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87(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 손상훈과 김춘엽 선비는 내남 너븐들과 경주 성동의 집을 떠나온 지가 보름이나 되고 있다. 동갑인 두사람은 72세의 나이라 더 이상 외국을 여행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더구나 경기도 원당에서부터 동행을 하고 있는 손예진 여사는 74세의 고령이라 더 이상의 여행이 무리이다. 따라서 그들은 왔던 길을 되돌아서 집으로 돌아가고자 결정을 한다.
그와 달리 어린시절과 젊은 시절을 일본에서 성장한 60대의 장인식 교장과 안성기 교장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리고 두 사람과 같이 일본에서 자란 오경덕 선생도 차제에 그들과 함께 중국 동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상해의 임시정부를 방문하고 싶어한다. 따라서 북간도 용정에서 두팀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집으로 귀환하는 팀이 용정역에서 불러온 노리아이를 타고서 명동마을에서부터 두만강 철교를 건너 함경도 회령까지 이동을 한다. 그곳에서 버스편으로 원산까지 간 후 경원선을 이용하여 열차로 경성으로 간다. 도중에 경기도 원당에서 손예진 여사가 작별을 고한다. 서배 할배 손상훈 부부와 선비 김춘엽 부부는 경성에서 경부선으로 갈아타고서 대구에 들러 그 다음에 경주로 간 것이다;
그들을 먼저 떠나 보낸 후에 오경덕 선생 부부는 부산에서 온 장인식 교장 부부 및 안성기 교장 부부와 함께 만주의 열차를 이용하여 중국 북경으로 들어간다;
북경에서 상해로 가는 열차편으로 그들은 상해임시정부를 방문하고자 하는 것이다;
가는 걸음에 그들은 만주와 중국의 곳곳을 좀 살펴보고자 한다. 그들 세 부부는 조선과 일본 그리고 중국의 발전상을 서로 비교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상해의 임시정부가 어떠한 변화를 겪고 있는지를 파악하고자 한다. 들리고 있는 말로는 현재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모셔온 이승만이 돌아가고 러시아 연해주에서 온 지도자들도 상해임시정부를 떠나서 독자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겨우 통합이 된 그들이 다시 분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동녕과 김구 등이 남아서 혼신의 노력으로 상해임시정부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야 할 터인데….. 고희를 훌쩍 넘긴 서배 할배 손상훈은 보름이 넘는 동안 조선의 대도시와 북간도를 여행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러한 소문을 듣고서 그 마음이 결코 편하지가 않다.
더구나 섬나라 일본은 조선반도를 벌써 집어 삼키고 이제 대륙으로 진출하고자 그 힘을 모으고 있는데 비하여 조선사람들은 그와 반대로 행동하고 있다. 친일과 항일로 갈라지고 또한 우익과 좌익으로 분열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1919년 거족적인 만세운동의 영향으로 겨우 통합이 된 해외의 상해임시정부가 다시 분열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민족대표 33인이 여전히 경성의 감옥에 갇혀 있다. 특히 3.1만세시위로 붙들려간 조선백성들 가운데 이화학당 학생 유관순은 1920년에 서대문감옥에서 고문을 받아 그 후유증으로 죽고 말았다. 그녀의 부모님도 고향인 천안 병천시장에서 만세시위에 앞장을 섰다가 일경이 쏜 총에 맞아 현장에서 죽고 말았다고 한다. 그와 같이 일제는 조선백성들의 인권을 짓밟고 가혹한 탄압을 계속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지도자라고 자처하면서 서로의 힘을 하나로 모으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고집을 앞세우며 이기적인 처신으로 분열을 일삼고 있으니 그것이 참으로 문제이다. 그 지도자에 그 백성들인 것만 같아서 서배 할배는 자꾸만 현실이 암담하게 보인다.
서배 할배 자신은 선친 손성규가 물려준 천석꾼 살림을 지키기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여러 차례 물난리를 만나 거랑가의 논이 자갈로 뒤덮혔지만 다행히 일본에서 우량종자를 도입하여 다시 천석꾼 살림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가 72세나 되었으므로 다시 그러한 시련을 맞이하게 된다면 극복할 용기와 재주가 없을 것만 같다.
그래서 서배 할배는 자주 양아들 손영주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지켜본다. 손영주가 과연 선대의 재산을 지켜내어 자식들에게 대물림을 할 수가 있을까? 좀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서배 할배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손상훈은 선친을 도와 내남 너븐들의 거랑가에서 자갈밭을 문전옥답으로 개간하는데 젊은 시절을 바친 농사꾼이다. 그런데 손영주는 그러한 경험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자수성가의 근성이 약하고 귀공자처럼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한다.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먼저 도와주고자 적극 나서고 있다. 그것은 물론 좋은 성품이다. 그러나 자신의 재산과 가족을 지키면서 그러한 인정도 베풀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손영주는 그것이 거꾸로 되어 있어 참으로 걱정이다.
그렇지만 어찌할 것인가? 딸 하나와 아들 둘을 벌써 얻고 있는 손영주 부부이다. 자손이 귀한 가문에 두 아들을 낳아 튼튼하게 대를 잇게 하고 있으니 그것으로 서배 할배 부부는 만족을 할 도리밖에 없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한 가닥의 염려가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다음해 1922년 5월달에 서배 할배 손상훈은 손병희 선생이 경성의 상춘원에서 오래 치료를 받다가 병이 악화가 되어 그만 별세를 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1919년 3월 1일 기미년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민족지도자 33인의 대표로 체포가 되어 서대문형무소 독방에서 오래 수감생활을 한 손병희 선생이다. 그는 평소의 지병이 악화가 되어 다음해 10월달에 병 보석으로 풀려나 상춘원에서 계속 치료를 받아 왔다. 그러나 끝내 회복을 하지 못하고 별세를 하고 만 것이다.
동학의 제3대 교주이며 동학을 천도교로 발전시킨 손병희 선생이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손병희 선생은 서배 할배보다 10년이나 연하이다. 그런데 앞서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서 서배 할배는 자신이 오래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73세의 자신이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가 있을까?
시종일관 서배 할배 손상훈의 걱정은 아내 이채령이다. 자신보다 5살이나 연하인 그녀만이 일편단심 손상훈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서배 할배가 죽고 나면 그녀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양아들인 손영주와 며느리 정애라 그리고 손주들이 있을 뿐이다. 친정식구가 전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손상훈 자신이 먼저 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그녀는 어떻게 되는가?” 라는 생각 때문에 서배 할배 손상훈은 악착같이 그녀 옆에 더 오래 머물러야만 하겠다고 마음을 다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이 마음을 먹은 대로 그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한마디로 인명은 재천인 것이다.
그래서 서배 할배 손상훈은 나이가 들어서 절대적인 신의 존재를 의지하고자 한다. 자신의 소망을 들어줄 그 절대자는 어디에 계시는 것일까? 이 땅이 아니라 아무래도 하늘에 계시는 것으로 믿고서 손상훈은 경건하게 옷깃을 여미고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그렇게 남은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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