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6년 설교문(손진길 목사) 2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성전의 미래”(눅19:28-48)(작성자; 손진길 목사)

제목;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성전의 미래”(눅19:28-48)설교일; 주후 2025년 1월 12일 주일작성자; 손진길 목사(24년 10월 4일 금요일 작성) 여리고의 세관장 삭개오의 집에서 식사하는 도중 예수님과 사도들은 부자인 삭개오의 놀라운 회개와 결단의 장면을 보았습니다(눅19:8). 그것은 여리고에 오기 전에 유대 땅에서 그들이 만난 부자관리의 경우와는 정반대입니다(눅18:22-23). 예수님이 그 부자청년에게 부디 선대로부터 받은 재물과 신분에 미련을 두지 말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새출발을 하라고 권면했습니다(눅18:22). 그렇게 되면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는 좁은 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부자청년은 고민만 하다가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눅18:2325). 그런데 선민 유대인들이 ..

“예수님을 만난 세관장 삭개오의 회개와 은 10므나의 비유”(눅19:1-27)(작성자; 손진길 목사)

제목; “예수님을 만난 세관장 삭개오의 회개와 은 10므나의 비유”(눅19:1-27)설교일; 주후 2025년 1월 5일 주일작성자; 손진길 목사(24년 10월 1일 국군의 날 목요일 작성) 흔히 사회적인 정의(justice)의 구현과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righteousness)를 실천하는 것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히 다른 개념입니다. 그 차이를 간략하게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사회적인 정의(justice)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만든 법정에서 옳다고 판정이 되면 성립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국가나 사회는 공익을 확보하기 위하여 입법을 하고 국가의 법률과 지역사회의 규범에 맞으면 사법부에서 재판을 거쳐서 옳다는 것으로 판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만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