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룡전25(작성자; 손진길)
8. 몽골군의 침입과 고려군의 대응
1225년 정월에 압록강 근처에서 몽골제국의 사신인 저고여가 살해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는 안전하게 고려의 개경으로 들어오고자 압록강변에서 고려의 관리와 병사들을 만나기 위하여 대기하던 중에 그만 변을 당한 것이다.
혹자는 저고여가 개경에서 임무를 완수하고 귀국하는 길에 압록강변에서 살해를 당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고려의 군사와 관리들을 압록강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는 구체적인 사실과는 잘 어울리지 아니하는 가설로 보인다;
그 사건을 두고서 몽골은 고려에서 암살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한층 고려에 대하여 더욱 강압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고려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트집이다. 왜냐하면, 고려가 파악한 바로는 그 배후가 동진국이기 때문이다. 여진족 군벌인 포선만노가 세운 동진국은 몽골의 압력이 가중하게 되자 그 힘을 빼기 위하여 고려와의 갈등관계를 더욱 조장한 것이다. 만약 몽골과 고려와의 전쟁이 발생하게 되면 그만큼 동진국은 안전할 것으로 계산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동진국의 약은 계산이다. 왜냐하면, 벌써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몽골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219년에 징기스칸이 몽골 군사의 8할을 이끌고 서방원정에 나서자 동진국왕인 포선만노가 얼른 몽골에의 조공을 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몽골은 더 약은 꾀를 사용하여 1234년에 동진국의 왕을 독살해버리고 기어코 동진국을 멸망시키고 마는 것이다.
동진국은 강한 나라가 아니다. 그러므로 항상 줄타기 외교를 하고 군사력도 그렇게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대요수국의 거란족과 만주에서 경쟁을 할 때에는 몽골군으로 하여금 거란족이 세운 대요수국을 치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동진국도 몽골과 연합했다.
나중에는 몽골과 고려의 군사가 연합하여 강동성에 있는 거란군을 쳐부술 때에 동진국의 여진족들은 한발을 빼어 버렸다. 그 이유는 거란족이 완전히 망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동진국 자신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몽골과 고려와의 외교신경전이 오래 진행이 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만만한 요동의 동진국부터 몽골이 먼저 정벌할 것만 같다. 따라서 동진국의 여진족들이 몽골의 사신단을 압록강 유역에서 암살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몽골과 고려 사이에 그것을 계기로 하여 전쟁이 발생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정황을 충분히 알고 있는 몽골이 의도적으로 고려국에게 누명을 씌우면서 굴복을 강요하고 있다. 조공을 바치고 속국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라는 강압이다. 따지고 보면, 1219년에 강동성에서 거란족을 완전히 토벌한 다음부터 몽골이 계속 고려를 압박하고 있다. 그들은 아시아를 정복하기 위하여 그러한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1221년과 1224년에 두차례 사신을 개경으로 보내고 있는데 그것은 많은 공물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한 무리한 요구를 고려국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더구나 무신들이 집권하고 있는 마당에 그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 결과 한치 앞을 알 수가 없는 긴장감이 몽골과 고려 사이에 조성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송혜진은 환갑과 진갑이 다 지난 나이이지만 홀몸이다. 평생 결혼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시위대 백부장으로서 자신의 몫을 전부 감당한 인물이다. 그녀는 젊은 나이에 종진국의 황후였던 야율애령의 제자로서 시위대의 백부장이 되었다.
1189년에 대금의 침략으로 종진국이 멸망을 당할 때에 대비이며 사부인 야율애령의 부탁으로 공주 가족을 모시고 심양으로 탈출하여 숨어서 살았다. 공주인 야율은옥은 개인적으로 백부장인 송혜진 자신의 절친이면서 올케였다.
야율은옥은 5년만에 자신에 대한 대금의 수배령이 해제가 되자 시누이인 송혜진에게 부탁했다. 심양에서 대금에게 보복하는 일은 자신이 맡을 터이니 송혜진에게는 서우진왕의 조국인 고려의 개경으로 들어가서 대금에게 보복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공주인 야율은옥은 자신의 일을 감당했다. 그녀는 장남인 야율유가를 대금의 장군으로 키워서 1211년에 몽골과 결탁하여 만주에서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 만주에 기반을 가지게 된 몽골제국이 1215년에 대금의 수도인 중도 곧 북경을 함락하면서 만주를 거쳐 고려국까지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공주 야율은옥은 장남인 야율유가와 차남인 야율진종에게 말한다; “몽골이 고려를 노리고 있다. 야율종진왕은 고려의 귀족인 서우진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조부의 조국인 고려국을 몽골제국의 침략으로부터 지켜주어야 한다. 개경에 밀파되어 있는 너희들의 고모인 송혜진 백부장에게 내 뜻을 전해달라”.
조카인 야율진종이 개경에서 아룡이와 시전의 상인인 경종성을 만났기에 그 뜻이 무사히 송혜진에게 전달이 되었다. 이제는 송혜진이 몽골제국의 남침을 막고 고려국을 살리기 위하여 계책을 마련해야만 하는 때이다.
송혜진은 다행스럽게도 자신의 뜻을 대신 이루어 줄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 인물이 바로 아룡인 것이다. 송혜진은 자신의 수하들인 낭자군의 자녀들을 두문동 산지의 공터에 모아 놓고 비무를 시키는 과정에서 아룡의 진목면을 보게 된 것이다. 그 무공의 수준이 그 옛날 서우진왕과 비슷하다.
만약 서우진왕이 일찍 향년을 맞이하지 아니하고 생존을 했다고 하면 결코 종진국이 대금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지는 아니했을 것이다. 전쟁의 신이 버티고 있는데 어떻게 외세가 종진국을 무너뜨릴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송혜진은 개경에서 그 전쟁의 신을 다시 만난 것이다. 아룡은 이제 22세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야율종진왕처럼 단명하지는 아니할 것이다. 그와 같이 판단한 송혜진은 자신이 모시고 있는 상전인 최우 장군의 아내인 정하경에게 사의를 청하고자 한다.
송혜진은 고려의 개경에 들어와서 정숙첨의 딸인 정하경에게 무예를 가르쳤다. 정하경은 최우와 결혼하여 시집을 가면서 자신의 무예스승인 송혜진을 데리고 갔다. 그 신분을 친정의 친척인 정순례로 꾸며서 자신의 시비장으로 삼은 것이다.
지난 24년 세월을 함께 지내던 시비장 정순례가 자신의 곁을 떠나고자 한다. 그래서 정하경이 물어본다; “이곳을 떠나서 사부님은 어디로 가시고자 하세요?... ”. 정순례의 대답이 걸작이다. 그녀는 이야기를 꾸며내어 어떻게 해서든지 서촌에 있는 아룡의 집으로 옮겨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 구구절절한 내용이 다음과 같다; “저는 지난번에 최사월을 오십부장인 아룡이와 결혼을 시키는데 있어서 마님의 부탁으로 그 일을 도왔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사람의 인연인지 최사월이 저를 친정어머니로 생각하면서 함께 살고자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최사월을 양딸로 생각하고서 이제는 그 집에서 여생을 편히 보내고 싶습니다. 부디 저의 뜻을 가납하여 주세요, 마님… “.
정하경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래서 오십부장인 최사월을 불러서 ‘정순례를 모친으로 알고 잘 모시라’고 당부하면서 은자를 넉넉하게 지급한다. 지금까지 24년 동안 자신을 보좌하여 준 정순례에게 보답한 것이다. 최사월은 진작에 자신을 양딸로 삼아 여생을 함께 지내고 싶다고 송혜진이 소원하고 있기에 그 뜻을 따르고 있다.
아룡은 말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나이가 많은 사저인 송혜진의 뜻이 무엇인지를 벌써 꿰뚫고 있다. 그녀는 자신을 통하여 고려국을 몽골제국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 일을 위하여 그녀가 최우 장군의 저택에서 지난 24녁간 쌓은 경험을 사제인 아룡이에게 전수하려고 하는 것이다.
아룡의 짐작이 맞다. 서촌에서 함께 살게 되면서 사저인 송혜진이 아룡이에게 최우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해준다. 그것은 상당히 정치적인 것이지만 아룡이 꼭 알아야만 하는 사항이다. 최우 장군의 생각을 먼저 알아야 아룡이가 자신을 보호하면서 고려국을 제대로 지킬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러한 의도로 아룡에게 말하고 있다; “최우(1166-1249)는 최충헌(1149-1219)의 장남이다. 부자간의 나이차이가 불과 17세이다. 그렇지만 최충헌은 최우의 가장 좋은 스승이다. 왜냐하면, 최우는 부친으로부터 어떻게 고려국을 통치하면 되는지를 잘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핵심사항이 내가 보기에는 세가지이다… “.
아룡이 송혜진에게서 들은 내용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1170년에 무신의 난을 일으킨 장군들이 고려의 국왕인 의종을 폐위하고 그 아우를 신왕으로 세웠다. 그가 명종인데 처음에는 별로 권력도 없고 경륜도 없었다. 하지만 오래 무신들을 상대하다가 보니까 경륜이 생겼다. 그래서 1196년에 최충헌이 이의민의 세력을 격파하고 실권자가 되었을 때에 명종이 녹록하지가 않았다.
명종은 최충헌의 계급이 낮았기에 그의 상급자인 장군들을 통하여 그를 견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참지못한 최충헌은 아예 무력으로 1197년에 명종을 폐위하고 그 동생을 신왕으로 옹립했다. 그가 바로 신종이다.
둘째로, 신종은 최충헌의 뜻을 따랐지만 이번에는 지방에서 연이어 반란이 발생했다. 그래서 최충헌은 신종을 폐하지 아니하고 지방의 반란을 토벌하기에 바빴다. 신종이 등창이 심하여 국사를 돌보지 못하게 되자 태자에게 양위하고 그해에 병사했다. 그때가 1204년이며 태자가 고려국왕 희종이 된 것이다.
희종은 정통성을 갖춘 국왕이다. 그래서 신하들이 희종에게 충성을 하면서 난적 최충헌을 암살하고자 여러 번 시도했다. 한번은 최충헌이 국왕의 옥쇄를 받기 위하여 황궁으로 들어갔을 때에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절망의 순간에 최충헌을 구해준 장군이 김약진이다. 그가 최충헌의 심복이며 용호군을 지휘하는 상장군이다.
그때부터 최충헌이 제도를 고쳐서 자신의 위기를 벗어나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교정도감을 만들어 자신을 대신하여 국정을 운영하게 한 것이다. 그 대신에 자신의 집에 정방을 두고서 교정도감을 감독하게 한 것이다. 그 좋은 제도를 아들 최우가 승계한 것이다.
셋째로, 최충헌은 위협적인 희종을 1211년에 폐위하고 그 아우를 대신 왕으로 세웠다. 그자가 바로 강종인데 그는 불운하게도 2년만에 죽고 1213년에 그 아들이 뒤를 이었다. 그가 고종이다. 고종은 최우와는 서로 부딪히지 아니하고 잘 지내고 있는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충헌이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사병의 수를 황궁의 시위대의 수보다 월등하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궁으로 들어오지도 아니하고 군사력도 월등한데 그 누가 감히 나서서 국왕을 위해서 목숨을 걸 것인가? 그러한 제도를 최우가 잘 배워서 다음과 같이 더욱 발전시키고 있다;
첫째, 교정도감과 정방제도를 계속 유지하면서 정방을 동방과 서방으로 분리하여 더욱 전문화한 것이다.
둘째, 호위무사의 수를 더 많이 늘리고 있다.
셋째, 몽골제국의 남침을 우려하면서도 그것을 막는 군대를 결코 관군의 휘하에 두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여 자신의 사병으로 둘 수도 없다. 결국, 호위부대가 아닌 별군으로 야별초를 만들어 운영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송혜진의 결론이 다음과 같다; “사제 아룡이 자네는 고려 개경의 정치에 눈을 돌리지 말고 오로지 야별초를 지휘하여 고려의 백성들을 보호하면 되는 것이야. 그 옛날 통일신라의 장보고는 그러하지를 못하여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지... 그러니 자네는 내가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을 참조하여 그들 정치인들의 싸움에 말려들지 말아야 할 것이야… “.
그와 같은 사저 송혜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룡이 다음과 같이 자신이 입장을 정리한다; “첫째로, 나는 무신정권의 실권자인 최우와 다투어서는 안된다. 적을 목전에 두고서 내분을 일으켜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것은 고려를 더 큰 위기에 빠뜨리는 것이다. 그리고… “.
그의 생각이 이어지고 있다; “둘째로, 나는 고려의 국왕이나 무신정권의 실세인 최우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 아니라 외적의 침입에 시달리게 될 고려국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하여 일하면 되는 것이다. 셋째로, 최우와 고종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항상 생각하면서 나는 그 사이에 끼어서 희생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 그 사이에 끼어들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
그와 같이 자신의 처세술을 정립하고 있는 아룡이다. 그는 과연 예상이 되고 있는 몽골군의 침략에 대하여 장차 어떻게 맞서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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