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손진길 소설) 96

서배 할배86(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86(작성자; 손진길) 손예진 여사가 포함이 됨으로써 방문단은 이제 9명이 되었다. 그들은 경성 남대문정차장으로 되돌아가서 원산까지 가는 ‘경원선’ 열차를 탄다. 1914년에 경성에서 원산까지 가는 경원선이 개통이 되어 지금까지 운행이 되고 있지만 그곳에서 함경도 회령까지 가는 함경선은 아직 개통이 되지를 못하고 있다. 참고로 그것은 1928년이 되어야 완공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행은 원산역에 내려서 버스를 이용하여 그 먼 함경도 회령까지 가야만 한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보통 고역이 아니다. 물론 요금도 기차에 비하면 엄청 비싸다. 그렇지만 그나마 버스가 운행이 되고 있는 것도 고마운 노릇이다. 물론 그것은 그들 방문단을 위하여 운행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함경도의 지하자원을 개발하기..

서배 할배85(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85(작성자; 손진길) 경기도 원당에 살고 있다는 고 최사권 선비의 미망인 손예진 여사를 만나러 가기 위하여 8명의 경성방문단은 종로여관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남대문정차장에 가서 경의선 열차를 탄다. 1906년에 일본제국이 조선땅에 완공한 것이 경성에서 신의주까지 가는 ‘경의선’ 철도이다. 일본은 경성에서 부산까지 가는 ‘경부선’ 철도를 3년 9개월간 공사하여 1905년에 완공한데 이어 경의선 철도는 단 13개월만에 지극히 빠른 공정으로 1906년에 완공한다. 그 이유는 임박한 러일전쟁을 수행하기 위하여 전쟁물자와 군인을 대규모로 신속하게 철도를 이용하여 북쪽으로 실어 날라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일본제국의 흉계를 모르고 순진한 고종황제는 경부선과 경의선 철도차량에 자신의 전용 칸을 호화스럽게..

서배 할배84(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84(작성자; 손진길) 8명의 방문단이 머물고 있는 종로의 여관에서 창경궁까지는 별로 멀지가 않다. 그래서 아침식사를 여관에서 마친 그들은 천천히 걸어서 창경궁으로 간다. 이제는 창경궁이라는 말 대신에 ‘창경원’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더 이상 창경궁에는 조선의 왕이 살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그것을 왕궁이 아니라 일반백성들에게 공개하는 장소인 ‘창경원’으로 부르고 있다. 둘째, 많은 사람들이 창경원을 찾아가는 이유는 그곳에 ‘식물원’과 ‘동물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 옛날 왕만이 즐기던 왕궁의 비밀정원인 ‘비원’을 이제는 일반백성들이 찾아가서 즐길 수가 있다. 식물원에서는 여러가지 식물이 자라고 있다. 그리고 동물원에서는 온갖 진귀한 동물들이 우리에 갇혀 있어 일반..

서배 할배83(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83(작성자; 손진길) 1921년 4월말의 경성은 그 기차역의 건물이 옛날 ‘남대문정차장’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서 별로 볼 것이 없다. 그것을 보고서 경주에서 온 사랑방모임의 동지들은 경성이 대구나 부산 등과 비슷한 것이 아닌가하는 첫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4년 남짓 지나게 되면 그것이 아니다. 1925년 9월에 ‘경성역’ 건물이 르네상스 형식으로 완공되기 때문에 경성의 첫인상이 획기적으로 달라지게 된다. 그 점을 사진으로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서배 할배 손상훈과 부인 이채령, 김춘엽 선비와 부인 이가연, 장인식 교장과 최순옥 부부, 안성기 교장과 이다연 부부 등 8명의 경성방문단은 종로로 이동하여 ‘종로여관’에 여장을 푼다. 그들은 앞으로 일주일 정도 경성에 머물면서 대한제국이 사라지고 ..

서배 할배82(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82(작성자; 손진길) 부산에서 대구로 가는 열차는 경주를 거쳐서 올라간다. 그러므로 5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이다. 서배 할배 손상훈 부부와 선비 김춘엽 부부 그리고 장인식 교장 부부와 안성기 교장 부부 등 8명이 같은 열차로 대구로 가고 있다. 그렇게 열차여행을 하고 있는 때가 1921년 4월 하순이다. 봄의 향기를 느끼게 되는 좋은 계절이다. 차창문을 조금 열어 두자 봄바람이 시원하게 밀려 들어오고 있다. 기차 내에서는 젊은 역무원이 간식거리를 팔고 있다. 삶은 달걀과 구운 오징어가 배고픔을 달래어 준다. 서로들 그것을 사서 먹으면서 이야기를 한다. 대구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먼저 안성기 교장이 말문을 연다; “저는 1894년에 경주에서 출발하여 충청도와 전라도를 돌아다녀 보았는데 그때에는..

서배 할배81(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81(작성자; 손진길) 1919년 6월달 경주 성동 김춘엽 선비의 사랑방모임에 참석을 한 장인식 교장과 안성기 교장은 헤어질 때에 자신들의 부산 주소를 서배 할배 손상훈과 김춘엽에게 준다. 그리고 내년은 서배 할배와 김춘엽 두사람이 고희가 되는 해이니 반드시 자신들이 살고 있는 부산으로 한번 놀러 오라고 초청을 한다. 그렇게 두 선비는 장교장과 안교장의 초청을 받았지만 그 다음해인 1920년에는 그들을 방문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김춘엽 선비의 경우에는 노모께서 별세를 하셨기에 초상을 치르느라고 바빴고 서배 할배의 경우에는 두번째 손자가 태어나는 해라서 나름대로 바빴던 것이다. 며느리 정애라가 배가 많이 불러 있었기에 시어머니인 이채령이 며느리를 대신하여 8살인 손녀 손해선과 4살인 손자 손..

서배 할배80(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80(작성자; 손진길) 장인식 교장의 첫마디가 다음과 같다; “저는 다행스럽게도 지난 3월 하순에 부산으로 저를 은밀하게 찾아온 오경덕 선생의 도움으로 3.1만세운동의 시작과 그 다음 수순에 대한 중요한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점을 먼저 말씀 드린 다음에 제 나름대로 수집한 정보를 분석한 결과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러자 지난 1월달에 벌서 오경덕 선생을 만나본 내남의 서배 할배 손상훈과 이채령 그리고 경주 읍내의 김춘엽과 이가연은 고개를 끄떡인다. 그 모습을 보고서 이번에는 안성기 교장이 보충설명을 한다; “물론 지난 3월 하순에 오경덕 선생이 부산으로 와서 장인식 교장 뿐만 아니라 저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잠시 쉰 다음에 안교장이 이어서 말한다; “그때 저도 필요한..

서배 할배79(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79(작성자; 손진길) 1919년 4월말에 서배 할배 손상훈은 부인 이채령과 함께 경주 읍내 성동에 있는 김춘엽의 저택을 찾아간다. 옛날 사랑방모임의 인사들이 이제는 그들 두 가정밖에 남아 있지 아니하다. 그러므로 5가정이 내남 덕천 최사권 선비의 사랑방에서 2달마다 정기집회를 가지고 열띤 토론을 전개하던 그 시절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손상훈 부부와 김춘엽 부부가 그저 서로의 관심사를 간단하게 나누고 친선을 도모하는 정도의 모임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날 김춘엽이 참으로 반가운 소식을 전하고 있다; “부산에 살고 있는 장인식 교장과 안성기 교장이 부부동반으로 6월달 사랑방모임에 한번 참석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부산에서 경주까지 기차를 타고 오면 그렇게 멀지가 않다고 말하고 있군요”; 그 말..

서배 할배78(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78(작성자; 손진길) 18. 평화적 만세운동이 남긴 교훈 1919년 1월말에 오경덕 선생이 내남 너븐들 서배 할배의 집을 떠나 한성으로 상경하고 있다. 그런데 그를 떠나 보내면서 서배 할배 손상훈은 지난 밤에 사랑방에서 그와 둘이서 나눈 은밀한 이야기를 새삼 생각해본다. 그 내용이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작년부터 북간도 용정 명동마을에 살고 있는 오경덕 선생이 한성을 방문하여 손병희 선생과 권동진 선생을 몇 번 만났다고 한다. 지난 10년 동안 천도교를 후임자에게 완전히 맡겨 두고 학원사업과 언론사업 그리고 기금마련에만 전념하고 있는 손병희 선생 그리고 그의 한쪽 팔이 되고 있는 권동진 선생에게 오경덕 선생은 다음과 같은 요지의 엄중한 말씀을 드렸다고 한다; 첫째, 1907년 6월 네델란드 헤..

서배 할배77(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77(작성자; 손진길) 1919년 정월이 되자 귀한 손님이 내남 너븐들 서배 할배의 집을 찾아온다. 그는 그 옛날 1877년부터 양삼마을의 서당에서 생도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치다 1893년에 충청도로 이주를 한 오경덕 선생이다. 1855년생인 그도 이제는 65세의 노인이다; 오경덕 선생이 대문간을 들어서는 것을 마침 사랑방문을 열어 두고서 마당을 바라보고 있던 서배 할배 손상훈이 인지한다. 머리털이 희어져 있지만 오경덕 선생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69세의 노인이 된 서배 할배가 그를 맞이하기 위하여 반갑게 마당으로 나선다. 두 늙은이가 감격적인 포옹을 한 다음에 두 손을 맞잡고 함께 사랑방에 들어선다. 그러자 그들이 마당에서 만나는 소리를 안방에서 듣게 된 이채령이 멀리 충청도에서 오경덕 선생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