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룡전(작성자; 손진길) 40

소설 아룡전40(작성자; 손진길)

소설 아룡전40(작성자; 손진길) 아룡이 부부는 1273년 4월 제주도에서 데리고 온 500명의 삼별초 군사들을 오키나와의 고려촌에 무사히 정착시키는데 2년이 소요된다. 그 일이 얼추 끝나자 1275년 봄에 오키나와에서 무역선을 타고서 고려의 벽란도로 들어간다. 정기적으로 아룡이 부부가 2년에 한번씩 고려에 들린다. 따라서 그가 이끌고 오는 오키나와의 무역선에는 아시아 각국과 유럽에서 온 상인들로부터 구입한 물건이 가득 실려 있다. 그것을 개경에서 팔아서 큰 이문을 얻는다. 그러므로 아룡이 부부는 오키나와에서 일종의 중개무역을 경영하고 있는 것이다. 아룡은 경하선과의 상단 운영에 관한 협의가 일단 끝나자 슬며시 재상 김보정을 다시 만나고자 한다. 이제는 김보정이 나이가 많아 조정에서 물러나 있다. 따라서..

소설 아룡전39(작성자; 손진길)

소설 아룡전39(작성자; 손진길) 1263년 여름에 아룡이 부부는 개경에서의 일을 끝내고 류구의 오키나와에 있는 고려촌에 돌아온다. 이제 25살이 된 청년 세준이와 22살의 세희가 부모님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아룡이 부부가 고려촌에 없으면 촌장업무를 대신하고 있는 제자 이용준과 낭자군 출신의 십부장 금애랑이 또한 마중을 나온다. 오래간만에 아룡이 부부가 양아들 세준과 양딸 세희와 함께 가족끼리 저녁식사를 즐긴다. 그때 세준이가 부모님께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희가 부모님이 아니 계시는 동안에 중산(中山) 집안으로부터 청혼을 받았어요. 그 집의 장남인 중산다로가 세희를 연모하여 보낸 청혼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 그 말을 듣자 아룡이 먼저 말한다; “흠, 벌써 세희가 혼인을 할 나이가 되었구..

소설 아룡전38(작성자; 손진길)

소설 아룡전38(작성자; 손진길) 1263년 5월에 아룡이 부부가 오키나와 섬에서 쌍돛단배를 타고서 고려의 벽란도로 들어온다. 물론 그 배는 무역선이므로 그들이 오키나와에서 구입하고 생산한 물건이 가득 실려 있다. 일단 벽란도에 있는 경종성 상단의 창고에 대부분의 물건을 저장하고 일부는 마차로 개경까지 싣고 온다. 그것들은 개경의 상점에서 팔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급한 일처리를 하고서 그들 부부는 경종성의 저택으로 향한다. 벌써 동갑인 아룡 부부의 나이가 63세이다. 그들보다 25살이 연상인 경종성 부부가 88세이다. 그 가운데 고려 제일의 무역상이며 객주인 경종성 노인이 그만 병이 들어서 자리보전을 하고 있다. 그래서 아룡이 부부가 급히 병문안을 한다. 부친의 병세가 위중하여 그 옆에서 밤새 자리를 ..

소설 아룡전37(작성자; 손진길)

소설 아룡전37(작성자; 손진길) 벌써1252년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다. 개경의 서촌에 있는 청도관에서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들린 도학스님 곧 사조인 청객 김성곤과 그의 직계제자인 김재룡 부부를 환영하는 잔치가 한창이다. 관장인 관비호가 이제는 나이가 많아 수제자에게 관장 자리를 넘겨주고 있어서 그런지 시간이 많다. 그래서 그가 사조인 도학스님 옆에 붙어서 좋은 말동무가 되고 있다. 그 자리에는 특별히 도학스님의 동생인 신선 김경수가 참석하고 있다. 아룡이는 잔치가 어느 정도 파하자 아내 최사월과 함께 객주 경종성의 저택으로 돌아온다. 이제는 무인이 아니라 상인으로 지내는 것이 더 편한 것만 같다. 그렇지만 아직 한가지 볼일이 더 남아 있다. 그래서 다음날 아룡이 부부는 경노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강화..

소설 아룡전36(작성자; 손진길)

소설 아룡전36(작성자; 손진길) 아룡이는 벽란도에서 무역선을 타고 객주 경종성 노인과 함께 일본 열도로 떠나 오기 전에 사실은 은밀하게 백부장 김준을 만났다. 그 이유는 1249년 12월에 고려의 막후실세인 83세의 최우가 병으로 별세하였기 때문이다. 최우에게는 적자가 없다. 서자가 둘 있기는 하지만 그 행실이 신통하지가 못하다.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위인들이다. 그들이 부친 최우의 권력을 상속하게 된다고 하면 고려는 내우외환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아룡이 사형인 김준에게 진지하게 말한다; “사형, 이제는 백성들에게 고통만 안겨주고 있는 무신정권을 끝내고 고려의 국왕인 고종에게 대권을 돌려주는 것이 옳습니다. 그래야 고종이 책임지고 몽골의 대칸과 교섭하여 여몽전쟁을 끝낼 수가..

소설 아룡전35(작성자; 손진길)

소설 아룡전35(작성자; 손진길) 새해인 1241년이 되자 벌써 66세가 된 객주 경종성은 41세에 불과한 아룡이 부부에게 자신의 지식을 많이 전수하고자 열심이다. 그래서 그런지 베이징에서 심양인 선양으로 마차를 타고 가면서 자신이 체득하고 있는 대륙에 관한 지식을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전해주고 있다; 첫째로, 심양은 그 옛날 대금이 만주를 지배하던 시절의 수도이다. 대금은 여진족 가운데 본래 동북여진에 속하는 완안족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들의 본거지는 하얼빈이다. 그곳에서 뛰어난 족장이 나타났는데 그가 바로 아골타이다. 아골타 족장은 용맹한 동생 오걸매와 함께 주변의 동북여진을 전부 아우르고 그 동쪽 연해주에 있는 흑수말갈을 정복했다. 그리고 1115년에 금나라를 세우고 그가 스스로 금의 태조가 된다..

소설 아룡전34(작성자; 손진길)

소설 아룡전34(작성자; 손진길) 객주 경종성에게 아룡이가 지난 1년 동안 발생한 일을 자세하게 보고한다. 고려의 산물을 가게에서 직판한 결과 큰 이익을 얻었다. 그리고 고려풍의 음식을 제공하는 객점을 운영한 성과도 좋다. 또한 아룡은 8명의 남자무사들이 남송의 군부에 백부장으로 취업하고 그들이 낭자군 가운데 배필을 구하여 가정을 이루었다고 하는 사실도 경종성에게 보고한다. 그 말을 듣자 경종성이 빙그레 웃는다. 그리고 그가 진지하게 말한다; “나도 고려국의 백성입니다. 그들이 남송의 군대를 지휘하여 몽골제국의 남침을 저지할 수만 있다면 조국 고려국에 대한 몽골군의 침략을 상당히 약화시킬 수가 있지요. 그런데 내가 궁금한 것은 그대 아룡 부부의 장래 계획입니다… “. 그 말을 듣자 아룡이 다음과 같이 대..

소설 아룡전33(작성자; 손진길)

소설 아룡전33(작성자; 손진길) 10. 아룡이 부부의 제3의 선택 벽란도를 출발하기 전에 무역상이자 객주인 노인 경종성이 아룡이 부부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몇가지 알려준다. 그 가운데 기억할 만한 내용을 추려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경종성은 상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무인들이 바라보고 있는 세상이나 학자들이 바라보고 있는 세상과는 조금 다를 수가 있다고 전제하고 있다. 상인의 눈으로 고려라고 하는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참으로 좋은 나라라고 그가 말하고 있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그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 태조 왕건이 일종의 ‘융합정책’을 사용했으며 그 정책이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태조 왕건은 자신을 왕으로 추대하고자 하는 공신들과 ..

소설 아룡전32(작성자; 손진길)

소설 아룡전32(작성자; 손진길) 잠시 숨을 쉬고서 아룡이 이어서 설명한다; “그것은 무려 500만명이나 되는 고려 백성들의 자발적인 도움을 받아서 함께 나라를 지키고 삶의 터전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굳은 결심은 하지 아니하고 비겁하게 적의 약점을 틈타서 미리 섬으로 피신하고 말았으니 그것이 패착이지요. 더구나… “. 아룡의 날카로운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매년 가을철이 되면 예년과 똑같이 강화도의 조정이 백성들의 곡수를 거두어 가고 있으니 그것은 거의 수탈입니다. 적 앞에 무방비로 노출이 되어버린 백성들은 이미 몽골군에게 곡식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고려의 조정에서 세금을 거두어 가고 있으니 이중의 수탈로 백성들은 기아에 허덕이고 있어요… “. 아룡이 마침내 결론을 맺고 있다; ..

소설 아룡전31(작성자; 손진길)

소설 아룡전31(작성자; 손진길) 그래서 고종이 정신을 차리고 있다. 그가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몽골과 화친하자고 먼저 주장하고 나선다. 고종은 친히 몽골황제에게 신하의 예를 갖추기 위하여 몽골의 황궁에 입조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면서 대장군 김보정 등을 화친사절로 보내어 몽골군 사령관에게 철군을 요구하고 있다. 그같은 사건의 전개에 대하여 이제는 자신의 이름을 최이(崔怡)로 바꾼 고려의 최고실세 최우(崔瑀)는 입맛이 쓰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 “그것은 나로서는 별로 손해가 아니다. 국왕이야 친조를 하든지 말든지 그것이 무어 그렇게 대수인가? 어차피 고려의 최고권력자는 나 최우인데!... “. 최우는 사실 고려의 국왕이라고 하는 왕(王)씨의 핏줄을 무시하는 한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