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손진길 소설) 96

서배 할배96(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96(작성자; 손진길) 1926년초에 서배 할배 손상훈은 동네사람들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전답문서를 가지고 경주의 교리 최부자의 가주인 최현식을 찾아간 적이 있다. 1925년 7월 초순과 9월 초순 사이에 발생한 을축년 대홍수의 피해로 월성 내남 상신과 안심 그리고 박달에 흩어져 살고 있는 자신의 일가와 소작농들이 양식이 부족하여 춘궁기를 버티기 힘들게 된다. 그에 대비하여 지주인 서배 할배가 자신의 땅을 일부 팔아서 이웃을 구휼할 양식을 구하고자 한 것이다; 내남 너븐들 그의 집에서 경주 남쪽 남천내 옆 언덕에 자리를 잡고 있는 교리까지는 편도로 25리 길이다. 그날 왕복을 했으니 하루에 50리길을 걸은 셈이다. 당시 76세의 노인 서배 할배로서는 상당한 무리였으나 고향사람들을 살려야 하겠다..

서배 할배95(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95(작성자; 손진길) 두 해가 지나 1928년이 되자 교리 최부자의 가주인 최현식이 별세를 했다는 부고가 내남 너븐들 서배 할배 손상훈에게 전달이 된다. 서배 할배는 자신보다 3년이나 연하인 지주 최현식이 75세를 향년으로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는 소식을 듣고서 남의 일 같지가 아니하다; 1926년에 손상훈 자신이 을축년 대홍수의 피해로 끼니를 거르고 있는 내남의 일가들과 소작인들의 구휼을 위하여 자신의 전답을 팔려고 가주 최현식을 찾아간 적이 있다. 그때 그가 가지고 간 전답문서의 절반만 받고 서배 할배가 필요로 하는 곡식 전부를 내어준 고마운 사람이 대 지주 최현식이다. 그때의 은혜를 생각하면 서배 할배 자신이 경주 교동 초상집에 문상을 가는 것이 도리이겠지만 지금 그의 나이가 78세나 되..

서배 할배94(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94(작성자; 손진길) 1925년 을축년 7월 초순부터 9월 초순까지 조선반도에 밀어 닥친 네 차례의 태풍과 그로 인한 강의 범람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은 집안이 서배 할배 손상훈의 가문이다. 그 이유는 내남 박달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거랑가의 땅을 3대가 근 100년간 집중적으로 개간하여 1,000마지기의 논밭을 일구어서 경작을 했기 때문이다; 거의 6할의 전답이 이조천의 범람으로 말미암아 진흙과 자갈로 뒤덮이고 말았기에 그것을 복구해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없다. 왜냐하면, 그해 추수가 절반 남짓에 불과하여 생계가 어려워진 일가들과 소작인들을 먹여 살리는데 우선 재물을 쏟아 부어야 했기 때문이다. 서배 할배가 비축을 하고 있는 곡식으로도 부족하다. 그래서 그는 최후의 수단으로 논문서를 가지고 경주..

서배 할배93(작성자; 손진길)

서배할배93(작성자; 손진길) 20. 을축년 대홍수와 서배 할배의 깊은 한숨 1925년 7월에 들어서자 대만지역에서 발생한 태풍이 조선반도의 중부권을 강타하고 북쪽으로 빠져나간다. 집중호우로 인하여 한강이 범람하고 남쪽에 있는 낙동강까지 범람을 하고 만다; 그런데 일주일 후에 다시 대만에서 태풍이 발생하여 조선반도의 중부지역과 북부지역을 강타한다. 그 때문에 한강이 다시 범람하는데 저지대에 속하는 영등포와 용산 일대가 진흙바다가 되고 만다. 무려 3만 정보 이상의 땅이 물에 완전히 잠기고 만 것이다. 그해 8월초에 다시 중국의 남부 양쯔강 지역에서 태풍이 발생하여 조선반도의 북부와 간도지역을 강타한다. 그 때문에 황해도 일대에 큰 홍수가 나고 만다. 그런데 조선반도 남부지역인 호남평야와 영남지역의 농경지..

서배 할배92(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92(작성자; 손진길) 1924년 3월 18일에 내남 너븐들 서배 할배 집에서 셋째 손자인 손수석의 백일잔치가 열린다. 그날 가주인 손상훈 부부와 아들 손영주 부부 그리고 손영주의 친형인 손영한 부부만이 참석을 한다. 겉으로 보면 참으로 조촐하게 가족행사로 치르고 있는 아기의 백일잔치이다. 백일이 되어서 그런지 아기가 제법 기어 다닌다. 그래서 잔치를 하면서 상위에 세가지 물건을 놓아두고 기어가서 아기가 손으로 집도록 만든다; 첫째가 실이 많이 감겨 있는 실패이다. 그것을 집으면 그 아기가 장수를 한다고들 말한다. 둘째가 조선은행에서 발행한 지폐이다. 그것을 집으면 장차 부자가 된다고들 말한다. 셋째가 연필과 종이이다. 그것을 집으면 공부를 잘 할 것이라고 덕담들을 한다. 본래 백일잔치는 유아사..

서배 할배91(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91(작성자; 손진길) 1923년 10월 15일 점심시간에 시작이 된 경주 성동 사랑방모임은 이틀 후 점심식사를 하고서야 끝난다. 평소 같으면 당일 점심식사를 하고나서 오후 3시쯤에 끝이 나는데 그날은 특별히 2박 3일로 진행이 된 것이다. 그 이유는 갑자기 반가운 벗들이 4명이나 멀리서 찾아왔기 때문이다. 부산에 살고 있는 장인식 교장과 안성기 교장, 그리고 북간도 용정에 살고 있는 오경덕 선생과 경성에 살고 있는 권동진 선생 등 참으로 보고 싶은 동지들이 한꺼번에 방문을 했으니 그 기쁨이 대단했던 것이다. 젊은 시절 같으면 일주일 정도 계속 모임을 하고 토론을 하겠지만 지금은 노인들이 되어서 체력상 그러지를 못한다. 따라서 3일째 되는 날 점심식사를 하고서 헤어지기로 한다. 4사람의 동지들을..

서배 할배90(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90(작성자; 손진길) 그날 경주 성동 사랑방모임에서 서배 할배 손상훈이 권동진 선생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을 한다; “권선생님께서 보시기에는 향후 일본제국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으로 보이십니까? ‘관동대지진’ 발생 직후에는 극우세력인 자경단에게 맡겨 소위 ‘일본 우선주의’를 주장하게 하고 조선인을 비롯하여 외인들에게 대하여 공격성 보복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 다음 수습과정에 있어서는 일본정부가 자경단을 해산시키고 우익도 좌익도 아니면서 ‘군사력으로 일본의 제국주의를 실현하는 일본국가주의’로만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서배 할배가 권동진 선생에게 그러한 질문을 하고 있는 이유는 권선생이 군사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권선생은 일찍이 조선에서 무관으로 근무..

서배 할배89(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89(작성자; 손진길) 19. 관동대지진과 그해 태어나는 셋째 손자 서배 할배 손상훈과 부인 이채령이 1923년 10월에 경주 성동 김춘엽 부부의 집을 방문하여 사랑방모임에 참석을 한다. 작년 2월 모임에서부터 사돈 내외가 참석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6사람이 모여서 오붓하게 다과를 나누면서 정담을 나누고 있다. 10월 보름이라 가을걷이가 끝나고 이제는 한숨을 돌리고 있는 좋은 계절이다. 그런데 그날 뜻밖에도 참으로 반가운 손님이 4사람이나 한꺼번에 그 사랑방모임에 찾아온다. 부산에서 온 장인식 교장과 안성기 교장 그리고 북간도 용정에 살고 있는 오경덕 선생 외에 또 한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권동진 선생이다; 서배 할배는 두 교장선생과 오 선생과는 지난 1921년 5월에 헤어지고 거의 2년반..

서배 할배88(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88(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 손상훈과 그의 아내 이채령이 선비 김춘엽 부부와 함께 부산과 대구 그리고 경성과 북간도를 방문하고 돌아온 것이 1921년 5월 중순이 막 시작이 된 시점이다. 4월 하순에 여행을 시작하였는데 그때에 귀가를 했으니 전체 일정이 17일 정도가 걸린 것이다. 아들 손영주와 며느리 정애라가 3자녀와 함께 고향집을 잘 지키고 있다. 벌써 손녀 손해선이 9살이고 장손 손수정이 5살이다. 둘째 손자 손수상은 3달이 지나면 첫돐이 된다. 그런데 서배 할배 내외가 여행에서 돌아온 지 6개월이 지나자 너븐들에서 초상이 난다. 양아들 손영주의 생모인 홍신옥 여사가 그만 63세의 일기로 향년을 맞이하고 만 것이다. 장례는 장남인 손영한이 맏상주가 되어 치르게 되지만 손영주도 둘째 상..

서배 할배87(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87(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 손상훈과 김춘엽 선비는 내남 너븐들과 경주 성동의 집을 떠나온 지가 보름이나 되고 있다. 동갑인 두사람은 72세의 나이라 더 이상 외국을 여행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더구나 경기도 원당에서부터 동행을 하고 있는 손예진 여사는 74세의 고령이라 더 이상의 여행이 무리이다. 따라서 그들은 왔던 길을 되돌아서 집으로 돌아가고자 결정을 한다. 그와 달리 어린시절과 젊은 시절을 일본에서 성장한 60대의 장인식 교장과 안성기 교장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리고 두 사람과 같이 일본에서 자란 오경덕 선생도 차제에 그들과 함께 중국 동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상해의 임시정부를 방문하고 싶어한다. 따라서 북간도 용정에서 두팀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집으로 귀환하는 팀이 용정역에서 불러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