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손진길 소설) 96

서배 할배66(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66(작성자; 손진길) 1907년 4월 하순에 덕천 사랑방모임에서 장인식 교장이 첫번째 발표자로 나서서 먼저 말문을 다음과 같이 열고 있다; “제가 오늘 발표할 주제는 약 1년반 전에 한성의 황궁인 경운궁에서 강제로 체결이 된 ‘을사늑약’에 대하여 조선의 언론들이 어떻게 반대를 했는가 하는 것과 그것을 도저히 받아 들일 수가 없다고 격분하여 순국의 자결을 결행하신 분들에 대한 것입니다”. 장인식 교장은 그가 연구한 내용 가운데 핵심사항을 다음과 같이 잘 요약하여 발표하고 있다; “첫째로, 일제와 대한제국 사이에 체결이 된 을사보호조약을 ‘을사늑약’이라고 부르고 있는 이유는 일본에서 온 ‘이토 히로부미’가 군대를 동원하여 대한제국의 대신들을 경운궁의 회의실에 가두고 5시간 동안이나 협박을 하여 자..

서배 할배65(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65(작성자; 손진길) 서배 아재 손상훈의 가족들은 설날 이튿날 평소보다 아침식사를 일찍 끝낸다. 그리고 손상훈은 길 떠날 차비를 하고 이제는 양삼마을에 가서 장인과 장모를 모시고 와서 가족들과 함께 외동 서배 마을을 방문하려고 한다. 그래서 이채령과 손영주도 외출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그런데 서배 아재가 집을 나서기도 전에 먼저 장인 이덕화와 장모 김옥심이 대문을 들어서고 있다. 참으로 일찍 조반을 하고 너븐들로 온 것이다. 그래서 이채령과 손영주가 부랴부랴 외출복을 입고 방에서 나온다. 겨울날씨가 춥기는 하지만 5명이 즐겁게 걸어가니 크게 추위를 느끼지 않는다. 역시 동행이 많을 수록 사람은 온기를 서로 느끼고 활력을 주고받는가 보다. 서배 마을에 도착을 했을 때에는 얼추 오전 11시쯤 ..

서배 할배64(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64(작성자; 손진길) 음력으로는 정월 초하루인 명절 설날이 양력으로는 1907년 2월 중순이다. 그러므로 큰 거랑과 넓은 들판을 가지고 있는 내남 너븐들의 날씨가 상당히 춥다. 그러나 설날 아침에 집집마다 차례를 지내느라고 온 마을이 부산하다. 그것도 장자의 집안에서만 차례를 지내고 있으므로 다른 형제들의 식구가 큰 집에 몰리고 있다; 부지런한 서배 아재 손상훈이 새해 첫날부터 아침 일찍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낸다. 그는 외아들이므로 양아들인 손영주와 함께 차례상 앞에 서있다. 그 옆에서는 안방마님 이채령이 차례상이 잘 차려져 있는지를 다시 점검하고 있다. 먼저 서배 아재가 지방이 제대로 써져서 신위가 순서대로 정확한지를 확인한다. 그리고 축문을 읽고 술 한잔을 부어 향불 위에 세번 돌린 다음에..

서배 할배63(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63(작성자; 손진길) 15. 1907년의 조선과 서배 아재; 음력으로는 1906년 11월 17일 양력으로 1907년 1월 1일에 대마도에서 죽음을 맞이한 면암 최익현의 시신을 조선으로 운구하여 그가 성장한 충청도 땅에 안장을 하고 나자 어느덧 음력설이 다가온다. 시골에서는 농한기의 절정이 정월 초하루와 보름 사이이다. 그러므로 모두들 즐거운 마음으로 설을 지내기 위하여 음식도 준비하고 설빔도 마련한다. 서배 아재 손상훈이 살고 있는 내남 너븐들에서도 설음식을 푸짐하게 준비하느라고 집집마다 아낙네들이 엄청 바쁘다. 어린아이들은 골목과 마당에서 뛰놀다가 출출하면 동무들과 함께 집안의 여인네들이 전을 부치고 있는 부엌이나 처마 아래로 자주 찾아온다. 그날만은 주전부리를 마음껏 얻어 먹을 수가 있기 ..

서배 할배62(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62(작성자; 손진길) 사랑방모임이 있은 다음달 곧 1906년 11월에 덕천의 선비 최사권이 너븐들 서배 아재 손상훈에게 사람을 보내온다. 그 전갈의 내용이 근일 중 덕천 자신의 집에서 좀 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고희를 넘긴 6촌 매형 최사권이 손상훈을 조용하게 자신의 집으로 좀 걸음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아주 드문 일이라서 서배 아재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내일이라도 잠시 들를 것이니 그렇게 전해 달라고 말한다. 겨울이 시작이 되어서 그런지 너븐들과 덕천 사이의 벌판을 지날 때에는 매서운 바람소리와 함께 추위가 크게 느껴진다. 벌써 56세나 된 서배 아재 손상훈은 걸음을 잽싸게 걸으면서도 한기를 떨쳐버리지를 못한다. 옛날 소싯적에는 이 정도 추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더니 이제는 그것이 아..

서배 할배61(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61(작성자; 손진길) 내남 덕천의 지주인 최사권 선비의 집에서는 여전히 2달에 한번씩 사랑방모임이 개최가 되고 있다. 그 모임에 정기적으로 출석하고 있는 인사가 1901년에 함께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는 5쌍의 부부들이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집주인인 최사권과 그의 아내인 손예린, 이조에 설립이 된 소학교의 교장인 장인식과 그의 아내인 최순옥, 덕천의 서쪽에 있는 상신 너븐들에 살고 있는 지주인 서배 아재 손상훈과 그의 아내인 이채령, 외동 서배 마을의 지주인 김춘엽과 그의 아내인 이가연, 외동에 설립이 된 소학교의 교장인 안성기와 그의 아내인 이다연 등이다. 1906년 10월 하순에 그들은 정기적인 사랑방모임을 열고 있다. 그때 그 자리에서 서배 아재 손상훈이 중요한 안건을 하나 말하고자 ..

서배 할배60(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60(작성자; 손진길)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마무리가 되자 일제는 더 이상 구미열강의 눈치를 보지 아니하고 조선을 보호국으로 만드는 을사보호조약을 1905년 11월18일 새벽에 강압적으로 체결하고 만다. 처음에는 고종황제에게 조약에 서명을 하라고 강압했으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대신들에게 서명을 받으라고 미루고 만다. 따라서 일제는 군대를 동원하여 삼엄하게 덕수궁의 ‘중명전’ 건물을 포위하고서 그 안에서 대한제국의 대신들에게 서명을 강제한 것이다; 참고로, 한때 황실도서관으로 사용이 된 중명전의 복원된 모습이 아래와 같다; 그러므로 을사보호조약을 ‘을사늑약’이라고들 부르고 있다. 하지만 일제는 그 조약을 빌미로 거리낌없이 1906년 2월에 조선 땅에 일본의 통감부를 설치하고 만다. 참고로, 당..

서배 할배59(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59(작성자; 손진길) 1904년 2월 9일에 일본의 해군이 제물포에 정박하고 있는 러시아 함정을 공격하여 파괴하였으며 같은 날 뒤를 이어 일본의 육군이 수도없이 제물포로 들어와서 경인지방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소식이 경주 월성 지역에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 다음소식은 일본의 육군이 경인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의 군대를 격파하였으며 그에 따라 2월 12일에 한양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공사가 본국으로 철수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종황제와 조선의 정부는 누구를 의지하여 대한제국의 독립을 유지할 수가 있을까? 일본제국이 장차 조선을 어찌할 것인가? 그 대답은 일본과 러시아와의 전쟁의 결과에 달려 있다. 그렇지만 고종은 여전히 청일전쟁 때처럼 구미의 열강이 일본에 압력을 넣는 일이 발생..

서배 할배58(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58(작성자; 손진길) 14. 러일전쟁과 조선의 운명 일본은 청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1895년 4월에 시모노세키에서 강화조약을 맺게 된다. 그 결과 만주의 요동반도를 얻고 청국의 1년 예산의 2배반에 해당하는 2억냥의 전쟁배상금을 얻게 된다. 그러나 그 종전협정은 3국간섭으로 크게 수정이 되고 만다. 러시아가 일본의 고베 앞바다에 함정을 끌고 와서 무력시위를 하면서 불란서와 독일의 협조를 얻어 일본에게 그 조약을 수정하라고 강요한 것이다. 3나라와 동시에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일본은 눈물을 머금고 요동반도를 청국에 되돌려주고 전쟁배상금도 7분의 1규모인 3천만냥으로 축소하고 만다. 그때 일본은 부동항을 찾아서 남하를 계속하고 있는 러시아 세력을 물리치지 아니하는 한 조선반도를 집어삼키고..

서배 할배57(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57(작성자; 손진길) 다음해 1902년 봄이 되자 서배 아재 손상훈은 어디에 못자리를 만들까 고민을 하고 있다. 평소 재래종 볍씨를 뿌리는 못자리는 매년 하는 일이라 그 장소가 정해져 있다. 금년에는 그와 달리 일본에서 가지고 온 두가지 종류의 볍씨를 뿌릴 못자리를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 조선의 재래종이 아니라 일본에서 여러가지 우수 품종을 교배하여 만들어낸 육종학적인 우량종자이다. 그런데 그것이 두종류이다; 하나는 만생종이고 또 하나는 조생종이다. 손상훈이 오경덕 선생의 도움을 받아 그 볍씨를 구한 장소가 각각 다르다. 그러므로 서배 아재는 그 볍씨를 얻은 일본 동경 교외의 그 농촌의 위치와 환경을 고려하여 자신의 못자리를 만들려고 한다. 그는 한곳은 볕이 잘 드는 언덕배기 아래쪽으로 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