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83(작성자; 손진길)
1921년 4월말의 경성은 그 기차역의 건물이 옛날 ‘남대문정차장’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서 별로 볼 것이 없다. 그것을 보고서 경주에서 온 사랑방모임의 동지들은 경성이 대구나 부산 등과 비슷한 것이 아닌가하는 첫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4년 남짓 지나게 되면 그것이 아니다. 1925년 9월에 ‘경성역’ 건물이 르네상스 형식으로 완공되기 때문에 경성의 첫인상이 획기적으로 달라지게 된다. 그 점을 사진으로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서배 할배 손상훈과 부인 이채령, 김춘엽 선비와 부인 이가연, 장인식 교장과 최순옥 부부, 안성기 교장과 이다연 부부 등 8명의 경성방문단은 종로로 이동하여 ‘종로여관’에 여장을 푼다. 그들은 앞으로 일주일 정도 경성에 머물면서 대한제국이 사라지고 일본제국이 조선을 통치하게 되면서 어떠한 변화가 그 옛날 한양에서 발생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도착한 첫날은 피곤하여 우선 여관에서 휴식부터 취하고자 한다. 대구역에서 전날 오후에 열차로 출발하였는데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경성에 도착한 것이다. 물론 그 옛날 한양까지 과거를 보기 위하여 보름길이나 걸어서 상경을 하던 조상들 생각을 하면 그것은 참으로 빠르다.
그러나 일흔이 넘은 서배 할배와 김춘엽 선비에게 있어서는 엄청 피곤한 여행이다. 따라서 남대문에서 역사를 빠져나오자 마자 얼른 인력거를 불러 타고서 미리 예약을 해 둔 종로여관으로 직행을 하여 휴식을 취한 것이다. 조금 기력을 회복하자 일동은 배가 출출하다.
그들은 종로여관 부근에 있는 식당골목을 찾아서 골목길로 들어 간다. 꽤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는 식당을 한군데 선택하여 그 안으로 들어선다. 그날 그들이 그곳에서 처음으로 먹어본 음식이 그 당시 경성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설렁탕’이다;
대구에서 그들이 맛본 ‘소고기국밥’과 비교를 하면 좀 싱거운 맛이다. 소뼈와 도가니 등을 넣고서 오래 고아서 우려낸 국물에 고추가루와 파를 넣어 다시 한번 끓여서 식탁에 내고 있는 ‘소고기국밥’과 같은 깊은 맛이 나는 음식은 아니다. 그러나 쇠고기만으로 고와서 낸 국물과 얇게 썰어 넣은 고기 맛이 나름대로 일품이다.
한 그릇 잘 먹고 났더니 다시금 힘이 난다. 그래서 일행은 종로 일대와 그 남쪽의 거리들을 좀 걸어보고자 한다. 그 옛날 조선시대에 ‘운종가’라고 불리던 종로에는 여전히 상가가 많다;
종로를 벗어나 남쪽으로 한참을 걸었더니 일본인들이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혼마찌’가 나타난다. 오늘날의 ‘명동’이다;
일본인들의 왕래가 많고 특히 일본어로 간판이 적혀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왕 명동까지 왔으니 그 다음에는 더 걸어서 모두들 남대문이 있는 곳까지 가보고자 한다. 그곳으로 가는 거리에 ‘남대문통’이 먼저 나타나고 있다. 넓은 거리에 가로변에는 여러 개의 상점이 보이고 있다;
남대문이 보이는 거리 그 앞에는 전차가 많이 다니고 있다. 그리고 그 거리의 옆에는 제법 높은 빌딩에 ‘세브란스 병원’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근대식 병원이다;
그날 그들이 본 경성의 시가지와 건물 가운데 인상적인 것은 조선은행 본점 앞 넓은 광장이다. 은행의 맞은 편에는 경성우편국이 위치하고 있다;
그렇게 넓은 광장이 경성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하는 것이 좋은 인상을 주고 있다. 일본제국이 조선을 집어 삼켰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은행과 우체국 그리고 병원 등을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혜택을 조선사람들도 보고 있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그 다음날 그들 일행이 다시 경성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보니 어제 보지 못한 것들이 보이기를 시작한다. 그 가운데 두가지가 그들의 마음을 참으로 아프게 한다;
첫째, 조선주둔군 사령관이 살고 있다고 하는 관저가 그들의 눈에 들어오고 있다;
일제가 조선에서 총독부를 두고서 정상적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또한 행정적으로 실시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내는 그것이 아니다. 일본제국은 조선을 식민지로 여기고 있으며 실제로는 군사력으로 통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대의 헌병을 내세워서 조선의 경찰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만약 일본 헌병이 조선의 백성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그 경성의 관저에 살고 있는 일본인 사령관이 언제라도 일본군대를 지휘하여 진압에 나설 것이다.
아직도 1894년 겨울에 동학농민혁명군을 미국식 신식 기관총으로 볏단 쓰러뜨리듯이 그렇게 수만명을 살해하던 그들 일본군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 조선의 백성들이다.
그런데 그때보다 훨씬 발달이 된 무시무시한 무력을 안으로 숨기고 겉으로는 문화정책을 웃으면서 시행하고 있는 자들이 바로 조선을 통치하고 있는 그들 일본인들이다. 그러므로 그 관저를 보면서 방문단 일행 8명은 등골이 오싹한 것이다.
둘째, 경성에는 조선인 민족주의자들을 잡아서 고문을 하고 차가운 감방에서 병을 얻어 결국 죽도록 만들고 있는 일본인들의 무서운 감옥이 있다. 그 감옥을 멀리서 그들이 바라 본 것이다;
지난 1919년 3월 1일에 만세시위를 주도한 민족지도자 33인이 그 감옥에 갇히어 있다. 언제 그들이 풀려나올 것인가? 그들 방문단 8명이 잘 알고 있는 손병희 선생과 권동진 선생이 아직도 그 높은 담장 안에 갇히어 있는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서 그들은 그 두사람을 비롯하여 모든 민족지도자들이 하루 속히 그 감옥에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될 수 있기를 손을 모아 간절히 빌어보고 있다. 그렇게 서배 할배 손상훈 부부와 선비 김춘엽 부부 그리고 장인식 교장 부부와 안성기 교장 부부 등 방문단 8명의 경성에서의 이틀째 일정이 끝나고 있다.
내일은 창경궁이 아니라 창경원으로 변하고 만 그곳을 중심으로 하여 경성의 풍물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들 경성사람들은 조선시대에 비하여 과연 어떠한 생활의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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