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손진길 소설)

봉천 할매4(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9. 29. 02:02

봉천 할매4(작성자; 손진길)

 

1932년이 되자 봉천 아지매 정애라의 윗동서가 되는 이신자가 그녀를 찾아온다. 큰딸에게 혼담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말한다. 이신자가 정애라보다 5살이 위인 1886년생이다. 그녀는 남편 손영한과의 사이에 딸이 넷 있는데 맏딸이 금년에 21살이다. 그러니 혼처가 나서고 있는 것이다.

봉천 아지매가 궁금하여 묻는다; “형님 혼담이 어디에서 들어오고 있는데요?”. 이신자가 답한다; “내남 둥굴 마을에 살고 있는 월성 최씨 집안이야. 최후술이라고 하는 총각인데 순박하고 부지런하다고 이웃들이 말하고 있구먼. 그 집안 사람들이 모두 근면하고 성실하다고 하니 괜찮은 혼처인 것 같은데… 동서 생각은 어때?”.

정애라가 말한다; “같은 내남이니 멀리 모르고 시집을 보내는 것보다는 많이 낫겠습니다. 당사자 마음에 든다면 되지요. 큰딸 수자는 뭐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이신자가 답을 한다; “수자야 순종적인 딸이라서 부모가 좋다고 하면 자신은 시집을 가겠다고 말하고 있네. 그래도 모르니 당사자들끼리 한번 만나보라고 주선을 해볼까? 동서 생각은 어때?”.

봉천 아지매 정애라가 웃으면서 말한다; “요즘이야 옛날하고 달라서 혼인 말이 오가면 당사자들이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이 흉이 되지가 않지요. 제 생각에는 훗날 뒷말이 없게 그렇게 한번 조치를 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신자가 기분 좋게 말한다; “내 생각도 동서 생각과 같아. 역시 당사자들이 한번 만나보는 것이 최선이야. 내가 한번 그렇게 자리를 마련해보도록 해야지…”;

그렇게 이신자가 말하고 돌아갔는데 한달쯤 지나자 다시 봉천 아지매를 찾아 온다. 그리고 쾌활하게 말한다; “동서 말이 맞았어. 둘이 한번 만나게 했더니 얼마나 첫눈에 반해서들 좋아하는지 몰라. 그래서 혼사가 수월하게 진행이 될 것 같아. 수자 나이도 21살이나 되니 금년 가을걷이가 끝나면 결혼을 시킬 생각이야. 그렇게 알고 있어 동서…”. 정애라가 기분 좋게 말한다; “형님, 축하합니다. 맏사위를 보시게 됐군요”.

1932년10월 중순이 되자 손영한의 집에 함이 들어온다. 내남 둥굴 마을에 살고 있는 신랑집에서 내남 너븐들에 살고 있는 신부집으로 혼례를 며칠 앞두고 함을 보내는데 그것을 어깨에 지고 오는 함진아비가 탈을 얼굴에 쓰고 있다. 그 옆에는 함진아비의 친구로 보이는 젊은 두 사람이 함께 오고 있다;

올해 농한기가 시작이 되고나서 너븐들 마을에 처음으로 들어오는 함이므로 동네사람들이 거의 구경을 나온다. 그 가운데 봉천 아지매와 딸 손해선도 포함이 되어 있다. 그런데 함진아비는 가면을 사용하고 있어서 그 인상착의를 잘 모르겠는데 그 옆을 따르고 있는 두사람은 용모를 알 수가 있다. 그 가운데 유독 젊어 보이는 총각이 있다.

그 총각을 보고서 너븐들 사람들이 한마디씩 한다; “허, 그 총각 인물이 훤하구먼. 누구 집 아들인지 잘 생겼어. 남자가 생기려면 저 정도는 생겨야지… 암”. 어른들은 그 정도로 인물평을 하고 있지만 동네 처녀들은 그것이 아니다. 너무 잘 생겼다고 야단들이다. 그 잘생긴 총각을 보고서 괜히 마음이 울렁거리고 있다. 그러한 동네 분위기를 아는지 그 총각이 지긋한 눈빛으로 동네 처녀들을 한번 둘러본다. 그리고 싱긋 웃는다.

며칠 후 손영한의 집에서 전통적인 혼례식이 거행이 된다. 신랑측 하객 가운데 며칠 전 동네에 함을 팔려 왔던 그 친구들이 포함이 되어 있다. 그 가운데 유독 젊은 그 총각이 신부 친구들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 그 가운데 20살이 된 손해선도 포함이 되어 있다. 새신랑 최후술은 혼례를 치르고 신부집에서 3일간 지낸다;

 그 동안에 온 동네의 일가청년들이 새신랑을 다룬다고 야단들이다.;

그렇게 떠들썩한 혼사가 끝나고 며칠 후에 신랑이 내남 둥굴 마을로 돌아갔다. 신부는 내년 초에 시댁으로 신행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해 곧 1932년 12월이 되자 느닷없이 손영주의 집에 매파가 찾아 온다. 그 매파는 내남 노곡에서 왔다고 하는데 두동에 살고 있는 친척의 의뢰를 받아서 손해선 처자의 부모님을 만나러 왔다고 한다;

봉천 아지매 정애라가 깜짝 놀라서 매파를 안방으로 들인다. 그러자 그 매파가 말을 꺼낸다; “제 가까운 친척이 두동에 살고 있습니다. 일부러 저를 찾아와서 이집에 혼담을 넣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 집 아들이 지난 10월에 함진아비를 따라서 이 동네에 와서 마음에 드는 처녀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혼례식이 있는 날도 일부러 두동에서 내남 너븐들까지 와서 참석을 하면서 그 처녀의 용모를 다시 살폈다고 하는 군요. 그 인물이 좋은 처녀의 이름이 ‘손해선’인 것을 알고서 그동안 혼자서 끙끙 앓다가 도저히 안되어서 이렇게 저를 매파로 보냈습니다…”.

정애라가 이상한 일도 다 있다고 생각하여 자세히 묻는다; “그 총각의 이름이 무엇이고 그 가정형편이 어떠합니까?”. 그러자 매파가 선선히 대답을 한다; “제가 사는 노곡에도 월성 최씨가 많이 살고 있고 그곳 두동에도 많이 살고 있지요. 그 이름이 최지훈인데 금년에 25살 노총각입니다. 본래 집안이 그 마을의 부농인데 외동으로 귀하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몇 해 전에 부친이 일찍 돌아가시고 지금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인물이 참으로 훤하고 잘 생긴 총각이지요…”.

그 말을 듣자 봉천 아지매 정애라는 마음에 짚이는 바가 있다. 함진아비로 따라온 두 사람 가운데 젊고 잘 생긴 청년이 있었는데 그 사람인 모양이다. 그때 유별나게 동네 처녀들을 살펴본 그 총각이다. 자신의 신부감을 찾고 있었는가 보다. 그런데 하필이면 자신의 딸 손해선이를 마음에 두고 있는가 보다. 봉천 아지매 자신을 닮아서 그런지 해선이를 비롯하여 그 남동생들도 모두 인물이 좋다.

그날 정애라는 좋게 이야기를 하여 그 매파를 돌려보낸다; “갑작스러운 말씀이라 제가 남편과 상의를 먼저 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저희 집으로서는 개혼이고 또한 처음 받아 보는 혼담이므로 상의를 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한 일주일 후에 다시 한번 찾아 오시기 바랍니다. 그때 가부간 답을 드리겠습니다”. 매파는 그 정도이면 긍정적인 답변이므로 잘 알겠다고 하면서 물러갔다.

정애라가 저녁에 남편과 상의를 한다. 그랬더니 손영주가 말한다; “여보, 우리 해선이가 이제 갓 스물입니다. 내년이 되어야 21살이지요. 내 생각으로는 내년 가을에 시집을 보내도 충분합니다.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어요. 꼭히 내년 일찍 시집을 보낼 생각이 있다고 하면 다른 곳에 혼처도 한번 알아보고 신중하게 결론을 내도록 하지요…”.

손해선이가 딸이지만 맏이이므로 손영주가 금방 시집을 보내기가 싫은 모양이다. 생활이 아직은 그리 쪼들리지도 않는 터수이므로 느긋한 것이다. 그리고 딸 해선이가 어디에 내어놓아도 빠지지 않는 인물이니 아쉬운 것이 없다. 홀어머니를 모신 외동아들의 혼처보다 더 나은 자리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봉천 아지매 정애라가 일주일 후에 방문한 매파에게 그렇게 느긋하게 말하고 돌려 보낸다.

그런데 다음해 1933년 1월말이 되자 다시 그 매파가 봉천 아지매를 방문한다. 그리고 말을 꺼낸다; “엔간하시면 그 집 총각과 이집 처녀를 한번 맞선을 보도록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 총각이 어찌나 댁의 따님을 보고서 마음에 들어 하고 있는지 그 모친이 그 먼 길에 저를 다시 찾아와서 신신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 집도 대를 잇는 손자를 빨리 보고 싶은 모양입니다. 총각의 나이가 벌써 26살이 되고 있으니 그 모친이 초조한 것이지요. 제가 한번 맞선을 보는 자리를 주선할까 하는데 의향이 어떠하십니까?”.

정애라는 매파의 이야기가 그러하므로 한번 남편과 상의도 하고 당사자의 의견도 들어보는 것이 순서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답은 일주일 후에 다시 매파가 찾아오면 그때 주기로 약속을 한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그 말을 들은 손영주가 심각하게 생각을 한다. 그러더니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아는 사람이 두동에 있어요. 한번 그 집 사정을 은밀하게 알아보고 나서 맞선을 보든지 하는 것이 좋겠어요”.

다음날 손영주가 매파에게 받아 놓은 그 주소를 가지고 두동 마을로 찾아간다. 그곳에 두동으로 시집을 간 일가 누님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일가 누님을 만나서 조용히 물어본다. 그러자 답변이 다음과 같다; “그 집 모친이 좀 까다롭지. 그래서 쉽게 며느리를 들이지 않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 아들이 자기 나이가 많아지니까 결혼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모양이야. 그 아들의 마음에는 드는 처녀가 있는데 그 시어머니가 될 모친의 마음에는 어떨지 몰라. 먹고 사는 것은 식구도 단출하고 논도 수십 마지기가 있어 불편함이 없지. 그러니 동생이 잘 판단해서 생각을 하라구. 나로서는 꼭히 권하고 싶은 자리는 아니야. 그 모친이 상당히 까다롭거든…”;

저녁에 돌아와서 그 이야기를 아내에게 해주자 봉천 아지매 정애라도 고민을 한다. 그래서 딸 해선이에게 조용히 그 의향을 물어본다. 그러자 손해선의 답변이 느긋한다; “어머니, 저는 별로 아쉽지가 않아요. 남동생들이 많아서 제가 집에 없으면 어머니가 많이 힘드실 거예요. 제 나이가 21살이나 되니 시집을 가기는 가야 하겠지만 그 혼담이 오고 있는 자리가 편모 슬하에 외동이라고 하니까 좀 까다롭겠네요. 정 원하시면 제가 한번 만나는 보겠지만 어떨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을까? 결론은 당사자들끼리 한번 만나보게 하고서 그 다음에 결정을 하고자 한다. 과연 그 두사람의 인연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개혼인지라 손영주와 정애라가 모두 조심스럽기만 하다. 옛날부터 여자의 팔자란 본래 뒤웅박 팔자라는 말이 있듯이 전근대사회인 조선에서는 여자의 운명이 남편을 잘 만나기에 크게 달려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