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6년 설교문(손진길 목사)

“바울이 초대교회 다양한 구성원들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몇가지 방법을 제시하다”(롬14:1-2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5. 4. 30. 05:14

제목; “바울이 초대교회 다양한 구성원들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몇가지 방법을 제시하다”(14:1-23)

설교일; 주후 2026 3 29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430일 수요일 작성)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는 본문의 앞부분의 말씀은(14:1-4) 그 의미에 있어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는 말씀과 맥을 같이하고 있습니다(12:31, 12:5, 10). 그리고 사도 바울의 로마서보다 약 35년 후에 저술이 된 것으로 보이는 사도 요한의 제4복음서 제6장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말씀과도 그 맥이 통하고 있습니다(6:37-40). 먼저 그 두가지 사항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성도가 여호와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민과 만물을 모두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마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을 끔찍이 사랑하십니다. 더구나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여 청지기의 일을 맡기고 있습니다(1:26-27).  

(2)  둘째, 성도가 자신의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하여 모든 창조물의 죄를 속죄하고 그 생명을 살리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1:29. 3:13-17). 성도들은 그리스도처럼 살아가야만 하는 제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자신의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고 그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이익을 부인하고 대속의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16:24, 12:30-31).

(3)  셋째,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자신처럼 돌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거룩한 희생과 생명살림의 일생을 본받고 있는 제자로서 성도들은 만민을 사랑하고 그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양육하기 위하여 헌신해야만 합니다(28:18-20, 21:15-19). 따라서 당장 자신이 속하고 있는 신앙공동체에서 형제를 사랑하고 지역공동체에서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고 그 생명을 살리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4)  넷째, 공생애를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면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치십니다;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6:37-40).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1)    하나, 성도들은 형제와 이웃을 해쳐서는 안됩니다. 그들을 자신에게 보내어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예수님처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2)    ,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보내어 주신 형제이며 이웃들이므로 그들을 돌보고 그 생명을 구원하여 함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려야 합니다.

3)    ,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여 복음의 일꾼으로 세워 나가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라고 성도들에게 보내어 주신 귀한 생명들임을 한시도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쓴 글 중에서 본문의 말미에 있는 3구절은 실로 압권입니다. 그 이유는 그 표현이 절묘하며 그 상징성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알아보고자 합니다;

(1)  첫째, 사람이 먹고 있는 육류 가운데 어떤 것은 깨끗하고 어떤 것은 깨끗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부정한 고기를 먹거나 죽은 것을 만져서도 되지 않는다고 레위기 제11장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선민 유대인들의 식단에 관한 율법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고 말하면서 아예 동족들과 교제할 때에는 고기 곧 육류를 먹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14:21);

1)    사람은 창세기 제1장의 규정에 따라 곡식과 과일 그리고 채소류만 섭취해도 충분히 살 수가 있는 존재입니다(1:29). 구태여 식생활을 풍성하게 하고자 육식을 고집할 필요가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육식이란 노아의 홍수 이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허용이 된 식단입니다. 홍수심판 후에 식물성 먹거리의 부족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육식을 일부 허용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9:3-4).

2)    성도가 고기를 먹지 아니하게 되면 몇 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하나, 식사에 있어서 그렇게 자기절제를 하게 되면 율법주의자들의 시비에서 아예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 당시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였지만 여전히 율법적인 식단을 고집하고 있는 유대인 출신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들과의 관계를 개선한다면 훗날 그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으로 구원을 확신하게 되는 믿음의 성숙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소망과 사랑으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식생활에 있어서 육류섭취를 하지 아니하는 자기절제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율법에서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고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14:21b)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대목에 대해서는 두가지로 접근할 수가 있습니다;

1)    첫번째의 접근방법은 창세기입니다; 노아가 홍수 후에 포도농사를 지어서 포도주를 만들어 마십니다(9:20-21a). 그는 친구가 없는 외로운 세상에서 그만 포도주에 취하여 벌거벗은 채 잠이 들고 맙니다(9:21b). 그래서 아들들에게 만취한 모습 그것도 벌거벗고 잠이든 모습을 보여주고 마는 것입니다(9:22-24). 하나님신앙을 지닌 유일한 선지자 노아의 영적인 권위가 그로 말미암아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게 되면 영적인 타락이 발생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고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    두번째의 접근방법은 복음서입니다; 예수님의 포도주 이야기가 복음서에 풍성합니다. 그 가운데 누가복음 제5장의 기록이 다음과 같습니다;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5:37-39). 여기서 새 포도주는 복음을, ‘묵은 포도주는 율법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의 의미는 복음은 교회생활에 사용이 되고 율법은 회당생활에 사용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주의자들은 율법을 교회생활에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 성도들에게는 묵은 율법이 익숙하고 더 좋기 때문입니다.

(3)  그러므로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즉, 그의 율법과 믿음에 대한 최종적인 입장이 무엇인지 표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①하나,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넣듯이 교회에서 성도들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 그러나 성도들이 구태여 육류섭취를 고집하여 유대인 성도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환언하면, 유대주의자들도 장차 믿음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설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고기를 먹지 아니하는 자기절제를 했으면 좋겠다는 권면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에 대한 구절풀이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아울러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교회는 믿음이 성숙한 자만 교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님. 미성숙한 자를 받아들여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 믿음이 성숙한 경지에 이를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야 함),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그러므로 지도편달의 과정에 있어서 미성숙한 성도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그 연약한 믿음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됨. 어떻게 말씀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성숙한 신앙생활의 모범을 보여줄 수 있는가에 교회가 신경을 써야 하는 것임).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말씀을 음식으로 비유하면 성숙한 믿음의 성도는 골고루 잘 먹고 두루 소화시킬 수가 있지만 미성숙한 믿음의 연약한 성도는 아직 채소만 먹는 단계인 것임).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말씀의 이해가 부족한 성도를 잘 가르쳐서 성숙한 이해에 이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말씀에 대한 이해가 깊을 수록 행동으로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야 함, 18:7. 그리하지 아니하면 믿음이 연약한 자의 비판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임).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거룩한 주님이 대속의 제물이 되어 그 죄를 사하고 교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인 성도들임을 언제나 명심할 필요가 있는 것임). 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교회내에서 미성숙한 성도는 성숙한 성도의 종이 아님. 성도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그 생명을 십자가 희생으로 대속하신 주님이신 것임. 그러므로 주님의 성도를 함부로 비판해서는 안되는 것임)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주님의 뜻은 미성숙한 성도를 교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 교육과 훈련과정을 통하여 성숙한 신앙인으로 만들어 나가고자 하시는 것임. 그러므로 성숙한 성도는 그 일에 솔선수범해야 함).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율법에 따른 절기를 중시하는 신앙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성도가 있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31체 하나님과 성령 안에서 동행하는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성숙한 신앙인들도 있다는 것임),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이해와 영적인 깨달음의 정도가 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마음속으로 인정하면 될 것임).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대속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주님과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어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성도는 지상명령을 실천하고 성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함. 그러므로 성도가 자신의 의로움과 거룩함을 절기를 지키는 것이나 말씀과 음식물을 가려서 먹는 것 등으로 자랑하는 것은 심히 부끄러운 일임).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사도 바울의 생사관이 확실함. 바울은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예수님이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승천하고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의 영광을 누리는 것을 깨닫고 주님의 제자로 살아감으로써 그 영광과 상급을 얻기를 지극히 소원하고 있음. 그러므로 그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몸과 마음을 바쳐서 그 푯대를 향하여 함께 달려가자고 부르짖고 있는 것임, 3:7-16).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그와 같은 소원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이미 그 생명의 주인이 주님이신 것임, 6:8-14).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모두가 죄인이었으며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죄사함 받은 자들임. 그러므로 서로 용납하고 사랑하는 것이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보좌 앞에 설 때에 부끄러움이 없는 성도의 삶인 것임).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45:23, 우리 모두가 주님의 종으로 신실하게 살아간 결과를 하나님 앞에서 보고하도록 되어 있음, 25:45-46, 5:29).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모두 성숙한 신앙의 본을 보이고 연약한 성도를 성숙한 신앙인으로 만들어 함께 지상명령을 실천한 결과를 내놓을 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임)”(14:1-12);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교회는 믿음이 성숙한 자만 교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님. 미성숙한 자를 받아들여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 믿음이 성숙한 경지에 이를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야 함),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그러므로 지도편달의 과정에 있어서 미성숙한 성도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그 연약한 믿음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됨. 어떻게 말씀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성숙한 신앙생활의 모범을 보여줄 수 있는가에 교회가 신경을 써야 하는 것임).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말씀을 음식으로 비유하면 성숙한 믿음의 성도는 골고루 잘 먹고 두루 소화시킬 수가 있지만 미성숙한 믿음의 연약한 성도는 아직 채소만 먹는 단계인 것임).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말씀의 이해가 부족한 성도를 잘 가르쳐서 성숙한 이해에 이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말씀에 대한 이해가 깊을 수록 행동으로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야 함, 18:7. 그리하지 아니하면 믿음이 연약한 자의 비판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임).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거룩한 주님이 대속의 제물이 되어 그 죄를 사하고 교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인 성도들임을 언제나 명심할 필요가 있는 것임). 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교회내에서 미성숙한 성도는 성숙한 성도의 종이 아님. 성도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그 생명을 십자가 희생으로 대속하신 주님이신 것임. 그러므로 주님의 성도를 함부로 비판해서는 안되는 것임)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주님의 뜻은 미성숙한 성도를 교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 교육과 훈련과정을 통하여 성숙한 신앙인으로 만들어 나가고자 하시는 것임. 그러므로 성숙한 성도는 그 일에 솔선수범해야 함).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율법에 따른 절기를 중시하는 신앙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성도가 있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31체 하나님과 성령 안에서 동행하는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성숙한 신앙인들도 있다는 것임),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이해와 영적인 깨달음의 정도가 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마음속으로 인정하면 될 것임).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대속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주님과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어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성도는 지상명령을 실천하고 성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함. 그러므로 성도가 자신의 의로움과 거룩함을 절기를 지키는 것이나 말씀과 음식물을 가려서 먹는 것 등으로 자랑하는 것은 심히 부끄러운 일임).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사도 바울의 생사관이 확실함. 바울은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예수님이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승천하고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의 영광을 누리는 것을 깨닫고 주님의 제자로 살아감으로써 그 영광과 상급을 얻기를 지극히 소원하고 있음. 그러므로 그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몸과 마음을 바쳐서 그 푯대를 향하여 함께 달려가자고 부르짖고 있는 것임, 3:7-16)“(14:1-8); 알기 쉽게 문답형식으로 살펴봅니다;

1)    첫째,믿음이 연약한 자를 비판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14:1-3) 믿음이 연약한 자를 세우는 권능이 주님에게 있기 때문에 성도는 어떻게 처신 해야만 하는 것인가요?”(14:4). 먼저 믿음이 연약한 자를 비판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봅니다(14:1-3). 본문 말씀입니다;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14:1-3);

2)    무엇보다도, 같은 우리에 양을 넣어 주시는 분은 목자이신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한 우리에 들어 있는 양들은 서로 티격태격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선택하여 그 우리에 들어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사도 바울의 설명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자신들의 공동체에 다른 사람을 받아 들이고자 하지만 주님께서는 공의의 정신에 따라 모두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 우리에 넣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못마땅한 성도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성도를 같은 우리에 넣어 주신 주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좁고 이기적인 생각을 뛰어 넘어 서로 관용하고 상대방을 이해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3)    , 사도 바울은 특히 믿음의 크기를 서로 비교하여 믿음이 큰 자가 연약한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오히려 그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믿음의 성장을 위하여 도와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4:1-3). 그것이 전도와 선교 만큼이나 중요한 주님제자의 양육 방법입니다(28:18-20). , 그와 같은 사도 바울의 설명은 거룩하신 주님께서 교회의 머리이시며 그렇게 연약한 자를 이미 성도로 받으셨다는 사실에 유의하라는 것입니다(14:3). 참고로, 그것이 훗날 성 어거스틴의 교회론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4)    , 믿음의 크기를 딱딱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와 부드러운 음식만을 먹을 수 있는 자의 차이로 설명하는 한편(14:2) 특정한 음식에 대한 먹고 못 먹고 라는 차이로도 설명하고 있습니다(14:3). 그러한 두가지의 차이에 대하여 서로 불필요한 논쟁을 삼가하라고 말하고 있는 사도 바울의 의도는 음식에 대한 율법의 논쟁을 뛰어 넘어 이제는 복음으로 서로 사랑하고 함께 복음을 전파하는 동역자의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14:3). 그것이 믿음이 큰 자와 연약한 자 그리고 유대주의자인 성도와 이방인 성도 모두를 하나의 신앙공동체인 교회에서 살아가도록 만드신 주님의 뜻입니다(14:1-3).  

5)    둘째, “믿음이 연약한 자를 세우는 권능이 주님에게 있기 때문에 성도는 어떻게 처신해야만 하는 가요?”(14:4). 본문입니다; “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14:4); 다음과 같은 세가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6)    하나, 같은 공동체와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은 나의 하인이 아니고 주님의 하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지도자들이 성도들을 자신의 종처럼 부리고 있는 것은 크게 잘못된 행태입니다.  , 주님께서는 자신의 일꾼인 성도들을 모두 신앙이 성숙한 자로 세워서 복음을 전파하는 큰 일꾼으로 사용하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행하시는 그러한 은혜를 믿고서 믿음이 연약한 자를 새로운 안목으로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7)    , 믿음이 큰 자가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바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자신의 하인인 성도를 바로 세우시고 계시기 때문에 믿음이 큰 자는 단지 믿음의 본을 보이고 올바른 신앙생활의 모범을 보여주는 그것이면 족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억지로 자신이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바로 세워줄 수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8)    셋째, “안식일과 주일 논쟁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 가요?(14:5-6a) 그리고 음식에 대한 율법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어떻게 생각하라고 말하고 있습니까?”(14:6b-8). 먼저 안식일과 주일 논쟁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살펴봅니다(14:5-6a). 본문의 말씀입니다;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14:5-6a); 참으로 묘하게도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9)    하나, 특정한 날을 중하게 여기는 것 또는 모든 날을 다 같다고 생각하는 것 등은 전부 제 마음대로 하면 되는 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날들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하는 사도 바울의 판단이 들어 있습니다. , 주님을 위하여 어떤 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날을 기념하고 있다고 하면 그것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있는 일이 될 수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디까지나 주님을 위한다고 하는 그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도 주님을 위하여 다른 날을 중시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하면 그것도 존중해 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10)  , 사도 바울은 특정한 음식을 중히 여기고 살아가는 문제도 특정한 날을 중히 여기고 살아가는 문제와 동일하다는 설명입니다. 제 나름대로 주님을 위하여 특정한 음식을 중히 여기고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구태여 그것을 주님을 위하여 다른 음식을 먹으며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식생활을 강요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것이 모두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생활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11)  넷째, “음식에 관한 율법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어떻게 생각하라고 말하는 것인가요?”(14:6b-8). 본문입니다; “먹지 아니하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14:6b-8); 참된 신앙생활이 무엇인가를 다음과 같이 사도 바울이 정확하게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12)  하나, 주님을 위하여 금식할 수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라는 설명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것을 가지고 주님을 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는 사도 바울의 생각입니다. , 금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도 죽음도 모두 주님의 뜻에 맡기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삶을 아직 계속하게 해주시면 주님의 뜻을 알아서 복음을 전파하면 되는 것이고 향년을 맞이하게 하시면 이제는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주님을 위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또 살아가면 됩니다(1:20-24).

13)  ,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삶이 모두 주님의 것이라고 하는 믿음입니다. 주님의 종으로서 남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므로 주인의 명령과 뜻을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따라서 주인께서 말씀하시는 복음사역과 제사장의 삶을 각자 살아가면 되는 것이지 다른 세상적인 것으로 자신이 상대적으로 더 낫다고 자랑할 필요는 없습니다.

(2)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그와 같은 소원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이미 그 생명의 주인이 주님이신 것임, 6:8-14).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모두가 죄인이었으며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죄사함 받은 자들임. 그러므로 서로 용납하고 사랑하는 것이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보좌 앞에 설 때에 부끄러움이 없는 성도의 삶인 것임).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45:23, 우리 모두가 주님의 종으로 신실하게 살아간 결과를 하나님 앞에서 보고하도록 되어 있음, 25:45-46, 5:29).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모두 성숙한 신앙의 본을 보이고 연약한 성도를 성숙한 신앙인으로 만들어 함께 지상명령을 실천한 결과를 내놓을 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임)“(14:9-12); 역시 문답형식으로 알기 쉽게 살펴봅니다;

1)    첫째,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안식일 논쟁과 음식의 율법은 어떻게 결론이 나고 있는 가요?(14:9)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논쟁하고 비판한 일이 언제 보응을 받게 되는 것인가요?”(14:10-12). 먼저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안식일 논쟁과 음식의 율법은 어떻게 결론이 나고 있는지를 살펴봅니다(14:9). 본문 말씀입니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14:9); 사도 바울의 신앙생활이 과거 랍비 사울이었던 때와 크게 달라지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2)    하나, 랍비 사울이었던 시절에는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히브리경전을 연구하여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율법선생인 랍비로서의 자신의 직분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던 유대교인 사울입니다. , 랍비 사울은 히브리경전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해석과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는 집사 스데반이나 기타 기독교인들이 너무나 못마땅하여 그들을 배척하고 박해하는 것이 거룩한 여호와를 섬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인물입니다(8:1, 9:1-2).

3)    , 그러나 이제 사도 바울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자신의 대속의 죽음과 제3일의 부활로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의 복음사역을 계승하여 성도들이 남은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예수님이 얻으신 그 놀라운 영의 몸으로 부활하는 영광을 성도들도 얻게 된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22:28-30, 14:1-3, 8:11, 고전15:20-23, 3:10-16).

4)    , 3년 반의 공생애를 통하여 복음사역을 하시고 마침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예수님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주의 권능으로 그의 사상과 행동이 옳다고 판단하시고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게 하셨으니 그것으로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알 수가 있게 되었다는 바울의 설명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 이제는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으로 모시고 그 제자로 남은 인생을 살아감으로써 주님께서 얻으신 그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고 영원히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5)    다섯, 사도 바울은 이제 자신의 믿음생활의 목표가 분명하기 때문에 그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성도들에게도 자신처럼 그렇게 그 푯대를 향하여 전력 질주할 수 있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괜히 세상적인 날과 음식에 더 관심을 두고서 그것을 중하게 여기는 자신의 생각을 생명과 부활의 주님보다 더 앞세우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6)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논쟁하고 비판한 일이 언제 보응을 받게 되는 것일까요?”(14:10-12). 본문입니다;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45:23), 주께서 이르시되(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45:23), 내가 살았노니(내 입에서 공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45:23)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14:10-12); 다음과 같이 풀이가 되고 있습니다;

7)    하나, 모든 성도들도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5:28-29). 그 앞에서 세상적인 것을 가지고 형제들을 비판하고 업신여긴 모든 죄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 세상적인 것들 가운데 특정한 날을 마치 하나님을 섬기듯이 그렇게 중시하여 남에게 강요하고 또한 특정한 음식을 하나님처럼 중시하여 남에게 강요한 잘못이 드러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8)    , 심판대 앞에서 심판의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공의의 정신을 실천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창조주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똑같이 돌보시고 그 생명을 모두 살리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창조주의 피조물 사랑이며 넓고도 높은 공의의 정신입니다. 그것을 현세적인 이기적 욕심에 사로잡혀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창조주의 공의의 사랑을 어느 정도 현세에서 실천을 했는가? 하는 것이 심판의 기준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9)    ,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한 자는 주님처럼 살려서 영생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설명입니다. 인류의 역사 가운데 유일하게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인간사랑으로 실천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복음사역을 통하여 두가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 유대교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러한 선민만의 구원사상이나 이방인 차별이 아니라 모두를 구원하는 만민구원사상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메시아를 통하여 선민만의 제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선민과 이방인을 모두 구원하여 영생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10)  , 예수님께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길을 열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대속의 제물로 십자가에서 바치신 것입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께서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사랑을 실천하였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무덤에서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시켜 주십니다. 그에 따라 이제는 사람들이 어떠한 신앙생활을 영위하여야 부활과 영생에 들어가게 되는지를 알게 됩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그 일에 매진하는 것이 옳으며 괜히 세상적인 날과 음식을 가지고 이생의 자랑으로 삼으며 다른 성도들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권유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교회 안에서 체계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고 성숙한 신앙인의 모범을 보이는 것은 좋지만 서로 자신의 믿음이 대단하다고 자랑하면서 믿음이 연약한 성도를 넘어지게 하는 것은 바리새인의 잘못을 재현하는 것임, 23:13). 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7:15-16, “15.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16.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15.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교회성도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유대인의 전통을 강조하고 있는 유대주의자들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것임). 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예루살렘총회에서 결정한 사항을 소중하게 여기고 잘 지키라는 것임, 15:24-29).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율법적으로 먹는 음식으로 의로움을 얻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진리의 성령님이 증거하고 있는 그대로 구원을 베푸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그 뜻을 실천한 주님의 대속의 은혜를 성도들이 믿고 의지하여 영생의 천국에 들어가는 것임). 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주님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임),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여호와가 창조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한 결과임, 12:30-31, 10:33-37). 19. 그러므로 우리가 (형제 간에) 화평의 일과 서로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20.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7:15-16). 21.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연약한 성도들이 시험에 들 것 같으면 그 앞에서 그들이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음식이나 술을 절제하는 것이 바람직함). 22.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무엇이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인지를 확신하고서 미숙한 그것으로 유대주의자들처럼 스스로 올무가 되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는 것임). 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만민을 구원하여 함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게 하시는 여호와의 새 언약과 새 역사 창조의 능력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17:1, 31:33, 65:17-18, 66:20-21, 3:13-17)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고 그 대신에 사람 앞에서 인정받는 율법준수에 의지하여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3:9, 7:16-25, 8:1-4)”(14:13-23); 역시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교회 안에서 체계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고 성숙한 신앙인의 모범을 보이는 것은 좋지만 서로 자신의 믿음이 대단하다고 자랑하면서 믿음이 연약한 성도를 넘어지게 하는 것은 바리새인의 잘못을 재현하는 것임, 23:13). 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7:15-16, “15.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16.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15.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교회성도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유대인의 전통을 강조하고 있는 유대주의자들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것임). 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예루살렘총회에서 결정한 사항을 소중하게 여기고 잘 지키라는 것임, 15:24-29)“(14:13-16); 역시 알기 쉽게 문답형식으로 살펴봅니다;

1)    첫째,형제 앞에 두지 말아야 하는 거치는 것은 무엇인가요?(14:13) 그리고 거치는 것을 두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14:14-16). 먼저 형제 앞에 두지 말아야 하는 거치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봅니다(14:13). 본문 말씀입니다; “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14:13); 다음과 같이 풀이할 수가 있습니다;

2)    하나, 성도들은 서로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인이 종을 나무라고 비판할 수는 있으나 종들이 서로 나무라고 비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주님의 종이 마치 자신이 다른 성도들에게 대하여 스스로 주인이라도 되는 듯이 그렇게 교만하게 행동하는 것이 바로 비판의 대상입니다. , 부딪칠 것을 다른 성도들 앞에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특정한 날을 마치 주님을 섬기는 것처럼 중시하여 그것을 지키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것은 다른 성도들을 부딪치게 하여 넘어지게 하며 자신도 넘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3)    , 거칠 것을 다른 성도들 앞에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특정한 음식을 주님만큼 중시하여 그것을 먹거나 또는 먹지 말도록 다른 성도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거칠 것을 다른 성도들 앞에 두는 행위입니다. 그것 역시 믿음이 약한 성도들을 넘어지게 하고 자신의 신앙생활도 성숙에 이르지 못하고 초보에 그치게 하는 것입니다. 

4)    둘째, “거치는 것을 두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14:14-16). 본문입니다; “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15.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14:14-16);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5)    하나,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은 모두 스스로 속된 것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속되다고 여기는 것은 그 마음 속에서부터 속되다고 하는 판단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자신의 속마음으로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의 뜻에 따라 판단을 하라는 것입니다.

6)    ,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원하고 있는 것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여 구원으로 인도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창조주의 공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정한 음식이나 날을 강요하고 그것을 율법으로 지키지 아니하면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공의의 사랑이 아니라 편협한 이기적인 자기 주장에 불과합니다.

7)    , 그리스도께서는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대속의 제물로 자신을 바치셨는데 성도들이 그러한 뜻을 모르고 자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특정한 날과 음식을 강제하면서 상대방을 굴복시키고 복종시키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주님의 선한 뜻을 나타내지 아니하고 도리어 욕을 보이고 있는 잘못된 행위라는 사도 바울의 지적입니다.

(2)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율법적으로 먹는 음식으로 의로움을 얻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진리의 성령님이 증거하고 있는 그대로 구원을 베푸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그 뜻을 실천한 주님의 대속의 은혜를 성도들이 믿고 의지하여 영생의 천국에 들어가는 것임). 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주님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임),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여호와가 창조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한 결과임, 12:30-31, 10:33-37). 19. 그러므로 우리가 (형제 간에) 화평의 일과 서로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20.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7:15-16). 21.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연약한 성도들이 시험에 들 것 같으면 그 앞에서 그들이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음식이나 술을 절제하는 것이 바람직함). 22.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무엇이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인지를 확신하고서 미숙한 그것으로 유대주의자들처럼 스스로 올무가 되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는 것임). 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만민을 구원하여 함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게 하시는 여호와의 새 언약과 새 역사 창조의 능력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17:1, 31:33, 65:17-18, 66:20-21, 3:13-17)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고 그 대신에 사람 앞에서 인정받는 율법준수에 의지하여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3:9, 7:16-25, 8:1-4)“(14:17-23); 역시 문답형식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하나님의 나라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14:17-18)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성도들은 무엇을 조심해야만 하는 것인가요?”(14:19-21).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봅니다(14:17-18). 본문입니다;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평강희락이라. 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14:17-18); 다음과 같이 풀이가 됩니다;

2)    하나, 사도 바울은 육신적인 삶과 영적인 삶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세상나라에서는 먹고 마시는 육신적인 삶이 목숨유지를 위하여 절대적입니다. 그러나 영생의 몸을 입고서 살아가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그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영적인 양식을 먹고서 살아가게 됩니다,

3)    , 영적인 양식을 사도 바울은 알기 쉽게 성령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은 인생을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은 성령님의 임재와 내주 역사하심으로 이 세상에서도 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님처럼 실천하게 되면 그때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평강과 희열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4)    , 그렇게 하나님의 공의의 사랑을 실천하게 되는 성도들의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세상사람들에게도 이 세상을 구원하는데 꼭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칭찬을 듣게 된다는 사도 바울의 설명입니다. 그것은 세속적인 것을 강제하거나 강요함으로써 하나님의 생명구원의 신앙을 세상적인 논쟁거리로 만들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5)    둘째, “이 세상에서 성도들은 무엇을 조심해야만 하는 것인가요?”(14:19-21). 본문입니다; “19.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20.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21.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14:19-21); 사도 바울의 구체적인 설명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6)    하나, 하나님의 공의의 사랑을 알기 쉽게 사도 바울이 화평과 덕을 세우는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화평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고서 성도들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바로 서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 자신의 주인이 주님이시므로 그 삶의 모습을 배우고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유대주의자들의 안식일 논쟁과 음식문제에서도 벗어나게 됩니다.

7)    , 여기서 ’()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인간적인 편협한 주장을 강변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신 주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모두를 살리는 복음적인 대안을 모색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율법의 완성이 복음이라고 하는 사도 바울의 생각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3:31, 13:8-10). , 많은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덕을 베푸는 선한 복음적인 치유가 없으면 율법은 완전한 것이 못된다고 하는 지적인 것입니다(고전14:4-6).

8)    , 특정한 음식을 강요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두가지 잘못을 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거룩하신 여호와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을 일부는 깨끗하고 일부는 부정하다고 하는 인간적인 판단이 앞서게 됩니다. 또 하나는, 거룩하신 창조주의 뜻을 의심하면서 거리낌으로 먹게 되면 그것은 인간들의 편파적인 율법이 모든 생명을 살리고자 하시는 창조주의 공의의 사랑마저 해치게 되는 악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9)    , 혹시 형제가 어떤 음식에 대해서는 거리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 형제와 교제하고 그를 성숙한 믿음의 자리로 인도하기 위하여 그 앞에서는 그 형제에게 거리끼는 일을 삼가하는 것이 아름다운 행동이라고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15:21). 그러한 경우 필요하다면 스스로 잠시 육식을 금할 수 있으며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형제를 구원하기 위한 수단적인 것이지 목적적인 것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10)  셋째, “사도 바울이 믿음 생활이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 가요?(14:22) 하나님 앞에서 묻고 답을 얻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행한 것이 죄라고 하는 사도 바울의 말은 어째서 신앙생활의 황금률이 되고 있는 것일까요?”(14:23). 먼저, 사도 바울이 믿음 생활이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를 살펴봅니다(14:22). 본문입니다; “22. 네게 있는 믿음을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남을 비판하고 강요함으로써)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14:22);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11)  하나, 믿음 생활이란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믿음을 자랑하거나 강요하게 되면 그것은 문제를 야기하게 됩니다. , 자신의 믿음이 더 낫다고 생각하여 남에게 믿음이 약하다고 그 점을 비판하게 되면 그것으로 도리어 비판을 받게 되고 결국에는 주님으로부터도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한 정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7:1-5).

12)  , 특정한 날을 거룩하게 여기는 것과 특정한 음식을 가려서 먹는 것을 가지고 자신의 믿음이 더 낫다고 말하면서 상대방에게 그것을 강요하게 되면 그것은 세상적인 것으로 형제를 판단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생각을 대신하고 있는 큰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정죄를 받아 마땅한 잘못된 신앙입니다.

13)  넷째, “하나님 앞에서 묻고 답을 얻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행한 것이 죄라고 하는 사도 바울의 말은 어째서 신앙생활의 황금률이 되고 있는 것일까요?”(14:23). 본문입니다; 23. (아담부부처럼 하나님께 물어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여)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하나님의 눈앞에서 행하는, 17:1)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14:23);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14)  하나, 창세기 제3장에서 아담부부가 실족하게 되는 연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화신인 뱀의 유혹을 받아 아담부부는 여호와의 뜻을 오해하고 의심하게 되는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3:1-7). 만약 그들이 한번만이라도 욕심의 충동으로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께 여쭈어 보고서 하나님말씀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더라면 그러한 잘못을 범하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사도 바울은 23. (아담부부처럼 하나님께 물어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여)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14:23a)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5)  , 믿음생활의 비결은 의심이 들고 잘 알 수가 없는 문제는 전부 여호와 하나님께 여쭈어 보고서 그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따라 행동을 취하는 것입니다. 설령 성령님의 감동으로 무엇을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 성경의 올바른 해석에 맞는 것인지 아닌지를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 옳습니다. 성경이란 그러한 용도로 사용하라고 이미 성도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16)  , 다음과 같은 설명으로 사도 바울은 안식일 논쟁과 부정한 음식에 대한 율법의 논쟁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23. (아담부부처럼 하나님께 물어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여)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하나님의 눈앞에서 행하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14:23). 한마디로, 믿음생활의 황금률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명쾌한 사도 바울의 설명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의 결론은 참으로 간단합니다; “믿음의 의를 굳게 잡고 율법의 요구에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굳게 믿고 있으면 율법의 요구는 나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으로 그리고 성령님의 능력의 역사로 충족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8:1-4).

그런데 그러한 겸손한 믿음에서 떠나 자신의 거룩함과 능력을 과신하고서 율법의 요구까지 자신의 지혜와 힘으로 이루고자 나서게 되면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서 멀어져 버리는 결과가 초래될 뿐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조심하라고 사도 바울이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14:23b)고 본문에서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자신의 능력과 지혜로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나서지 마시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믿고 의지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시는 믿음이 성숙한 저와 여러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