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룡전(작성자; 손진길)

소설 아룡전35(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0. 6. 6. 10:49

소설 아룡전35(작성자; 손진길)

 

새해인 1241년이 되자 벌써 66세가 된 객주 경종성은 41세에 불과한 아룡이 부부에게 자신의 지식을 많이 전수하고자 열심이다. 그래서 그런지 베이징에서 심양인 선양으로 마차를 타고 가면서 자신이 체득하고 있는 대륙에 관한 지식을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전해주고 있다;

첫째로, 심양은 그 옛날 대금이 만주를 지배하던 시절의 수도이다. 대금은 여진족 가운데 본래 동북여진에 속하는 완안족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들의 본거지는 하얼빈이다. 그곳에서 뛰어난 족장이 나타났는데 그가 바로 아골타이다.  

아골타 족장은 용맹한 동생 오걸매와 함께 주변의 동북여진을 전부 아우르고 그 동쪽 연해주에 있는 흑수말갈을 정복했다. 그리고 1115년에 금나라를 세우고 그가 스스로 금의 태조가 된다.

그들은 중원의 송나라와 동맹을 맺고 만주의 서쪽을 지배하고 있는 요나라를 공격했다. 금나라는 요나라의 심양을 함락하고 자신들의 새로운 수도로 삼았다. 그리고 1125년에는 요나라를 멀리 서쪽으로 몰아냈다. 도망친 거란족들이 중원의 서북쪽에서 서요라는 이름으로 잔존하고 있다.

둘째로, 아골타의 금나라가 급격히 팽창하자 송나라는 이이제이정책을 포기하고 금나라의 배후를 공격했다. 그에 따라 배신감을 크게 느낀 금나라가 중원의 강대국인 송나라와 전쟁을 벌이게 된다.

아골타와 오걸매는 여진족의 기마병을 앞세워 송나라를 공격했는데 성공적이다. 1127년에 송나라의 수도인 개봉을 점령한 것이다. 하지만 그 직전에 그만 영웅인 금나라의 태조 아골타가 죽고 말았다.

그 뒤를 이은 동생 오걸매가 금나라 태종이 되어 회수 아래에 새로 건설이 된 남송과 전쟁을 계속했다. 그러나 남송에 악비와 같은 영웅이 나타나 결국 전선이 고착되고 만다. 그리고 1170년대 금나라 세종 때에는 남송의 효종과 휴전하고 치열한 국력성장의 경쟁관계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셋째로, 북방의 초원에서 대 영웅 테무진이 나타나 1206년에 자신의 몽골족을 전부 통일하고 몽골제국을 세우며 칸이 되어 징기스칸으로 불리게 된다. 그는 잘 훈련이 된 몽골기마군단을 이끌고 1210년에 북방의 여러 유목민들을 전부 정복하고 만다.

대칸이 된 징기스칸은 중원과 서역을 모조리 정복하고자 나선다. 오랜 세월 중화사상에 물든 대금은 돈으로 용병을 사서 사나운 몽골군을 막아보지만 역부족이다. 결국 1215년에 수도인 중도 곧 베이징을 빼앗기고 계속 수세에 물리게 된다.

그것을 보고서 1219년에 징기스칸은 과감하게 대부분의 몽골기마대를 이끌고 서역정벌에 나서고 만다. 그는 끝없이 몽골의 용맹스러운 기마병을 이끌고 서방으로 달려갔지만 몽골제국에 참여한 여러 족속들의 배신으로 도중에 돌아오게 된다.

징기스칸은 배신한 여러 유목민들을 징벌했으며 마지막으로 탕구트의 서하국을 친다. 1227년 그들의 수도인 영하를 점령하는 마지막 순간에 그만 부상이 심하여 징기스칸이 운명하고 만다. 그의 부하들은 그 보복으로 함락한 서하국의 수도를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버린다.

넷째로, 징기스칸의 뒤를 2년 동안 임시적으로 이은 자가 4남인 톨루이이다. 그러나 3남인 오고타이의 세력이 강해져서 1229년에 그가 정식으로 대칸이 된다. 그는 1234년에 대금을 정복하고 1235년부터 남송의 정벌에 나선다.

그러나 회수와 양자강이라는 자연적인 장벽이 가로막고 있어서 별로 성공적이지 못하다. 그러한 사실을 1241년 정월에 심양을 방문하고 있는 객주 경종성과 아룡 일행이 여실하게 느끼고 있다. 그 와중에 고려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하여 그들은 심양에서 장군으로 크게 출세하고 있는 야율유가 형제를 방문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이 찾아갔을 때 심양에서 야율유가 장군과 그의 동생인 야율진종을 무사히 만나게 된다.

야율유가 장군보다는 그 동생인 야율진종이 아룡이 부부와 경종성 노인을 더욱 반갑게 반기고 있다. 그 이유는 그가 개경에서 그들을 더러 만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상 고려의 개경에서만 틈틈이 만나보다가 이제 마음 놓고 심양에서 얼굴을 대하게 되니 참으로 좋은 모양이다.

야율유가 장군의 대저택에서 다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 그 자리에서 아룡이 일어나서 함께 온 일행을 야율유가 장군에게 소개한다. 그 소개가 끝나자 그 집의 주인인 야율유가가 겸손하게 말한다; “저는 몽골제국의 만주 주둔군의 일부를 지휘하고 있는 야율유가입니다. 하지만… “.

잠시 좌중을 둘러본 다음에 그가 이어서 말한다; “저는 본래 종진국의 사람이며 고려의 귀족출신인 서우진왕이 세운 종진국의 왕손입니다. 지금은 사라진 종진국이지만 한때는 고려만큼이나 큰 야율종진왕의 왕국이었지요. 저의 외조부이신 국왕께서는 35세의 젊은 나이에 별세하셨습니다. 그러나… “.

야율유가가 잠시 숨을 쉬고서 계속 말한다; “그 분의 무예만은 후세에 전수가 되어서 많은 제자들이 남아 있지요. 여러분들도 같은 동문이기에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동생을 통하여 개경의 큰 무역상이신 경노선배님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요즘은 심양에서 더러 만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시 방문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아룡이 부부와 그의 수하들이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 야율유가 장군과 그의 동생인 야율진종에게 절을 한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무예의 원조인 야율종진왕의 손자가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객주 경종성이 일어나서 말한다; “이 늙은이를 환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이번에는 예고도 없이 많은 손님들을 모시고 함께 왔습니다. 모두가 야율종진왕의 제자들이니 이렇게 서로 만나는 것이 참으로 뜻이 깊으리라 생각하고서 한 행동입니다. 양해해주십시오… “.

그 말을 듣자 야율유가가 말한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제가 오히려 고맙다고 절을 해야 하겠습니다. 경노선배님께서 이렇게 주선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제가 어떻게 젊은 동문들을 이곳 심양에서 만나볼 수가 있겠습니까? 참으로 감사합니다… “.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야율진종이 말한다; “가형의 마음이 바로 저의 마음입니다. 이하동문입니다.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좌중의 일행이 모두 하하’, ‘호호라고 웃는다.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만찬이 끝난다. 그 다음에는 다과와 차를 마시는 자리가 있게 된다.

그때 일행을 대표하여 아룡이가 일어나서 야율유가 장군에게 질문한다; “저희들은 벌써 베이징을 거쳐서 이곳에 왔습니다. 현지에서 발생하고 있는 중원의 세력다툼에 대하여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 여파가 장차 고려의 운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요? 저는 사형이신 장군님께 한번 여쭙고 싶습니다만… “.

그 질문을 듣자 야율유가 장군이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한다; “저는 지금 금나라에 이어 몽골제국의 장군으로 근무하고 있지만 한시도 조부님의 조국인 고려의 생존과 발전을 위하여 생각하지 아니한 때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 동생을 직접 고려의 개경으로 파송한 적도 여러 번 있습니다. 저의 견해를 간단하게 말씀드리지요… “.

야율유가가 일목요연하게 말한다; “몽골족은 지칠 줄을 모르는 정복자들입니다. 그들은 전투가 아니면 심심하여 못사는 체질이 되었는가 봅니다. 따라서 고려가 항복할 때가지는 계속 공격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

그가 잠시 숨을 쉬고서 이어 말한다; “무신정권이 강화섬으로 천도하여 끝까지 대항하겠다고 하니 장기적으로 별로 소용이 없고 그 도중에 백성들의 희생만 엄청 늘어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7년전에 대금을 정복한 몽골제국이 지금은 수군을 동원하여 남송을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

야율유가 장군의 설명을 듣자 아룡이 일행과 경종성 노인은 숨이 턱 막히고 있다. 그렇다면 고려의 운명은 바람 앞의 호롱불이 아닌가? 그래서 경종성 옹이 후유라고 한숨을 한번 쉬고서 말한다; “그렇다면, 항복하고 화친하는 것이 백성들의 희생을 줄이는 방법이겠군요. 그렇게 하면 어느 정도의 수모만 견디면 되는 것일까요?... “.

그 말을 듣자 야율유가 장군이 잠시 생각하더니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원칙적으로는 국왕이 모든 책임을 지고 굴욕을 당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고려의 경우에는 예외입니다. 그 이유는 국왕이 아니라 무신정권의 실세들이 전쟁의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

야율유가 장군이 싱긋 웃으면서 말한다; “고려의 국왕이 몽골의 대칸에게 알현을 청하고 자신이 처하고 있는 상황을 직접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한다면 쉽게 화해를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몽골의 지원을 받아서 무신정권의 실세들을 제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왕가도 보전하고 백성들의 희생도 줄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경종성 옹이나 아룡이 일행이 한번도 생각해보지 아니한 해결책이다. 역시 몽골제국의 녹을 먹고 있는 야율유가 장군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래서 대표로 아룡이 일어나서 야율유가 장군에게 예를 갖추고 말한다; “사형, 정말 고맙습니다. 이제서야 한 줄기 살길을 찾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멀리 베이징을 들르고 심양까지 온 것이 헛된 일이 아니다. 참으로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야율유가의 집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모두들 개경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렇게 살길의 실마리를 얻었으니 그 방법을 한번 실천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행은 생각보다 빨리 심양 구경을 마치고 다시 산동반도를 향하여 마차를 출발시키고자 한다. 헤어지기 전에 아룡이 사형인 야율진종에게 말한다; “사형의 고모이신 송혜진 백부장께서는 요즈음 개경에 있는 금청각의 별채에서 지내고 계십니다. 사숙이신 천수와 영길 옹과 이야기를 나누고 지내시지요. 또 뵙겠습니다… “.

아룡이 일행이 산동반도 위해 항구에 들러 쌍두마차를 전부 반환한다. 그리고 중원의 물건을 사서 정박해 있는 경종성 상단의 무역선에 가득 채운다. 그 작업을 하고 있는 중에 몽골제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건의 소문 하나를 듣게 된다. 그것은 대칸인 오고타이가 병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분간 국내적인 후계자 문제 때문에 정복전쟁에는 소강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판단하고서 일행은 무역선을 타고서 개경의 외항인 벽란도에 무사히 도착한다. 그때가 벌써 1241년 봄이다. 아룡이 부부와 그들의 제자들 그리고 낭자군들은 이제 경종성의 상단에서 일꾼으로 일하고 있다. 더 이상 전장을 누빌 일이 당분간은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해가 가기 전에 중원에서 소식이 들려온다. 오고타이가 죽었다는 것이다. 이제 몽골제국의 후계자문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일시적으로 황후가 대권을 장악하고는 있지만 그녀가 현명한 재상 야율초재마저 내친 마당이라 그 앞날을 점치기가 어렵다.

그러는 와중에 오고타이의 아들이 대칸의 자리에 오른다. 그가 귀위크이다. 그는 뒤늦게 고려국왕의 입조와 강화도에서 나올 것을 요구하면서 사령관 아모간에게 군사를 주어 고려를 치게 한다. 그것이 몽골군의 제4차 고려침입이다. 하지만 1248년에 귀위크가 승하하자 후계자 문제에 관여하기 위하여 아모간의 군대가 철군하고 만다.

후계자 투쟁에서 승리를 한 자가 징기스칸의 4남이었던 톨루이의 아들인 몽케이다. 그가 1251년에 대칸이 되자 12531월에 숙부인 사령관 예케에게 군사를 주어 다시 고려를 치게 한다. 그것이 몽골군의 제5차 고려침입이다. 그러나 그만 충주에서 발목이 잡히고 만다. 그 유명한 승병장인 김윤후가 그곳에서 백성들의 힘을 모아 70일간이나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말기 때문이다.

예케의 몽골군은 더 이상 남하하지 못하고 개경과 그 이북에서 백성들을 괴롭히면서 강화도에 있는 고종에게 항복을 계속 요구한다. 고종은 다행히 왕자 왕창을 볼모로 보내고 몽골군의 철수를 이끌어내고 만다.

아룡이 일행은 시종일관 상인과 무역상으로 일하면서 10년세월을 그러한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 아직은 몽골과의 전쟁이 소강상태이다. 언제 한번은 큰 전쟁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이 된다. 그때에는 근본적인 대책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그때가 아니다.

아룡은 그렇게 판단하고서 그 사이에 객주 경종성을 따라 일본 열도에 차려 놓은 경노인의 상점들과 무역중개지역을 보러 간다. 과연 아룡이 부부와 그의 수하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보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