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84(작성자; 손진길)
8명의 방문단이 머물고 있는 종로의 여관에서 창경궁까지는 별로 멀지가 않다. 그래서 아침식사를 여관에서 마친 그들은 천천히 걸어서 창경궁으로 간다. 이제는 창경궁이라는 말 대신에 ‘창경원’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더 이상 창경궁에는 조선의 왕이 살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그것을 왕궁이 아니라 일반백성들에게 공개하는 장소인 ‘창경원’으로 부르고 있다.
둘째, 많은 사람들이 창경원을 찾아가는 이유는 그곳에 ‘식물원’과 ‘동물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 옛날 왕만이 즐기던 왕궁의 비밀정원인 ‘비원’을 이제는 일반백성들이 찾아가서 즐길 수가 있다. 식물원에서는 여러가지 식물이 자라고 있다. 그리고 동물원에서는 온갖 진귀한 동물들이 우리에 갇혀 있어 일반인들이 마음껏 볼 수가 있다;
더구나 창경원 앞까지 경성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는 전차가 들어오고 있다. 그것은 창경원을 찾는 시민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는 조선왕의 위엄이라고 하는 것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는 무언의 표현이다. 일본제국에 의하여 조선의 왕조가 사라지고 이제는 조선의 백성들이 옛날 왕궁자리를 마음껏 들어갈 수가 있게 되었으니 그것을 고맙게 생각하라는 무언의 표현인 것만 같다;
특히 그들 8명의 방문단이 창경원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상춘객들이 그곳에서 벚꽃놀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조선왕이 살았던 왕궁을 짐승의 우리로 만든 것에 그치지 아니하고 이제는 일본의 나무인 사쿠라를 많이 심어서 그것을 조선백성들이 무의식적으로 즐기도록 만들고 있다.
대구의 달성공원에서 보았던 그 많은 벚꽃나무들과 부산의 거리에서 보았던 그 많은 벚꽃나무들은 조선의 지방도시에 심어져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일제는 지방에 그치지 아니하고 조선의 수도 그것도 왕궁에 일본의 벚꽃을 많이 심어 봄철에 사쿠라가 만개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마치 봄의 전령을 맞이하는 것처럼 조선의 백성들이 즐기고 있다. 그렇게 정신없이 즐기고 있는 사이에 조선백성들의 혼은 일제에게 잡아 먹히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기에 8명의 방문단은 오전 내내 창경원의 구석구석을 보면서도 그 마음속 한구석이 영 불편하다. 그래서 남들보다 조금 일찍 창경원 구경을 마치고 바깥으로 나와서 식당골목을 찾는다. 따뜻한 설렁탕 한 그릇을 매운 김치와 함께 먹고 그 국물을 단숨에 후루루 마셔야 얹힌 속이 좀 내려갈 것만 같다.
식당을 나서서 서울 중심지의 거리를 걷다가 보니까 시골인 경주나 월성에서는 보지 못한 조선사람들의 의복에 대한 유행이 눈에 보인다. 그리고 여러 식당에서 팔고 있는 음식이 전통적인 조선의 것이 아니라 상당히 색다른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가게의 점포에서 팔고 있는 서적도 여러 나라의 것이다. 또한 가게의 축음기판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노래도 외국의 노래들이 많다. 그 가운데 유독 일본어로 된 노래가 유행을 하고 있다. 조선의 수도인 한양이 언제부터 이렇게 일본의 도시와 같은 면모를 보이고 있는가?
그 이름이 한양에서 한성으로 그리고 이제는 경성으로 바뀌고 있는데 불과한 것이 아니다. 서양의 풍물 특히 일본의 풍물이 흘러 넘치고 있는 것이다. 그저께 그들은 훗날 ‘명동’이라고 불리게 되는 ‘혼마찌’에서 많은 일본인들이 일본인 복색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제는 서양의 신사복을 입은 남자들과 양장을 한 여인들을 길거리에서 흔하게 본다. 그렇게 차려 입은 조선인들도 많지만 그 가운데에는 서양인들도 더러 눈에 뜨이고 있다. 그렇다면 경성은 이제 국제도시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은둔의 나라 조선’이 아닌 것이다.
그러한 관심을 가지고 그 다음날은 경성에 있는 소학교와 중학교를 좀 찾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신문사도 구경하고자 한다. 나아가서 교회당과 카톨릭 성당도 한번 찾아 보고자 한다. 그리고 조선을 다스리고 있는 총독부의 청사와 그들의 기관들의 건물도 가능하면 좀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날 일정을 실시하는데 있어서는 장인식 교장과 안성기 교장이 앞장을 섰다. 그들이 먼저 경성에 있는 소학교와 중학교에 섭외를 하여 방문단을 끌고 간다. 경성의 학교 모습을 보고서 방문단 일행은 깜짝 놀란다. 그들이 20년전에 일본의 동경에서 보았던 학교의 모습과 외양이 똑 같았기 때문이다.
수업도 가급적 일본어로 진행을 시키고 있다. 그러니 학생들만 조선인이고 일부 선생이 조선인이지 나머지는 일본의 교육과 똑같은 것이다.
경성에 있는 신문 가운데에서는 세가지가 있다; 첫째, 조선어로 발행이 되고 있는 신문이다. 둘째, 영어로 발행이 되고 있는 신문이다. 셋째, 일본어로 발행이 되고 있는 신문이다. 일본어 신문은 일제가 만들고 있는 ‘경성일보’가 대표적인데 그 신문사는 좋은 사옥을 가지고 있다;
8명의 방문단은 명동의 입구에서 언덕에 높이 솟아 있는 카톨릭의 성당을 본다. 그것이 ‘명동성당’이다. 조선시대에는 그토록 박해를 받던 카톨릭이 이제는 경성 한복판에 버젓이 큰 성당을 지어 놓고 맘대로 종교활동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종교의 자유가 있는 경성이므로 시내에 신교의 예배당이 여럿 눈에 띄고 있다. 그 가운데 감리교회가 우세하다;
조선총독부는 남산에 있는 통감부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1916년에 공사를 시작하고 있는 조선총독부 새 건물이 완성이 되면 경복궁 앞으로 이전을 한다고 하는데 아마도 10년 정도 공사기간이 소요가 되는 모양이다. 참고로 8명의 방문단이 1921년에 찾아보고 있는 남산의 조선총독부 건물이 다음과 같다;
그리고 일행은 다시 자세히 경성의 중심광장에 서서 오른쪽에 있는 조선은행 건물과 왼쪽에 있는 경성우편국 건물을 쳐다본다. 상당히 멋있게 지어져 있는 건물들이다;
또 하나 그들이 본 것은 개축이 된 ‘한성병원’이다. 그 역사가 참으로 오래된 병원이다. 그래서 1900년에 개축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경성에는 좋은 병원이 많다. 지방출신인 그들 방문단은 그것이 부럽다;
그리고 경성사람들은 식도락도 즐기고 상점에서 물건 사는 것도 즐기고 있는 모양이다. 사람들이 그러한 가게에 많이 몰리고 있다. 그리고 운동선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운동을 즐기고 있는 모양이다. 분명히 시골에서는 볼 수가 없는 여가생활과 취미생활을 경성사람들이 하고 있다;
그 점을 보고서 조선의 수도인 경성은 그들 지방의 도시와는 확실히 다르다고 하는 느낌을 경주와 부산에서 온 방문단이 받고 있다. 그것으로 경성 방문 4일째의 일정이 끝나고 있다. 내일은 경기도 원당에 살고 있다는 손예진 여사의 집을 방문하고자 한다.
작고한 최사권 선비의 미망인 손예진이 아들과 딸의 권유로 내남 덕천의 재산을 정리하여 그곳에 이사하여 살고 있다고 서배 할배 손상훈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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