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의 성도들을 자신의 동역자로 세우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시 설명하고 스페인까지 가려는 자신의 계획을 밝히다”(롬15:1-33)
설교일; 주후 2026년 4월 5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년 5월 2일 금요일 작성)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절대적인 기쁨’과 ‘상대적인 기쁨’에 대하여 먼저 이해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여기서 ‘절대적인 기쁨’이란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의로운 종을 통해서 얻고자 하시는 기쁨입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이 실현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즉,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절대적인 기쁨입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살리고자 할 때에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기쁨을 말하고 있습니다(막3:4, 12:30-31, 마5:44-48, 16:24, 28:18-20).
반면에, ‘상대적인 기쁨’이란 이기적인 인간이 자신만 이세상에서 육신적으로 얻고 누리고자 하는 기쁨입니다. 그렇게 이기적인 인간의 속성에 기초하여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있는 것이 자본주의의 특징입니다.
그 결과 산업근대화가 이루어지고 물질문명이 극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개인주의가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함께 첨단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따라서 21세기 인류의 모습은 개인용 컴퓨터와 휴대폰에 푹 빠져서 살아가고 있는 이기적이고도 고독한 존재입니다.
기계화되고 전자화되어 버린 환경속에서 자신의 폐쇄적인 삶 만을 영위하고 있는 현대인들이기에 그 옛날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함께 복음 사역하면서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던 공생애에서 너무나 멀리 격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조물 모두를 자식같이 사랑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피조물이 마치 하나의 유기체와 같은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할 때에 주어지고 있는 진정한 기쁨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오늘날 인류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기적인 상대적 기쁨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절대적인 기쁨을 회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소원하면서 주후 1세기에 사도 바울이 본문을 기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글을 깊이 묵상해보면 그리스도를 통하여 어떻게 인류가 참 기쁨을 회복하며 서로 생명을 돌보고 살려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로마서 제15장에서 사도 바울이 설명하고 있는 내용은 성경전체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절대적인 기쁨과 상대적인 기쁨이라는 주제어를 가지고 성경말씀을 폭넓게 묵상해보게 되면 크게 어렵지 아니하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기록이 바로 이기적인 인간의 속성에 대하여 정확하게 진단하고 또한 어떻게 하면 육신적인 이기주의를 넘어서서 영적인 생명과 행복을 함께 누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여 육신을 입고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생을 살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류의 영원한 생명과 행복이 영적인 차원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님의 강림이라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통하여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이 세상에서도 구현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그러한 영육 간의 구원이 모두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며 이 땅에 임하는 천국입니다”.
조금 풀이를 덧붙여 봅니다;
(1) 하나님의 아들이며 동시에 사람의 아들인 인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의 제사로 말미암아 육신적인 이기주의에 사로잡혀서 살아간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성도들에게는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로 죄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2) 이제는 거듭난 삶을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하여 헌신하고자 하는 성도들에게는 성령님의 임재로 상대적인 기쁨을 넘어서는 절대적인 기쁨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3) 그리고 성도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또한 성령님 안에서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게 되면 절대적인 기쁨은 더 이상 영적인 차원에만 머무르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적인 차원에서도 성취가 되고 있습니다.
(4) 그렇게 영육 간에 생명살림과 공생의 기쁨이 주어지고 있는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시고자 사실은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이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엡4:6-7);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하여 또 하나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이 사도 바울이 당시에 지니고 있는 단기적인 시관(時觀, view of time, 시간에 대한 관념)입니다. 실제로 초대교회 시대 사도들과 성도들의 종말론의 특징은 주님께서 곧 재림하실 것이라고 하는 단기적인 시관(時觀)입니다(계22:20-21).
그로부터 2천년의 세월이 지난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세상의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은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전히 성도들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후 1세기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은 곧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세상의 종말을 맞이하여 재림하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소망이 임박한 것이며 절실한 것이기에 주후 60년대 중반 네로 황제의 엄청난 박해도 견디어 내고 있습니다. 찬양을 부르면서 순교의 현장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에는 본문에서 당시 세상의 끝이라고 여기고 있는 지중해의 서단인 서바나의 다시스 항까지 마지막 선교여행을 떠나려고 미리 준비하고 있습니다(롬15:23). 그 일을 위하여 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시에서 자생적인 교회를 세우고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들의 재정적인 지원과 인적인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롬15:24).
바울은 예수님과 공생애를 함께한 사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도 마태는 예수님께서 “14.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고 말씀하셨다고 초대교회에서 설교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벧후3:8-9a).
그에 따라 사도 바울은 로마제국내의 이방인 선교를 빨리 자신의 세대에 마무리하기 위하여 일종의 ‘건너뛰기 형식의 선교전략’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로마제국의 대도시를 연결하는 다음과 같은 선교 전략입니다;
(1) 첫째, 사도 바울은 새로운 대도시에 들어가면 먼저 유대인 회당(synagogue)을 찾아가서 히브리경전을 가지고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찾아서 읽고 설명합니다. 구체적으로 그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가 되었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2) 둘째,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제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주어지고 있다고 증거합니다. 그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을까요? 그 증거로서 사도 바울의 선교현장에서 실제로 성령님의 강림과 임재의 역사가 있게 됩니다(행19:5-8).
(3) 셋째, 성령님의 역사로 그 지역에 가정교회가 설립됩니다. 그 교회를 후진에게 맡기고 바울은 그 다음 대도시로 이동합니다. 그렇게 로마제국의 대도시 위주로 소아시아에서 유럽의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사도 바울이 복음의 씨를 뿌린 초대교회가 설립되고 있는 것입니다(롬15:19).
(4) 넷째, 이제 로마교회 성도님들의 도움을 받아서 이태리에서 서바나 곧 스페인까지 그러한 방법으로 선교하고 나면(롬15:23)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였으므로 부활 승천하여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살전4:16-17). 그와 같은 하나님나라의 소망으로 가슴이 뜨거워지고 있는 바울입니다(살전4:18).
이상과 같은 사실에서 새삼 알 수 있는 사실은 로마교회를 방문하는 것이 사도 바울의 최종목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선교활동을 크게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말과 같이 이미 복음을 받아 들인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교회를 개척하고 있는 로마의 수도이므로 사도 바울이 이중적으로 선교활동을 그곳에서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롬15:20-21).
다만 로마교회에 사도 바울이 바라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복음에 대하여 로마교회의 성도들이 올바른 지식을 체계적으로 가지고 십자가구원의 믿음을 확고하게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무장한 제자의 길을 가고자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세계선교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개인적으로 여의치 아니하다고 한다면 재정적으로라도 선교팀을 도와야 합니다”(롬15:24);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에 대한 구절풀이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아울러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교회는 성도의 믿음을 성숙하게 만들어 전도와 선교의 일꾼으로 파송해야 함, 마28:18-20. 그리고 성도들은 보혜사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성화를 이루게 되는 것임, 요14:16-20, 행1:8.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믿음이 성숙한 성도는 두가지 역할을 수행해야 함. 하나는, 연약한 성도를 성숙한 성도로 양육해야 함. 또 하나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범을 보여야 함, 롬14:1-13). 2. 우리 각 사람이 (여호와께서 창조한 나와 같은 생명체인) 이웃을 기쁘게 하되, (모든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막3:4) 선을 이루고 (교회의)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3.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제자도에 있어서 자기를 부인한 것과 같은 의미임, 마16:24)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시69:9) 같으니라.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천국에서의 영생을 바라보고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인내하며 온갖 시험을 이겨 나가는 것임, 눅22:28-30, 살전4:16-17, 롬8:17-18). 5.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주님 안에서 성령님이 내주 역사하여 교회의 성도인 우리를 하나되게 하여 주사, 롬8:1-4), 6.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성도들이 주님 안에서 화목하고 함께 동역하게 되면 많은 선교의 열매를 얻어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가 있는 것임).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그리스도께서 연약한 제자를 성숙한 신앙인으로 양성하여 복음의 일꾼으로 파송하는 모범을 보였으니 우리 성도들도 그리하여야 한다는 것임). 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동족인 선민 유대인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파하고자 예수님이 할례를 받으신 것으로 바울이 보고 있음),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여호와는 백성들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자신이 창조한 모든 백성 곧 선민은 물론 이방인들까지 긍휼의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전부 구원하고자 하시는 것임, 출33:19).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시18:49, 만민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임) 같으니라. 10.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신32:43,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와 그 복음을 영접하는 모든 백성들이 다 함께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뻐한다는 것임), 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시117:1, 만민구원의 주님의 복음을 히브리경전에서 새언약으로 벌써 예언한 것임, 렘31:33, 욜2:28),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사11:1,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 의미가 두가지임; 하나는, 이새의 후손 가운데 메시아가 나타난다는 것임. 또 하나는, 이새의 뿌리인 그 믿음의 조상과 같은 여호와신앙을 가진 자가 메시아라는 것임),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사11:10, 메시아는 선민의 구원은 물론 이방인의 구원까지 이루시게 된다는 것임) 하였느니라. 13. (영생을 주시는)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주님과 성령님을 영접하는)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창조주의 권능을 전해 주시는, 행1:8) 성령의 능력으로 (이 세상의 시험과 고난 가운에서도)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모든 생명을 살리고 돌보고자 하는 마음이 충만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이 충만하여)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서로의 부족함을 올바르게 채워줄 수 있는 성도들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로마교회에 그러한 성숙한 믿음의 좋은 분위기가 있다는 사실을 바울이 칭찬하면서 그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복음의 진수를 용기를 내어 나누어 주었다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는 대목임), 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출19:4-6, 선민의 책무는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하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로 살아가는 것임. 선민 이스라엘이 그 책무를 행하지 아니하다가 멸망을 당하고 말았음. 그러므로 이제는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이 그 일을 행하고 있는 것임, 마28:18-20)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사66:20-21)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행1:8, 롬8:1-4, 세계선교와 성도의 성화가 성령님과 동행하는 성도들에게 이루어짐으로 말미암아)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22:28-30, 그리스도의 제자로 신실하게 끝까지 살아가면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의 상급과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임)”(롬15:1-16); 이 대목은 모든 생명을 살리고 돌보시는 여호와의 선을 이루고 교회의 덕을 세우도록 하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의 말씀입니다.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1) “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교회는 성도의 믿음을 성숙하게 만들어 전도와 선교의 일꾼으로 파송해야 함, 마28:18-20. 그리고 성도들은 보혜사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성화를 이루게 되는 것임, 요14:16-20, 행1:8.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믿음이 성숙한 성도는 두가지 역할을 수행해야 함. 하나는, 연약한 성도를 성숙한 성도로 양육해야 함. 또 하나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범을 보여야 함, 롬14:1-13). 2. 우리 각 사람이 (여호와께서 창조한 나와 같은 생명체인) 이웃을 기쁘게 하되, (모든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막3:4) 선을 이루고 (교회의)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3.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제자도에 있어서 자기를 부인한 것과 같은 의미임, 마16:24)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시69:9) 같으니라.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천국에서의 영생을 바라보고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인내하며 온갖 시험을 이겨 나가는 것임, 눅22:28-30, 살전4:16-17, 롬8:17-18). 5.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주님 안에서 성령님이 내주 역사하여 교회의 성도인 우리를 하나되게 하여 주사, 롬8:1-4), 6.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성도들이 주님 안에서 화목하고 함께 동역하게 되면 많은 선교의 열매를 얻어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가 있는 것임)“(롬15:1-6); 알기 쉽게 문답형식으로 살펴봅니다;
1) 첫째, “믿음이 강한 자가 담당해야 하는 일이 무엇이며(롬15:1) 성도들이 모두 담당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요?”(롬15:2). 먼저 믿음이 강한 자가 담당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살펴봅니다(롬15:1). 본문의 말씀입니다; “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롬15:1); 다음과 같이 풀이가 됩니다;
2) 하나, 교회에는 두 부류의 성도들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믿음이 강한 성도들입니다. ②또 하나는 믿음이 약한 성도들입니다. 일반적으로 주님의 제자로 오래된 성도들이 믿음이 강한 성도들이고 오래되지 아니한 성도들이 믿음이 약한 성도들이라고 보고 있지만 꼭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연수(年數)가 믿음의 크기를 재는 잣대는 아닌 것입니다.
3) 둘, 믿음이란 주님을 통하여 이 세상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믿는 것인데 그 능력이란 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가 없는 부활과 영생의 능력입니다(눅24:44-49). 그러한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능력을 믿는 것이기에(요3:13-17, 눅22:28-30) 그 믿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선물이며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신앙생활의 시간만 가지고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령님께서 그러한 확신을 누구에게 어느 정도로 확정하여 주시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4) 셋, 성도들 각자의 믿음의 분량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의 뜻에 달려있는 것이므로 사람들이 왈가왈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약한 자를 비판할 것이 아니라 함께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신 주님의 뜻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 뜻은 믿음이 강한 자가 신앙생활의 좋은 본을 보이고 약한 자를 잘 양육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주님의 뜻을 깨닫고 믿음이 강한 자는 자신의 강함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면서 함께 아름다운 동역자의 삶을 실천해야만 합니다.
5) 둘째, “그렇다면, 성도들이 모두 담당해야 하는 구체적인 일이 무엇일까요?”(롬15:2). 본문입니다;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롬15:2);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다음과 같은 세가지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지역사회에 대하여 또한 교회 안에서 믿음이 강한 성도가 믿음이 약한 성도들에 대하여 어떻게 처신해야만 하는지를 동시에 말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이 풀이가 됩니다;
6) 하나, 이웃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주님의 제자들입니다(막12:30-31).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이 맞물리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의미를 예수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하여 알기 쉽게 좋은 이웃이 되라고 설명하십니다(눅10:33-37). 그리고 ‘양과 염소와의 비유’를 통하여 주님이 피로 사신 소자 하나를 돌보아 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며 영생을 얻을 만큼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마25:34, 40, 46).
7) 둘, 하나님의 선(善)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은 창조주의 절대선을 말하고 있습니다(눅18:19). 그것은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명살림의 선을 행하자면 자신의 불이익과 희생을 무릅써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제자도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b).
8) 셋, 교회의 덕(德)을 세워 나가야 합니다; 신앙공동체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유익만을 추구해서는 안됩니다. 전체 신앙공동체에 유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이 세운 교회를 위하여 주님의 지체로 복음사역을 하고 있는 성도들의 마음가짐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개인적인 유익의 성격이 강한 방언보다는 차라리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예언의 성격을 가질 수 있도록 방언의 통역에 힘을 쓰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고전14:5).
9) 셋째, “그리스도처럼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위로를 주시는 것일까요?(롬15:3, 5) 그리고 성경에서 위로와 소망의 하나님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성도의 삶이 현실적으로 어떠하기 때문인가요?”(롬15:4, 6) 먼저, 그리스도처럼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위로를 주시는지를 생각해봅니다(롬15:3, 5). 본문입니다; “3.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시69:9),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롬15:3), “5. 이제 위로와 인내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롬15:5);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10) 하나, 그리스도께서 만약에 자신의 뜻대로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했다고 하면 자신을 비방하는 자들을 모두 쓸어 버리시고 그 비방을 일시에 사라지게 하셨을 것입니다(롬15:3반대해석).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그렇게 자신을 기쁘게 하는데 사용하지 아니하시고 오로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사용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을 비방하는 유대교지도자와 선민 유대인들까지 모두 구원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11) 둘, 예수님은 자신을 비방하고 있는 자들에 대하여 긍휼히 여기고 십자가를 지시고 다음과 같이 기도하십니다;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눅23:34). 그러므로 공생애 기간 중 복음사역의 현장에 있어서도 자신을 비방하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 대하여 끝까지 인내하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처벌하지 아니하십니다(마26:53-54).
12) 셋, 그와 같이 아버지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실천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위로하고 부활시키신 것입니다. 그러한 복음의 의미를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통하여 배우고 있는 성도들은 이제 교회 내에서 서로 비방하지 아니하고 위로와 인내로 하나가 되어서 복음사역에 함께 임해야만 합니다(롬15:5).
13) 넷째, “성경에서 위로와 소망의 하나님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성도의 삶이 현실적으로 어떠하기 때문인가요?”(롬15:4, 6). 본문입니다;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15:4), “6.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롬15:6);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14) 하나, 성도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나 그 바깥인 세상에서나 모두 힘이 들고 비방을 받게 마련입니다. 그 이유는 현세적인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는 세상에서 정반대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고 남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라고 하는 주님의 가르치심을 세상에 전하게 되면 그것은 조롱거리가 되기에 알맞습니다. 또한 그렇게 실천하는 성도들을 보고서 세상사람들은 어리석다고 비웃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15) 둘, 세상의 비방과 조롱이 심하다고 하더라도 성도들이 그것을 인내할 수 있는 이유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주님의 위로와 소망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누구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받으신 동일한 비방을 받으며 그에 대하여 주님과 같은 믿음으로 인내하고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16) 셋, 그 고난과 인내의 세월 가운데 이 세상을 이기신 주님의 위로가 함께하고 있으며 마침내 주님께서 얻으신 그 부활과 영생을 자신도 얻게 된다고 하는 그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빌3:10-16, 살전4:16-17). 그와 같은 동일한 믿음과 소망으로 교회 내에서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복음사역에 임하기를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권면하고 있습니다(롬15:4, 6);
(2)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그리스도께서 연약한 제자를 성숙한 신앙인으로 양성하여 복음의 일꾼으로 파송하는 모범을 보였으니 우리 성도들도 그리하여야 한다는 것임). 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동족인 선민 유대인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파하고자 예수님이 할례를 받으신 것으로 바울이 보고 있음),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여호와는 백성들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자신이 창조한 모든 백성 곧 선민은 물론 이방인들까지 긍휼의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전부 구원하고자 하시는 것임, 출33:19).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시18:49, 만민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임) 같으니라. 10.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신32:43,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와 그 복음을 영접하는 모든 백성들이 다 함께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뻐한다는 것임), 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시117:1, 만민구원의 주님의 복음을 히브리경전에서 새언약으로 벌써 예언한 것임, 렘31:33, 욜2:28),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사11:1,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 의미가 두가지임; 하나는, 이새의 후손 가운데 메시아가 나타난다는 것임. 또 하나는, 이새의 뿌리인 그 믿음의 조상과 같은 여호와신앙을 가진 자가 메시아라는 것임),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사11:10, 메시아는 선민의 구원은 물론 이방인의 구원까지 이루시게 된다는 것임) 하였느니라. 13. (영생을 주시는)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주님과 성령님을 영접하는)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창조주의 권능을 전해 주시는, 행1:8) 성령의 능력으로 (이 세상의 시험과 고난 가운에서도)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모든 생명을 살리고 돌보고자 하는 마음이 충만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이 충만하여)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서로의 부족함을 올바르게 채워줄 수 있는 성도들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로마교회에 그러한 성숙한 믿음의 좋은 분위기가 있다는 사실을 바울이 칭찬하면서 그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복음의 진수를 용기를 내어 나누어 주었다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는 대목임), 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출19:4-6, 선민의 책무는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하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로 살아가는 것임. 선민 이스라엘이 그 책무를 행하지 아니하다가 멸망을 당하고 말았음. 그러므로 이제는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이 그 일을 행하고 있는 것임, 마28:18-20)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사66:20-21)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행1:8, 롬8:1-4, 세계선교와 성도의 성화가 성령님과 동행하는 성도들에게 이루어짐으로 말미암아)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22:28-30, 그리스도의 제자로 신실하게 끝까지 살아가면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의 상급과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임)“(롬15:7-16); 역시 문답형식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그리스도께서 선민과 이방인들을 모두 성도로 받아들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는 측면에서 성도들은 서로를 어떻게 용납해야만 하는 것일까요?(롬15:7, 10-12)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선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어떻게 선민들에게 주신 언약과 할례를 견고하게 하셨으며 또한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어떠한 긍휼을 베푸셨는가요?”(롬15:8-9). 먼저, 그리스도께서 선민과 이방들을 모두 성도로 받아들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는 측면에서 성도들은 서로를 어떻게 용납해야만 하는지를 살펴봅니다(롬15:7, 10-12).
2) 본문입니다;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롬15:7), “10.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사11:10),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롬15:10-12);
두가지의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①하나는 성도들에게 주고 있는 말씀이며, ②또 하나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3) 하나, 성도들이 서로 용납하고 자신들의 지체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이미 같은 지체로 받아들이고 성도들이 다 함께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공동체생활을 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롬15:7). 둘, 세상의 모든 나라와 백성들이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그리스도에게 소망을 둘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세상에서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부활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구원의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롬15:10-12).
4) 셋, 그런데 구주 그리스도가 이새의 뿌리가 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여호와신앙을 백성들에게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선민 이스라엘의 족보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롬15:12). 따라서 이방인들은 선민들을 무시해서는 안되며 동시에 그리스도가 그 머리가 되고 있는 교회와 성도들을 비난해서도 안됩니다(롬15:10). 그리고 성도들은 교회나 신앙공동체에서 주님의 지체가 되고 있는 다른 성도들을 비난하지 말아야 하며 또한 주께서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세상사람들을 비방해서도 안됩니다(롬15:11).
5) 둘째, “그리스도께서는 선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어떻게 선민들에게 주신 언약과 할례를 견고하게 하셨으며 또한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어떠한 긍휼을 베푸셨는가요?”(롬15:8-9). 본문입니다; “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시18:49),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롬15:8-9); 그리스도께서 선민에게 하신 일과 이방인들에게 하신 일을 갈라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6) 하나,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은 믿음의 조상들에게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그 언약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통하여 전해졌으며 출애굽한 이스라엘 12지파 백성들에게 승계가 되고 있습니다. 그 언약을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가 선민 유대인의 가정에서 출생하였으며 율법에 따라 할례를 받고 히브리경전을 풀이하여 하나님말씀의 뜻을 백성들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롬15:8).
7) 둘, 예수 그리스도가 선민 유대인들에게 가르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본뜻은 선민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까지 구원하고자 하시는 만민구원의 복음이며 이 세상에 선민의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선민과 이방인이 모두 구원을 얻어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셋, 그리스도가 그와 같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설명한 이유는 두가지로 보입니다;
8) ①하나는 선민들은 이방인을 미워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을 불쌍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롬15:9a). 그 이유는 하나님은 선민 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모두 창조하신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②또 하나는 선민들에게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은 이방인들의 속죄와 구원을 위하여 제사장나라의 역할을 수행하라고 한 것이지(출19:6) 이방인들을 외면하고 자신들만 구원을 받으라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민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하나님의 긍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자리에 이르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롬15:9b).
9) 셋째, “성도의 소망이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성도들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어떠한 믿음생활을 유지해야만 하는 것일까요?(롬15:10) 그리고 성도들의 믿음생활은 교회 내에서 그리고 선교의 현장에서 어떻게 발휘가 되어야만 하는 가요?”(롬15:11-16). 먼저, 성도의 소망이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성도들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어떠한 믿음생활을 유지해야만 하는지를 생각해봅니다(롬15:10).
10) 본문입니다; “10. 또 이르되(신32:43),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롬15:10); 이 세상의 모든 백성들이 먼저 구원을 받은 주의 백성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믿음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교회와 성도들의 꿈이며 기쁨입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성도들의 믿음의 삶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11) 하나, 이 세상 끝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어떠한 고난이라도 감수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둘, 이 세상의 박해자와 맞서지 아니하고 오로지 주님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그들을 구원하고자 중보의 기도를 하면서 복음을 들고 그들에게 나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셋, 성도들은 그 과정에서 순교를 당한다고 하더라도 그 소망이 천국에서의 영생에 있기 때문에 끝까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12) 넷째, “성도들의 믿음생활은 교회 내에서 그리고 선교의 현장에서 어떻게 발휘가 되어야만 하는 것인가요?”(롬15:11-16). 본문 말씀입니다; “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시117:1) 하였으며,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사11:10),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롬15:11-16); 간략하게 풀이해봅니다;
13) 하나, 모든 열방이 구원과 영생의 소망을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 안에 두고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주님께서 원하시고 계시며 그것이 성도들의 사명입니다(롬15:11-12). 둘, 성도들이 그러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주시는 은사(恩賜, 은혜로운 선물)가 다음 4가지입니다(롬15:13-14); ①믿음 안에서 기쁨과 평강을 충만하게 주십니다. ②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부활과 영생에 대한 소망을 견고하게 하십니다. ③자신의 희생을 무릅쓰고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선함이 가득하게 하십니다. ④성경말씀을 깨닫고 그 지식을 나누어 주어 올바른 믿음생활을 하도록 권면합니다.
14) 셋, 사도 바울은 자신이 모범을 보이고 있는 성도의 삶이 다음과 같은데 그 점을 차제에 다시 한번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롬15:15-16); ①이방인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음이며 그 일을 행하는 자들이 제사장들입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으며 이제는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어 이방인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죄 사함과 구원을 받도록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②사도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는 있지만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주님을 믿도록 만드는 것은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③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성도들이 이방인들을 성도로 만들어 하나님께 예물로 올려 드리는 그것이 이 세상에서 성도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귀한 믿음생활인 것입니다(사66:20).
15) 다섯째, 사도 바울이 로마서의 기록을 마무리하기를 본문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의 서신을 직접 받아볼 로마교회의 성도들과 그의 편지의 사본을 회람하게 될 초대교회의 모든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여 바울은 마지막 당부의 말을 하고자 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4가지 사항에 대하여 겸손하게 설명하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16) 하나, 선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 선함이 가득하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롬15:14a). 그렇지만 그 선함이라고 하는 것이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 드릴 수 있는 경지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로마서 제12장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대속의 십자가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모든 인류의 생명을 살리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롬12:1). 그러므로 여기서 “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롬15:14a)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로마교회나 기타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조짐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멘트로 보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칭찬을 통하여 앞으로 더욱 생명을 살리는 복음의 일꾼이 되라고 권장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17) 둘, 지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성도의 지식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동족인 선민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복음적인 지식을 가지지 못하고 유대교리와 선민사상에 입각한 전통적인 율법적인 지식만을 추구하다가 실족하게 되었음을 지적한 바가 있습니다(롬10:1-3). 그런데 유대교인들과 비교할 때, 로마교회와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복음적인 지식을 상당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 점을 칭찬하고 있습니다(롬15:14b). 그렇지만 여전히 모든 지식이 가득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에베소서 제3장에서 사도 바울이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은혜의 충만함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엡3:17-19);
18) 셋, 형제사랑과 전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앙공동체에서는 서로 격려하고 세워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지 아니하고 있는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권해야 합니다. 특히 로마교회의 성도들이 자생적으로 교회를 세우고 그렇게 모범적으로 형제사랑과 전도에 임하고 있다고 사도 바울이 칭찬하고 있습니다(롬15:14c).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그들과 초대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별도로 두가지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복음에 대한 체험적이고 체계적인 깊은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얻게 되는 그것까지 그들이 얻기를 사도 바울이 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롬15:14)고 전제하면서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겸손하게 권면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19) 마지막 하나를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만민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삶을 이어 받아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모두들 이방인들을 적극적으로 구원하는데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일에 있어서는 앞으로 로마제국의 수도에 살고 있는 성도들이 사도 바울과 함께 큰 역할을 해야만 합니다(롬15:23-24). 바울은 그것이 성도들의 성화를 이루는 방편이 됨은 물론 거룩한 백성 그리고 제사장으로서의 의무라고 보고 있습니다(롬15:16).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만민구원을 위하여 자신의 인생을 바치는 영적인 예배의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면 복음을 듣고 회개하는 현지인들이 역시 그러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롬12:1). 그와 같은 뜻을 담아서 사도 바울은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롬15:16b)고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이방인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로서 그 열매를 많이 얻었기에 나름대로)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이방인사도로 살아가면서 내가 얻은 열매는 전부 주님과 성령님의 역사하심에 의한 것이므로 나의 지혜와 능력으로 얻은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임).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예루살렘에서 소아시아는 물론 그리스 반도에 이르기까지 벌써 복음을 전파하였으며 성령님의 역사가 엄청났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임). 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로마제국의 신작로를 통하여 대도시에서 전도를 하였는데 이미 자생적인 교회가 형성되어 있는 곳을 피하였다는 것임). 21.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사52:15) 같으니라”(롬15:17-21);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실행하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입니다. 그 내용을 알기 쉽게 문답형식으로 파악해봅니다;
(1) 첫째, “그리스도께서는 바울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어떻게 서방선교에 사용하고 계시는 것일까요?(롬15:17-19) 그리고 사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 어떠한 개척교회를 만나고 있는 가요?”(롬15:20-21). 먼저, 그리스도께서는 바울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어떻게 서방선교에 사용하고 계시는지를 살펴봅니다(롬15:17-19). 본문입니다; “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롬15:17-19);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1) 하나, 그리스도께서는 바울 자신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 사용하셨으며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크신 역사로 함께하셨는데 그 점을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자랑삼아 말하고 싶다는 것입니다(롬15:17-18a). 따라서 사도 바울의 복음사역의 현장에서는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주님의 종으로 살아가겠다고 결단하는 역사가 많이 발생한 것입니다.
2) 둘, 복음의 일꾼들이 말로만 복음을 전하는데 그치지 아니하고 반드시 행동으로 믿음생활의 본을 보여야 하는데 그때에는 하나님의 표적과 기사가 임하여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임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롬15:18b-19a).
3) 셋, 그와 같은 성령님의 능력이 나타났기에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소아시아를 거쳐 이제는 그리스 반도와 마케도니아의 서쪽 지방인 일루리곤까지 두루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롬15:19b);
(2) 둘째, “사도 바울이 가는 곳에 이미 교회가 개척되어 있다면 그는 그러한 곳을 건너 뛰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롬15:20-21). 본문입니다; “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21. 기록된 바(사52:15),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5:20-21); 풀이를 해봅니다;
1) 하나, 지금까지 사도 바울이 선교한 지역은 오늘날의 사이프러스인 구브로 섬과 오늘날의 튀르키예인 소아시아 그리고 유럽으로 건너가서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반도입니다. 그곳 일부지역에는 이미 교회가 개척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첫째,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아 120명의 성도들이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교포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현지어로 직접 외친 적이 있습니다(행2:1-12). 그에 따라 현지로 돌아간 경건한 헬라파 유대인들이 복음을 깨닫고 교회를 개척한 것입니다. 좋은 예가 로마시의 초대교회입니다(행18:1-2, 롬1:8);
2) ②둘째, 스데반 집사의 순교사건으로 유대교지도자들의 박해가 심해지자 성도들이 이방 땅으로 흩어져서 교회를 개척합니다(행11:19). 시리아 안디옥 교회가 그 좋은 예입니다(행11:20). ③셋째, 예루살렘교회에서 사도들이 솔선수범하여 세계선교에 나섭니다. 그들이 동방과 남방선교에 나서서 초대교회를 개척했으며 사도 베드로의 경우에는 나중에 소아시아 북부지역에 선교하고 교회를 개척한 바가 있습니다(벧전1:1). 사도 바나바의 경우에는 그의 고향인 구브로 섬에 많은 교회를 개척합니다(행4:36-37, 13:4-51, 15:39).
3) 둘, 사도 바울은 이미 초대교회가 형성이 되어 있는 지역에는 선교하지 아니하고 있는데(롬15:20) 그 이유가 다음과 같습니다; ①첫째, 본문에서 설명하고 있는 바와 같이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에게 복음을 두루 전하여 구원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롬15:21). ②둘째, 로마의 군용도로를 따라가면서 그 주변의 대도시에만 전도하고 초대교회를 개척하기에도 사도 바울은 일정이 바쁩니다. 그러므로 이미 교회가 개척되어 있는 곳에 들릴 시간이 없습니다.
4) ③셋째, 사도 바울은 생전에 지중해 끝인 서바나 곧 오늘날의 스페인까지 선교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롬15:23-24, 28). 그에 따라 바울은 복음을 전하고 우선적으로 현지에서 교회를 개척하면 목회는 그가 양성한 후진들에게 맡기고 다음 지역으로 재빨리 건너갑니다. 그렇게 징검다리 건너는 방법으로 여러 대도시 선교에 분주한 사도 바울이므로 구태여 남이 교회를 개척해 놓은 지역에 들어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요컨대 사도 바울은 빨리 그가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중해 끝까지 선교를 끝내고 떳떳하게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나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22.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로마교회를 방문하려고 여러 번 계획하였으나 그것이 성사되지 못하였음을 말하고 있음), 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로마제국이 닦아놓은 군사용 도로망을 이용하여 중요도시에만 복음을 전하면 선교가 끝나는 것으로 사도 바울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대목임),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당시 세상의 끝으로 여겨지고 있는 스페인까지 선교하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되고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지는 줄 사도 바울이 생각하고서 그 일을 위하여 우선적으로 로마교회를 방문하고자 한 것임), 24.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그들에게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주고 또한 그들과 영적인 교제를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사도 바울은 로마교인들의 물심 양면의 지원을 받아 스페인까지 선교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임). 25.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 이는(그 이유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초대교회의 처음 시작이 예루살렘교회이며 그곳에서부터 온세상으로 주님의 복음이 퍼져 나간 사실을 인정하고 이방인 성도들이 현재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예루살렘 성도들을 물질적으로 돕는 일이 마땅하다는 것임). 28.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마케도니아와 그리스의 교회에 먼저 가서 그들의 연보를 무사히 전달하였음과 예루살렘교회의 감사의 뜻을 전해준 다음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로마교회의 도움을 받아 로마에서 스페인까지 선교하려는 바울의 계획을 정확하게 밝히고 있음). 29.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주님의 말씀의 놀라운 은혜와 선교의 열매의 풍성함)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예루살렘에 가게 되면 사도 바울이 유대주의자들에 의하여 위험에 빠지게 되므로 그 일을 위하여 차제에 기도요청을 하고 있는 것임), 31. 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25절과 관련하여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믿고 아울러 모세의 율법까지 준수하여야 완전한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주장하는 유대주의자들이 예루살렘교회의 교권을 장악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대목임) 건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무사히 선교보고도 마치고 이방인 성도들의 연보도 잘 전달하게 해달라는 기도와), 32.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바울 자신의 로마교회 방문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도록 그들에게 미리 기도부탁하고 있는 것임). 33.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바울이 축도하고 있는 것임)”(롬15:22-33); 사도 바울이 로마방문계획을 밝히고 있습니다. 역시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22.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로마교회를 방문하려고 여러 번 계획하였으나 그것이 성사되지 못하였음을 말하고 있음), 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로마제국이 닦아놓은 군사용 도로망을 이용하여 중요도시에만 복음을 전하면 선교가 끝나는 것으로 사도 바울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대목임),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당시 세상의 끝으로 여겨지고 있는 스페인까지 선교하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되고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지는 줄 사도 바울이 생각하고서 그 일을 위하여 우선적으로 로마교회를 방문하고자 한 것임), 24.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그들에게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주고 또한 그들과 영적인 교제를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사도 바울은 로마교인들의 물심 양면의 지원을 받아 스페인까지 선교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임). 25.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 이는(그 이유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초대교회의 처음 시작이 예루살렘교회이며 그곳에서부터 온세상으로 주님의 복음이 퍼져 나간 사실을 인정하고 이방인 성도들이 현재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예루살렘 성도들을 물질적으로 돕는 일이 마땅하다는 것임)“(롬15:22-27); 역시 문답형식으로 알기 쉽게 살펴봅니다;
1) 첫째, “사도 바울이 진작부터 로마시에 있는 자생적인 초대교회를 방문하고자 계획하고 있는데 그 목적이 무엇인가요?(롬15:22-24) 그런데 서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는 바울의 속사정이 무엇인 것일까요?”(롬15:25-27). 먼저, 사도 바울이 진작부터 로마시에 있는 자생적인 초대교회를 방문하고자 계획하고 있는데 그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봅니다(롬15:22-24). 본문입니다; “22.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24.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의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 주기를 바람이라”(롬15:22-24);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2) 하나, 그리스 반도와 마케도니아까지 선교하고 나니 이제는 선교할 대상지역이 그곳에서는 더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사도 바울의 진술입니다(롬15:23a). 그러므로 그 서쪽인 이태리로 건너가서 선교하는 것이 순리라는 말씀입니다(롬15:22);
둘, 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시에 초대교회가 이미 자생적으로 개척되어 있으므로 사도 바울은 그곳에 들러 그곳 성도들과 복음으로 사귄 후에 그 도움을 받아서 지중해 끝까지 선교하고 싶다는 자신의 포부를 밝히고 있습니다(롬15:23b-24).
3) 참고로, 여기서 ‘서바나’는 일찍이 페니키아가 개척해 놓은 지중해 가장 서쪽의 항구도시인 ‘다시스’가(욘1:3) 있는 식민지이며 오늘날의 스페인을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지중해의 끝인 서바나가 세상의 끝이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4) 둘째, “자신이 가고 싶어하는 로마교회가 있는 서쪽이 아니라 그 반대쪽에 있는 예루살렘 곧 동쪽으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는 바울의 속사정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롬15:25-27). 본문의 말씀입니다; “25.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으로 가노니, 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롬15:25-27). 겉으로 들어난 사정과 그 속사정까지 간략하게 풀이해봅니다;
5) 하나,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연보돈을 전해주기 위하여 바울 자신이 동쪽으로 가지 아니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롬15:25). 예루살렘 성도들 가운데 가난한 자들이 많아서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곧 그리스 반도에 있는 여러 교회의 성도들이 연보를 거두어서 자신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는 것입니다(롬15:26).
6) 둘,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상당수가 빈곤에 처해 있다고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로마황제를 숭배하지 아니하고 그 신당에 절하지 아니하고 있는 유대인 기독교인들에 대하여 로마당국이 사회적인 보조정책을 전면 중단하였기 때문입니다. 마침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 크게 가뭄이 들었는데 로마당국이 기아대책을 중지한 것입니다.
7) 따라서 사도 바울이 급하게 연보돈을 거두어서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일리가 있는 설명입니다. 참고로, 예루살렘교회에 영적인 빚을 지고 있는 이방교회의 성도들이 물질로써 그 빚을 조금이라도 갚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도 바울의 설명은 설득력이 있습니다(롬15:27).
8) 셋, 사도 바울은 그가 꿈꾸고 있는 로마와 그 서방에 대한 선교계획을 당장 실시하지 못하고 그 반대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동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가 예루살렘교회로 가야만 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시비가 여전히 남아 있으며 더구나 그가 선교자금을 모아서 제멋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하는 고발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9) 참고로, 대부분 유대주의자인 성도들로부터 나타난 그러한 의구심과 주장이 사도 바울의 서방선교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는 사도 바울은 목숨의 위험까지 느끼고 있는 실정임을 의사 누가의 기록과 사도 바울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롬15:30-31, 행20:22-25, 33-38, 21:11-13). 그로 미루어 보아 두가지 예루살렘교회의 속사정을 추정할 수가 있습니다;
10) 하나는, 당시 예루살렘교회에서는 유대주의자들이 다수이며 그들이 소장파로서 교권을 장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노장파인 사도 베드로와 장로 야고보 그리고 장로 시므온은 교권을 내려놓고 벌써 해외선교에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사도 베드로의 경우에는 소아시아 북쪽 고산지역에서 활발하게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대필자 실루아노 곧 실라가 베드로전서 제1장 첫머리에서 여러 지명으로 밝히고 있습니다(벧전1:1-2).
(2) “28.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마케도니아와 그리스의 교회에 먼저 가서 그들의 연보를 무사히 전달하였음과 예루살렘교회의 감사의 뜻을 전해준 다음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로마교회의 도움을 받아 로마에서 스페인까지 선교하려는 바울의 계획을 정확하게 밝히고 있음). 29.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주님의 말씀의 놀라운 은혜와 선교의 열매의 풍성함)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예루살렘에 가게 되면 사도 바울이 유대주의자들에 의하여 위험에 빠지게 되므로 그 일을 위하여 차제에 기도요청을 하고 있는 것임), 31. 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25절과 관련하여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믿고 아울러 모세의 율법까지 준수하여야 완전한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주장하는 유대주의자들이 예루살렘교회의 교권을 장악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대목임) 건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무사히 선교보고도 마치고 이방인 성도들의 연보도 잘 전달하게 해달라는 기도와), 32.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바울 자신의 로마교회 방문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도록 그들에게 미리 기도부탁하고 있는 것임). 33.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바울이 축도하고 있는 것임)“(롬15:28-33); 역시 알기 쉽게 문답형식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예루살렘에서의 일을 마친 후에 사도 바울은 로마에 들린 후 지중해 끝까지 선교하기를 원하고 있는데 그 일을 위하여 로마교인들에게 무엇을 사전에 부탁하고 있는 가요?(롬15:28-30, 32-33) 그리고 당장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면 어떠한 일이 기다리고 있기에 구체적인 기도를 부탁하고 있는 것일까요?”(롬15:31). 먼저, 예루살렘에서의 일을 마친 후에 사도 바울은 로마에 들린 후 지중해 끝까지 선교를 하기를 원하고 있는데 그 일을 위하여 로마교인들에게 무엇을 사전에 부탁하고 있는지를 살펴봅니다(롬15:28-30, 32-33).
2) 본문의 말씀입니다; “28.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 29.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 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롬15:28-30), “32.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33.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롬15:32-33); 풀이를 해봅니다;
(사도 바울의 세계선교와 남은 서방지역; 서바나에서 로마시까지가 두번째 지도에서 번호 1번부터 13번임. 그것이 남아 있는 사도 바울의 서방선교 대상지역임)
3) 하나, 당장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면서 사도 바울은 목숨의 위협까지 느끼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가 여기 로마서신에서 기록하고 있는 내용은 그러한 위험을 벌써 모두 영적으로 이기고 있다는 고백입니다. 바울은 여호와 하나님과 주님께서 자신을 로마에서부터 서바나까지 파송하여 지중해 선교를 마무리하도록 하실 것임을 나름대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믿고서 자신의 안전과 그 선교의 계획을 위하여 함께 기도해 달라고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롬15:28-30).
4) 둘,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달라고 개인적으로 부탁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①바울이 자신의 서방선교에 대한 보고를 예루살렘교회에서 할 계획인데 그 보고가 잘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롬15:28). ②멀지 아니하여 로마교회로 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충만한 복으로 여러분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롬15:29). ③아무쪼록 예루살렘의 일을 무사히 마치고 기쁨으로 여러분들을 만나고 함께 교제를 나누며 편히 한동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삼위일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롬15:30, 32).
5) 셋, 그와 같은 구체적인 기도를 부탁하면서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의 모든 환난과 풍파를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평강이 자신과 여러 성도님들에게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롬15:33).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제자들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말씀하신 내용과 동일합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눅24:36b, 요20:19c).
6) 둘째, “당장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면 어떠한 일이 기다리고 있기에 구체적인 기도를 부탁하고 있는 것일까요?”(롬15:31). 본문의 말씀입니다; “31. 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 하게 하고”(롬15:31); 구체적으로 두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7) 하나, 이 세상 끝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있는 자들이 유대 땅에 있는데 그들로부터 사도 바울이 해침을 받지 아니하도록 부디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롬15:31a). 바울을 위협하고 있는 자들은 초대교회에서 유대주의 할례와 율법을 복음과 함께 구원의 수단으로 강조하고 있는 자들인데 소위 ‘유대주의자’로 불리고 있으며 그 당시 예루살렘교회의 실세들입니다.
8) 왜냐하면, 주후 49년경 초대 예루살렘 총회가 개최되었을 때에 예루살렘교회의 실세였던 사도 베드로와 장로 야고보 그리고 장로 시므온 등이(행15:7, 13-14) 나이가 많아 물러나고 그 다음 세대인 젊은 장로들이 교권을 장악하는 변화가 발생하였는데 그 신진세력들이 대부분 유대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선교하면서 유대주의 곧 율법과 할례를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바울의 사도직에 대하여 의심의 눈초리를 계속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9) 둘,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교회에 가서 그동안 서방선교의 실적을 보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보고가 사도 바울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자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로 잘 수용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바울이 로마서에서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간곡하게 부탁하고 있습니다(롬15:31b). 그는 자신의 심령속에 내주하여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이 여러 성도들이 일심으로 같은 제목으로 합심 기도할 경우에는 더 강력하게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기에 그러한 기도부탁을 여러 성도들에게 드리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들은 자신을 기쁘게 하겠다고 육신적이고도 이기적인 신앙생활을 영위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다운 기쁨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영적인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가 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기쁨이 먼저이며 궁극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기쁨과 행복이란 영적인 차원에서 생성이 되어 육적인 차원으로 흘러 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믿음이 강한 성도들은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 성도들을 세워주고 함께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복음사역의 일꾼이 되라고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제자다운 모습이며 참된 기쁨을 누리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아무쪼록 본문의 말씀을 음미하시면서 믿음의 성숙을 이루어 가시는 저와 여러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