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룡전(작성자; 손진길)

소설 아룡전31(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0. 6. 3. 08:07

소설 아룡전31(작성자; 손진길)

 

그래서 고종이 정신을 차리고 있다. 그가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몽골과 화친하자고 먼저 주장하고 나선다. 고종은 친히 몽골황제에게 신하의 예를 갖추기 위하여 몽골의 황궁에 입조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면서 대장군 김보정 등을 화친사절로 보내어 몽골군 사령관에게 철군을 요구하고 있다.

그같은 사건의 전개에 대하여 이제는 자신의 이름을 최이(崔怡)로 바꾼 고려의 최고실세 최우(崔瑀)는 입맛이 쓰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 “그것은 나로서는 별로 손해가 아니다. 국왕이야 친조를 하든지 말든지 그것이 무어 그렇게 대수인가? 어차피 고려의 최고권력자는 나 최우인데!... “.

최우는 사실 고려의 국왕이라고 하는 왕()씨의 핏줄을 무시하는 한편 별로 좋아하지 아니하고 있다. 자신의 부친 최충헌이 고려의 국왕을 4차례나 바꾸는 것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허약한 것이 국왕인 왕씨이다. 고려의 최고권력자는 벌써 왕씨가 아니고 최씨인 것이다. 그것도 오로지 우봉 최씨이다.

실제로 그와 같은 의미에서 최우의 부친인 최충헌이 새로운 혈통의 족보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는 1196년에 무력으로 고려의 최고권력자가 되자 선조들이 살고 있던 지명 황해도 금천의 우봉 땅의 지명을 사용하여 자신의 선친 최원호를 시조로 하는 우봉 최씨의 씨족보를 새로 만든 것이다.

그 의미는 자신이 만든 새로운 혈통에 의하여 장차 고려가 경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직접적인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간접적이고 더욱 교활한 역성혁명이다. 더구나 최충헌은 1170년 무신의 난에 직접 가담한 자도 아닌데 그가 교묘하게도 최고의 권력을 차지한 것이다.

그는 기회를 노려서 백성들로부터 원성이 자자한 탐욕스럽고 무식한 권력자 이의민의 세력을 제거하고 무신정권의 최고권력을 찬탈한 인물이다. 그 다음에 그는 새로운 왕조를 여는 기분으로 우봉 최씨라는 새로운 족보를 만든 것이다.

그와 같은 부친 최충헌의 뜻을 정확하게 이어받은 자가 바로 그의 장남인 최우이다. 부자간에 17세의 나이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두 사람은 거의 동시대를 살아간 인물이다. 더구나 최우는 선친 최충헌보다 더욱 교활하고 잔재주가 많다.

왜냐하면, 그는 선친처럼 직접 국왕인 고종을 대면하지 않는다. 교정도감을 감독하는 정방을 만들어 놓고 자신은 정방을 통하여 교정도감을 조종만 하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인형놀이와 같다;

무신 정권

정치 기구

사병 기구

사병 정규군 기구

연립 ~ 최충헌

최충헌

최우 ~ 임연

경대승 ~ 임연

최우 ~ 임유무

중방(重房)

교정도감(敎定都監)

교정도감정방(政房) & 서방(書房)

도방(都房)

삼별초(三別抄)

 

  모든 결재는 자신의 조종을 받는 교정도감의 장이 고종을 알현하고 재가를 받는 것으로 만든 것이다. 그것은 괜히 황궁에 들어갔다가 암살당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간교한 조치이다.

그와 같이 머리가 좋은 최우가 이제는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개명하고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이름자에 들어있는 임금 왕()자도 싫은 것이다. 그래서 아예 새로운 이름자로 ’() 자를 선택하고 있다. 그 뜻은 고려는 마음속으로 내가 다스리는 나라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최이가 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고려의 숨은 실력자는 나인데 나를 대신하여 고종의 친조만 원하고 있는 것을 보면 몽골의 대칸이라고 하는 오고타이도 아직은 나를 끌어내릴 수 있는 힘이 없는 모양이군. 4년 동안 5만명의 야만적인 기병으로 고려 천지를 휩쓸게 되면 내가 그들에게 항복할 줄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어림도 없다... “.

최이의 자만심이 하늘에 치솟고 있다; “나는 몽골군이 수군을 만들고 강화도로 쳐들어와서 나를 끌어낼 때까지는 죽어도 아니 나갈 것이니까!... 나는 개인적으로는 몽골의 대칸도 어찌할 수가 없는 영웅이야. 하지만 나는 억울해. 왜냐하면… “.

최이가 강화도에 갇힌 채 몽골제국의 대칸과 자신을 비교하기도 한다; “고려가 작은 나라이다 보니 내가 이렇게 강화섬에 갇혀서 지내고 있는 것이지나는 무신정권의 실세가 된 최충헌에게서 장남으로 태어나고 오고타이는 몽골의 대영웅인 징기스칸3남으로 태어난 것 외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그러니 내 앞에서 너무 잘난 체 하지 말라고… “.

그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다; “나는 고려의 국왕이라고 하는 고종이 몽골의 수도로 들어가서 오고타이에게 머리를 조아린다고 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어차피 나의 선친이 세운 허수아비가 고려국왕이 아닌가? 국왕이야 또 세우면 되는 것이지, 그것이 무어 대수라고!... “.

한마디를 더 첨언하자면 최이의 속마음이 다음과 같다; “그것으로 몽골군이 그냥 물러간다고 하면 그것은 남는 장사이지나는 손해 볼 것이 없어. , 그렇고 말고그러니 고종보고 입조를 하든지 얼른 화친조건을 성사시켜서 몽골군의 철군을 이끌어내라고 해. 그것이 나도 이익이지. 이놈의 여몽전쟁은 나도 지긋지긋하거든… “.

최이는 마치 새장속의 새처럼 강화도에 갇혀서 사는 것이 사실은 답답하다. 그래서 점점 옹고집이 되고 외골수 사고에만 갇혀 있다. 그것이 몽골과의 오랜 전쟁에서 생겨나고 있는 정신적인 피폐이며 질병인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부쩍 연회를 즐기고 점점 술에 빠져서 살기 시작한다.

그 재화를 마련하기 위하여 추수철에 관리를 여러 평야에 내보내어 농민들의 수확을 가혹하게 거두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가 없다. 세금을 많이 거두어 갔으면 농민들을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최이의 무신정권은 아예 방임상태이다. 한마디로, 백성들을 몽골군 앞에 그냥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사실을 몽골군의 제3차 침입을 당하여 4년 이상 전국의 전장을 떠돌면서 아룡과 그의 야별초들이 하나같이 피부로 느끼고 있다; “무신정권의 실상이 이러한데 나는 무엇을 위하여 젊은이들을 이끌고 전장을 찾아다니고 있는가? 그리고 아무리 외적이라고 하지만 수백명 아니 수천명의 생목숨을 내가 가공할 무예로 거두어가도 되는 것인가? 언제까지 나는 도살자가 되어야 하는가?... “.

그와 같은 회의와 무력감을 최이의 저택에서 그를 지키고 있는 호위무사단의 백부장인 김준무활이 벌써 느끼고 있다. 그들의 속마음이 다음과 같다; “이름만 바꾸면 무엇 하는가? 고려의 백성을 진실로 사랑하고 아끼며 돌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권력의 화신이 바로 최우가 아닌가?... “.

그들이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한다; “그가 언제 배가 고파본 적이 있으며 전란에 시달리는 고려의 백성들을 돌아본 적이 있는가? 그저 선친이 물려준 막후실세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하여 어떠한 일이라도 서슴지 아니하는 자이다. 오로지 최고의 권력을 혼자서 누리고자 한다. 그래서 도전자를 가혹하게 처리하고 있다. 최충헌은 친동생 최충수를 죽이고 그 아들인 최우는 친동생 최향을 섬으로 유배하지 아니하였는가?... “.

그러한 차중에 우연히 아룡이 대장군 김보정을 금청각에서 만나게 된다. 개경을 버리고 강화도로 천도하고 말았지만 여전히 천수와 영길은 금청각의 내실에 남아서 국제정세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그 결과를 정기적으로 강화도에 있는 최우 장군에게 보고하고 있다.

그러한 소문을 고종이 들었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가 신임하는 대장군 김보정을 금청각으로 보낸 것이다. 그 자리에 마침 아룡이 사숙들과 함께 있었다. 그때 김보정이 꺼낸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저는 전하의 명령으로 몽골군과 마지막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협상이 어떻게 될 것으로 보십니까? 제게 정보를 좀 주십시오”.

그 얼굴이 진실해 보인다. 무신 출신 같지 아니한 김보정의 단아한 용모와 그 간절한 모습을 보고서 천수가 질문한다; “그 나이에 벌써 대장군이면 출세가 빠른 것이요. 내가 보기에 아직 연세가 40이 채 되지 아니한 것으로 보입니다마는?... “.

김보정이 고개를 끄떡이는 것을 보고서 아룡이 말한다; “나는 야별초의 오십부장으로 있는 아룡입니다. 제가 금년에 들어서서 39살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오십부장인데 비하연 장군께서는 출세가 대단히 빠르신 것이 맞습니다.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김보정이 고개를 숙이면서 말한다; “제가 오히려 부끄럽습니다. 장군인 제가 전장에 나가서 전투에 임해야 하는데 반대로 항복의 조건이나 협상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왕명으로 몽골제국의 정보나 얻으려고 이곳을 방문하고 있군요… “.

그 말을 들은 영길이 사형인 천수를 대신하여 말한다; “지금 몽골제국의 대칸인 오고타이의 관심은 사실 남송을 빨리 정복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탕우타이 사령관에게 아까운 5만의 병력을 떼어 고려를 치도록 명령한 것은 배후를 염려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우리 고려에서 먼저 고개를 숙이고 배신하지 아니하겠다고 확답을 하면 곧바로 철군할 것입니다. 탕우타이의 군대를 남송과의 격전지에 투입하는 것이 오고타이는 급하니까요… “.

그 말 한마디로 김보정의 마음이 시원해지고 있다. 그래서 그가 감탄하면서 천수와 영길에게 말한다; “무슨 말씀인지 정확하게 알아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적들의 형편을 알았으니 이번 화친은 성사가 되겠군요. 저는 빨리 외적이 물러가고 우리 고려의 백성들이 평화를 회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오로지 소원은 그것 뿐입니다. 저는 고려의 국왕인 고종의 신하이기 이전에 한 집안의 가장이고 또 조상들의 고향을 지키고 싶은 고려의 백성입니다… “.

그 말을 듣자 아룡이 불쑥 한가지 질문을 한다; “김 장군은 지금 강화도에 자리를 잡고 있는 무신정권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세오?... “. 그 말을 들은 김보정 장군이 깜짝 놀란다. 그것은 야별초의 간부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멀뚱멀뚱 아룡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그때 아룡이 부연설명을 한다; “나는 수하들을 이끌고 지난 1231년부터 지금 1239년초까지 고려 천지의 전장을 찾아 다니면서 몽골병과 전투를 벌인 장수입니다. 오직 그것이 나의 조국과 백성들을 구하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전국을 다니다 보니까 갑자기 자괴감과 회의감이 밀물처럼 밀려오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를 위하여 지금 남의 생목숨을 무수히 끊고 있는가? 하는 것이지요… “.

천수와 영길이 깜짝 놀라고 있다. 그리고 김보정 장군이 거듭 놀라면서 되묻고 있다; “무장이 외적을 상대하여 백성과 나라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어째서 그러한 회의에 빠지고 계십니까?... ”. 그 말을 듣자 아룡의 눈이 깊은 심연에 빠지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서 김보정 장군이 더욱 놀라고 있다. 그래서 그가 속으로 생각한다; “아룡이 이 자는 단순한 무장이 아니다. 실로 헤아릴 수 없는 지혜를 가진 문신과 같다. 그 눈의 심연은 아무에게서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이 자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가?... “.

그때 아룡이 눈을 반짝이면서 말한다;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자면 지도자들이 개경에서 백성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서 적과 맞서야 합니다. 사실 우리 고려의 군사의 수가 그 어느때보다도 적습니다. 그러니 그러한 결의와 정신전력의 강화라도 있어야 막강한 몽골군과 대적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것이 아니니 우리는 장기적으로 몽골과의 전쟁에 있어서 벌써 지고 있는 것입니다… “.

있을 수 있는 주장이기는 하지만 천수와 영길 그리고 김보정이 완전히 수긍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자 아룡이 한마디를 더하고 있다; “5년전에 대금을 정복한 몽골제국입니다. 대금은 수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수군이 이제는 몽골제국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훗날 몽골군이 대금의 수군과 그들의 전함을 이끌고 고려로 쳐들어올 것입니다… “.

그 말을 듣자 좌중의 3사람은 입을 딱 벌이고 있다. 그제서야 강화도 천도가 장기적으로 아무 소용이 없고 백성들의 희생만 강요하고 있는 무책임한 정책결정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때 더 정확한 아룡이의 말이 이어지고 있다; “고려의 국경 수비대가 형편없는 군대가 된 이유가 있지요. 그것은… “.

아룡이 좌중을 한번 훑어본 다음에 말을 계속한다; “그 원인은 무신정권의 실세들이 지방의 군사의 수가 많아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기 때문이지요. 특히 국경을 지키는 군대가 국왕의 편을 들고 일어난다고 하면 무신정권이 무너질 것이니 그것을 미연에 방지한 것이지요. 그렇다고 하면 외적인 몽골군을 막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지요... “.

과연 작은 고려국이 대제국 몽골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그 유일한 방법이 무엇일까? 천하의 기재인 아룡이 그의 견해를 처음으로 금청각의 내실에서 토로하고 있다. 아직 겨울철이라 그런지 개경의 밤공기가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