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손진길 소설) 57

봉천 할매57(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57(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는 내남 너븐들 집에 돌아온 다음날 곧 1953년 6월 3일 아침에 맏아들 손수정을 방으로 불러서 말한다; “수정아, 내가 대구에서 공부하고 있는 네 막냇동생 수태가 무척 보고 싶구나. 그러니 주말에 아무리 공부가 바쁘더라도 꼭 한번 고향에 와서 내 얼굴을 보라고 그렇게 전보를 쳐다오. 아니면 전신전화취급소에 간 김에 네 동생에게 전화를 해도 좋고…”. 맏아들 손수정이 아침식사를 하고나서 모친의 말씀을 실천하려고 멀리 용장으로 가는 것을 보고서 봉천 할매가 이번에는 맏며느리 김옥순을 잠시 방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젖은 손을 앞치마에 문지르면서 방으로 들어온 김옥순은 시어머니 앞에 조용히 앉는다. 그 모양을 보다가 봉천 할매 정애라가 자신의..

봉천 할매56(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56(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는 1953년 6월 2일 아침에 경주역에 도착한다. 전날 오후에 청량리역에서 경주를 거쳐 부산으로 가는 중앙선 열차를 탔는데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경주역에 도착한 것이다. 과연 서울이 멀기는 먼 곳이다; 절친 오예은과 함께 그 열차를 타고 오면서 밤늦도록 봉천 할매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경주역에 도착하기 전에 서로 포옹을 하면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 참으로 오랜 친구이다. 동네골목 소꿉친구이다. 그 친구와 이제는 헤어진 것이다. 따라서 경주역에 홀로 내린 봉천 할매 정애라는 한참을 역구내 긴 의자에 앉아 있다. 그녀의 마음은 망망대해를 이제 혼자서 마주하고 있는 그러한 막막한 심정이다; 마치 3년 전에 남편 손영주를 여윈 것과 같은 슬픔이 마음속에서 차..

봉천 할매55(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55(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는 아들 손수석 부부가 경주에 살고 있는 처가 쪽 제주 고씨 모임인 ‘팔우정 계중’에 다녀온 다음날 자신의 절친인 간호사 오예은을 만나러 ‘월성국민학교 근처 노서동’으로 간다. 그러자 오예은이 봉천 할매 정애라를 어느 때보다 더 반기면서 말한다; “애라야, 오늘 너 마침 잘 왔다. 내일부터 나는 더 이상 여기 오빠네 의사 일을 돕기 위하여 나오지 않는다…”; 그 말을 들은 정애라가 깜짝 놀라서 오예은에게 물어본다; “예은아, 어째서 그러니? 무슨 일이 있는데?”. 오예은이 웃으면서 말한다; “얘도, 내가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제 내 나이가 63살이나 되는데 어떻게 간호사 일을 더 하겠니? 은퇴를 하는 것이 맞지…”. 그러자 정애라가 말한다; “63..

봉천 할매54(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54(작성자; 손진길) 손수석은 1953년 5월초에 경주 읍내 노동동으로 이사한다. 그리고 5월 중순에 간단하게 집들이를 한다. 그 자리에는 모친인 봉천 할매 정애라가 멀리 내남 너븐들에서 일부러 와서 참석을 하고 또한 경주 장매 마을에 살고 있는 장인 고천석과 장모 전혜숙 그리고 처제인 고순옥이 참석하고 있다. 봉천 할매 정애라는 아들 손수석이 경주 읍내 중심지에 주택을 사서 살게 되니 그것이 참으로 좋다. 그동안 자주 근무지가 바뀌어 셋집과 관사를 전전하던 아들이 경주 읍내에 정착하게 되니 이제는 다소 안심이 된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안사돈의 얼굴을 보니 반갑고 즐겁다. 처제 고순옥은 언니 고복수보다 나이가 10살이나 어리다. 그래서 아직 15살이다. 한창 꿈이 많은 소녀이다. 이제는 언니가..

봉천 할매53(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53(작성자; 손진길) 9. 1953년을 먼저 마무리하는 봉천 할매 1953년 2월 하순에 봉천 할매 정애라가 모량지서 관사에 있는 아들 손수석의 집에 들린다. 벌써 63세의 할머니인 정애라는 나이가 더 들어 보인다. 슬하에 5남 1녀를 낳고 남편 손영주와 함께 살면서 몸과 마음의 고생이 상당했기에 그러한 것이다. 그녀는 사실 경주 읍내의 좋은 주택지 성동에서 자랐고 부모님이 웃시장에서 국밥집을 오래 경영하였기에 상당히 유복한 집안의 딸이었다. 시집도 내남 너븐들 천석꾼 집안이기에 살림이 넉넉했다. 게다가 남편 손영주는 자신보다 7살이나 어린 처녀 정애라를 오래 마음에 품고 있었던 노총각이라 아내사랑이 지극했다; 그러나 남편 손영주의 성품이 아내 정애라에게 고생을 초래한다. 손영주는 그 성품이 ..

봉천 할매52(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52(작성자; 손진길) 1952년 12월에 들어서자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본래 ‘서라벌’인 경주와 ‘달구벌’인 대구는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내륙의 분지이다. 그러므로 여름에는 많이 무덥고 겨울에는 무척 춥다. 한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고 한낮에는 아스팔트가 녹을 지경이다. 반대로 한겨울이 되면 추위가 대단해서 마치 만주 벌판처럼 춥다고들 말한다. 그와 달리 해양성 기후를 가지고 있으며 더 남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부산지역은 전혀 다르다. 겨울에 온난하여 얼음도 잘 얼기 않는 좋은 날씨가 많다. 그러한 지리적인 차이가 있어서 그런지 내륙에 위치하고 있는 분지도시 경주와 대구에 오래 살고 있는 사람들은 더 고집이 세고 남에게 꺾이기를 싫어한다. 경주 근교에 있는 모..

봉천 할매51(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51(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의 셋째아들인 손수석이 경찰에 투신한 때가 1947년 11월 하순이다. 처음에는 미군정청 경무국 소속의 ‘건국경찰’이었는데 1948년 8월 15일에 민주적인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이 되자 ‘민주경찰’로 그 신분이 바뀌었다. 그가 경찰관 생활을 계속하는 동안에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그때부터 관내의 치안유지를 위하여 마을과 경찰서를 습격하고 있는 ‘공비’들과 전투를 계속 치르고 있다; 그러므로 1952년 8월말부터 ‘모량지서장’으로 근무를 하면서도 손수석은 언제나 칼빈 총을 어깨에 매고 자전거를 타고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관내에 공비가 출몰했다고 하면 즉시 출동이 가능하도록 평소 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손수석의 가족이 모량지서의 관사로 이사를 하게 되자 막내 동..

봉천 할매50(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50(작성자; 손진길) 1951년 5월에 한국전쟁은 38도선 근방에서 교착상태에 들어가고 있다. 한국군은 물론 미군을 위시하여 16개국으로 구성이 된 유엔군이 북한군 및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일진일퇴를 되풀이하고 있다; 1년 넘게 대치상황이 지속이 되고 있다. 그리고 중부와 동부전선에서는 산악지형에서 고지전이 한창인데 상호간에 엄청난 희생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한 지루한 소모전을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그 때문에 휴전을 하자는 논의가 유엔군 측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 미국을 위시한 유엔군 참여국의 생각은 평화의 회복이며 현상유지를 위한 것이지 결코 북한의 멸망이나 중공에 대한 응징이 아닌 것이다. 참고로 1951년 11월에 유엔군이 상정하고 있는 휴전선의 구상이 다음과 같다; 원군으로 들어온 ..

봉천 할매49(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49(작성자; 손진길) 1951년 8월 20일경에 내남에서 봉천 할매가 경주 성동에 전세를 살고 있는 아들 손수석의 집을 방문한다. 마침 손수석이 방 둘이 있는 독채를 얻어서 여유롭게 살고 있기에 봉천 할매가 옆방에서 하루 푹 쉬게 된다. 봉천 할매 정애라는 처녀시절 경주 성동에서 자란 탓에 그 지역이 마음에 든다; 그래서 그런지 아들이 저녁에 경주경찰서에서 퇴근하여 집에 오자 봉천 할매가 아들과 겸상을 하면서 말한다; “수석아, 네 동생 수태가 네가 얻어준 북천내 셋방에서 자취를 하면서 경주중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 그런데 한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이 되자 잠시 집에 들렀는데 내가 보니까 막내라서 그런지 나이가 20살이 되었어도 영 힘이 들어 보이더라…”. 그 말을 하면서 봉천 할매 정애라가 아..

봉천 할매48(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48(작성자; 손진길) 1951년 7월 7일이 되자 안강지서장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손수석을 경주경찰서장이 호출한다. 그리고 서장실에서 은근히 말한다; “손경사, 자네는 경사가 된 지 9개월이 넘었어. 일선지서에서 지서장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으므로 일년이 지나면 경찰간부인 경위로 진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야. 그런데 경위가 되자면 진급시험을 보아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지서가 아니라 본서에서 근무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게야. 그래서 내가 자네를 본서에 계장으로 불러 들이려고 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인 손수석은 서장의 말이 부하인 자신의 의견을 묻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파악한다. 그리고 경사인 손수석 자신의 편의를 위한 것도 아니다. 단지 서장은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