 탄다. 그리고 이제는 한 필의 말이 끌고 있는 마차를 다모 최선미가 천천히 몰고서 허첨정의 뒤를 따른다. 물론 그녀의 품에는 아직 2돌이 되지 못한 어린 아들 지서가 안겨 있다.

그들이 김포군의 관아 정문에 다가가자 문지기가 그 모습을 보고서 새로운 군수 허첨정의 행차인 것을 금방 알아챈다. 새로 부임할 군수가 32세의 젊은 관리라고 사전에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허첨정이 새 군수인 것을 이내 알아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허굉필은 문지기 가운데 고참으로 보이는 자에게 자신의 호패를 보여준다.

호패를 보자 그가 말에서 내려 서있는 허첨정에게 깊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면서 신고를 한다; “군수 나리,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포교 강원수(姜元洙)입니다. 부임을 축하 드립니다. 제가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말고삐를 제게 넘겨 주시고 이 호패를 잘 간수하십시오!... “.

서글서글한 인상의 강포교가 말을 끌고 안마당으로 들어서면서 신이 나서 관아가 떠나갈 듯이 큰소리로 외친다; “신임군수께서 행차하셨습니다. 모두들 나와서 영접하십시오!... “. 그 소리를 듣고서 동헌에서 근무하고 있던 6방의 관속들이 즉시 마당에 나와서 도열한다. 그 앞줄에는 육방의 장들이 서있다.

그들의 뒤에는 마차를 끌고 온 다모 최선미가 품에 아들 지서를 안고서 조용히 서있다. 허첨정이 동헌마루에 배치되어 있는 군수의 의자에 좌정하자 이방 정조민이 앞으로 나서서 크게 외친다; “육방의 장들과 향리들 그리고 포교와 포졸들은 신임 군수 허굉필 첨정에게 일제히 예를 올리도록 하시오!... “.

작은 현의 이방이나 큰 현의 이방보다 군의 이방이 더 위세가 있고 그 권한이 크다. 따라서 그는 거의 부군수의 위엄을 갖추고서 휘하의 육방관속과 군사들에게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점을 깨닫고서 허군수는 근엄하게 대청의 의자에 앉아서 그들의 절을 받는다.

이미 7년간 현감과 현령의 벼슬을 지낸 허굉필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지방수령으로서 상당한 관록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그가 김포 군수로서의 위엄을 갖추고서 수하들에게 두가지 지시사항을 내린다.

허군수의 첫마디가 다음과 같다; “방금 김포군의 신임군수로 부임한 첨정 허굉필입니다. 일찍이 본관은 한성부에서 5년간 관료생활을 한 바가 있습니다. 그때부터 한양에서 크게 멀지 아니한 김포군에 대해서는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본관이 이제 부임하였으므로 두가지 사항만 간략하게 여러분에게 말씀드려 두고자 합니다. 첫째로… “.

신임군수의 당부 사항이므로 관아의 관리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듣고 있다. 그들의 귀에 참으로 간단한 지시사항이 들려온다; “우리의 김포평야에 계속 풍년이 들도록 치수사업에 만전을 기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본관을 적극 보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

그 다음의 당부말씀이 무엇일까? 이방이 빙그레 미소를 띄고 있는 것을 보니 그가 벌써 짐작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의 예상이 맞아 들어간다; “어민들이 많은 어획고를 올릴 수 있도록 우리 관아에서 적극 뒷받침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점에 유의하여 내일 육방의 장들은 본관에게 현황보고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합니다!... “.

4품 첨정의 벼슬을 지니고 있는 허군수이다. 그러나 그는 수하들에게 경어를 사용하고 있다. 결코 하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점을 생각하고서 50대 초반의 이방 정조민(鄭朝民), 호방 상주일(尙主逸), 예방 하천수(河天洙) 그리고  40대 중반의 병방 차일곤(車壹坤), 공방 권택민(權澤敏), 형방 이상후(李相厚) 등이 기이한 눈으로 허첨정을 바라보고 있다.

대체로 조선의 지방수령은 재임하는 동안에 육방의 장 등 향리를 엄격하게 다루며 연령의 차이를 떠나서 습관적으로 하대하고 있다. 그리하여야 본관 사또의 위엄이 서고 그 명령이 그대로 먹힌다고 여기고 있다.

향리들이 감히 중앙에서 파견된 본관을 무시할 수 없도록 계급으로 철저하게 짓밟고 있다. 그것이 이름하여 군대의 상하관계와 같은 지방 관청의 특별권력관계이다. 그러나 수재인 허굉필은 그러한 관례를 별로 좋아하지 아니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상명하복으로 수하를 다루게 되면 능동적인 보좌를 받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부하만을 거느리게 되고 말기 때문이다. 국제간의 무서운 경쟁의 시대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데 그렇게 구태의연한 인간관계를 고집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따라서 허굉필 자신부터 계급과 직급을 떠나서 창의적인 인간관계 그리고 호흡이 맞는 협력관계를 자신의 관아에서부터 한번 조성하여 보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와 같은 허군수의 깊은 내심을 모르고 있기에 김포군의 육방관속들은 그저 새로운 군수가 상당히 특이한 성격의 인물이라고만 치부하고 있다.

과연 허군수가 김포군에서는 어떠한 일을 시도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