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룡전32(작성자; 손진길)
잠시 숨을 쉬고서 아룡이 이어서 설명한다; “그것은 무려 500만명이나 되는 고려 백성들의 자발적인 도움을 받아서 함께 나라를 지키고 삶의 터전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굳은 결심은 하지 아니하고 비겁하게 적의 약점을 틈타서 미리 섬으로 피신하고 말았으니 그것이 패착이지요. 더구나… “.
아룡의 날카로운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매년 가을철이 되면 예년과 똑같이 강화도의 조정이 백성들의 곡수를 거두어 가고 있으니 그것은 거의 수탈입니다. 적 앞에 무방비로 노출이 되어버린 백성들은 이미 몽골군에게 곡식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고려의 조정에서 세금을 거두어 가고 있으니 이중의 수탈로 백성들은 기아에 허덕이고 있어요… “.
아룡이 마침내 결론을 맺고 있다; “따라서 백성들은 전쟁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굶어서 죽어가고 있지요. 그런 마당에 내가 젊은 무인들과 함께 전장을 누비는 것이 과연 백성들을 살리고자 하는 방안이며 고려의 구조적인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까요?... “.
실로 심각한 질문이다. 그 질문에 대하여 김보정 장군이 눈을 질끈 감고 있다. 한참 후에 그가 담담하게 말한다; “제가 국록을 먹고 강화도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이 정말 부끄럽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빨리 강화조약을 맺고 이 전쟁을 끝내고 싶습니다... “.
그 다음에 김 장군의 진심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국왕이 모든 책임을 지고서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시대를 열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대가 언제나 올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아룡 장군님의 질문에 대해서도 정답을 줄 수가 없겠습니다. 참으로 송구합니다… “.
개경의 1239년 새해는 그렇게 암울하게 시작되고 있다. 과연 고려는 어떻게 되는 것이며 또한 아룡이의 장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렇게 고려 지배층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하여 날카로운 시선으로 비판하고 있는 아룡이가 모색하고 있는 새로운 길은 어떠한 것일까?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해 봄이 되자 개경을 비롯한 고려의 천지에서 아룡이 부부의 모습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서촌에서 아룡이 부부와 함께 살고 있던 70대의 노인 송혜진도 거처를 옮기고 있다. 그녀는 금청각 별채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의동생인 청수 및 영길과 옛날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한편 몽골제국의 대칸인 오골타이는 남송을 정복하기 위하여 전력투구를 하고 있다. 몽골제국은 자신들이 그동안 정복한 지역만 해도 효율적으로 다스리기에 벅찬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넓은 땅을 차지하고자 본능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핏속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있는 것일까?...
돌이켜보면, 태무진은 유목민들이 편만하게 살고 있는 아시아 대륙 북방의 그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는 소수의 몽골족 가운에 또 작은 부족의 일원에 불과했다. 당시 고대사회의 개념에 따르게 되면 씨족사회인 ‘하푸’와 부족사회인 ‘이위’가 있는데 테무진의 부친은 자신의 하푸의 족장에 불과했다.
그의 부친이 다른 하푸와의 갈등 때문에 독살을 당하고 나자 어린 테무진은 편모 슬하에서 자라면서 동생들과 함께 복수를 다짐하게 된다. 그가 성장하여 놀랍게도 선친의 복수를 하면서 몽골사회의 위대한 정복자가 된다.
그렇다면 테무진이 사용한 종족 통합과 급성장의 비결이 과연 무엇일까? 천하의 기재인 김재룡은 그 실체를 그동안 파헤치고 있다. 그가 얻은 결론은 두가지이다;
첫째로, 테무진이 놀랍게도 ‘울루스’라고 하는 새로운 부족사회의 개념을 개발하여 사용한 것이다. 그때까지 유목민들은 약탈민족의 습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힘이 약한 종족은 강한 종족의 먹이감에 불과하다. 강한 종족이 정복자가 되어 먼저 약한 종족의 재물과 부녀자들을 빼앗고 그 다음에는 남은 자들을 노예와 같이 부리면서 살았다.
그렇게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이분법이 뚜렷한 것이 유목민사회의 특징이다. 그런데 태무진은 그러한 사회의 구조를 바꾸었다. 일단 정복하면 피정복민을 자신의 종족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새로운 종족으로 거듭나게 했다. 그렇게 탄생한 새로운 종족이 바로 ‘울루스’이다.
하지만 울루스 안에도 하나의 지배집단이 있다. 그것은 ‘푸른 늑대’라는 테무진의 가문으로 제한이 된다. 그리고 그 울루스는 테무친이 통합한 소수의 몽골이라는 부족사회에 한정이 되고 있다. 일단 몽골사회라고 하는 ‘테무친의 울루스’가 완성이 되자 그때부터 그것은 다른 유목민들을 아우르는 몽골이라는 정복자로 인류의 역사 가운데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족을 더하자면, 테무진이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는 몽골 족속을 모조리 정복하고서 몽골제국을 건설한 때가 1206년이다. 그해에 그는 자신의 울루스를 완성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칸’이라는 칭호를 얻는다. 그래서 ‘징기스칸’으로 불리게 된다.
둘째로, 징기스칸은 자신의 울루스의 구성원을 강한 기마대로 조련한다. 한사람의 기마병이 20마리의 말을 끌고서 전장에 나가며 말을 바꾸어 타면서 하루 500리를 주파할 수 있도록 기동훈련을 시키고 있다. 그 이동거리는 장정이 하루에 걷는 거리의 5배이다. 초지로 뒤덮인 대평원을 계속 말을 바꾸어 가면서 달리고 있기에 그와 같은 장거리원정이 가능한 것이다.
징기스칸은 동시에 그의 기병들이 마상에서 활을 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고 있다. 그것도 백발백중의 명사수로 만드는 것이다. 무서운 속도로 말을 달리면서 화살을 정확하게 날린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고난도의 기술이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말위에서 먹고 자면서 살아가고 있는 유목민이기에 그것이 가능하다.
징기스칸은 활을 만드는 장인들에게 계속 더 강한 활을 만들라고 주문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작고 가벼우면서도 강한 활을 마상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 사정거리가 상당히 멀다.
다만 고려가 사용하고 있는 대궁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같은 물소의 뿔을 사용하였는데 어째서 그러한 차이가 발생하고 있는지는 몽골족이 아직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비밀에 속하고 있다.
그와 같이 조련이 된 몽골족의 기마대를 이끌고 징기스칸이 자신의 동쪽과 서쪽에 있는 다른 아시아계 유목민들을 모조리 정복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놀랍게도 단 4년만에 그 정복사업이 일단 완성이 된다.
그때부터 징기스칸이라는 이름은 ‘대칸’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고 그가 정복한 아시아계 모든 유목민들은 하나의 몽골제국의 구성원으로 바뀌고 만다. 따라서 작은 종족의 이름에 불과했던 ‘몽골’이 1210년부터는 전체 아시아계 북방 유목민들을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이 되고 만 것이다.
아룡이 그와 같은 사실을 파악한 것은 혼자만의 힘이 아니다. 그는 금청각의 내실에서 김보정 장군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눈 후에 고심하다가 우연히 시전에서 아직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경종성을 만났다. 그때 그가 그 점포의 내실에서 경종성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경종성이 찻잔에 차를 부어주면서 아룡에게 말한다; “그대의 눈에 슬픔이 묻어 있습니다. 무슨 좋지 아니한 일이라도 집안에 있는 것입니까?... “. 그 말을 듣자 아룡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대답한다; “아닙니다. 집안에는 아무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에 풍랑이 일어나고 있을 뿐입니다… “.
그 말을 들은 경종성이 조용하게 묻는다; “제가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람 하나는 제대로 본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대는 그 진면목을 숨기고 있어서 그렇지 천하의 기재임이 틀림없는데 어째서 풀지 못하고 있는 숙제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
그 말을 듣자 아룡이 고소를 지으면서 대답한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제가 전장을 십년 가까이 누비고 나서 이제서야 깊은 회의와 좌절에 빠져들고 있으니 실로 무식하기 이를 데가 없지요… 도저히 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고려에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가지고 올 수가 있을까요?... 제가 갈 길은 어디일까요?... “.
노인 경종성의 눈에서 갑자기 깊은 혜안이 엿보이고 있다. 마치 득도한 고승과 같이 그가 깊고도 그윽한 눈매로 담담하게 아룡에게 말한다; “아룡이, 그대는 지금까지 개경과 고려라고 하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온 경험밖에 없어요. 나이 40이 다되어 가도록 넓은 세상을 본 적이 없지요. 그러니 나와 함께 진짜 세상구경을 한번 해보는 것이 어때요?... “.
그 말을 듣자 아룡이의 머리에서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는 것 같다. 그래서 아룡이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렇다, 최우가 아니라 내가 새장에 갇힌 새와 같구나. 그것을 모르고 전쟁터가 되어 있는 고려에서만 그 해답을 찾고자 암중 모색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외풍이 불어오고 있는 근원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외풍을 아직 맞이하지 아니하고 있는 나라도 차제에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생각은 길었지만 아룡의 답변은 빠르다. 그래서 그가 즉시 경종성에게 말한다; “경 선생님, 그렇다면 대금이나 남송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그리고 아직 몽골의 군마가 들어가지 아니하고 있는 나라에도 가볼 수가 있겠습니까?... “.
그 말을 듣자 경종성이 갑자기 ‘허허’라고 웃는다. 그리고 천천히 말한다; “아룡이, 그대는 아직 젊은가 봅니다. 나이가 든 나는 한꺼번에 묻고 있는 그 말에 대답하자면 숨이 차지요. 허허허… “.
그제서야 아룡이 자신의 결례를 깨닫는다. 그래서 갑자기 일어나서 허리를 숙이면서 말한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하지만 제 질문에 답변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윽한 눈매로 아룡이를 쳐다보던 경노인이 조용히 고개를 여러 번 끄떡이고 있다.
마침내 경종성이 말문을 연다; “저는 선친의 뒤를 이어 이 가게를 운영하면서 나름대로 세상구경을 많이 할 수가 있었지요. 겉으로는 해외의 상품을 직접 구매하기 위한 여행이지요. 그렇지만 속으로는 그것이 아니라 제가 보고 싶은 곳을 방문하여 보고, 알고 싶은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 외국을 많이 다닌 것입니다. 그 결과… “.
노인 경종성이 아련하게 그 옛날을 회상하는 눈치이다. 그 다음에 설명을 계속한다; “지금 개경과 고려국이 당면하고 있는 전쟁의 바람이 어째서 이렇게 사납게 불고 있는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어요. 그리고 조국과 고향이 아니라 해외에서 더 나은 낙원을 발견하고 개발하는 데에도 신경을 쓰게 되었지요… “.
그 말을 듣자 아룡이 크게 관심을 보인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물어본다; “저도 경선생님을 따라서 그 지역을 방문할 수가 있을까요? 한번 저와 집사람을 데리고 함께 가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나아가서 저의 제자들도 함께 갈 수가 있으면 좋겠는데요?... “.
그 말을 들은 경종성이 미소를 띄면서 대답한다; “지금은 고려가 전쟁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위험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무역하는 사람들은 수지가 맞지요. 물가가 비싸기에 이문이 많이 남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가 요즘은 해외에 나가서 자주 상품을 수입해서 들어옵니다. 원하신다면 저와 함께 배를 타고 해외로 나가시지요. 제자들도 무인일 것이니 상단의 호위무사로 일하시면 됩니다… ”.
아룡이 그 말을 듣자 노인 경종성의 손을 잡고 감사의 뜻을 여러 번 밝힌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그 다음조치를 취한다. 그와 아내 사월이 지휘하고 있는 야별초를 자신의 저택에 불러 모아서 아룡이 선언한 것이다; “나는 이제 야별초의 지휘관 자리를 떠나고자 합니다. 나 대신에 명수와 강철 십부장이 야별초를 맡아서 통솔해주기를 바래요... “.
그 말을 들은 아룡의 수제자인 정한조와 이용준이 말한다; “저희들은 사부님을 따라서 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허락해주십시오”. 아룡이 잠시 머뭇거린다. 그때 좌중에서 아룡의 나머지 제자 8명과 최사월이 아끼는 십부장 금애령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한조와 용준의 곁으로 이동한다.
그 다음에는 놀랍게도 아룡의 사제인 청학과 도객이 자리에서 일어나 역시 한조와 용준의 곁으로 자리를 이동한다. 그리고 한꺼번에 그들이 아룡에게 말한다; “오십부장께서는 어디를 가시는지 몰라도 저희들을 함께 데려가 주십시오. 저희들이 그동안 몽골군과 싸운 것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룡이님을 따른 것입니다. 끝까지 따라가게 해주십시오… “.
아룡이 십부장인 명수와 강철을 한번 훑어본다. 그러면서 말한다; “너희들이 모두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나를 따라나선다면 야별초는 어떻게 되는가?... “. 그러자 이번에는 청학과 도객을 따르고 있던 사제 6명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그 다음에는 십부장 금애령을 따르고 있던 낭자군 29명이 전부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들이 모두 한조와 용준이 있는 자리로 옮겨온다. 그러자 어느 사이에 한조와 용준 등 아룡의 제자 10명, 청학과 도객을 비롯한 사제 8명, 금애령을 위시한 낭자군 30명 등 합계 48명이 아룡이 부부와 행동을 같이하겠다고 자원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서 최사월이 아룡에게 말한다; “여보,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될까요? 저희들이 지휘하던 야별초가 전부 100명입니다. 이제 50명씩 둘로 갈라지고 있어요. 그러니 나머지 50명은 두사람의 십부장 명수와 강철이 지휘하도록 하고 우리들은 저들 48명과 함께 별동부대로 움직이도록 하지요. 그렇게 2개조로 움직이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겠어요?... “.
똑똑한 아룡이 금방 부인의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들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최사월 오십부장의 의견을 저는 따르겠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우리의 야별초는 두개의 부대가 됩니다. 나와 사월 오십부장을 따라나선 분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분들은 아무쪼록 십부장 명수와 강철의 지휘를 받아 전공을 많이 세우기를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
당시 아룡이 부부를 따라나선 48명은 그들이 어디로 가게 되는지를 몰랐다. 그렇지만 벽란도에서 큰 무역선을 타고서 서쪽으로 항해하게 되자 해외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은 경종성의 상단과 함께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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