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손진길 소설)

서배 할배88(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9. 27. 01:10

서배 할배88(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 손상훈과 그의 아내 이채령이 선비 김춘엽 부부와 함께 부산과 대구 그리고 경성과 북간도를 방문하고 돌아온 것이 1921년 5월 중순이 막 시작이 된 시점이다. 4월 하순에 여행을 시작하였는데 그때에 귀가를 했으니 전체 일정이 17일 정도가 걸린 것이다.

아들 손영주와 며느리 정애라가 3자녀와 함께 고향집을 잘 지키고 있다. 벌써 손녀 손해선이 9살이고 장손 손수정이 5살이다. 둘째 손자 손수상은 3달이 지나면 첫돐이 된다.

그런데 서배 할배 내외가 여행에서 돌아온 지 6개월이 지나자 너븐들에서 초상이 난다. 양아들 손영주의 생모인 홍신옥 여사가 그만 63세의 일기로 향년을 맞이하고 만 것이다. 장례는 장남인 손영한이 맏상주가 되어 치르게 되지만 손영주도 둘째 상주이므로 초상에 매어 달리게 된다.

1921년 11월 16일 농한기에 별세한 것이기에 너븐들 사람들이 모두 부조를 하고 문상을 하면서 장례행사를 자기 일같이 도와주고 있다. 3일장으로 하고 산소 자리는 지난 1900년에 별세한 부군 손찬의 묘소 옆으로 정했다. 안심에 있는 선산이므로 크게 멀지는 않지만 조금 가파른 곳이어서 조심스럽게 운구를 하여 매관을 했다;

손영주는 친가의 부모님이 모두 별세하신 것이다. 친형인 손영한의 가족만이 이웃에 살고 있다. 그 집에는 아직 아들이 없다. 그래서 손영주는 틈이 나면 형 집에 들러 재정적으로 도움을 주고자 한다. 형제 사이에 우애가 좋은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서배 할배 손상훈과 그의 아내 이채령은 마음이 흐뭇하다. 우애가 좋고 인정이 많은 양아들 손영주가 착한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배 할배의 양자로 들어와서 집안에 손자를 둘이나 안겨주었으니 그것이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해가 바뀌어 1922년이 되자 2월달에 서배 할배 내외는 경주 성동 사랑방모임에 참석을 한다. 그 날에는 김춘엽 내외 뿐만 아니라 한집에 같이 살고 있는 여동생 내외 곧 김경화와 정진평이 그 모임에 처음으로 참석하고 있다. 그들은 서배 할배 손상훈의 사돈이다. 정애라가 바로 정진평의 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상훈이 인사를 한다; “사돈이 처음으로 사랑방모임에 참석을 하셨군요. 식당일은 어떻게 하시고 이렇게 사돈 두 분이 오셨습니까?”. 정진평이 대답한다; “사돈, 저희들은 그동안 1년반 넘게 아들 정한욱 내외에게 식당 일을 가르쳐서 이제는 모두 물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안심을 하고서 사랑방모임에 합류를 한 것이지요”.  

그 말을 들은 손상훈이 말한다; “사돈 잘 하셨습니다. 그동안 60대 중반이 되도록 식당을 경영하셨으니 참으로 일 많이 하셨습니다. 이제는 좀 쉬셔야지요”. 이채령도 안사돈인 김경화에게 말한다; “사돈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작년에 진작 넘겨주시고 짬이 나셨더라면 저희들과 함께 여행을 하실 수가 있었을 터인데 그것을 함께 못해서 좀 아쉽습니다”.

그러자 김경화가 답을 한다; “이제라도 그러한 기회가 생기면 저희 부부가 합세를 하겠습니다. 앞으로 그렇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듣자 이채령이 말한다; “그렇지요. 저희들은 아직 60대이니 그렇게 하면 되지요. 이제 70이 넘은 노친네들은 집에 두고 저희들끼리 다니도록 하십시다…호호호”.

그 말을 들은 서배 할배와 김춘엽 선비가 크게 웃으면서 말한다; “이거, 2년전에 고희를 지낸 우리들은 이제 찬밥 신세이군요. 나이 먹은 것도 서러운데 너무들 하십니다”. 그러자 정진평이 한마디를 한다; “그러면 저는 아직 70이 안되었으니 그 여행에 함께 데려가시는 것이지요?”.

그러자 이채령이 답한다; “네, 제 친구 이가연과 바깥사돈은 아직 자격이 됩니다. 딴 사람은 안되고요. 호호호…”. 그 말을 들은 이가연이 이채령에게 한마디를 한다; “채령아, 너는 여전히 사돈을 엄청 챙기는구나. 그런데 이번에는 소꿉친구인 나도 챙겨주니 고맙다. 우리 언제 봄날이 되면 경주 고적지에 꽃구경이라도 함께 가자꾸나”.

그 말을 듣자 서배 할배와 선비 김춘엽이 동시에 말한다; “경주 시내 꽃구경이라면 우리도 얼마든지 따라다닐 수가 있답니다. 비용은 우리가 댈 터이니 부디 함께 데려만 가십시오,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그 말을 듣고서 모두가 한바탕 ‘하하 호호’라고 웃는다. 그렇게 함께 만나서 웃을 수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날 점심시간에는 모두들 성동 웃시장에 있는 돼지국밥 골목을 찾아 간다. 정진평 내외가 특별히 그들에게 아들 정한욱 내외가 운영하고 있는 그 식당에서 국밥 맛을 보시고 한번 평가를 해달라고 부탁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맛을 보니 정한욱과 부인 최순미가 직접 끓여 내는 돼지국밥 맛이 예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비법 전수를 제대로 받은 것이다.

그날 오후에 서배 할배 내외가 사랑방모임을 끝내고 내남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니까 김춘엽 내외와 정진평 내외가 만류를 한다. 그 먼 길 30리를 되돌아갈 것이 아니라 하루 자신들의 집에 묵고 내일 내남으로 가라는 것이다. 72세나 되는 서배 할배 손상훈이 하루에 30리길을 왕복하는 것을 염려하여서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손상훈과 이채령은 하룻밤 신세를 지고 다음날 귀가를 하고자 한다.

이왕 오후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자 김춘엽이 제안을 한다; “여보게, 서배 할배, 경주 읍내에 구경거리가 와 있네. 서커스단이 오래간만에 경주를 찾아와서 아직 공연을 하고 있다네. 날씨가 쌀쌀하지만 때가 농한기 철이라 손님들이 몰리고 있어. 한번 구경을 가세나”;

손상훈과 이채령은 대찬성이다. 그렇지만 정진평과 김경화 부부는 벌써 구경을 했다고 한다.

그날 경주 읍내에서 본 서커스단의 공연이 참으로 재미가 있다. 나이가 든 여자가 누워서 두 발로 큰 단지를 돌리는데 그것이 대단하다;

 

그리고 어린 여자아이가 마치 연체동물처럼 두 발을 뒤로 굽혀서 머리 옆에 두는데 그것이 처음 보는 신기한 광경이다;

 

더구나 공중비행을 하는데 그 높은 곳에서 그네를 타면서 서로 손을 놓고 또한 잡고 하는 것이 정말 아찔하다;

서커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유랑극단을 겸하고 있다. 따라서 나팔소리와 손풍금소리가 흥을 돋우고 남녀 가수들의 노래가 관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더구나 신파조의 연극이 볼만하다. 관객들의 눈물을 자아내고 또한 탄성을 자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뻔한 것이다. 경성에서 온 남자 대학생과 시골 처녀의 절절한 사랑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이별과 재결합의 순애보와 구성진 신파연기가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무로 만든 무대에서 자전거를 자유자재로 타는 그 모습이 대단하다. 외발 자전거를 타는 것도 어렵지만 두 사람이 서로 둥근 바퀴를 던져서 주고 받는 묘기까지 부리고 있다. 그러한 묘기를 선보이는 것을 보니 그들은 곡예를 겸한 자전거 선수들인 모양이다;

 

그날 오후 늦게 구경을 잘하고 나오는데 바깥에서 어린아이들을 꾸짖는 어른의 야단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이 몰래 표를 사지 아니하고 서커스단 천막을 젖히고 구경하러 들어 가려다 적발을 당한 모양이다. 야단을 치면서도 서커스단의 직원인 듯한 그 사람은 기분이 좋은 지 싱글벙글 웃고 있다. 아마도 그렇게 아이들이 몰래 구경을 하겠다고 설치는 것이 그 서커스단의 인기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조선의 백성들은 서커스단과 유랑극단의 공연을 보면서 일제의 탄압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아무리 정치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외세의 탄압과 착취의 시대라고 하더라도 백성들은 그렇게 신파극에 울고 웃으면서 자신들의 애환을 희석시키고 고단한 삶을 계속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