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손진길 소설) 57

봉천 할매7(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7(작성자; 손진길) 1933년 6월 하순 최지훈이 돌아가고 난 후에 손영주는 노모 이채령에게 문안을 하고 혼담관계를 말씀드린다. 그러자 이채령이 말한다; “그 청년은 손해선이와 꼭 결혼을 하고 싶은 모양이지. 그렇지만 그 모친이 성정이 까다롭다고 하니 편모 슬하에 외동인지라 참으로 좋은 혼처는 아니라고 하겠군”. 그러자 손영주가 말한다; “해선이 나이가 올해 21살입니다. 금년에 시집을 보내면 딱 좋겠는데 아직 다른 곳에서는 혼담이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어머니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요?”. 이채령이 답을 한다; “당사자의 결심이 가장 중요하겠지. 내가 어미에게서 듣기로는 해선이도 크게 탐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군. 애비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데?...”. 손영주가 자신의 생각을 ..

봉천 할매6(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6(작성자; 손진길) 그해 1933년 5월 하순 어느 날 저녁에 안방에서 봉천 아지매 정애라가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데 사랑방에 있던 남편 손영주가 방으로 들어온다. 아내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더니 손영주가 대뜸 묻는다; “지난번에 우리가 경주 오일장에 다녀오다가 만난 그 의사 양반과 간호사 분의 부친이 선교사이며 의사라고 하던데 어째서 그 두가지 일을 대구에서 같이하고 있지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궁금합니다”. 그 말을 듣자 정애라가 갑자기 웃음기를 띠면서 말한다; “그 집안에는 기가 막힌 ‘사랑이야기’가 있지요. 한편으로는 슬프고 또 한편으로는 놀라운 이야기인데 한번 들어 보시겠어요?”. 서두가 거창하기에 손영주는 멋도 모르고 고개를 끄떡인다. 그러자 정애라가 설명을 시작한다..

봉천 할매5(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5(작성자; 손진길) 울주군 두동면은 월성군 내남면에서 그리 먼 곳이 아니다. 남쪽에 있는 여러 굽이의 산을 넘어서면 두동면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조선에 일제 통감부가 생기기 전에는 그 지역이 외남면으로 불리면서 내남면과 함께 경주군에 속해 있었다. 그 경주군이 월성군이 된다. 그러므로 월성군 남쪽에 산을 경계로 하여 내남면과 외남면이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1906년에 통감부가 외남면을 울주군에 떼어 주면서 그 이름을 두북면으로 바꾸고 만다. 그리고 1910년에는 두북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신작로를 개통하면서 두서면과 두동면으로 분리를 하고 만다. 그때부터 울주군 두동면이라고 하는 지명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한 지명의 유래를 내남 너븐들에 지주로 살고 있는 손영주나 정애라는..

봉천 할매4(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4(작성자; 손진길) 1932년이 되자 봉천 아지매 정애라의 윗동서가 되는 이신자가 그녀를 찾아온다. 큰딸에게 혼담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말한다. 이신자가 정애라보다 5살이 위인 1886년생이다. 그녀는 남편 손영한과의 사이에 딸이 넷 있는데 맏딸이 금년에 21살이다. 그러니 혼처가 나서고 있는 것이다. 봉천 아지매가 궁금하여 묻는다; “형님 혼담이 어디에서 들어오고 있는데요?”. 이신자가 답한다; “내남 둥굴 마을에 살고 있는 월성 최씨 집안이야. 최후술이라고 하는 총각인데 순박하고 부지런하다고 이웃들이 말하고 있구먼. 그 집안 사람들이 모두 근면하고 성실하다고 하니 괜찮은 혼처인 것 같은데… 동서 생각은 어때?”. 정애라가 말한다; “같은 내남이니 멀리 모르고 시집을 보내는 것보다는 많이 낫겠..

봉천 할매3(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3(작성자; 손진길) 1931년 9월 9일에 41세의 봉천 아지매 정애라가 남편 손영주에게 다섯번째 아들을 안겨준다; 그것을 보고서 스스로 뒷방 늙은이로 지내고 있는 시어머니 이채령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득남을 축하한다고 며느리 정애라에게 촌지를 듬뿍 준다. 물론 그 돈은 돌아간 남편 서배 할배가 그녀에게 만약의 경우 비상금으로 사용하라고 준 돈 가운데 극히 적은 부분이다. 그 축하금을 받은 봉천 아지매 정애라가 참으로 기뻐한다. 그래서 남편 손영주에게 말한다; “여보, 어머니께서 득남을 축하한다고 돈을 많이 주셨어요. 77세나 되신 어머니께서는 5번째 손자를 보시니 기분이 엄청 좋으신 모양이예요. 이 참에 우리 아기의 이름을 하나 지어 달라고 말씀을 드려보세요…”. 손영주도 좋다..

봉천 할매2(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2(작성자; 손진길) 1930년 3월 8일에 이채령은 남편 고 손상훈의 49제를 너븐들 선산에서 마쳤다. 그 자리에는 물론 아들 손영주 내외와 이웃에 살고 있는 7촌 조카이자 손영주의 친형인 손영한이 함께 했다. 그 다음날 이채령은 안방을 며느리 정애라에게 내어주고 한 칸 건너 옆방으로 물러 앉고 만다. 스스로 ‘뒷방 늙은이’가 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6월에 들어서자 경주 성동에서 갑자기 부고가 날아든다. 서배 할배 손상훈의 둘도 없는 친한 친구 김춘엽이 자가에서 별세를 했다는 내용이다; 이채령은 김춘엽의 부인인 이가연과는 외동 서배 마을에서 함께 자라난 소꿉친구이며 같은 인주 이씨 일가이다. 그러므로 문상을 가는 것이 옳다. 하지만 역시 75세라고 하는 나이가 문제이다. 노인의 몸으로 경주..

봉천 할매1(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1(작성자; 손진길) 1. 강한 어머니 봉천 아지매 정애라 1930년 3월 8일 남편 손상훈의 묘소에서 49제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온 이채령 여사는 안방에서 그날 하루 종일 꼼짝하지 않는다. 그래서 며느리 정애라가 밥상을 차려서 시어머니의 방에 들여 놓는다. 다음날 아침에 정애라가 밥상을 차려서 시어머니 이채령이 기거하고 있는 안방으로 들어가자 한 말씀을 하신다; “에미야, 오늘 아침식사가 끝나고 아이들이 서당에 가고 나면 꼬마는 해선이에게 잠시 맡기고 애비와 함께 내 방에서 잠깐 보자꾸나. 내가 너희 부부에게 할 말이 좀 있다”. 정애라는 ‘무슨 말씀이실까?’ 궁금해 하면서도 공손하게 대답한다; “네 어머니, 그렇게 할께요”. 그날 오전에 이채령 여사는 안방에 손영주 부부를 앉혀 놓고 중요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