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37(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9. 13. 14:55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37(손진길 소설)

 

18563월 중순에 김포군수로 부임한 종4품 첨정 허굉필은 한해동안 굉장히 바빴다. 김포평야를 가지고 있는 김포군의 군수이기에 풍작을 이루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치수(治水)사업에 있어 만전을 기하고자 노력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늦은 봄과 초여름의 모내기철 그리고 가을 추수의 시기에는 군관민(軍官民)이 하나되어 농촌의 일손을 돕자고 군수인 허첨정이 부르짖으면서 스스로 팔을 걷어붙이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군수인 허첨정이 먼저 농사의 현장에 직접 뛰어들자 향리들과 관군들 그리고 지역유지들이 크게 호응을 했다.

군수인 첨정 허굉필은 본래 시골 출신이다. 그것도 경상도에서 나름대로 평야지대가 있는 남부의 김해(金海)가 그의 고향이다. 한마디로, 넓은 김해평야가 김해 허씨의 기업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집안에서도 농사를 많이 짓고 있다. 어린시절부터 그러한 가문에서 자랐기에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농업이 국가산업의 기본)이라는 말의 뜻을 뼈에 새기고 있는 인물이 바로 허굉필이다.

따라서 그는 여름철에 아침 일찍 일어나 자신이 다스리고 있는 김포군의 넓은 평야를 두루 살피고 다닌다. 허군수는 논에 물을 대고자 물꼬를 터주기 위하여 새벽 일찍 들판에 나온 농부들과 함께 농사일에 관하여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농민들을 위하여 개천의 물이 농업용수로 저수지나 ()에 저장이 잘되어 있는지 그리고 농수로를 따라 물줄기가 원활하게 논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지를 일일이 점검하고 있다.

그렇게 벼가 자라나고 있는 여름철을 농민들과 함께 지내다가 보니 군민들과 굉장히 친해지고 있다. 그에 따라 군민들이 입을 모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허군수는 나이가 젊지만 농업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김해평야에서 자란 농군의 자식이 이곳 김포평야에서 농정을 돌보고 있으니 우리 김포군의 농민으로서는 참으로 다행인 것이야!”.

그래서 그런지 그해 가을걷이가 끝나고 보니 전년도보다 수확량이 훨씬 많다. 농촌에서는 풍년가가 울려 퍼지고 있다. 허첨정최다모는 그 모습을 보고서 마음속으로 엄청 보람을 느끼고 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더니 그해 하늘에서 풍년을 김포군민들에게 안겨준 것이다. 일단 부임한 첫해에 풍년이 들었기에 농한기가 시작되는 10월부터 허군수는 눈을 서해연안으로 돌리고 있다.

김포군의 서편이 바로 강화 섬이다. 빤히 보이는 지점에 강화도가 위치하고 있지만 해협이 있어 배로 건너가야 한다. 그리고 김포군은 강화 섬을 벗어난 지점에 황해로 진출하는 서해연안을 제법 지니고 있다. 그곳에서 어민들이 배를 타고 조업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늦가을 찬바람이 불 때에는 벌써 값이 비싼 생선인 조기가 따뜻한 바다를 찾아서 남하하고 없지만 그 대신에 역시 고급어종인 우럭광어가 잡히고 있다. 그리고 황해연안에서 서식하고 있는 꽃게는 겨울철에도 잡히고 있다. 그러한 여러 어종을 잡기 위하여 어민들이 부지런히 새벽부터 어선을 몰고서 바다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32세 젊은 군수가 종4품 첨정 벼슬의 허굉필이다.  그는 어민의 배에 동승하여 황해의 어장으로 나아간다. 어로현장에서 어민들의 애로사항을 살피고자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이 현장을 중시하고 있는 군수가 바로 허첨정이다;

그럴 때마다 그의 옆에는 항상 이방 정조민(鄭朝民), 호방 상주일(尙主逸), 그리고 포교 강원수(姜元洙)가 동행하고 있다. 지난 3월 중순에 허첨정이 김포군수로 부임할 때에 가장 먼저 군청의 정문에서 만난 인물이 포교 강원수이다.

그러한 인연으로 허군수는 그를 자신의 호위 군관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육방의 대표인 이방 정조민이 허군수의 한쪽 팔이 되고 있다. 정이방은 지난 3계절을 허군수와 함께 지내고 보니 나이의 차이를 떠나서 그가 좋은 것이다.

일단 자신의 마음에 들고 보니 군정을 펴는데 있어서 허군수가 좋은 동지로 여겨지고 있다. 따라서 허군수가 가는 곳마다 50대 초반의 이방 정조민이 언제나 그와 동행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20살의 나이 차이 때문에 숙질 간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정이방이 허군수를 존경하고 있으므로 조금도 예의에 어긋남이 없다.

그와 같이 겸손한 정이방의 행동을 보면서 허군수가 먼저 허리를 굽힌다. 그리고 경험이 많은 숙부를 대하듯이 예의 바르게 그의 의견을 경청한다. 그러니 옆에서 두사람을 지켜보고 있는 호방 상주일 등 여러 향리들이 흐뭇한 미소를 띄고 있다.

따라서 허첨정이 비록 최다모를 현지처로 삼아 내아(內衙)에서 내외처럼 생활하고 있지만 그것을 흠으로 여기는 육방관속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들은 허군수가 고향에 처자식이 따로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을 따름이다.

부임한 첫해를 그렇게 바쁘게 지내다가 보니 어느 사이에 해가 바뀌어 이듬해 1857년 정월이 다가오고 있다. 그렇지만 허군수는 연초에 고향을 방문하지 아니하고 있다. 그 이유는 부임한 그해 10월에 잠시 짬을 마련하여 미리 고향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허굉필은 당시 고향을 다녀오겠다고 말하면서 20일 넘게 자리를 비웠다. 따라서 그 기간에는 정이방이 동헌을 지키느라고 고생했다. 그 사이에 허굉필은 먼저 전라도 남부의 구례에 들러 한해의 소출을 결산하고 거상 김상준(金相俊)에게서 ()을 받았다.

그리고 김해 고향에 잠시 들린 다음에는 동래 초량에 살고 있는 통역 김준우료칸(旅館)에 들렀다. 장남 허지동(許知東)이 잘 지내고 있는지를 확인하고서 김준우에게 충분한 사례비를 건넸다. 이제 7살이 된 장남 지동이가 생각보다 의젓하다.

따라서 허굉필김준우 내외에게 말한다; “형님 내외께서 우리 지동이를 잘 보살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제가 공직을 마칠 때까지 계속 부탁을 드립니다!... “. 그 말을 듣자 김준우가 크게 기뻐한다.

그리고 김준우가 솔직하게 말한다; “허형, 나는 지동이가 내 아들과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왜국 말 통역을 하는데 내 뒤를 지동이가 이을 것 같아요. 그러니 그러한 좋은 제자를 내게 맡겨준 허형이 나는 더 고맙답니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내년에 또 들러 주세요!... “.

용무가 끝나자 허굉필은 먼 길을 쉬지 아니하고 필마로 달린다. 매일같이 진기를 새벽에 운용하고 있는 허첨정인지라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다. 도리어 말이 지치기에 그가 저녁시간이면 주막에 들러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 김포를 떠나 늦가을에 전라도 구례와 경남 김해 그리고 동래를 돌아 다시 김포로 돌아오는데 20일 남짓 걸리고 있다;

 그의 기마실력이 대단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타고 있는 준마가 참으로 뛰어난 품종인 것이다. 사실 허굉필은 그 말을 그해 여름에 김포의 마시장에서 우연히 발견하고서 큰 돈을 들여 구입한 것이다.

당시 말을 팔고 있는 상인의 말로는 한양의 무관이 처가에 들렀다가 그 말을 비싼 값에 팔아달라고 맡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금을 자신의 장인께 전해달라고 부탁까지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자 허군수가 그저 지나가는 말처럼 그 상인에게 물었다; “그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그런 부탁을 한 것이지요?... “.

허굉필은 그 상인의 대답을 듣고서 깜짝 놀라고 있다; “그는 병부 참의 홍재덕(洪在德)입니다. 본래 무관인데 금위영에서 오래 근무했다고 해요. 그가 십년 남짓 전에 한양에서 이곳 김포로 장가올 때에 온 김포군이 떠들썩했지요. 당시 왕비 집안의 당숙이었으니까요. 그리고 홍참의의 장인이 바로 김포군에서 모두가 존경하는 선비 정한웅(鄭漢雄) 진사이지요, 허허허… “.

그리고 허첨정이 속으로 중얼거린다; “아하, 그 옛날 홍종사관이구나. 그의 장인이 바로 이곳의 진사 정한웅이구나. 정진사가 딸을 잘 키웠다고 하더니 지금은 홍참의의 부인이 되어 있구나. 내년에 시간이 나면 한양에 가서 홍참의를 좀 만나보아야 하겠는데!... 조선제일검의 실력을 가진 무인이 병부에서 참의로 근무하고 있다니 그것참 흥미로운 사실이구만, 허허허… “;

해가 바뀌어 1857년 정월이 되고 보름이 지나자 생각보다 허첨정이 바라고 있는 그때가 빨리 다가오고 있다. 처가에 들린 대과(大科)동기 윤일윤(尹日潤)이 갑자기 관아로 허첨정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가 찾아왔기에 허굉필이 얼른 그를 데리고 내아로 들어선다. 최다모가 반갑게 윤일윤을 맞이한다.

그들은 서로가 8년전에 한성부에서 관료로 같이 지낸 자들이다. 지금은 윤일윤이 이조에서 좌랑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최다모는 김포군수인 허첨정과 함께 관아에서 지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윤좌랑이 싱거운 소리를 한다; “최다모는 허첨정이 그리도 좋습니까? 언제나 함께 임지로 가고 있는 것을 보면 떨어져서는 도저히 혼자서 살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하하하“.

그 말을 듣자 당찬 여장부인 최다모가 마주 응대를 한다; “그렇고 말고요. 나는 이 세상에서 허첨정이 제일 좋지요. 이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그와는 바꿀 수가 없어요. 그러니 이 세상 끝까지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 허첨정을 쫓아다닐 생각입니다, 호호호… “.

그 말을 듣고서 허굉필()이 하하라고 웃는다. 그리고 윤일윤은 더 크게 웃는다. 그날 윤좌랑이 내아에서 허첨정과 함께 취하도록 마신다. 그리고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다정하게 말한다; “여보게, 굉필이. 정월이 지나면 210일에 한양 남산골의 우리집을 방문하게나. 내가 대과동기들과 함께 우리집에서 동문모임을 하기로 되어 있어“;

취기가 많이 도는지 윤좌랑이 트림을 한번 하고서 말을 잇는다; “모두 굉필이 자네를 만나고 싶어해. 특히 한성부에서 같이 근무하던 친구들이 그러하지. 너와 나 그리고 한우진(韓宇進)심한수(沈漢水) 등 그 옛날 한성부의 4군자가 다시 뭉쳐야 하지 않겠어,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허굉필이 즉시 확답을 한다; “좋아, 내가 210일 오후에 정확하게 자네 집을 방문하겠네. 그때 우리 한성부의 4군자가 다시 만나 흉금을 터놓고 마음껏 이야기를 하자고. 그러면 일윤이, 조심해서 처가를 찾아가도록 하게나. 자네 처숙부인 공좌수에게도 내 인사를 대신 전해 주게나!... “.

허굉필은 과거 한성부의 서고(書庫)에서 근무하던 심한수, 그리고 같은 부서에서 야경담당으로 일하고 있던 한우진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묻지 아니하고 있다. 다음달 10일이 되면 어차피 한양 남산골에 살고 있는 윤일윤의 집에서 모두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허첨정은 마음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나 정리하고 있다; “이왕 다음달에 한양 나들이를 하게 되면 병부에서 일하고 있는 홍재덕 형을 만나볼 필요가 있다. 그를 통하여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김유진(金維珍) 형의 이야기도 들을 수가 있을 것이야. 그리고 잘하면 왕족으로 올라선 흥선군의 이야기도 들을 수가 있겠지. 나는 그들을 통하여 처가의 신원회복을 얻을 수 있는 방도를 찾아내야 해. 그것이 급선무야!... “.

과연 허굉필이 오래간만에 한양을 방문하여 그 일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인가?... 헌종 말년에 한양을 떠난 그가 철종이 즉위한지 7년이 지나서 이제서야 왕도로 발걸음을 옮기고자 하는데 그 동안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