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90(작성자; 손진길)
그날 경주 성동 사랑방모임에서 서배 할배 손상훈이 권동진 선생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을 한다; “권선생님께서 보시기에는 향후 일본제국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으로 보이십니까? ‘관동대지진’ 발생 직후에는 극우세력인 자경단에게 맡겨 소위 ‘일본 우선주의’를 주장하게 하고 조선인을 비롯하여 외인들에게 대하여 공격성 보복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 다음 수습과정에 있어서는 일본정부가 자경단을 해산시키고 우익도 좌익도 아니면서 ‘군사력으로 일본의 제국주의를 실현하는 일본국가주의’로만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서배 할배가 권동진 선생에게 그러한 질문을 하고 있는 이유는 권선생이 군사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권선생은 일찍이 조선에서 무관으로 근무도 하고 또한 군수도 지냈다. 그리고 관비로 일본에 가서 군사교육도 받고 국방산업에 대한 시찰도 했다. 뿐만 아니라 1896년부터 10년 동안 일본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일본군대와 국방정책에 대하여 연구를 많이 한 인물이다. 그 결과 1901년에 덕천 사랑방모임에서 일본 동경을 방문하였을 때에 그로부터 참으로 좋은 강의를 들은 바가 있다. 그러므로 그에게 그 질문을 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것이다.
권동진 선생이 깊이 고개를 끄떡이다가 조용히 입을 뗀다; “손상훈 선비께서 제가 가장 관심이 깊은 분야에 대하여 핵심적인 질문을 하셨습니다. 제가 아는 대로 간략하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저는 손선비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일본정부는 좌익과 우익을 모두 이끌고서 ‘일본의 국가주의’를 실현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일본제국의 꿈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된다고 하면 이념적으로 우익이거나 좌익이거나 외국인이거나 상관없이 손을 잡을 것입니다. 반면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가차없이 탄압하고 말 것입니다”;
그야말로 ‘일본의 국가이익’이 최우선이라는 말씀이다. 모두들 그렇게 알아 듣고서 고개를 끄떡인다. 권선생이 말을 잇는다; “둘째로, 22년 전에 제가 동경에서 여러분들에게 벌써 말씀드린 그대로 일본제국은 더욱 강력한 군대를 만들어 조선은 물론 만주를 집어삼키고 중국 본토까지 식민지로 삼고자 총 진군할 것입니다. 일본은 30년 전에는 청국을, 20년 전에는 러시아와 전쟁을 하여 승리하자 조선의 지배권을 서양의 열강으로부터 인정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무력으로 만주와 중국의 일부를 먼저 차지하고나서 그것을 영원히 자신들의 식민지로 만들고자 서양의 열강과 협의를 할 것입니다”;
서배 할배가 크게 고개를 끄떡이고 있을 때에 갑자기 오경덕 선생이 질문을 한다; “그렇다면, 권선생께서는 간도와 러시아 연해주에서 항일투쟁을 하고 있는 조선 독립군들의 운명이 장차 어떻게 될 것으로 예견하십니까?”. 참으로 중요한 질문이다. 오경덕 선생으로서는 자신의 자손들의 운명을 묻고 있는 것이다. 그 점을 알기에 권동진 선생이 신중하게 답변을 한다; “그 점은 제가 세번째로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내용과 직결이 되고 있습니다…”.
숨을 좀 쉰 다음에 권동진 선생이 말한다; “일본제국이 서양에서 엄청난 자본을 빌려와서 산업근대화를 이룬 사실은 이미 모두들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빚을 갚기 위하여서는 조선이나 대만 정도의 시장과 식민지로는 상당히 부족하다는 사실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만주를 집어 삼킬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동해안 지역의 도시까지 식민지로 만들어야 일본제국의 공장이 돌아갈 것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조선독립군과 관련이 된 내용을 설명한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용이하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이 30년전에 전쟁을 쳐본 경험이 있는 청국이 벌써 사라지고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상 만주에 있는 군벌 그리고 동해안을 타고 북진을 하고 있는 장개석의 군대와 전쟁을 해야만 하는데 그것이 옛날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중국의 백성들이 이제는 스스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간도에서는 조선사람들이 집단촌을 이루고 독립군을 계속 양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권동진 선생이 자신의 판단을 말한다; “그러므로 저는 일본의 만주 진출이 조금 늦어질 것으로 봅니다. 적어도 5년 이상 일본군대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비로서 만주로 진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이 한 5년 동안이 조선의 독립군이 그 위력을 떨칠 것이고 일본이 만주로 진격을 하게 되면 쫓기게 될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서 오경덕 선생이 침울하게 읊조린다; “한 5년 정도의 시간이 있을 따름이다. 그 이후에는 한인들이 다시 이주를 해야만 한다. 그러면 어디로 가야만 하는가?...”.
오경덕 선생의 한숨이 깊어지는 것을 보고서 권동진 선생이 위로한다; “오선생님, 너무 미리 걱정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일이란 항상 강대국의 논리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을 저지시킬 만한 변수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중국에서 자신들의 이익과 이권이 심각하게 침해를 받는다고 판단하게 되면 서양의 열강들이 일본에게 무더기로 달려들 것입니다. 그때에는 어떻게 국제정세가 변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권동진 선생의 이야기가 그 정도로 정리가 되는 것 같다. 따라서 이번에는 성동 사람방모임의 좌장인 김춘엽 선비가 말한다; “이제는 상해를 다녀오신 세 분 가운데 어느 분이 임시정부 이야기를 저희들에게 좀 해주시지요”. 그러자 서로 눈짓을 하더니 안성기 교장이 대표로 나서서 발언을 한다; “저희 3사람이 부부동반으로 1921년 5월에 상해를 방문했습니다. 여행하는 동안에 중국의 변화를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그렇게 운자를 떼더니 핵심사항을 말한다; “그랬더니, 1911년에 청왕조가 무너지고 10년의 세월이 지나서 그런지 저희들이 미리 듣고 있던 바와는 전혀 다른 나라를 방문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중국은 황제나 왕의 나라가 아니라 완전히 여러 지역 백성들의 나라였습니다. 돈이 많고 군대가 많으면 그 지역의 왕과 같은 세도를 누리고 있는 곳이 바로 중국이더군요. 만주를 예로 들자면, 그곳에 군대를 가장 많이 지휘하고 있는 만주출신의 장작림이 ‘동북왕’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잠시 쉰 다음에 이어서 설명을 한다; ”말이 군벌이지 사실은 그들이 그 지역의 새로운 왕입니다. 그러므로 장개석의 군대는 그들을 전부 쳐부수고 천하통일을 하기 위하여 전력투구를 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워낙 군벌들이 지역 토착세력의 이익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을 부강하게 만들기 위하여 나름대로 산업근대화를 촉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보다 중국의 발달이 빨라지고 있지요”.
그렇다면, 상해에 설립이 되어 있는 ‘상해임시정부’는 어떠한가? 그 점에 대하여 안성기 교장이 간략하게 설명한다; “’상해임시정부’는 조선의 국내기반이 취약합니다. 일본 헌병들이 임정과 국내 민족주의자들이 연결이 되는 것을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임정은 간도나 연해주 그리고 중국내에 형성이 되어 있는 한인촌에 도움을 구하고 있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한 지역에는 이미 뿌리를 내리고 있는 독립투사들과 서로 이념이 다른 무장세력들이 맹위를 떨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독자적인 지지세력이 미약한 임정이 재정적으로 힘든 상황입니다. 그에 따라 임정과 상관 없이 자신의 거취를 결정하고 마는 각료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참으로 염려가 되는 상해임시정부의 미래이다. 따라서 서배 할배가 안성기 교장에게 질문을 한다; “그렇다면 상해임정이 해외의 독립군을 통합하여 조직적으로 일본의 군대와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고 보아야 하겠군요. 무력이 미흡한 임정이기에 앞으로 조선의 독립을 성취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한다면 그 미래가 어떻게 될까요?”.
안성기 교장이 조금 생각을 하더니 답변을 한다; “저희 방문단 3가족은 그곳에서 상해임정의 힘과 능력만으로는 조선의 독립이 요원하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국제정세가 일본을 패망으로 몰고가고 임정이 주도하는 독립군이 일본과의 전투에서 엄청난 전공을 세워야만 조선의 독립이 가능할 것인데 그것이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저도 권동진 선생에게 묻고 싶습니다. 과연 희망적인 미래가 전개가 될까요?”.
권동진 선생이 답을 한다; “저도 당장은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옛말에도 ‘과유불급’이라고 했으니 일본제국이 남의 영토를 식민지로 삼고자 큰 탐욕으로 침략전쟁을 계속하게 되면 그 결과는 반드시 일제의 패망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다만 문제는 그때가 언제냐? 하는 것인데 저로서는 일본이 만주를 집어 삼키고 중국의 동해안 지역마저 차지하고자 남으로 진격하는 그때라고 봅니다. 그때에는 일제의 적수가 중국만이 아니라 서양의 강대국들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 전쟁에서 일제가 승리를 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따라서 일제가 서양과 전쟁을 치르는 경우가 발생하면 그러한 미래가 전개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랑방모임의 좌장인 김춘엽 선비가 마무리 질문을 권동진 선생에게 한다; “권선생께서는 이제 자유의 몸이 되셨으니 앞으로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어떤 일을 하고자 계획하십니까?”. 권선생이 즉답을 한다; “저는, 손병희 선생이라고 하는 참으로 든든한 동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저와 뜻이 맞는 나머지 민족지도자들과 함을 합쳐서 새로운 단체를 하나 만들었으면 합니다. 상해임정이 중국에서 활동을 하는 통합정부의 성격이라고 한다면 저는 조선내에서 그러한 성격의 단체를 하나 만들었으면 합니다”;
권동진 선생의 소원은 당장이 아니라 4년이 지나서 조그마한 결실을 맺게 된다. 1927년에 좌우합작으로 ‘신간회’라고 하는 단체가 발족을 하기 때문이다. 이상재 선생이 회장을 맡고 권동진 선생이 부회장이 되어 국내에서 민족독립을 위해서 투쟁하는 단체로서 활동하게 된다. 그러나 아직은 그 단계가 아니다;
그렇다면, 경주 성동 사랑방모임의 인사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그 문제에 대하여 오래 토론을 하지만 당장 뾰쪽한 해답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1923년 10월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데 그 집 사랑방에서는 선비들 7명이 밤새도록 술잔을 기울이면서 오래도록 고담준론을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
'서배 할배(손진길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배 할배92(작성자; 손진길) (0) | 2021.09.27 |
---|---|
서배 할배91(작성자; 손진길) (0) | 2021.09.27 |
서배 할배89(작성자; 손진길) (0) | 2021.09.27 |
서배 할배88(작성자; 손진길) (0) | 2021.09.27 |
서배 할배87(작성자; 손진길) (0) | 2021.0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