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룡전(작성자; 손진길)

소설 아룡전28(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0. 6. 1. 05:38

소설 아룡전28(작성자; 손진길)

 

한편 몽골제국의 고려원정군 사령관인 살리타이는 곧장 남하한 선봉대와 강동성 부근에서 만나게 된다. 선봉대장인 카치운1만명의 몽골군을 지휘하여 효과적으로 강동성을 공략하고 있다. 멀지 않아 강동성을 함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광경을 지켜본 총사령관 살리타이가 선봉대장인 카치운에게 말한다; “그대는 고려의 요새지인 강동성을 잘 공략하고 있구만. 멀지 아니하여 정벌할 수가 있겠어. 역시 내가 자네를 강동성으로 바로 내려 보낸 보람이 있구만… “.

그 말을 듣자 카치운 장군이 말한다; “13년 전에 저는 천부장이었습니다. 그때 징기스칸의 명령으로 휘하의 군대를 이끌고 거란족을 쫓아 고려에 들어와서 강동성을 쳤습니다. 그 점을 아시고 사령관님께서 저를 만부장으로 삼아 이번 원정에 참여하게 하여 주셨으니 거듭 감사드립니다”.

총사령관 살리타이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그래, 그러면 자네는 이곳 강동성을 함락한 다음에 동쪽으로 진행하여 고려의 동쪽해안을 타고서 남하하도록 하게. 나는 서쪽에 있는 고려의 서경을 함락한 다음에 곧장 그들의 왕도인 개경을 정복하고자 하네. 나중에 다시 만나도록 하지… “.

당시 고려의 서경인 평양은 두가지의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고려의 북진정책의 상징이며 전진기지이다. 실제로 모든 북벌계획은 서경에서 수립되어 시행이 되고 있다. 또 하나는, 북쪽에서 침입하는 모든 외적을 물리치고 고려의 왕도인 개경을 굳건하게 지키는 요새지이다.

그와 같은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 서경을 동쪽에서 지키고 있는 성이 사실은 강동성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살리타이가 10여년 전에 강동성을 정복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장군 카치운을 선봉대장으로 삼아 미리 강동성을 공략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본진을 이끌고 서진하여 곧장 서경을 치고 있는 것이다.

생각보다 서경이 오래 버티지를 못한다. 1만명의 몽골군이 공략하자 며칠 버티지를 못하고 무너지고 만다. 그것을 보고서 살리타이는 본진을 이끌고 신나게 개경으로 달린다. 그는 확실하게 개경을 포위하고서 공성작전에 들어가는 것이다.

고려의 막후실권자인 최우는 몽골군을 상대하면서 기가 막힌다. 음력으로 지난 8월에 고려의 국경을 침입한 몽골군 3만이다. 그런데 그들을 맞아 승리를 거둔 곳은 단 한군데 귀주성 뿐이다. 그것도 관군 250명이 백성들과 힘을 합하여 기적적으로 1만명이나 되는 몽골군을 물리쳤다고 한다.   

그런데 2달만에 적군이 수도인 개경에 도착하여 공격을 가하고 있으니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무신정권의 최고실력자인 최우마저 쩔쩔매고 있으니 고려의 국왕인 고종이 신하들과 상의하여 화친을 요청하는 사신을 적장에게 보내고 있다.

살리타이는 허약한 고려 무신정권의 진면목을 확인하고서 자신감을 가진다. 그래서 단번에 고려의 화친사절을 물리치면서 대노하여 말한다; “나는 화친을 원하지 않는다. 강화할 생각이 전혀 없다. 무조건 고려의 항복을 원한다. 그렇지만 만약 그대들이 조건부 항복을 원한다고 한다면 나의 조건이 다음과 같다. 그것은… “.

노련하고 꾀가 많은 살리타이이다. 그가 제시하는 항복의 조건이 까다롭다; “항복의 조건은 무엇보다도, 고려국왕의 친조와 왕자의 볼모이다. 고려의 국왕이 직접 우리 몽골제국의 수도를 방문하여 대칸의 신하가 되는 맹세를 해야 한다. 그와 더불어… “.

고려의 사신을 거만하게 내려다본 다음 적장 살리타이의 말이 이어지고 있다; “첫째, 왕자를 볼모로 넘겨주어야 한다. 둘째, 모든 고려의 주요행정은 대칸이 임명한 다루가치의 승인을 받아서 행하여야 한다. 셋째, 매년 다루가치가 검수한 공물을 대칸에게 바쳐야만 한다. 알겠느냐?... ”.

살리타이의 요구조건을 받아본 고종은 혼자서 결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신하를 최우 장군의 저택으로 보낸다. 최우는 국왕의 친조나 왕자를 볼모로 삼는 일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다만 다루가치가 고려의 내정에 간섭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매년 공물을 바쳐야 한다는 것이 기분 나쁘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내심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당히 약속만 하고 적들을 돌려보내면 된다. 일단 몽골군이 철수하고 나면 이곳에 남게 되는 행정관리인 다루가치 정도야 알아서 다루면 된다. 그리고… “.

 매우 이기적인 최우 장군의 속셈이 드러나고 있다; “공물은 국왕인 고종이 알아서 챙겨 보내는 것이지 내 재산에 축이 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필요한 것은 시간을 버는 것이다. 빨리 야별초를 근간으로 하여 좌별초와 우별초를 만들어 그들이 전문적으로 몽골군을 상대하도록 하면 된다… “.

그 결과 황궁에서 화친사절이 뻔질나게 몽골군 사령관인 살리타이의 군막을 방문한다. 고려국왕의 몽골 수도의 방문만은 안된다고 역설하면서 부디 기타의 조건만 지키는 것으로 하고 철군을 해달라고 거듭 읍소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에 귀주성을 출발한 아룡이 부부의 야별초가 개경 가까이 접근한다. 아룡은 수도인 개경성을 포위하고 있는 몽골군사들을 보자 분노를 참지 못한다. 그래서 그가 적들의 후방을 급습한다.

100명 남짓한 야별초의 공격에 몽골군1,000명이 졸지에 비명횡사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총사령관 살리타이가 부관들을 데리고 급히 대항에 나선다. 살리타이가 동원한 부관들 가운데 몽골의 무예계 고수들이 즐비하다.

그래서 야별초와 팽팽하게 접전을 벌이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아룡이 몇 번이나 자신의 진짜 실력을 보일까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자신이 전력을 다한다면 그들을 물리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이다.

전쟁의 신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면 고려의 실권자인 최우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자신의 정치력에 흠집이 발생하고 마는 것이니 전력을 기울여서 아룡이부터 해치우려고 나설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고려가 풍지박산이 되고 말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자제를 하고 있는 가운데 총사령관 살리타이의 요청으로 동해안으로 진행하던 몽골군 카치운의 부대가 말머리를 돌려서 개경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 사실을 확인한 아룡이 자신의 야별초를 이끌고 그들을 막기 위하여 동쪽으로 간다.

아룡이 부부가 철원지역에서 서진하는 카치운의 부대를 막아 선다. 그곳에서 고려의 야별초 100명과 몽골의 만부장인 카치운이 지휘하고 있는 선봉대와의 전투가 시작된다. 한마디로, 1100의 전투이다. 그 전투가 한달이나 걸린다.

그 사이에 개경에서는 고종의 주도하에 몽골군 사령관 살리타이와 소위 화친조건이 상당히 접근하고 있다. 살리타이는 자신이 만부장인 카치운에게 빨리 개경으로 와서 자신을 도우라고 명령했지만 한달이나 지체가 되는 것을 보고서 그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그 결과 살리타이는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된다. 고려의 야별초가 철원에서 몽골의 선봉대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1100의 전투가 발생하고 있는데 그 수렁에서 카치운의 부대가 빠져나오지를 못하고 있다는 기가 막힌 소식이다.

그 정보를 접하자 살리타이가 즉시 고려국왕이 보낸 화친사절에게 말한다; “고려의 국왕이 수차례 항복을 청하고 있으니 본관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자 하오. 다만 우리도 빈손으로 돌아갈 수가 없으니 고려의 금은을 전리품으로 내도록 하시오. 그리고 이미 약속한 왕자의 입조와 다루가치의 주재를 그대로 시행할 것이요”.

음력으로 몽골군이 12318월에 고려를 침입했는데 벌써 그해 12월에 개경에서는 고종이 항복하는 것으로 강화조약이 체결되고 만다. 그 소식을 도망하는 적군을 뒤쫓아 개경까지 들어온 김경손 장군이 듣고서 분통을 터뜨린다. 귀주성 전투에서 몽골군 부사령관 탕우타이의 군대가 절반이상 죽고 패주한 마당이다.

그러므로 김경손 장군과 병마사 박서의 생각으로는 고려의 병사들이 겁을 먹지 말고 몽골군을 상대하면 능히 승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느닷없이 개경의 조정이 몽골군 총사령관 살리타이에게 항복하다니 말이 안되는 안이한 대응인 것이다.

그래서 용감한 김경손 장군이 휘하의 군사 100명을 지휘하여 철군하고 있는 살리타이의 군대를 치려고 한다. 그것을 말리고 있는 자들이 고종의 신하들과 최우 장군의 심복들이다.

그와 같은 모습을 철원에서 승리하고 개경으로 돌아오고 있던 아룡이 부부가 보게 된다. 그리고 탄식한다; “고려의 국왕은 무조건 적군을 돌려보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백성들이 희생당하고 엄청난 조공의 부담을 지는 것을 별로 가슴 아프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있다. 그 점은 최우 장군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이 나라 백성들은 누구를 의지하여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

몽골의 군대가 고려의 국경 바깥으로 완전히 철수한 것은 이듬해 3월이다. 그들은 고려의 변방에 있는 성읍들을 침범하여 백성들의 재물을 약탈하면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개경에서 국왕이 몽골에게 항복했다는 소문을 듣자 백성들이 몽골군에게 대항하지를 아니하고 있다.

더구나 고려의 왕자가 인질이 되어 적장 살리타이와 함께 동행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러니 철수하고 있는 몽골군을 치는 것은 고려왕실을 능멸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속임수이다. 고종은 왕자가 아니라 왕족에 불과한 회안군 왕정을 왕자로 꾸며서 인질로 보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종이 몽골군에게 항복한 대가가 비극적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살리타이가 72명이나 되는 몽골의 관리를 다루가치라고 하면서 고려에 남겨두고 떠났기 때문이다. 그들이 조공품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고려의 내정에 일일이 간섭하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고려의 실권자인 최우 장군이 뒤늦게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몽골의 관리인 다루가치들은 고려의 국왕과 그 신하들만 상대하지 결코 무신정권의 수장인 최우를 상대하지 않는다. 그렇게 최우를 무시하면서 내정간섭을 하고 있으니 그가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반면에 고종은 몽골이 은근히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기분 좋다.

그러한 정세를 보고서 최우가 결단을 내린다; “좌별초와 우별초를 빨리 조직하라. 군사력으로 나는 몽골과 싸울 것이다. 일단 전국에 흩어져 있는 다루가치들을 처단하라. 그리고 몽골군이 수전에 약하므로 장기적으로 그들과 싸우기 위하여 우리는 강화도로 천도한다”.

그러한 결정이 12325월에 내려진다. 그러자 야별초에서 일하고 있던 장군 김세충이 적극 반대한다; “살리타이가 지휘하고 있는 몽골군을 우리 야별초가 막아내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개경에서 야별초를 더욱 양성하여 적과 싸운다면 능히 저들의 침략을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김세충의 진언이 계속된다; “만약 그러하지 아니하고 강화도로 들어간다면 백성들은 더 이상 몽골군과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할 것입니다. 지도부가 전부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고 말았는데 백성들이 무엇때문에 목숨을 걸고 적과 싸우겠습니까? 그러니 재고하여 주십시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최우가 역정을 낸다. 그래서 아예 김세충 장군을 끌어내고 만다. 하지만 김세충 장군이 목숨을 걸어 놓고 6월에 다시 상소를 올리고 강력하게 천도계획에 반대한다. 그러자 최우 장군이 그의 목을 치면서 선언한다; “김세충은 몽골군을 이길 수 있는 방책을 확실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오직 말로만 이긴다고 주장하면서 강화도 천도계획을 반대하고 있다... “.

최우 장군의 마지막 선언이 나타나고 있다; “나와 군부는 수전에 약한 적을 장기적으로 상대하기 위해서 강화도로 천도하는 전략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그러니 고려의 충성스러운 신민들이라고 하면 다시는 천도계획에 반대하지 말라. 개경을 떠나 황실과 군부 그리고 조정은 조속히 강화도로 들어갈 것이다”.

기어코 최우는 12327월에 개경의 백성 10만명을 강화도로 이주시키고 만다. 그때부터 백성들은 개경을 송도라고 부르고 강화도를 강도라고 부른다. 힘없는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버리고 기득권자들만 안전한 섬으로 피신하고 있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관군이 사라진 육지에서는 도적과 빈민들이 들끓게 된다. 그러한 마당에 몽골제국에서는 대칸인 오고타이가 명령을 내린다; “고려가 약속을 어기고 우리에게 대항하고자 섬으로 피신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살리타이는 다시 원정군을 이끌고 가서 고려를 정복하도록 하라”.

최우가 천도를 강행하자 마자 바로 그 다음달 곧 12328월에 살리타이가 이끄는 몽골의 대군이 다시 고려를 침입한다. 이제 고려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북방에 살고 있는 고려의 백성들이 자신들을 버린 왕실과 군부에게 마치 보복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몽골군에게 협조하고 만다.

그 결과 몽골군은 서경을 접수하고 한달만에 개경을 점령한다. 그들이 계속 남진하여 용인에 이르게 된다. 그때 그들을 맞아서 싸우는 저항세력이 있다. 그들은 결코 관군이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최우의 군부에서 보낸 병사들도 아니다.

용인의 처인산성에서 크게 활약한 군사들은 승병들이다. 그 지휘관이 충주에서 올라온 승병장 김윤후이다. 그리고 야별초를 이끌고 있는 아룡이 부부가 은밀하게 그를 돕고 있다. 어째서 그러한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