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3(작성자; 손진길)
1931년 9월 9일에 41세의 봉천 아지매 정애라가 남편 손영주에게 다섯번째 아들을 안겨준다;
그것을 보고서 스스로 뒷방 늙은이로 지내고 있는 시어머니 이채령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득남을 축하한다고 며느리 정애라에게 촌지를 듬뿍 준다. 물론 그 돈은 돌아간 남편 서배 할배가 그녀에게 만약의 경우 비상금으로 사용하라고 준 돈 가운데 극히 적은 부분이다.
그 축하금을 받은 봉천 아지매 정애라가 참으로 기뻐한다. 그래서 남편 손영주에게 말한다; “여보, 어머니께서 득남을 축하한다고 돈을 많이 주셨어요. 77세나 되신 어머니께서는 5번째 손자를 보시니 기분이 엄청 좋으신 모양이예요. 이 참에 우리 아기의 이름을 하나 지어 달라고 말씀을 드려보세요…”. 손영주도 좋다고 한다.
이채령은 손자아기의 이름을 ‘손수태’라고 짓는다. 가문의 든든한 밑받침이 되라고 하는 의미를 담아서 그렇게 지은 것이다. 그 이름자를 받고서 손영주와 정애라 부부는 좋아한다. 왜냐하면, 이제는 아들이 다섯이나 되니 자신들이 열심히 농사를 지어서 그들을 잘 교육만 시키면 가문의 번성이 충분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판단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부부의 소망이 쉽게 이루어지지를 못한다. 그 이유는 그때쯤 일본제국의 관동군이 만주전역을 차지하고자 대규모로 침략전쟁을 개시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 전쟁에 관하여 차제에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의 군대가 애초에 만주로 진출한 구실은 간도지역에 살고 있는 조선사람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이다. 그것은 훗날 1939년에 독일의 나치가 주변국에 있는 게르만 족속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웃나라를 침략한다는 구실과 같은 맥락이다.
둘째, 그런데 사실은 간도에 살고 있는 조선의 백성들은 일제의 학정을 피하여 그곳으로 이주를 한 사람들이므로 한번도 일제의 군사적인 보호를 필요로 한 적이 없다. 따라서 일본의 군대는 할말이 없으므로 그 다음에는 만주에 설치가 되어 있는 자신들의 철도를 보호한다는 것을 구실로 삼고서 주둔을 한다.
셋째, 일제는 철도의 구간별로 엄청난 군대를 주둔시킨다. 그리고 그 이름을 아예 ‘관동군’이라고 부르면서 별도의 사령부를 설치한다. 그것으로 만주를 무력으로 점령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 일제가 지키고자 하는 그 철도구간은 사실 러일전쟁을 통하여 그들이 얻은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을 지킨다고 하는 명분으로 대규모 군단을 설치하고 있으니 중국의 입장으로서는 기가 막힌다. 당시의 그 조약이란 것이 청국과 러시아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며 그것을 일본이 러시아와의 전쟁을 통하여 무력으로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그 특권을 새로운 인민들의 정부인 중국이 승계하고 지켜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한 입장이므로 만주의 왕이라고 불리고 있는 장작림은 북상하고 있는 장개석의 군대를 대항하기 위하여 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일본의 군대의 힘을 빌리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일제는 그것이 아니다. 아예 중국의 군벌인 장작림을 없애 버리고 자신들이 만주를 차지하고 싶은 것이다.
여섯째, 일제는 1928년에 열차폭파사고를 통하여 장작림을 없애 버리고 만주를 지배하고자 한다. 그러자 장작림의 아들인 장학량이 장개석과 제휴하여 일제의 군대를 몰아내고자 사력을 다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일본의 관동군은 1931년 9월 18일에 스스로 자작극을 벌여서 중국측이 ‘류탸오후’(유조호)에 있는 일본의 철도를 일부 파괴하였다고 주장하고 봉천을 중심으로 전체 만주를 차지하고자 침략전쟁을 개시한다;
일곱째, 일본은 1932년에 ‘만주국’을 세우고 나서 이제는 무력으로 중국의 동해안 쪽으로 밀고 내려온다. 일본의 관동군에게 밀린 중국은 ‘세계연맹’에 호소를 하지만 별 소용이 없다. 일본제국이 국제연맹의 결정을 따르지 아니하기 위하여 아예 탈퇴를 하고서 ‘중일전쟁’을 계속하는 한편 나중에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참고로, 1932년에 일제가 세운 괴뢰정부 ‘만주국’의 지도가 다음과 같다;
그리고 만주국에 소속이 되고 마는 중국 각 성의 위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여덟째, 관동군의 만주침략과 대륙침략에 따라 중국대륙과 조선에서는 다음과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1) 장개석의 군대와 합작을 하여 항일투쟁을 하던 모택동의 공산당이 갑자기 그 합작을 깨고서 실리를 챙기고자 나선다. 그들은 서쪽 내륙 깊숙하게 들어가서 힘을 길러 나중에 일본과의 전쟁에서 힘이 빠진 장개석의 군대를 쳐부수고 중국대륙을 차지하고 만다;
(2) 상해임시정부가 동해안을 타고서 남진을 하는 일본 관동군을 피해서 자꾸만 서쪽으로 피난을 가게 된다. 마지막으로 피난을 간 장소가 내륙 깊이 자리를 잡고 있는 ‘중경’이다. 그렇게 관동군에게 쫓기어 다니고 있는 임시정부의 힘으로써는 도저히 일본제국을 상대하여 조선의 독립을 스스로 쟁취할 수가 없다고 하겠다;
(3) 일본제국은 관동군의 중국침략을 지원하기 위하여 식민지 조선에서 충분한 전쟁물자를 얻고자 한다. 그러므로 온갖 지하자원을 약탈하는데 총력을 경주하고 군량미로 삼고자 조선의 쌀을 공출한다. 조선총독부는 헐값으로 조선농민들이 생산한 쌀을 사들이는 한편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물에 대하여 수세를 매기고 비료 등 농자재의 값을 천정부지로 인상하고 만다.
그러므로 농사를 지을수록 빚만 늘어간다. 농민들은 주곡인 쌀을 일제에게 빼앗기고 만주에서 들여온 잡곡과 옥수수로 겨우 살아가게 된다. 조선의 지주들은 땅을 빨리 처분하고 장사를 하거나 다른 사업을 하는 것이 낫다.
농업이 천하지 대본인 나라에서 농사로 먹고 살지를 못하는 비참한 세월을 전시체제 아래에서 살아가게 되는 조선의 백성들이다. 그것이 1930년대와 1940년 전반기의 조선의 형편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그 수탈의 정도가 심해져서 조선의 민족자본은 거덜이 나고 마는 것이다.
그러한 세월을 살아가게 되는 손영주의 자녀들이다. 그러므로 다섯 아들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여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세월이 그들 앞에 곧 전개가 되고 만다. 착하기만 한 지주 손영주는 그러한 시대를 맞이하여 능동적으로 대처할 능력이 전혀 없다.
따라서 6자녀의 어미인 봉천 아지매 정애라가 소매를 걷어 부치고 사나운 모습으로 그러한 시대와 싸워나갈 수 밖에 없다. 자식을 굶기지 아니하려고 하는 그녀의 눈물나는 투쟁의 역사가 ‘봉천 아지매’의 이야기이고 나중에는 ‘봉천 할매’의 일대기라고 하겠다.
그렇지만 그것은 아직 당장은 그들의 눈앞에 도래하고 있는 현실이 아니다. 따라서 갓난아기 ‘손수태’의 젖을 먹이면서 기분이 좋은 정애라는 남편 손영주에게 말한다; “여보, 저도 나이가 이제 41살이니 이 아기가 마지막 자식이예요. 그리고 저보다 나이가 많은 형님은 벌써 딸만 넷을 낳고 단산을 하신 거예요. 그러하니 나중에 아주버님이 당신에게 양자를 하나 달라고 말씀하시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하세요. 제 생각에는 장남은 안되지만 지차는 줄 수가 있을 것 같아요”;
참으로 고마운 말씀이다. 그래서 손영주는 사랑스러운 아내 정애라를 품에 꼭 안는다. 그리고 친형 손영한이 양자를 하나 달라고 자신에게 말할 그때가 언제일까? 은근히 궁금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당장은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를 못한다. 그 이유는 손영한의 집안이나 손영주의 집안이나 자녀들의 혼사문제가 곧 대두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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