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92(작성자; 손진길)
1924년 3월 18일에 내남 너븐들 서배 할배 집에서 셋째 손자인 손수석의 백일잔치가 열린다. 그날 가주인 손상훈 부부와 아들 손영주 부부 그리고 손영주의 친형인 손영한 부부만이 참석을 한다. 겉으로 보면 참으로 조촐하게 가족행사로 치르고 있는 아기의 백일잔치이다.
백일이 되어서 그런지 아기가 제법 기어 다닌다. 그래서 잔치를 하면서 상위에 세가지 물건을 놓아두고 기어가서 아기가 손으로 집도록 만든다; 첫째가 실이 많이 감겨 있는 실패이다. 그것을 집으면 그 아기가 장수를 한다고들 말한다. 둘째가 조선은행에서 발행한 지폐이다. 그것을 집으면 장차 부자가 된다고들 말한다. 셋째가 연필과 종이이다. 그것을 집으면 공부를 잘 할 것이라고 덕담들을 한다.
본래 백일잔치는 유아사망율이 높은 조선시대에 아기가 살아남은 것을 축하하는 자리이다. 그 이유는 백일 이전에 죽은 아기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1920년대가 되면 서양의 의술을 배운 의사들이 지방에서도 개업을 하고 있어서 유아사망율이 줄어 들고 있다. 그렇지만 생활에 여유가 있으면 여전히 백일잔치를 가족끼리 하게 된다.
서배 할배 손상훈의 셋째 손자인 손수석 아기도 자신의 백일잔치 자리에서 엉금엉금 기어가서 세가지 중의 하나를 상에서 집는다. 그가 집은 것은 신기하게도 두가지이다. 처음에는 연필과 종이를 집었다;
그것을 보고서 서배 할배가 말한다; “허허, 그 녀석 장차 공부를 잘할 모양이구나”. 그런데 잠시 후에 아기는 연필과 종이를 한쪽에 놓고서 조선은행권 지폐를 손에 쥔다;
그것을 보고서 이채령이 말한다; “이 아기는 장차 재산을 크게 이룰 모양입니다…호호호”. 그날 그 자리에서 이채령이 어째서 69세의 나이에 어울리게 않게 ‘호호’라고 웃으면서 그렇게 좋아했을까?
시어머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애라가 한마디를 한다; “어머님은 손자 손수석이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부자가 되는 것이 더 좋으신 모양입니다. 호호호…”. 그러자 옆에서 손영주가 말한다; “여보, 어머님은 아기가 공부도 잘하고 부자도 되는 것을 원하시는 거야. 그렇지요, 어머니?”.
이채령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역시 우리 아들이 똑똑하고 착하구나. 그래 이 에미는 내 손자가 공부도 잘하고 부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이 캄캄한 시대에 가문을 훤히 밝히고 대를 이어서 고향의 일가들에게 살길을 마련해주지 않겠느냐?”.
그 말을 듣고서 서배 할배 손상훈이 말한다; “부인 말씀이 옳습니다. 손자 아기 손수석아, 할머니 말씀을 명심하도록 하려무나. 하하하…”. 손자를 셋이나 보시고 백일잔치까지 하게 되니 금년 74세의 노인 손상훈이 참으로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래서 오늘은 마냥 즐거워하면서 손자가 장차 영특하기를 그리고 교리 최부자와 같은 부자가 되기를 축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그날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고서 손영주와 정애라는 자신들이 효도를 한 것만 같아서 기분이 좋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손이 귀한 집에 양자로 들어와서 손자를 셋이나 안겨 주었으니 자신들이 큰일을 한 것이 사실인 것이다. 그래서 그 기쁨을 그해 12월 8일 돌잔치 때에는 아기의 외가 할아버지와 할머니와도 함께 나누려고 계획한다.
1924년 10월 중순에 경주 성동 사랑방에서 3부부가 다시 모인다. 서배 할배 손상훈 부부와 집주인 김춘엽 부부 그리고 그 집에 같이 살고 있는 정진평 부부이다. 그날 손상훈은 12월 8일 내남 자기 집에서 셋째 손자의 돌잔치를 하려고 한다고 밝힌다. 그러자 부인 이채령이 말한다; “사돈 부부는 아직 정정하시니 참석을 바랍니다. 그리고 내 친구 가연아, 너는 남편의 건강상태가 좋으면 그때 참석을 해다오. 날씨가 겨울이라 추울 것이야…”.
그 말을 듣자 이가연이 웃으면서 말한다; “채령아 너는 별 걱정을 다하는구나. 우리 부부는 내남까지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노리아이를 역에서 하나 불러서 자동차를 타고서 가려고 한다. 가는 걸음에 네 사돈 내외도 함께 태워서 가마. 그러니 걱정을 말아라”;
그러자 이채령이 말한다;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소리다, 가연아. 경주 성동에서야 경주역이 가까우니 노리아이가 있지만 내남 너븐들은 시골이라 자동차가 없어. 그러니 추운 날씨에 어떻게 돌아갈 생각이니?”. 그 말을 듣더니 이가연이 조금 생각을 해보고 나서 말한다; “그것도 그렇겠구나. 그러면 돌잔치를 너희들끼리 하고서 잔치 떡이나 좀 보내어 다오”.
이채령이 고개를 끄떡인다. 그 모습을 보고서 서배 할배 손상훈이 생각을 한다. 친구 김춘엽이 자신과 동갑인데 벌써 내남까지 왕복하는 30리길을 걷기가 힘이 든다. 자신도 곧 힘들어 질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까지 성동 사랑방모임에 참석할 수가 있을지 모르는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이제 자신의 시대가 빨리 저물고 있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내남 박달 산록에 잠들어 계시는 선친 손성규의 뒤를 따라 3자 땅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날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서배 할배는 그날 오후 내남 너븐들로 30리길을 부인 이채령과 함께 걸어오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벌써 조선나이로 74세이니 고희를 넘어 오래 살고 있는 편이다. 손자도 셋이나 보았고 기울어진 천석꾼 살림도 우량품종의 도입으로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41세나 된 양아들 손영주가 동네의 인심을 얻으면서 살림을 잘 꾸려 나가고 있다.
그러니 이대로만 살다가 저 세상에 가서 부모님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크게 책망을 받을 일은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그것은 집안과 고향으로 보아서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지만 나라로 보아서는 선친의 때와 너무나 다른 것이다. 조선의 왕조가 사라지고 지금은 외세 일본이 다스리고 있는 심히 부끄러운 시대인 것이다;
그러므로 선친께서 자신에게 나라를 일본에게 빼앗길 동안 너는 무엇을 하고 왔느냐?고 책망을 하신다면 그때에는 무엇이라고 대답을 해야만 할까? 답변이 지금 생각해도 궁색하다. 나라의 주권을 일본에게 잃어버린 나약한 조상이라고 장차 후손들에게 비난을 받게 된다면 그것이 또한 걱정인 것이다.
한마디로, 나라를 외세에게 빼앗겼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조선의 왕과 대신들에게만 그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시대를 살아간 모든 조선백성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단지 하나의 차이가 있다면 자신이 행사한 권력의 크기에 따라 책임의 크기가 달라지는 것 뿐이다;
그러므로 천석꾼지기로 살고 있는 서배 할배 손상훈도 그만큼 나라를 빼앗긴 책임이 후손들이 보기에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깊은 생각을 하면서 걷다가 보니까 어느 사이에 경주 읍내에서 20리길을 걸었는지 이조 다리가 눈에 들어오고 있다. 그 다리를 건너서 이제 10리길만 서쪽으로 걸어가면 너븐들 자기 집에 도착하게 된다.
그렇게 서배 할배 손상훈과 그의 부인 이채령은 서산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해를 바라보면서 자신들의 보금자리 너븐들 집으로 걸어오고 있다. 그날 30리길을 함께 동행하면서 이채령은 남편 손상훈이 이제는 완전히 노인이 되고 말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루에 30리길을 왕복하는 것이 남편에게는 무리라는 사실을 이제는 절실하게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인을 한다고 해도 노인은 노인이다. 다시 젊은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는 해처럼 서배 할배도 그렇게 조상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남편보다 5살이 적은 이채령 자신도 그만큼 더 살다가 남편 손상훈을 뒤따라가게 될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이채령은 깊은 연민으로 앞서 가고 있는 남편 손상훈의 손을 잡아 본다. 깊은 생각에 빠져서 혼자 앞서 걷고 있던 손상훈이 이채령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고서 발걸음을 늦춘다. 그리고 이채령의 손을 꼬옥 쥐고서 이제는 옆에서 함께 걸어가고자 한다;
그렇게 손을 꼭 잡고서 끝까지 함께 걷다가 나이가 많은 자신이 그만큼 일찍 아내 이채령의 품에서 편안하게 잠들고자 한다. 그러면 다음 세상에서 다시 반갑게 만나게 될 것이다. 서배 할배 손상훈은 꼭 그렇게 아내 이채령과 다시 만나고 싶어한다. 그만큼 손상훈은 이채령을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손상훈은 노년이 되어서도 행복하다. 그 점을 그는 절대자인 하늘의 신에게 늙어서도 감사하고 있다. 그 마음을 아는지 말없이 옆에서 이채령이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함께 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렇게 그 두사람의 남은 하루도 또한 1924년 10월의 그날도 석양의 해처럼 역사속으로 저물어가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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