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룡전26(작성자; 손진길)
저고여가 압록강변에서 피살되고 나자 몽골은 더 이상 고려의 수도인 개경으로 사신을 보내지 아니하고 있다. 그 대신에 그들은 압록강변까지 전령을 보내어 고려의 장수나 관리 편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전달하고 있다. 그 내용이 무례하기 짝이 없다.
엄청난 배상금을 요구하고 있으며 고려국왕은 앞으로 몽골제국의 칸을 황제로 섬기라는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려의 최고권력자인 최우는 도저히 그 요구를 수용할 수가 없다.
그 요구를 수용하는 즉시 자신의 무력에 의한 대권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몽골제국에서는 고려의 정치적인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국왕이 아니라 군부의 실세인 최우가 독재를 행하고 있는 이른바 비정상적인 무신정권의 왕국임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두 해가 흘러가 1227년 10월이 되자 심양에서 야율진종이 여진족과 거란족의 상품을 가지고 개경으로 들어온다. 그의 행색은 장사치이다. 그는 가지고 온 상품들을 한꺼번에 상인 경종성의 점포에 넘겨버린다.
그리고 그는 개경의 서촌에 있는 아룡의 집을 방문한다. 저녁식사시간에 방문하고 있는 야율진종을 맞아서 아룡이 부부와 송혜진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른다. 특히 야율진종은 자신의 고모가 아룡이 부부와 함께 지내는 것을 보고서 그렇게 좋아한다.
그래서 야율진종이 아룡이 부부에게 말한다; “저의 고모님을 댁에 모시고 함께 사시고 있으니 제 마음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참으로 사제들이 감사해요… “. 그 말을 듣자 아룡과 최사월이 먼저 손부터 가로로 젖고 있다.
그 다음에 부부가 똑같이 말한다; “저희들이 더 좋답니다. 사저께서 저희와 함께 사시니 저희들의 마음이 든든하고 좋아요. 그리고 저희 집에 자주 들리는 어린 제자들이 또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
당시 아룡이 10명의 어린아이들에게 무예를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들 10명을 위하여 가까운 곳에 숙소를 마련하고 있다. 그리고 식사는 송혜진의 수하들이 돌아가면서 준비하고 있다. 또한 그들 어린 제자들이 자주 스승의 집을 방문하고 있는 것이다.
그날 저녁식사를 함께하는 자리에서 야율진종이 색다른 정보를 전해준다; “지난 8월달에 몽골제국의 창건자인 징기스칸이 서하국의 수도를 공격하다가 그만 죽고 말았어요. 천하제일의 영웅이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
아룡부부는 물론 송혜진이 깜짝 놀란다. 그래서 즉시 질문한다; “어떻게 죽은 것입니까? 전사를 한 것인가요?... “. 그 말을 들은 야율진종이 자신의 고개를 가로로 흔들면서 말한다; “그것이 아닙니다. 병으로 죽은 것입니다… “.
질문하던 3사람이 이해할 수가 없어서 어리둥절하다. 그것을 보고서 야율진종이 친절하게 설명한다; “서하 곧 탕구트족을 치러 가는 도중에 호기심이 많은 징기스칸이 고비사막에서 야생하는 말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그때 갑자기… “.
야율진종이 잠시 말을 끊은 다음에 일동을 한차례 둘러보고서 계속 말한다; “무엇에 놀랐는지 야생마들이 한꺼번에 징기스칸을 덮쳤어요. 그 순간 그가 낙마하여 큰 부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불굴의 영웅인 그는 그 몸으로 군사를 지휘하여 탕구트족을 거의 점령하고 마지막으로 그 수도를 공격했다고 해요. 그런데… “.
야율진종이 신이 나서 말한다; “승리가 거의 확정이 되자 그 순간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그 자리에서 징기스칸이 그만 쓰러진 것입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라고 해요. 천하의 영웅의 종말치고는 참으로 허무합니다”.
그 말을 듣자 아룡이 잠깐 다른 생각을 하더니 질문한다; “제 생각입니다마는, 그의 무덤이 어디인지는 밝혀지지 아니하고 있겠군요. 그에 대하여 혹시 얻은 비밀정보가 있습니까?... “.
야율진종이 놀라면서 되묻는다; “사제는 어떻게 듣지 아니하고도 그렇게 추측하고 있는가?... 자네의 판단이 맞아! 대내외에 적이 많은 징기스칸이니 그의 무덤자리를 철저하게 비밀에 붙이고 있지. 그가 승하하였다는 소식만 전해지고 있어... 그 이상을 알 도리는 없지. 하지만 그 이후가 실로 문제거리야… “.
아룡이 먼저 고개를 끄떡이면서 묻는다; “후계자 자리를 두고서 형제 사이에 갈등이 심하겠군요. 누가 유력합니까?... “. 모두들 그 점이 궁금한 모양이다. 따라서 야율진종이 빙그레 웃으면서 고급정보를 말한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평소 징기스칸은 똑똑한 4남을 총애하였다고 해요. 그 이름이 톨루이이지요. 마침 장남이 부친보다 일찍 병으로 죽고 말았기에 무사히 톨루이가 후계자가 되는 것으로 보고 있었는데 그만 징기스칸이 급서하고 나자 정국이 불투명해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역시 영웅의 기질을 보이고 있는 3남 오고타이가 자신의 지지세력을 재빨리 키우고 있기 때문이지요... “.
그 말을 듣자 아룡이 질문한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으로 보십니까?... “. 야율진종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조용한 음성으로 말한다; “저도 그 점이 궁금하여 가형인 야율유가 장군에게 물어보았어요. 그랬더니… “.
야율진종이 잠시 숨을 쉬고서 이어 말한다; “형님의 판단으로는 혼전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일단 징기스칸의 마음에 들었던 4남 톨루이가 정권을 장악할 것으로 보고 있어요. 하지만 그의 형인 오고타이의 세력이 만만하지 아니하기에 장기적인 체제구축은 더 두고 보아야 알 것이라고 말했어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만… “.
아룡이 생각하기에 우문에 대한 현답이다. 그래서 그가 고개를 크게 끄떡이면서 차제에 한가지 중요한 질문을 한다; “그렇다면 몽골이 고려국에 대해서는 어떻게 나올 것으로 보십니까? 더 강압을 행할까요? 아니면 유화적으로 나올까요?... “.
그 질문에 대하여 야율진종이 즉시 답변한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제가 오래 숙고를 했습니다. 저의 결론은 간단합니다. 아직 확실한 후계자가 결정이 될 때까지는 큰 변화가 없겠지만 일단 두 형제 가운데 먼저 권력을 쥐게 되는 자가 강수를 동원할 것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고려국 정도라도 평정해야 정통성을 가진 징기스칸의 후계자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할 수가 있을 테니까요!... “.
아룡 부부와 송혜진이 다 함께 고개를 끄떡인다. 그 다음에 아룡이 이어서 질문한다; “그렇다면, 그 강수란 것이 어떤 종류입니까? 곧바로 몽골군이 대거 남침을 하는 것입니까?”. 야율진종이 뜻밖의 답변을 한다; “아닙니다. 그 이전에 반드시 다른 수를 사용할 것입니다. 그것이… “.
아룡 부부와 송혜진이 모두 야율진종의 입을 쳐다본다. 그들의 귀에 야율진종의 말이 들려온다; “몽골족은 전통적으로 가장 쉬운 방법을 사용하여 적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그 방법이 독약을 사용하거나 암살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반드시 최우를 암살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 점은 제가 장담할 수 있지요… ”.
그 말을 듣자 아룡이 속으로 생각한다; “그럴 것이다. 일설에는 징기스칸의 부친도 독살을 당했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몽골군대가 쳐들어올 때까지 최우 장군을 잘 지켜야만 한다. 신변에 이상이라도 발생하면 큰 일이다… “.
그때부터 아룡이 부부는 백부장 김준에게 부탁하여 최우 장군의 저택에서 다시 격일제로 근무한다. 그것도 24시간 최선을 다해서 불침번을 선다. 그렇게 아룡이 지내고 있는데 1227년말이 되자 몽골제국에서 톨루이가 정권을 장악했다고 하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그 소문을 전해 듣자 아룡이 긴장한다. 드디어 톨루이가 강수를 사용할 것으로 판단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톨루이가 몽골제국의 임시황제가 된 1227년말에 몽골의 자객단이 대거 고려의 개경으로 잠입한다.
그들이 한겨울에 최우의 저택을 은밀하게 침입하고 있다. 무척 추운 밤이다. 사병들이 화톳불을 쬐고는 있지만 잠에 떨어지고 있는 시간이다. 그때 이십명의 암살단이 검은 복면에 흑의를 걸치고 고양이 걸음으로 최우의 침실이 있는 사랑채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 자객단은 참으로 운이 나쁘다. 왜냐하면, 하필이면 그날 밤에 아룡이 숙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날씨가 추워서 아룡이 내공을 운행하여 내기를 끌어올리고 통천하여 외기까지 운기하고 있는 상태이다. 자연히 외기를 통하여 주위의 공기의 흐름을 자신의 감각으로 그대로 전달받고 있다.
그러한 아룡의 초감각에 이십명의 자객단의 운신이 그대로 포착이 되고 만다. 그들 침입자들의 걸음걸이는 사병들의 걸음걸이와 전혀 다르다. 아주 내공이 높은 자들의 경신법이다. 그래서 아룡이 그 기운이 느껴지는 장소로 마치 유령처럼 급히 이동한다.
최우가 잠자고 있는 건물로 정확하게 침투조가 이동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아룡이 잠시 생각한다; “암살단에게 외상을 입히게 되면 출혈이 생겨서 땅바닥에 흔적이 남게 된다. 그러므로 일시에 엄청난 내공으로 전부 내상을 입히도록 해야 한다. 심맥이 끊어져서 즉사하도록 해야 뒤탈이 없다… ”.
생각은 길었지만 행동은 빠르다. 아룡이 자신의 검을 빼어 내력을 9할이나 불어넣어서 암살단의 배후에서 그대로 휘두르고 만다. 무서운 검기가 마치 바람처럼 안개처럼 자객단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 순간 놀랍게도 10여명이 단숨에 쓰러지고 만다. 살아남은 8명의 자객들이 대경실색을 한다. 아룡의 행동이 참으로 은밀하고도 신비롭다. 그가 다시 한번 검을 휘두른다. 그러자 나머지 8명의 자객들이 아무 소리도 내지를 못하고 모두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만다.
아룡이 자신의 무예를 숨기고자 그들을 전부 후원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달빛 아래에서 그들의 신원을 확인한다. 몽골인들이 확실하다. 그리고 상당한 은전을 지니고 있다. 돌아갈 때에 필요한 여비가 맞을 것이다.
‘이 시신들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을까?... 남의 눈에 뜨이는 경우 문제가 될 것이다… ’. 그래서 아룡이 은밀하게 사월에게 마차를 한대 후원으로 끌고 오라고 부탁한다. 두사람이 20명의 시신을 마차에 싣고서 조용히 두문동 산지로 향한다. 그곳에 큰 구덩이를 파고서 전원 묻어버리고 만다.
그들을 도운 자가 아룡의 심복들과 사월의 측근들이다. 그 결과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그 사건이 묻히고 만다. 하지만 몽골제국에서는 그것이 아니다. 무예가 고강한 자들을 골라서 20명이나 개경으로 들여보냈는데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마지막 방법을 사용하고자 검토하고 있다.
애초에 천하의 대영웅인 징기스칸은 고려국과 같이 작은 나라를 정복하는데 있어서 구태여 몽고병사를 동원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복을 요구하는 사신을 보내거나 전령을 보냈다.
그 대신에 징기스칸은 서방원정과 자신에게 항명하고 있는 북방의 세력들을 다시 정벌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었다. 그 때문에 비록 1225년초에 몽골의 사신 저고여가 압록강변에서 피살이 되었지만 즉각적인 몽골군의 내침이 없었다.
그렇지만 징기스칸이 1227년 8월에 죽고 나자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임시 후계자인 톨루이가 눈에 띄는 성과를 얻고자 한다. 따라서 먼저 고려의 독재자인 최우를 암살하고 고려왕과 협상하고자 한다. 그래도 안되면 정복전쟁을 실시하고자 한 것이다.
톨루이의 판단이 옳을 수도 있다. 사실 독재자 최우만 암살해버리면 고려는 대혼란에 빠질 것이며 힘이 없는 고려의 국왕이 몽골제국의 칸에게 항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어떤 영문인지 최우의 암살에 실패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군사적인 정복전쟁만이 남아 있다. 그러나 임시 칸인 톨루이는 아직 지지기반이 확고하지 못하기에 원정군을 보내지는 못하고 있다. 따라서 1229년에 3남 오고타이가 정식으로 징기스칸의 후계자가 되자 그가 드디어 1231년 음력 8월에 고려를 정복하라고 3만명의 원정군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전면전이다. 최우가 급하게 북쪽의 국경을 지키고 있는 장졸들에게 산성에서 몽골군을 막으라고 명령하고 있다.
하지만 고려의 북쪽 국경지대에서 몽골군의 침입이 너무 빠르다. 게다가 몽골의 기병이 대거 3만명이나 한꺼번에 동원이 되고 있다. 벌써 의주성, 인주성, 철주성이 차례로 함락되고 있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바라보면서 아룡이 최사월과 함께 자신들의 별동대를 이끌고 전방으로 이동한다. 야별초는 본래 몽골군을 상대하기 위하여 만든 특수부대이다. 그러므로 야별초를 함께 지휘하고 있는 취객 조하준과 백주환이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고 있다.
아룡이 부부가 자신들의 별동대를 이끌고 가장 먼저 간 곳이 서북면의 귀주성이다. 그곳에서는 병마사 박서와 결사대장인 김경손이 단지 250명의 병사로 귀주성을 굳게 지키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아룡은 기가 찬다. 그래서 혼자서 중얼거린다; “최우가 얼마나 고려의 국방을 허술하게 하였으면 병마사가 있는 귀주성에 정예병 250명만이 남아있는가?... “.
하지만 젊은 결사대장인 김경손의 각오가 남다르다. 그는 개인적으로 최우의 사위인 김약선의 아우이다. 담력이 대단하고 장수다운 장수이다. 그가 아룡과 사월이의 별동대가 도착하자 진심으로 반긴다. 그리고 서로 귀주성을 끝까지 방어하자고 말하고 있다. 과연 귀주성의 전투가 어떻게 전개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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