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36(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9. 8. 14:23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36(손진길 소설)

 

18563월 중순에 김포군수로 업무를 시작한 허첨정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방 정조민으로부터 군내의 현황보고를 청취하고 6방의 업무내용을 파악하는데 이틀이 소요가 되고 있다. 그 다음에 허군수는 얼른 동헌의 서편에 다소 떨어진 장소에 자리를 잡고 있는 향청(鄕廳)을 방문한다.

미리 신임군수가 문안을 갈 것이라고 포교 강원수를 보내어 통지를 했기에 향청 좌수(座首)의 집무실에서 공인후(仁厚) 진사(進士)가 기다리고 있다. 연세가 쉰 정도인데 김포의 향청에서 우두머리가 되고 있는 이유는 그의 집안이 김포 공씨이며 또한 개인적으로 학문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공진사가 허군수의 큰 절을 받으면서 맞절을 한다. 4품 첨정의 벼슬을 지니고 있는 군수를 결코 얕잡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한양의 이조에서 정6품 좌랑으로 근무하고 있는 조카사위 윤일윤으로부터 이미 허첨정에 대하여 들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허굉필과 함께 1844년에 등과한 윤일윤은 한성부에 소속이 되어 한때 남대문의 수문장으로 근무했다. 그러다가 처숙부인 공좌수가 동문수학한 이조참의 정학수(鄭鶴壽)에게 부탁하여 그를 이조(吏曹)로 옮겨주었다. 그곳에서 승승장구하여 지금은 이조 좌랑이 되어 있다.

윤일윤은 벗인 허굉필이 자신의 처가가 있는 김포의 군수로 오게 된 것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따라서 김포군의 좌수인 처숙부에게 진작에 허첨정을 좀 잘 돌보아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와 같은 전후사정을 모르고 허군수는 자신을 보고서 빙그레 웃고 있는 공좌수 어른에게 말하고 있다; “저는 예방인 하천수를 통하여 이곳 김포군이 공씨와 정씨의 고향이라고 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 이곳 공씨의 후손이신 좌수어른을 직접 뵙게 되니 영광입니다. 저는 아직 32살에 불과한 후학입니다. 아무쪼록 말씀을 편히 하시고 군정(郡政)에 도움이 되도록 많은 가르침을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듣자 공진사가 함빡 웃으면서 대답한다; “허허허, 천하의 수재인 허첨정을 우리 조선에서 가르칠 수 있는 스승이 많지가 않지요. 12년 전에 문과에서 차석을 한 인물이 이토록 겸손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니 나이만 먹은 내가 다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허허허… “.

자신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고 있는 공좌수이다. 따라서 허첨정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쳐다본다. 그러자 공진사가 다음과 같이 정답게 말한다; “허허허, 사실은 나의 조카사위가 이조 좌랑 윤일윤입니다. 그가 지난달에 처가에 들렀다가 내게 허군수를 만나게 되면 안부를 전해달라고 말했지요. 거참 사람의 인연이라고 하는 것이 묘합니다, 허허허… “.

그 말을 듣자 허첨정이 급히 묻는다; “좌수 어른, 저의 대과동기인 윤일윤이 한양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까? 제가 외직으로 떠돈 지 벌써 8년이나 되었기에 벗인 그를 만나지 못한지가 상당히 오래 됩니다. 그의 안부가 궁금합니다!... “.

그 말에 공좌수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아주 잘 지내고 있지요. 윤좌랑은 이조에서 일하면서 아주 적성에 맞다고 좋아하고 있어요. 우리 공씨 집안에서도 이조 좌랑인 윤일윤을 자랑스러운 사위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가 이곳 김포에 들리게 되면 우선적으로 허군수를 찾을 것입니다. 한번 기대를 해보세요, 하하하“.

벗인 윤좌랑 덕분에 신임군수 허굉필과 토박이 좌수인 공인후의 만남이 얼마나 훈훈한 지 모른다. 그렇게 좌수 어른과의 성공적인 만남이 있게 되자 지방유지들이 공좌수와 허군수와의 좋은 관계를 생각하여 신임군수에 대하여 호평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들판이 넓은 김포군이기에 봄과 여름철 농번기가 되자 허군수가 농정을 돌보기에 여념이 없다. 육방의 관속을 총동원하여 군내 농민들의 일손을 거들어주기에 분주하다. 모내기철이 되면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는 농민들의 입장에서는 군수가 앞장을 서서 농촌의 일손 보태기에 나서고 있으니 그것이 고맙다;

여름철에 벼가 한창 자라나고 있을 때에는 허군수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들판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는 하천과 보를 두루 살핀다. 물을 먹고 자라는 벼이므로 충분한 물을 논에 대주는 것이 풍작의 비결인 것이다.

가을철이 되자 허군수는 군관민이 모두 벼 베기에 적극 나서도록 독려한다. 그렇게 군수가 앞장서서 농사일을 돕고자 솔선수범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해 추수를 하고 보니 소출이 전년도보다 월등하다. 들판에 풍년가가 울려 퍼지자 허굉필은 지방수령으로서 마음이 뿌듯하다.

그런데 다모 최선미도 김포 관아에서 업무가 바쁘다. 그녀는 19세가 되기 전부터 한성부에서 다모로 일을 했기에 그 분야에 있어서는 전문가이다. 그녀가 공무로 하고 있는 일이 두가지이다; 하나는, 관비(官婢)들을 돌보는 것이다. 최다모의 신분이 관비이므로 같은 처지인 다른 관비들이 그녀를 신임하고 있다. 또 하나는, 무예에 능하고 형법에 박식한 그녀가 여자 죄수들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와 같은 공무가 끝나면 그녀는 군수(郡守)가 공무를 보고 있는 동헌(東軒)의 뒤쪽에 마련되어 있는 군수의 살림집인 내아(內衙)에서 아들 지서(知西)를 키우고 있다;

 그러면서 그녀는 며칠간 휴가를 얻어서 김포에 인접하고 있는 큰 섬 강화도를 다녀온다. 그 이유는 외조부의 고향이 강화이기 때문이다.

최선미7년전 모친 하수련으로부터 들은 외가의 몰락과정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부군 허굉필도 함께 들은 이야기가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다;  

첫째로, 하수련의 부친 하용만(河勇萬)은 강화도에서 누대를 살아오고 있는 양반가문의 자손이다. 그는 일찍 무과에 합격하여 충청도 마량진(오늘날의 서천 지역)에서 오래 무관으로 근무했다. 그런데 순조 16년인 18169월 초순에 갑자기 이양선이 출몰하자 상관인 조대복(趙大) 첨사를 모시고 그 배에 올라 내부를 구경했다;

 서양인들이 호의적으로 내부를 보여주었는데 그곳에서 무기를 제조하고 있는 것과 해도(海圖)를 작성하고 있는 그들의 기술을 보고서 판관 하용만은 깜짝 놀랐다. 굉장히 앞선 문명이었던 것이다.

둘째로, 그때부터 판관 하용만은 서양의 앞선 문명을 알기 위하여 천주학을 신봉하는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리고 고향 강화도를 방문할 때에는 가까운 벗들에게 은밀하게 서양의 학문과 산업기술이 뛰어나다는 것과 서양인들이 천주학을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 가운데에는 강화도에 귀양 와서 살고 있는 왕족 이성득(李成得, 1775 - 1817)도 들어 있다. 그런데 그것이 그만 문제가 되고 만 것이다.

셋째로, 왕족 이성득의 부친이 은언군인데 그가 정조 임금의 바로 아래 이복 동생이다. 정조 임금이 승하하자 영조의 후비였던 정순왕후가 얼른 10살짜리 어린 세자를 즉위시키고 수렴청정을 실시했다. 그런데 그녀가 보기에 잠재적인 정적(政敵)이 바로 은언군이다. 따라서 그녀는 조선의 미풍양속을 파괴하고 있다는 명분으로 천주학에 물든 무리들을 배척하면서 어린 임금의 숙부인 은언군 집안을 제거한 것이다;

 그 당시 강화도에 유배를 보내 놓은 40세 초반의 왕족 이성득이 눈에 가시였는데 차제에 판관 하용만에게 포섭된 천주교도로 그를 몰아서 아예 없애고자 한다. 이성득이 이듬해에 고문 끝에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그에게 포교하였다는 죄목으로 판관 하용만의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하고 만다. 그에 따라 1817년에 그만 하용만의 어린 딸 하수련10살의 나이에 관비가 되고 만 것이다.

넷째로, 하수련이 용인현에서 관비로 살고 있을 때에 현령 최대환을 만났다. 16세의 처녀 하수련을 좋아한 최대환이 그녀와 현지에서 살게 되면서 이듬해 1824년에 딸 최선미를 낳은 것이다;

 몇 년 후 최대환이 승진하여 정랑이 되어 한양으로 올라갔다. 그는 하수련을 연모하여 그녀를 용인현에서 수원 유수부의 관비로 옮겼다. 그리고 딸 최선미를 자신이 키우면서 한성부의 관비로 넣어주었다. 물론 사전에 스승을 붙여서 학문과 무예를 익히도록 배려하여 그녀를 한성부의 다모(茶母)로 만든 것이다.

그와 같은 집안의 비사를 알고 있는 최선미가 시간이 나는 대로 강화 섬을 방문한다. 그녀는 그 옛날에 돌아가신 외조부의 흔적을 찾으면서 반드시 신원회복을 할 것이라고 거듭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그러한 최다모의 행적을 허굉필이 익히 알고 있다.

따라서 그는 김포군수로 재직하고 있는 동안에 한양에 살고 있는 지인들과 연락을 취하여 최다모 집안의 신원회복을 성사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과연 허굉필이 어떠한 행보를 보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