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손진길 소설)

서배 할배85(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9. 26. 13:09

서배 할배85(작성자; 손진길)

 

경기도 원당에 살고 있다는 고 최사권 선비의 미망인 손예진 여사를 만나러 가기 위하여 8명의 경성방문단은 종로여관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남대문정차장에 가서 경의선 열차를 탄다. 1906년에 일본제국이 조선땅에 완공한 것이 경성에서 신의주까지 가는 ‘경의선’ 철도이다.

일본은 경성에서 부산까지 가는 ‘경부선’ 철도를 3년 9개월간 공사하여 1905년에 완공한데 이어 경의선 철도는 단 13개월만에 지극히 빠른 공정으로 1906년에 완공한다. 그 이유는 임박한 러일전쟁을 수행하기 위하여 전쟁물자와 군인을 대규모로 신속하게 철도를 이용하여 북쪽으로 실어 날라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일본제국의 흉계를 모르고 순진한 고종황제는 경부선과 경의선 철도차량에 자신의 전용 칸을 호화스럽게 만들게 하여 여행을 즐기고자 한다. 참고로, 당시 고종의 열차 전용 칸의 모습이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일제는 철로를 복선으로 하지를 못하고 급한대로 단선으로 설치한 것이다. 그리고 1910년 조선을 병합한 다음에는 만주로 진출하고자 1911부터 압록강철교를 부설하게 된다;

 그들은 만주를 거쳐 중국까지 철도를 이용하여 군대를 이동시키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당시 중국의 만주와 러시아의 연해주에 조선인 정착촌을 만들어 놓고 착실하게 독립군을 기르고 있는 조선 반군들의 기지를 박살내고 싶은 것이다.

그러한 일본의 군사적인 필요에 따라 설치가 된 경의선 철도를 이용하여 경주와 부산에서 온 경성방문단 8인은 편하게 경기도 고양에 있는 원당마을을 찾아간다. 서배 할배 손상훈이 미리 재종 누나인 손예진이 받아 볼 수 있도록 경성에서 전보를 쳐 두었기에 그녀가 그날 아들과 딸을 모아 놓고 방문단을 기다리고 있다.

서배 할배 손상훈과 부인 이채령, 선비 김춘엽과 부인 이가연, 장인식 교장과 부인 최순옥, 안성기 교장과 부인 이다연은 손예진 여사를 보고서 너무나 반가워한다. 특히 부인 4명은 나이가 많은 손예진 여사를 끌어 안고서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내남 덕천 사랑방모임에서 함께 나눈 세월이 수십년이 아닌가? 그리고 20년 전에는 모두 한달 가까이 일본방문을 한적이 있지 아니한가? 그렇게 인생을 함께 살아온 그녀들이니 그 반가움과 감회는 말로 다할 수가 없는 것이다.

금년에 춘추가 73세나 되는 노인 손예진이 일행을 사랑방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아들 최경도와 딸 최영란을 방문단들에게 인사를 시킨다. 최경도는 1870년생이므로 벌써 52살이다. 딸 최영란은 1873년생이므로 그녀의 나이도 49살이나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과 친한 방문단 인사들이므로 정중하게 절을 한다.

그 절을 받으면서 8명의 방문단은 맞절을 한다. 그리고 선친을 대신하여 그 집안의 가장이 되고 있는 최경도에게 일행을 대표하여 김춘엽이 인사를 한다; “최선비께서 이렇게 선친에게 신세를 많이 진 바 있는 저희 일행을 각별하게 맞이하여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기에 인사가 늦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최경도가 더욱 정중하게 말한다; “어르신, 말씀을 편하게 하십시오. 선친과 오래 사랑방모임을 같이 하셨다는 사실을 어렸을 때부터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나이는 50줄이 되었지만 아직 제 마음은 그때와 같습니다. 어릴 적의 저를 보셨으니 그렇게 편하게 대해 주십시오. 제가 앞으로 ‘숙부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러자 손예진 여사가 아들에게 한마디를 한다; “하기야 여기 자리를 함께 하고 계시는 서배 할배야 말로 외가로 따지자면 경도 너의 재종 숙부이시다. 그리고 그 부인이신 이채령 여사는 너의 숙모가 되시지. 또한 장인식 교장의 부인 최순옥은 너의 선친의 일가 질녀이시지. 그러니까 경도 너에게는 촌수가 멀지만 나이가 많은 누님이시란다”.

그 말씀을 들은 최경도와 그의 여동생 최영란이 더욱 깍듯하게 서배 할배 부부와 장인식 교장 부부에게 예의를 갖춘다. 멀리 경주와 부산에서 먼 친척이 방문을 하였으니 반갑기 그지 없는 것이다. 인사가 그쯤 끝나자 최영란이 부엌으로 가서 점심식사 차려 놓은 것을 가지고 온다. 칼국수를 맛있게 빗어 놓은 것을 방금 조개와 닭고기를 넣어서 다시 끓여서 내온 것이다;

식사를 하는 도중에 서배 할배 손상훈이 재종 누나인 손예진 여사에게 질문을 한다; “누님, 3년전 1918년 가을에 아드님을 따라 상경하시면서 아들 최경도는 경성에 살고 있고 따님 최영란이 경기도 원당에 살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제는 어째서 모두 고양 원당마을에 함께 살고 있는지요?”. 아직 기억력이 상당히 좋은 서배 할배 손상훈이다.

손예진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쉽게 답을 한다; “아 그거, 동생. 여기 경기도 고양 원당마을에는 최씨들이 많이 살고 있어. 본래는 영천에서 올라온 최씨들이 터를 잡고 살았는데 나중에 경주와 월성에서 올라온 최씨들이 함께 살게 된 거야. 여기 원당마을은 그 이름처럼 인심이 좋아. 그리고 최씨들이야 본래 그 뿌리가 전부 하나가 아닌가?  신라 6촌의 하나인 최소벌에서 비롯된 같은 혈통이지…”.

서배 할배가 알겠다는 듯이 말한다; “아 그럼, 최영란이는 이곳 마을에 타성인 남편을 따라 들어와서 산 것이군요. 그리고 최경도는 경성에서 일을 하다가 나중에 이곳으로 이사를 한 것이고요…”. 손예진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동생 말이 맞아. 내가 자초지종을 말해 줄께…”.

손예진이 웃으면서 말한다; “최영란의 남편은 여주 이씨인데 경성에세 도목수로 일하여 돈을 많이 벌었지. 나중에는 이곳 원당마을에 기와집을 몇 채 짓게 되면서 아예 이 마을에 터를 잡고 살게 된 거야. 도목수이니까 마을사람들이 같이 살자고 한 거지. 그리고 자기가 지은 집 가운데  제일 좋은 집을 손위 처남인 최경도에게 싸게 팔면서 이웃에 함께 살자고 한거야. 나도 같이 살기를 원했고… 우리 경도가 효자지… 호호..”.

손예진 누나가 행복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니 서배 할배와 이채령이도 마음이 놓이고 참 좋다. 그래서 누나의 말 그대로 최경도가 효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손예진의 사위인 이서방도 참 심성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 장인식 교장의 아내인 최순옥이 손예진에게 말한다; “숙모, 여기 경기도는 뭐가 유명해요?”.

손예진이 조금 생각을 하더니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기도는 조선의 수도인 경성을 품고 있는 지역이야. 경기지역에는 경지면적이 상당히 넓고 또 맛이 좋은 쌀이 생산이 되지. 그래서 경기미가 그렇게 좋다고들 말하네. 그 중에 가장 좋은 쌀을 임금에게 진상하는데 그것이 ‘이천 쌀’이야…”;

 손예진이 이어서 설명을 한다; “그리고 일찍이 조선의 조정에 진출하여 출세한 집안과 왕비족들이 많이 살고 있어. 예를 들면, 파주가 고향인 ‘파평 윤씨’가 그러하지. 그리고 우리 사위인 이서방도 경기도 여주 출신이야. 일찍이 경성으로 진출을 한 집안이지…”.

잠시 숨을 돌리고 이어서 말한다; “나는 자세히는 모르지만 우리 이서방 이야기가 이 지역에 같은 최씨인 최영장군의 묘가 가깝고 또 더 가까이에는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의 묘가 있다고 해. 그리고 이곳은 경성과 개성을 잇고 있는 중간지점이라고 말하더군…”;

참고로, 고양 덕양에 있는 최영장군의 묘가 다음과 같다;

고양 원당에 있는 공양왕의 묘가 다음과 같다;

그 말을 받아서 최순옥이 말한다; “숙모님, 그러면 이곳에서 열차를 타면 개성은 물론 평양과 압록강까지 갈 수가 있겠네요. 잘 하면 만주까지 갈 수가 있겠는데요…”. 그 말을 받아서 서배 할배 손상훈이 말한다; “누님 사실은 저와 김춘엽 선비는 여기까지 왔으니 차제에 경의선을 타고 압록강 너머 만주까지 한번 가봤으면 하고 의논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여행이 외국을 보는 마지막 기회가 되겠지요. 누님의 생각은 어떠세요?”.

평소에 당찬 손예진 누나이다. 그래서 손상훈이 여쭈어 본다. 그랬더니 손예진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들 함께 가겠다고 하면 저는 찬성이예요. 우리 5가정이 20년 전에 일본도 모두 함께 여행을 했으니 이번에도 중국을 함께 여행하면 좋지요. 한 가정이라도 함께 가지 못한다고 하면 저는 그것을 핑계로 삼아 빠지고자 합니다…”.

그 말을 듣자 안성기 교장이 장인식 교장의 옆구리를 꾹 찌른다. 그리고 즉시 말한다; “저희들도 부산에서 일본사람들 통역을 해주면서 돈을 조금 모았습니다. 그러니 함께 중국 여행을 하는 것에 찬성합니다. 장인식 형님의 마음이나 저나 똑 같지요. 뭐…”. 그 말을 듣자 장교장이 웃으면서 말한다; “이거 제가 안 가겠다고 말했다가는 두고두고 안교장 동생과 제 집사람에게 야단을 맞을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좋아요. 모두 같이 가보도록 합시다”. 

어려운 일을 참으로 쉽게 말하고 있는 그들이다. 그만큼 아직 가보지 아니한 나라에 대한 동경심이 살아 있는 그들이다. 그들은 나이가 들었어도 서로 의지하고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가고자 하는 결의가 대단한 인물들이다. 그것이 조선사람들의 또다른 저력이라고 하겠다.

그날 그들은 저녁에 경성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최영란의 남편 이석우와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하루를 쉰 다음에 모레 아침에는 경성으로 되돌아가서 경원선을 타고서 우선 원주까지 가려고 한다. 그곳에서 함경도 회령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고서 북간도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곳 북간도 용정의 명동마을에 오경덕 선생 일가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북간도에서 다시 중국의 동남부에 있는 도시 상해로 들어가려고 계획을 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 먼 길을 모두 함께 갈 수가 있을까? 그들 가운데에는 70대의 노인이 3사람이나 들어 있어서 그것이 걱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