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룡전(작성자; 손진길)

소설 아룡전29(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0. 6. 1. 18:00

소설 아룡전29(작성자; 손진길)

 

9. 강화도 천도와 아룡의 선택

 

12323월까지 몽골군이 고려에서 철군한다. 그들이 한때 점령했던 성읍에 살리타이가 72명의 다루가치와 소수의 수비병만을 남겨두고 있다. 그러자 고려의 지도층들이 5월부터 강화도로 서서히 이주를 시작하고 있다.

최우 장군은 7월까지 개경의 주민들 10만명을 전부 강화도로 옮긴다는 계획을 강력하게 실시하고 있다. 먼저 고종을 비롯한 황실이 이제는 강도라고 불리고 있는 강화도로 들어갔다. 하지만 궁궐이 미비하여 일반주택에서 한동안 지내고 있다.

최우는 교정도감에 강력하게 지시하여 개경 일원의 목수와 일꾼들을 전부 동원하여 강도를 수도답게 설비를 갖추도록 만들고 있다. 그에 따라 동원되고 있는 백성들이 고생이 심하다. 멀쩡한 수도인 개경을 두고 섬으로 들어가고 있는 군부와 황실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들 지도자들이 모두 섬에 들어가서 숨어버리면 육지에 남은 백성들은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가야 하는가? 몽골군이 다시 쳐들어오면 모두가 죽은 목숨들이다. 그러한 형편을 바라보고서 아룡이 부부는 속이 탄다. 그래서 자신들이 지휘하고 있는 야별초 병사들에게 해줄 말이 없다.

특히 아룡은 자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어린 제자들의 눈망울을 대할 때가 가장 곤혹스럽다.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하는가?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려의 국왕과 군부의 실권자는 백성들의 목숨과 삶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그들만 섬으로 도망친 것이다.

그들은 안전한 섬에서 큰소리만 치고 살면서 매년 가을이 되면 육지로 관리를 보내어 세금을 거두어 갈 것이다. 그것은 약탈자가 아니면 강도이다. 그러고 보면 새로운 수도인 강도가 그러한 숨은 의미를 은연중에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직 32세에 불과한 젊은 아룡은 입맛이 쓰다.

그렇지만 아룡은 제자들에게 그렇게 곧이 곧 대로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듣기 좋게 말해주고 있다; “몽골제국의 공격으로 지금 중원에서는 대금이 거의 멸망단계이다. 대금도 어찌하지 못하고 있는 몽골제국의 군대를 우리 작은 고려국의 입장에서는 비상한 대책이 없이 상대한다는 것은 어려운 노릇이다. 그런데… “.

아룡이 침을 한번 삼키고 나서 계속 말한다; “다행스럽게도 몽골은 초원의 나라이며 바다가 없다. 따라서 그들은 수군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섬을 공략해본 경험이 전혀 없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그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강화도로 천도하여 수뇌부가 전쟁을 지휘하여야 한다. 그렇게 알고서 우리들은 육지에 남아 있는 백성들의 목숨과 재산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자. 그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이다”.

아룡의 설명에 고개를 끄떡여주고 있는 야별초 구성원들과 제자들이 고맙기 그지없다. 그러나 아룡은 자괴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차중에 하루는 강화도로 들어가기 전에 백부장 김준이 서촌에 있는 아룡의 집을 방문한다.

아룡이 반갑게 김준을 맞이하여 자신의 사랑방에서 차대접을 한다. 뜨거운 차를 훌훌 불어가면서 김준이 마신다. 그가 속이 타는지 차를 한잔 더 마시고 있다. 그러더니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연다; “아룡 사제, 자네는 육지에서 야별초를 이끌고 몽골군을 직접 상대할 수가 있어서 좋겠다. 나는 호위부대의 백부장이므로 곧 강화도로 들어가서 근무하게 된다… “.

사형인 김준은 아룡이 자신보다 5살 연상이다. 그러므로 올해 37세이다. 무장으로서는 원숙한 경지에 도달하고 있는 나이이다. 전장을 누비며 큰 공을 세울 수 있는 나이인데 그만 강화도에 들어가서 최우 장군의 저택을 지켜야 한다. 그러니 그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사정을 짐작한 아룡이 김준을 위로한다; “그래도 사형이 무활 장군과 함께 최우 장군의 안전을 책임지고 지켜야만 합니다. 만약 적들이 암살조라도 보내게 되면 큰일이 아닙니까?... “.

그 말을 듣자 김준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다른 말을 꺼낸다; “사제, 나의 사부가 무예계에서 승선이라고 불리고 있는 송유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그 분이 스님이시기에 절에서 무승들을 많이 길러 내셨지. 그 가운데 수제자가 충주의 사찰에 적을 두고 있는 승병장 김윤후. 언제 기회가 되면 그 사형을 좀 도와 주기를 바라네… “.

백부장이며 사형인 김준 장군이 강화도로 떠나기 전에 특별히 아룡의 자택을 방문하여 직접 부탁하고 있다. 그래서  아룡이 명심하고서 대답한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제가 그 소식을 듣는 대로 야별초를 끌고가서 힘을 합하여 몽골군과 싸우도록 하겠습니다”.

마침내 1232년 음력 8월에 살리타이가 원정군을 이끌고 다시 고려를 침입한다. 이번에는 제1차 침입 때보다 남진의 속도가 훨씬 빠르다. 그럴 것이다. 군부지도자들과 국왕이 내륙의 수도인 개경에 버티고 있는 지난번의 경우와 강화도라고 하는 섬으로 피난을 가버린 지금은 전혀 사정이 다른 것이다.

국왕과 군부가 자신들을 버리고 피난을 가버렸는데 백성들이 무엇 때문에 몽골군과 싸울 것인가? 빨리 항복하고 그들에게 협조하여 목숨을 구하는 것이 더 현명한 처세술인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재빠르게 몽골군에게 협조한 자가 서경의 홍복원이다.

그는 살리타이와 함께 개경에 들어와서 자신의 권세를 자랑하고 있다. 살리타이는 홍복원의 조언에 따라 개경을 쉽게 함락하였으며 그 다음에는 강화도가 멀리 보이는 지점까지 접근한다. 그곳에서 홍복원을 내세워서 고려의 말로 국왕에게 항복을 권한다.

그러나 강화도에 이미 자리잡고 있는 최우가 코웃음을 치고 있다. 따라서 살리타이는 아무 소득이 없이 물러나고 만다. 그는 몽골병사 2만명을 이끌고 계속 남진한다. 1만명은 이미 지나온 지역의 주변 성읍을 공격하도록 별도로 조치하고 있다.

12월초가 되자 살리타이의 몽골병이 벌써 용인지역에 도착한다. 그런데 용인의 처인산성에서 복병을 만나게 된다. 승선 송유철의 수제자인 김윤후가 승병 150명을 거느리고 충주에서 북상하여 용인의 처인산성에 둥지를 튼 것이다. 그들은 용인의 피난민 수만명을 처인산성으로 옮기고 함께 몽골군에게 적극 대항하고 있다.

처음에는 처인산성으로 들어온 백성들 가운데 노비들이 호응하지 아니했다. 그것을 보고서 김윤후가 관아에 있던 노비문서를 꺼내어 모조리 그들이 보는 앞에서 태워버렸다. 그리고 그들에게 한가지 약속을 하고 있다.

내공과 외공술이 뛰어난 승병장 김윤후의 우렁찬 목소리가 백성들에게 들려온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약속한다. 관아의 노비문서는 여러분들이 보는 앞에서 전부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나는 이번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모든 노비들을 해방시킬 것이다. 몽골군만 물리치라. 그러면 처인성과 용인에서는 노비가 사리지고 없다”.

무장 김윤후가 거느린 승병은 150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산성을 지키는 수비군은 노비와 백성들을 포함하여 1만명에 이르고 있다. 그러니 몽골병사 2만명이 쉽게 처인산성을 점령하지 못하고 있다.

그 소식을 아룡이의 부대가 들었다. 아룡이는 즉시 야별초을 이끌고 처인산성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사형 김윤후를 도와서 몽골군을 물리치고 있다. 아룡이 살펴보니 처인산성은 구릉지에 세운 토성이다. 그러므로 높은 산지에 돌로 쌓은 산성과 같은 견고함이 없다. 그리고 구릉지가 그리 높지도 않다.

그렇다고 하여 평지의 성이라고 부르기도 적당하지가 않다. 더구나 그 위치가 여러 지역으로 통하는 길목이라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이다. 따라서 승병장 김윤후는 처인산성을 결사적으로 지키고자 하고 반면에 살리타이는 반드시 점령하고자 한다.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으므로  추운 12월달이지만 처인산성은 병사들과 백성들의 열기로 뜨겁기만 하다.

그런데 수비만 하고 있으니 몽골군이 고려의 수비병들을 얕보고 있다. 그래서 아룡이 사형인 김윤후에게 말한다; “사형, 제가 야별초를 이끌고 성밖으로 나가서 한번 살리타이의 본진을 유린하겠습니다. 작년에 귀주성에서 김경손 장군이 13명의 기병으로 적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광경을 제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김윤후가 아룡이의 손을 잡으면서 말한다; “아룡 사제, 부탁하네. 안 그래도 우리 수비병들은 급조가 된 군대야. 그러므로 한번 사기를 북돋우어 줄 필요가 있어.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도록 하게… “.

다음날 낮에 아룡이 부부가 100명의 야별초를 이끌고 말을 탄 채 적진으로 돌격한다. 먼저 화살부터 날린다. 그들은 모두 내공과 외공술을 익히고 있다. 띠라서 사정거리가 길고 강한 힘을 자랑하고 있는 화살이다. 살리타이의 본진을 향하여 100여발이 발사가 되자 그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각자 화살을 10발씩 쏜다. 그러자 500명의 적병이 졸지에 쓰러지고 만다. 특히 살리타이를 지키고 있던 호위병사들이 줄줄이 죽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살리타이가 겁을 집어 먹는다. 그 기회를 노려서 아룡이 부부가 100명의 기병을 이끌고 그대로 적진으로 뛰어든다.

장창을 모두들 풍차처럼 말위에서 돌리고 있다. 그 서슬에 주위에 있는 살아있는 것들이 전부 절단이 나고 있다. 그 대단한 광경을 처인성곽에서 수비병들이 내려다보고 있다. 그들은 사기가 충천해진다.

그날 아룡이의 야별초가 그 정도로 적진을 쑥대밭으로 만든 다음에 무사히 성안으로 들어온다. 승병장 김윤후가 뛰어와서 말위에서 내리고 있는 아룡이를 껴안는다. 그리고 크게 말한다; “정말 내 속이 다 시원해요. 사제 장해요. 우리 처인성은 이제 살았어요!... “.

그 말을 듣자 주위에 있던 승병들과 백성들로 구성이 된 수비병들이 일제히 만세를 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살리타이가 전군을 동원하여 처인산성을 또 공격한다. 몽골의 명장인 그가 자존심이 크게 상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한꺼번에 1만명을 동원하여 투석기와 사다리로 성을 강력하게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어제 기적적인 승전의 장면을 목격하였기에 용기가 백배한 수비병들이다. 뜨거운 쇳물을 적병들에게 끼얹고 화살공격을 가하고 있다. 그 결과 절반의 공격군들이 쓰러지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사령관인 살리타이가 가까이 접근하여 공격을 계속하라고 부하들을 독려하고 있다.

그 모습을 승병장 김윤후가 눈여겨보고 있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가 대궁을 가지고 온다. 그 다음에 내력을 충분히 이용하여 대궁에 긴 화살을 꽂아서 강하게 당기고 있다. 아룡이 옆에서 보니 그것은 마치 벼락이 내리치는 것과 같다.

성밖으로 멀리 날아간 화살이 본진으로 향하고 있다. 다음 순간 적진에서 하는 소리가 크게 들리고 있다. 눈이 좋은 아룡이 300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적진의 본부를 살핀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된다. 총사령관 살리타이의 몸에 정통으로 그 화살이 꽂혀 있는 것이다.  

승병장 김윤후가 사용한 대궁은 고려가 자랑하는 가장 큰 활이다.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장수도 드물다. 워낙 힘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화살은 보통화살보다 두배 이상 크고 길다. 그 대궁의 화살이 적중하고 말았으니 몽골군의 총사령관 살리타이가 현장에서 절명하고 만다.

그것을 보고서 부사령관 탕우타이가 전군 후퇴를 명령한다. 그들은 도중에; 별동부대로 활동하고 있는 1만명의 기병들을 합쳐서 함께 고려의 국경 바깥으로 철군하고 만다. 그때가 음력으로 123212월말이다.

 적들이 물러가자 최우가 강화도에서 내륙으로 나와 두가지 조치를 한다; 하나는, 서경에서부터 살리타이에게 항복하고 적극적으로 그를 보좌한 민족반역자  홍복원을 잡아서 처단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홍복원이 기적적으로 피신하고  만다. 또 하나는, 승병장 김윤후로 하여금 강도로 오게 하여 고종을 예방하도록 주선한 것이다.

고종은 승병장 김윤후의 공을 크게 치하한다. 그리고 그에게 상장군의 벼슬을 내리고자 한다. 그것은 무장에게 주는 가장 높은 벼슬이다. 그러나 김윤후가 담담하게 그 제안을 고사한다.

중년인 승병장 김윤후의 당당한 말소리가 다음과 같다; “전하, 중인 저는 속세를 떠난 자입니다. 상장군 벼슬이 아무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외적이 쳐들어오면 마음 놓고 백성들과 함께 싸울 수 있도록 왕명을 내려 주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상장군 벼슬은 거두어 주시옵소서… “.

그 말을 전해들은 아룡이 속으로 생각한다; “참으로 사형 김윤후는 훌륭한 인물이구나. 백성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고종이나 최우가 본받아야 할 것이다. 나도 사형처럼 몽골의 침략으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고 지켜야만 하겠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이다… “.

일단 물러간 몽골군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몽골제국에서 명장으로 소문난 사령관 살리타이가 어이없게 작은 나라 고려국에서 전사하고 말았으니 그들이 반드시 보복을 하고자 할 것이다. 그래서 아룡이가 1233년 새해에 몽골제국의 소식을 듣고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