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룡전(작성자; 손진길)

소설 아룡전33(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0. 6. 5. 00:01

소설 아룡전33(작성자; 손진길)

 

10. 아룡이 부부의 제3의 선택

 

벽란도를 출발하기 전에 무역상이자 객주인 노인 경종성이 아룡이 부부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몇가지 알려준다. 그 가운데 기억할 만한 내용을 추려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경종성은 상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무인들이 바라보고 있는 세상이나 학자들이 바라보고 있는 세상과는 조금 다를 수가 있다고 전제하고 있다. 상인의 눈으로 고려라고 하는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참으로 좋은 나라라고 그가 말하고 있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그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 태조 왕건이 일종의 융합정책을 사용했으며 그 정책이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태조 왕건은 자신을 왕으로 추대하고자 하는 공신들과 함께 당시 미쳐서 돌아가고 있는 과거의 천재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웠다.

따라서 그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권력기반이 약했다.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왕건은 왕족과 토착적인 호족들 사이의 결혼정책을 도입하고 스스로 실천했다. 대내적으로 그러했을 뿐만 아니라 고려사회는 대외적으로도 그러한 융합의 정책을 일종의 포용개방정책으로 더욱 발전시킨 특이한 나라이다.  

둘째, 왕건은 918년에 고려를 개국했는데 얼마 되지 아니하여 926년에 북쪽의 발해가 거란족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자 일부 발해의 왕족과 귀족들이 유민들을 이끌고 남하하여 고려에서 살기를 원했다. 태조 왕건은 그들을 받아 들였다. 그러자 그것을 보고서 남쪽에서는 신라의 왕과 귀족들이 왕건의 고려에게 흡수되기를 원했다. 물론 그 조건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상당히 보장해주는 것이다. 그 제안을 935년에 기꺼이 수용한 자가 포용력이 있는 태조 왕건이다.

셋째, 태조 왕건은 고려를 개국한 다음해에 송악산의 남쪽에 있는 송도로 천도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지명을 바꾸었다. 그 이름이 개경’(開京)이다. 새로운 수도의 이름이 고려사회의 특징을 한마디로 압축하고 있다. 그 뜻은 고려는 폐쇄된 나라가 아니고 온세상과 교류하는 개방된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고려는 지금까지 북쪽의 유목민들, 서쪽의 농업국가인 중원은 물론 동쪽의 섬나라와 남쪽의 여러 나라들과 인적 물적인 교류를 활발하게 하고 있다. 상인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북쪽으로 가는 육로의 상단보다는 동서와 남쪽으로 가는 해상무역이 더욱 왕성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러 나라와 민족이 고려를 코리아’ , ‘케레이’, 또는 꼬레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무역상이며 객주인 경종성이 벽란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벽란도는 해상무역을 하기 위한 좋은 항구야. 개경에서 예성강을 타고 하류로 내려가면 직선거리로 25,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지. 특히 수심이 깊어서 쌍돛을 단 큰 무역선까지 정박이 가능한 항구야... “.

그 말을 듣자 아룡이 부부가 고개를 크게 끄떡인다. 벽란도의 수심이 그렇게 깊은 줄은 그들이 미처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일국의 수도 가까이에 그러한 외항이 있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무역에 있어서 좋은 일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평소 관심이 없던 것에 이제 새로운 안목이 생기고 있는 기분이다.

그때 객주 경종성의 설명이 들려온다; “이곳에서 출발하여 우리는 남송의 수도인 항저우 곧 임안으로 들어갈 것이야. 더 가까운 산동반도로 들어가면 좋겠지만 5년전 곧 1234년에 그곳의 대금몽골제국에 의하여 정복을 당했기에 지금은 그곳으로 가기가 위험해서 그래. 우리가 아는 대로 몽골과 고려가 지금은 전쟁 중이거든우리 상단은 고려의 금은과 나전칠기 그리고 인삼 등을 싣고 가서 그것을 남송의 비단과 약재 그리고 서적 등과 바꾸어 오려고 해. 그 이문이 상당하지… “.

그 다음에 노인 경종성이 아룡이를 쳐다보고서 다음과 같이 진지하게 말한다; “어때, 아룡이 자네도 나와 함께 한번 무역상이 되어보지 아니하겠는가?... 사실 나는 자네가 무역상이 되고 객주가 되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나와 여행하는 동안 한번 깊이 생각해 보게나서로 전쟁하지 아니하고 상생하는 무역이 나는 좋아, 서로에게 도움이 되거든서로 사이 좋게 교류하면서 사는 것이 좋지, 어째서 그렇게 서로 잡아먹지 못해서 전쟁들을 하고 있는지 나는 그것이 안타깝기 그지 없어요… “.

그 말을 듣자 아룡이 부부는 새로운 세계를 보고 있는 기분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어째서 지금까지 그러한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아니한 것일까?... 그저 나라와 민족을 지키겠다고 상승무예를 펼쳐서 애꿎은 목숨만 수없이 죽이면서 살아오지 아니했는가?... 그 결과가 무엇인가?... “.

두사람은 그 생각이 깊어지고 있다; “서로가 원수가 되어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원한만 깊어지고 있지 않는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고려의 무인과 백성들 그리고 몽골의 병사들이 피를 흘려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게 하여 땅을 지키고 또한 빼았으면 그것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일까?... 과연 자손만대로 잘 먹고 잘 살게 되는 것일까?... “.

아룡이 부부가 하나의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그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멸망을 당하지 아니한 강대국이나 제국이 역사 가운데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것보다는 서로 인적 물적 교류를 하면서 사이 좋게 이익을 공유하고 사는 것이 더 좋지 아니하겠는가?... “.

10년 가까운 세월을 야별초의 지휘관으로 살아온 아룡이 부부가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는 뜻 깊은 여행이다. 그들과 함께 동행하고 있는 제자들과 사제들은 과연 어떠한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미 객주 경종성이 말한 그대로 벽란도에서 출발한 무역선이 향하고 있는 곳은 남송의 수도인 항저우 곧 임안이다. 양자강 하류 남쪽에 있는 그곳 항구에 도착하여 쌍돛단배에 가득 싣고 온 고려의 산물을 부두에 내리고 그 다음에 그것을 여러 대의 마차에 옮겨 싣는다.

무역상인 노인 경종성이 그 마차들을 인도하여 임안에 있는 큰 상점으로 들어간다. 그때 아룡이 부부는 경종성의 외국어실력이 너무나 유창한 것을 보고 크게 놀란다. 그는 남송에서는 마치 송나라 상인처럼 보인다. 옷차림만 다를 뿐이지 송나라 말이 너무 유창하기 때문이다.

대화의 상대방과는 아주 오랜 세월 상거래를 계속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물건을 인계하고 인수하는데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아룡이 부부와 그의 제자들과 사제들은 낭자군 30명과 함께 경종성의 지시에 따라 그 물건들을 그곳 객주인 왕서방의 창고로 일일이 옮긴다.

왕서방의 창고를 들여다보고서 모두들 놀란다. 여러 나라에서 들어온 물산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 때문이다. 종류도 다양하고 기이한 물건들도 많다. 그동안 그들이 고려에서 보아온 물건들과 다른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것을 보고서 아룡이 속으로 생각한다; “내가 보아온 세상이 참으로 우물안과 같았구나. 남송에 나와보니 이렇게 다양하고 넓은 세상이 존재하고 있는데 어째서 나는 이 넓고 새로운 세상을 한번 보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고 그러한 생각이 들지 아니한 것일까? 나는 천재가 아니라 사실은 바보가 아닌가?... “.

아룡의 일행이 객주 경종성을 따라 그날부터 항저우 시내와 그 주변지역을 10일간이나 관광한다. 노인 경종성이 젊은 그들에게 새로운 세상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러한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개경과는 비교도 할 수가 없는 넓은 세상이다. 그리고 인종도 다양한 것 같다.

그때부터 아룡이 일행의 세계관이 바뀌고 있다. 변화는 그러한 외양적인 것에 머물지 아니하고 있다. 그들의 가치관이 달라지기 시작하고 마침내 인생관마저 바뀌어 지고 있다. 그들이 깊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러한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룡이가 하루는 아내인 최사월에게 제안한다; “여보, 우리 이곳에서 딱 2년만 머물면서 송나라 말을 배우고 넓은 세상에 대한 공부를 하도록 합시다. 장차 고려가 전쟁이 끝나면 어떠한 나라가 되어야 할지 미리 공부하는 좋은 기회로 삼읍시다. 우리가 조국에 돌아가게 되면 또 전장에서 많은 사람을 죽이게 되지 않겠어요?... “.  

똑똑한 최사월이 남편 아룡의 뜻을 이해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도 좋아요. 하지만 여기서 무엇을 하면서 먹고 살지요? 우리가 할 줄 아는 것이 무예밖에 없는데그리고 제자와 사제들의 수가 많은데… “.

그 말을 듣자 아룡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다음과 같이 즉시 말한다; “내가 이미 객주인 경종성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는 이곳에 자신의 상점을 내기를 원하고 있어요. 우리에게 물건을 파는 방법과 물건을 보관하고 운반하는 방법을 전부 가르쳐 주기로 했어요. 물론 이나라 말도 빨리 가르쳐 주겠다고 했어요. 그러니 좋은 스승 밑에서 우리가 빨리 배워서 밥벌이를 하면 되는 것이지요… “.

아룡이 부부가 자신들의 뜻을 제자들과 사제들에게 말한다. 그러자 그들이 전원 찬성한다. 그들 역시 넓은 세상에서 견문도 넓히고 새로이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남의 생목숨을 무지막지하게 끊는 전사의 길이 그렇게 좋지는 아니했던 그들이다.

아룡이 부부가 모두를 대표하여 무역상인 경종성에게 그 제안을 승낙한다고 말하자 그가 정말 좋아한다. 그 다음에 한달 동안은 참으로 바쁘다. 경종성이 아룡이 부부와 48명의 야별초 출신 무인들을 사용하여 항저우에 새로운 점포와 객점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가 무역으로 남은 이문을 투자하여 집을 사고 창고를 산다. 그리고 점포를 구입하고 물건을 진열하는 한편 특이하게도 고려의 음식으로 식사를 제공하는 여관과 식당을 하나의  객점으로 개장한다.

상인으로서의 경종성 노인의 안목이 탁월하다. 그가 고려풍의 식당과 여관 그리고 상점을 임안에 큰 규모로 개장하자 손님들이 몰려든다. 아룡이 부부와 그의 수하들이 일꾼으로 바쁘게 일하게 된다.

일하랴 공부하랴 일년동안 바쁘게 돌아가다 보니 어느 사이에 새해인 1240년이 밝아온다. 그렇게 자리를 잡는 것을 보고서야 객주 경종성이 남송의 물건을 사서 고려의 개경으로 돌아간다. 그때 경종성이 아룡이 부부에게 부탁한다; “이제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으니 앞으로 1년간 잘 경영을 해보세요. 그리고… “.

경종성이 아룡이 부부를 한참 응시하다가 이어서 말한다; “아마 이곳에서 상인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수하들도 생겨날 것으로 저는 봅니다. 그들의 장래와 두 분의 장래에 대해서는 일단 이 점포와 객점을 1년간 더 경영해 보시고 내가 이곳에 돌아오게 되면 그때 상의를 하시지요… “.

60평생을 사람을 상대하면서 상인으로 살아온 경종성의 혜안이 놀랍다. 왜냐하면, 아룡이 부부가 제자들 및 사제들 그리고 낭자들과 함께 상점과 객점을 운영한 결과 다른 삶을 추구하는 자들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2년 가까이 상인으로 일하면서 송나라 말도 익숙해지고 어느 정도 살아갈 자신이 생기자 도학스님의 제자들이 실력 있는 무장을 초빙한다는 남송 병부의 방문을 보고서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그래서 그 중 실력이 출중한 청학도객이 먼저 응시를 한다.

그 결과 두사람이 남송의 무장으로 특채가 된다. 그들이 받게 되는 보수와 대접이 상당하다. 단숨에 남송의 백부장이 된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그 다음에는 두사람을 따르는 사제들 6명이 전원 응시한다. 그들 역시 합격하여 같은 대우를 받게 된다.

그러한 변화가 발생하자 아룡이 부인 사월에게 말한다; “남송을 도와 몽골제국을 견제한다면 고려에 미치는 몽골의 힘을 약화시킬 수가 있어요. 따라서 나는 사제들의 선택을 지원해주고 싶어요. 혹시 그들과 개인적으로 친하게 사귀고 있는 낭자군들이 있지는 않나요?... “.

혹시나 싶어서 아룡이 물었더니 최사월의 대답은 역시나이다. 이미 나이가 30대 중반이므로 당연히 서로가 사귀고 있다. 그것을 확인하자 날을 잡아서 그들 모두를 모아 놓고서 아룡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남송의 무장이 되어 몽골제국의 남침을 막고자 하는 사제들의 뜻을 존중한다. 그런데 한가지 부탁이 있다. 그것은… “.

당사자들이 귀를 기울인다. 그것을 보고서 아룡이 선언한다; “이곳에 남자들만 정착하지 말고 낭자군 가운데 마음에 드는 분이 있으면 서로 배필이 되어서 가정을 이루어 정착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곳 우리의 점포와 객점도 많이 애용해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애국애족이 아니겠는가?... “.

무슨 이야기인지 잠시 긴장하고 있던 8명의 사제들과 여러 수하들이 모두 박수로 화답한다. 그 결과 8쌍의 합동결혼식이 아룡 부부의 주관으로 있게 된다. 그렇게 16명이 일행을 떠나서 독립하게 되자 그때부터는 아룡 부부를 비롯하여 34명이 점포와 객점을 임안에서 계속 운영하게 된다.

그러는 와중에 개경에서 객주 경종성이 물건을 싣고 항저우에 다시 들어온다. 이제 어떠한 일이 또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