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2(작성자; 손진길)
1930년 3월 8일에 이채령은 남편 고 손상훈의 49제를 너븐들 선산에서 마쳤다. 그 자리에는 물론 아들 손영주 내외와 이웃에 살고 있는 7촌 조카이자 손영주의 친형인 손영한이 함께 했다.
그 다음날 이채령은 안방을 며느리 정애라에게 내어주고 한 칸 건너 옆방으로 물러 앉고 만다. 스스로 ‘뒷방 늙은이’가 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6월에 들어서자 경주 성동에서 갑자기 부고가 날아든다. 서배 할배 손상훈의 둘도 없는 친한 친구 김춘엽이 자가에서 별세를 했다는 내용이다;
이채령은 김춘엽의 부인인 이가연과는 외동 서배 마을에서 함께 자라난 소꿉친구이며 같은 인주 이씨 일가이다. 그러므로 문상을 가는 것이 옳다. 하지만 역시 75세라고 하는 나이가 문제이다. 노인의 몸으로 경주까지 30리가 넘는 길을 왕복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들 내외에게 부탁을 한다; “아범아 에미야, 오늘은 내가 해선이와 함께 손자들을 돌볼 터이니 나를 대신하여 경주 성동에 가서 조문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미망인이 된 이가연 여사에게는 나의 각별한 조의를 전해주기 바란다”. 그러면서 이채령은 아들의 손에 조의금이 든 두툼한 봉투를 하나 쥐어 준다;
며느리 정애라는 오래간만에 친정나들이를 한다. 그것도 아이들을 전부 시어머니에게 맡겨 두고 오붓하게 내외간에 경주 성동으로 가게 되니 무척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외삼촌이 돌아가셨는데도 남편과의 경주 나들이가 좋은 것을 보면 조선나이로 40세이며 5아이의 어머니인 정애라는 아직도 기분이 젊은 모양이다.
작고한 김종민은 서배 할배 손상훈과 같은 1851년생이므로 1930년 6월에 80세이다. 친구 서배 할배가 세상을 버린 지 5달이 지나자 그도 별세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김춘엽은 모친 정해옥 여사가 그 성동집에서 별세를 한지 10년후에 그도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날 가장 슬퍼하고 있는 사람은 역시 금슬이 좋았던 부인 이가연이다.
서로가 백년해로를 하자고 약속을 하면서 노후를 함께 보내고 있었는데 그만 80세를 일기로 남편 김춘엽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이제 이가연 여사는 남편이 없는 세월을 혼자서 살아가야만 한다. 성동 자택에는 시누인 김경화 내외가 함께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큰 위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월성 외동 서배 마을에서 천석꾼 살림을 살고 있는 아들 김영식이 아들 김호길과 함께 성동 사랑방에서 부자간에 상주 노릇을 하고 있다. 고인이 80세를 향유하고 별세를 하였기에 이웃에서 호상이라고 말하므로 상주들은 간소하게 3일장으로 하고 서배 마을 선산에 곧바로 모시고자 한다. 진작에 선산에 부모님 산소를 마련해 놓았기에 초상이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고 있다.
그날 손영주는 아내 정애라와 함께 초상집에 문상을 온 손님들을 대접하느라고 바쁘다. 그 일을 장인과 장모가 총 지휘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 내외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설 수 밖에 없다. 외동 서배 마을에서도 부고를 받고 일가친척들이 많이들 조문을 오고 있다. 그러므로 그 넓은 성동 집이 천막과 손님으로 빽빽하다;
초상이 난 지 3일만에 발인을 하여 30리 남쪽에 있는 서배 마을로 운구를 한다;
그리고 선산에 매관을 하고 나니 오후가 된다. 상주인 김영식과 그의 아들 김호길은 산소까지 따라온 조문객들을 자신들의 서배 마을 집으로 인도한다. 함께 하루를 같이 보내고 다음날 밝은 날에 집으로 돌아가라는 배려이다.
그 다음날 손영주 내외는 외동 서배 마을에서 곧바로 내남 너븐들로 돌아온다. 남산 앞을 통과하는 그 길도 30리나 된다. 그러나 그들 내외는 잘 걷는다. 47세의 손영주와 40세의 정애라가 아직 한창인 모양이다. 집에 돌아 와서 기다리고 계시는 모친 이채령에게 상세하게 문상을 간 이야기와 서배 마을까지 발인행렬을 따라간 이야기를 해준다.
그해 1930년 추수가 끝나고 10월달이 되자 경주 오일장에 간 손영주와 정애라가 성동집에 들린다. 처가에 계시는 장인 장모에게 문안도 드리고 혼자 몸이 되신 처 외숙모 이가연 여사에게도 문안 인사를 드린다. 그때 그들은 최신소식을 듣는다. 고 김춘엽의 맏아들인 김영식이 외동 서배 마을의 일을 아들 김호길 내외에게 모두 맡기고 곧 경주 성동 본가로 이사를 한다는 내용이다. 모친을 성동집에서 직접 모시기로 했다는 것이다.
김경화는 김춘엽의 누이동생이었으므로 그동안 그녀의 가족이 성동집에서 함께 지내 왔다. 그리고 부모님이 물려주신 돼지국밥 집도 김경화 내외가 쭉 운영을 하다가 아들 정진욱 내외에게 물려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김경화의 친정 조카인 김영식이 성동집으로 이사를 와서 모친 이가연을 직접 모시겠다고 하니 그들 내외는 자신들의 거취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아무래도 친 오빠인 김춘엽이 살아 있을 때와는 다른 것이다. 그래서 걱정을 하고 있는데 며느리 최순미가 남편 정한욱과 함께 들어와서 건의를 한다; “아버님, 어머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사실은 저희들이 그동안 교리 최부자 집에서 내놓은 좋은 기와집을 한 채 살까 말까 하고 의논을 하고 있던 참입니다. 나이가 들면 그곳 남천내가 보이는 좋은 곳에서 살고 싶어요. 그래서 미리 한 채를 사두고자 하는 거예요”;
아내 최순미가 잠시 뜸을 들이자 정한욱이 말을 잇는다; “저희들이 그 중에 좋은 집을 골라서 이번에 살까 합니다. 그리고 그 집에 부모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그러니 그 집으로 이사를 하셔서 저희 아이들을 좀 돌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들은 이곳 성동에서 한 20년 돼지국밥 집을 더 운영하다가 나중에 그곳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러자 정진평이 아들 내외에게 말한다; “허허, 너희들은 너희들 생각만 하고 우리 노인들 생각은 잘하지 못하는 모양이구나. 금년에 내가 76살이고 네 어머니가 74살이다. 그러니 손주들을 몇 년이나 돌볼 수가 있을지 모르겠다. 마음 같아서는 한 20년 더 살아서 너희들이 이곳 성동집에서 웃시장 식당을 안심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지만 그것이 인력으로 되는 일은 아닐 게야. 그렇지만 우리 부부가 갈 곳을 마련해 준다고 하니 고맙다. 그러면, 그렇게 하도록 하자꾸나”.
그때 정애라의 남동생인 정한욱이 37살이고 그 부인 최순미가 33살이다. 그들 내외는 10년가까이 국밥집을 열심히 운영하여 돈을 꽤 모았다. 그것으로 마침 교리 최부자가 팔려고 내놓은 교촌의 기와집을 한 채 사려고 하는 것이다. 그 당시 교리 최부자의 가주인 최준이 은밀하게 조선의 독립지사들을 돕는다고 자금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라 재산을 일부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결정이 되자 정한욱은 아내 최순미를 교리로 보내어 그들이 보아 둔 좋은 기와집 한 채를 사도록 한다. 최순미는 자신이 자랐던 동네로 들어오게 되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곳 교촌에는 그녀의 친정 부모님이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얼른 가주 최준을 만나보고 인사를 드린다. 최준은 자신보다 14살이나 어린 재종 여동생 최순미가 오래간만에 문안인사를 하니 기분이 좋다. 그래서 그녀에게 시세보다 약간 싼값으로 그 좋은 기와집을 주고 만다;
가까운 친척이 젊은 나이에 열심히 돈을 벌어서 친정동네로 집을 사서 이사를 오겠다고 하니 그것이 참으로 흐뭇한 것이다.
1930년 11월에는 정애라의 친정부모님이 경주 성동에서 경주 교리로 이사를 한다. 그날 정애라는 남편 손영주와 함께 경주로 가서 이사를 도와 드린다. 그날 하루에 이사를 끝내야 그 다음날 동생 정한욱 내외가 국밥집을 다시 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정한욱 내외는 벌써 아들이 셋이나 된다. 그들을 모두 교리에서 서당에 보낼 생각이다. 그 일을 부모님이 맡아서 해주실 것이니 그들 내외는 안심을 하고 성동 김영식의 집에 계속 살면서 웃시장 돼지국밥 식당을 운영하는 일에 전념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게 1930년 한해는 손영주 내외에게 있어서 바쁜 해이다. 정월에 부친 서배 할배가 돌아가시고 6월에는 처삼촌 김춘엽이 별세를 한 것이다. 그리고 김춘엽의 아들 김영식 부부가 외동 서배 마을에서 경주 성동으로 이사를 하고 또한 손영주의 장인과 장모가 교촌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그리고 정애라에게 있어서는 더 바쁜 일이 그해 말에 생기고 있다. 갑자기 경수가 끊어지면서 배가 무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나이 40세에 무슨 일인가 곰곰 생각을 해보니 아무래도 5년전에 넷째 아들을 임신했던 때와 증세가 비슷하다. 그래서 더 이상 경주 출입을 하지 아니하고 몸조리에 들어간다. 노산이 될 것이므로 조심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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