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손진길 소설)

봉천 할매5(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9. 29. 02:11

봉천 할매5(작성자; 손진길)

 

울주군 두동면은 월성군 내남면에서 그리 먼 곳이 아니다. 남쪽에 있는 여러 굽이의 산을 넘어서면 두동면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조선에 일제 통감부가 생기기 전에는 그 지역이 외남면으로 불리면서 내남면과 함께 경주군에 속해 있었다. 그 경주군이 월성군이 된다. 그러므로 월성군 남쪽에 산을 경계로 하여 내남면과 외남면이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1906년에 통감부가 외남면을 울주군에 떼어 주면서 그 이름을 두북면으로 바꾸고 만다. 그리고 1910년에는 두북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신작로를 개통하면서 두서면과 두동면으로 분리를 하고 만다. 그때부터 울주군 두동면이라고 하는 지명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한 지명의 유래를 내남 너븐들에 지주로 살고 있는 손영주나 정애라는 벌써 알고 있다. 따라서 두동에서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오면 처음으로 만나는 동네가 내남 노곡인 것도 잘 알고 있다. 그 노곡에 매파가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봉천 아지매 정애라가 다시 자신의 집을 방문한 매파에게 그러면 신랑감과 신부감이 한번 맞선을 보는 자리를 마련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을 때에 매파가 서슴지 아니하고 두동과 너븐들의 중간에 있는 노곡의 자기 집이 좋겠다고 천거를 한다.

그것이 합당한 의견인 것 같아서 그렇게 하기로 하고 만나는 시점을 양력으로 2월 하순으로 정한다. 음력으로 설과 보름을 지난 다음 농번기가 시작이 되기 전에 맞선을 보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6살 노총각인 최지훈은 울주 두동에서 월성 노곡으로 오고, 21살 처녀인 손해선은 모친 정애라와 함께 내남 상신에서 노곡으로 이동을 한다.

매파가 살고 있는 내남 노곡의 집은 초가집이지만 상당히 깔끔하다;

그 집 안방 옆에 있는 방을 치워 놓고 처녀 총각이 맞선을 보도록 이미 조치를 하고 있다. 그런데 처녀 총각이 초면에 그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쑥쓰러워한다. 따라서 매파가 최지훈을 데리고 방으로 먼저 들어가고 뒤따라 정애라가 딸 손해선을 데리고 입장을 한다. 

최지훈과 손해선이 그 방에 자리를 잡고 앉자 갑자기 온방이 환해지는 것만 같다. 그만큼 그 두사람의 인물이 훤한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매파가 먼저 덕담을 한다; “아이고, 내 평생에 이렇게 인물이 좋은 선남선녀가 만나는 광경을 처음 봅니다. 천생연분인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도 봉천 아지매가 웃음기만 머금을 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는다. 사람의 겉모양만 보고서는 그 마음씨를 모른다. 따라서 봉천 아지매가 먼저 최지훈에게 질문을 한다; “총각은 작년 가을에 우리 딸을 먼발치에서 한 두차례 본 것 밖에 없는데 어째서 매파를 여러 번 보내어 이 맞선자리까지 주선을 한 것이지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그 말을 듣자 최지훈이 자신의 머리를 긁으면서 약간 고개를 숙이고 말한다; “저도 그 점이 이상합니다. 분명히 한두 번 본 것 밖에 없는데 그 모습이 계속 생각이 나고 있으니까요? 저도 노총각 소리를 듣게 되는 지금까지 그러한 경우가 처음입니다. 그저 만나고 싶고 결혼하고 싶고 함께 살고 싶은 생각만 들 따름입니다. 그 어떠한 계산이나 다른 생각이 들지를 않습니다”.

그 말을 받아서 매파가 좋은 분위기를 만들고자 한마디를 한다; “천생연분인가 봅니다. 그렇게 처음보고서 마음에 그토록 들어 하니 그것이 연분이지요. 만약 그 혼사가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그것이 상사병이 되고 마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 말을 듣고서 봉천 아지매는 그냥 웃어 넘기고 만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러한 일시적인 감정이나 마음보다 진심으로 백년해로를 하고자 하는 마음과 신부를 평생 자신의 반려자로 아껴주고자 하는 심성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점을 어떻게 해서든지 한번 파악을 해보려고 하지만 간단한 맞선 자리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봉천 아지매는 집을 나서기 전에 딸 해선에게 단단히 당부를 한 바가 있다. 사람의 겉모습을 보지 말고 그 심성이 어떠한지를 정확하게 살펴보도록 주의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특히 최지훈이 외동아들이고 편모 슬하이기 때문에 그 점이 참으로 중요하다.

매파가 처녀 총각에게 시간을 내주기 위하여 먼저 자신들은 방 바깥으로 나가 있자고 제안을 하므로 어쩔 수 없이 봉천 아지매가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안방에서 그 집의 주인인 매파와 한시간 정도 시간을 보낸 후에 옆방으로 건너가 본다.  두어른이 들어오자 최지훈과 손해선도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미 오래 깊은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보인다.

집으로 돌아온 정애라가 딸에게 물어본다; “오늘 네가 본 바는 어떠냐? 그 청년이 믿음직스러운가? 아니면 가벼운 사람으로 보이는가?”. 그러자 손해선의 대답이 걸작이다; “짧은 시간 보아서는 다 알 수가 없지요. 제가 본 바로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정작 문제는 그 모친이겠지요. 제가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그 총각이 여전히 ‘엄마’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보니 아직 미성숙한 것만 같아요”.

그 말을 듣고서 봉천 아지매 정애라는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다; ‘딸아이의 말을 들어보니 그저 오륙십 점 정도의 점수에 불과하다. 더 좋은 혼처가 앞으로 나서겠지. 혼사를 서둘 이유가 없다…’. 그렇게 그 맞선을 그 정도에서 정리를 하고 만다. 그때부터 정애라는 막내아기 손수태를 손해선에게 돌보도록 맡겨 놓고 한두 시간씩 바깥 일을 본다.

그러나 오래 아기를 떨어지게 할 수는 없다. 여전히 엄마를 찾으며 젖을 빨기 때문이다. 따라서 맞선을 보는 자리에도 사실은 아기를 업고서 따라간 봉천 아지매였다. 어쨌든 딸 손해선의 혼사를 미루어 놓았기에 마음은 가뿐하다. 그래서 이제는 아기를 업고서 남편과 함께 경주 오일장에도 가고 한다;

그런데 그해 1933년 5월 12일 경주 오일장을 들른 후에 내남으로 돌아오고자 막 사정리 초입을 지나가고 있을 때에 정애라는 참으로 뜻밖의 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 옛날 경주 성동에서 이웃하여 살고 있던 소꿉친구 오예은이를 만난 것이다. 간호사 복장을 하고서 ‘회생의원’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오던 그녀가 먼저 정애라를 알아보고서 깜짝 놀란다; “어머머, 이게 누구야? 너 애라가 아니냐?”.

봉천 아지매가 의아한듯이 묻는다; “나를 알고 있는 너는 누구니? 혹시 성동에 살고 있던 내 소꿉동무 예은이니? 많이 비슷은 한데 확실히는 모르겠네…”. 그러자 그 간호사가 와락 정애라의 팔을 잡으면서 말한다; “얘가, 말하는 것 좀 봐라. 오예은이면 오예은이지 그렇게 비슷하다는 말이 무엇이니? 내가 오예은이가 맞아 정애라야”;

그러자 봉천 아지매가 애기를 업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리고 자신 옆에 남편 손영주가 서있는 것도 잊어버리고 오예은이만 바라보고서 뛸 듯이 기뻐하면서 말한다; “예은아. 네가 간호사 복장을 하고 있어서 내가 전혀 몰라 보았다. 미안하다. 예은아. 너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예은아 내  친구 예은아…”;

손영주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내 정애라가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별로 많이 보지 못한 것 같다. 동심으로 돌아가서 옛날 친구를 30년이나 지나서 만난다고 하는 것이 그렇게 경이롭고 신기한 모양이다.  그래서 그저 옆에 서 있기만 하는데 정애라가 자신을 한번 보고서 말한다; “예은아. 여기는 내 남편 손영주야. 그리고 내가 업고 있는 아기가 우리집 막내아들이지. 아직 두돐이 되지 않았어…”.

오예은과 손영주가 서로 간단하게 머리를 숙여서 인사를 한다. 그러자 오예은이 다시 정애라의 팔을 잡고서 말한다; “여기 길거리에서 이럴 것이 아니라 잠시 안에 들어가자. 따뜻한 차라도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자. 많이 바쁜 걸음을 아니지 애라야?”. 정애라가 고개를 끄떡이고 손영주도 함께 ‘회생의원’ 안으로 들어간다.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오예은이가 말한다; “여기 경주 사정리에 이 병원을 차린 지는 오래 되지가 않았어. 여기는 근처에 경주역사가 있고 대구와 부산으로 가는 길이 양 옆으로 나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목이지”. 참고로, 당시 경주도서관 옆에 있던 경주역사의 모습이 다음과 같다;

오예은이 이어서 말한다; “그래서 의대를 졸업하고 대구 큰 병원에서 일하던 오빠가 독립하여 이곳에 의원을 차리고 있어. 나는 간호학교를 나오고 역시 대구 큰 병원에서 일하다가 이제는 오빠를 도와서 이곳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지”. 교차로가 있는 그곳은 참으로 좋은 위치이다;

그 말을 들은 정애라가 묻는다; “예은이 너의 오빠라면 오예준 오빠를 말하는구나. 어릴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더니 의사가 되었구나. 잘 되었다. 그러면 너의 언니 오예진은 어디서 살고 있니? 그리고 너희 부친 오하원 선교사님은 또 어디 계시고?”. 갑자기 오예은이 깔깔 웃으면서 말한다; “얘는 아직도 옛날처럼 쉬지 않고 묻는구나. 그래 예진 언니는 경성에 시집을 가서 잘 살고 있고, 아버지 오하원 선교사님은 아직도 정정하셔서 대구에서 의사일도 하면서 복음사역도 하고 계시지…”.

그날 오예은은 진료를 잠시 쉬는 시간에 그 간호사 대기실에 들른 오빠 오예준을 봉천 아지매와 손영주에게 소개를 한다. 정애라보다 7살이나 많은 의사 오예준이 그녀를 보고서 참으로 기뻐한다. 어릴 적 같은 동네에서 막내 여동생 오예은과 고무줄 놀이를 하면서 뛰놀던 그 명랑한 소녀 정애라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사 오예준이 정중하게 손영주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그러자 손영주도 마주 인사를 하면서 웃는다. 옆에서 정애라가 말한다; “오빠, 내 남편도 오빠와 나이가 같아. 나보다 7살이 많거든…”. 그러자 오예준이 손영주를 보면서 말한다; “저도 1884년생입니다. 동갑이라고 하시니 앞으로 친하게 지내도록 하시지요. 제 막내 여동생과 손선비님의 아내분도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이고 또 동갑이랍니다. 이것도 귀한 인연이지요”.

손영주는 의사 오예준이란 사람이 좋아 보인다. 그리고 그 웃는 모습이 자연스럽고 꾸밈이 없어서 보기가 좋다. 따라서 쾌히 말한다; “저야 시골의 농삿꾼이지만 오선생께서는 공부를 많이 한 의사 분이신데 어떻게 허물없이 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니 앞으로 친하게 지내겠습니다. 옛날 제 집사람과 한 동네에서 자란 사이라고 하시니 그 동심으로 저도 그렇게 너그럽게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듣자 의사 오예준이 ‘하하’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손선비께서는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저의 부모님도 평생 조선의 농사꾼이셨습니다. 아직 이나라 조선사람의 대부분이 농사꾼이 아닙니까? 그들이 수고하여 생산한 쌀을 먹고서 저 같은 사람도 의사일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 말씀 마시고 경주 오일장에 오시는 걸음에 언제라도 저희 병원에 들러 주십시오. 그렇게 앞으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뜻밖에 그러한 좋은 인연을 만나고 내남 너븐들로 귀가를 하니 그때부터 며칠이나 기분이 좋다. 정애라는 그 옛날 동네 친구를 만나서 좋고 손영주는 참으로 마음이 따뜻한 가족들을 만난 것만 같아서 기분이 좋은 것이다. 그렇게 1933년 농번기가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