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손진길 소설)

서배 할배61(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9. 23. 14:47

서배 할배61(작성자; 손진길)

 

내남 덕천의 지주인 최사권 선비의 집에서는 여전히 2달에 한번씩 사랑방모임이 개최가 되고 있다. 그 모임에 정기적으로 출석하고 있는 인사가 1901년에 함께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는 5쌍의 부부들이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집주인인 최사권과 그의 아내인 손예린, 이조에 설립이 된 소학교의 교장인 장인식과 그의 아내인 최순옥, 덕천의 서쪽에 있는 상신 너븐들에 살고 있는 지주인 서배 아재 손상훈과 그의 아내인 이채령, 외동 서배 마을의 지주인 김춘엽과 그의 아내인 이가연, 외동에 설립이 된 소학교의 교장인 안성기와 그의 아내인 이다연 등이다.

1906년 10월 하순에 그들은 정기적인 사랑방모임을 열고 있다. 그때 그 자리에서 서배 아재 손상훈이 중요한 안건을 하나 말하고자 한다. 그래서 먼저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연다; “저는 지난 1901년 가을에 일본에서 우량품종인 두 종류의 볍씨를 조선에 가지고 왔습니다. 이듬해 봄부터 시험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하여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1904년 가을에는 논에서 성공적으로 수확을 하게 되었지요…”.

 모두들 얼굴에 기쁨의 빛이 역력하다. 그것이 다수확품종인 줄 벌써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배에 성공을 하고서도 어째서 2년이 지나서 이제야 그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 점이 궁금하다. 다소 의아해하고 있는 좌중의 표정을 읽고서 서배 아재 손상훈이 설명을 한다; “그런데 풍토와 환경이 달라지면 그 생장과 수확에 변동이 생기지요. 그 점을 우려하여 저는 작년과 금년에 두차례 더 시험재배를 했습니다”.

농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지주 최사권과 김춘엽이 고개를 끄떡인다. 그 모습을 보고서 부인들을 포함하여 두사람의 교장이 무슨 말인지 비로소 이해를 한다. 그러자 손상훈이 자세하게 설명한다; “매년 논의 위치를 바꾸어서 모내기를 해보았지요. 그 결과 이제는 볍씨의 토착화에 상당히 성공을 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 최종적인 볍씨를 몇 가마니 별도로 챙겨 두었지요. 그것은 제가 5년 전에 동경에서 약속한 그대로 이웃에게 좋은 종자를 전파하기 위한 볍씨입니다”.

그 말을 듣자 모두들 서배 아재 손상훈의 성공을 축하한다. 축하가 어느 정도 끝나자 좌중을 대표하여 선비 최사권이 손상훈에게 말한다; “여보게 서배 아재, 그런데 그 수확의 증대가 어느 정도인가?”.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손상훈이 즐거운 마음으로 답한다; “제 논에서는 일본에서 본 그대로 2할의 증산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이 직접 재배를 하시고 증산의 기쁨을 맛보실 차례입니다”.

쌀의 생산이 2할이나 증가한다고 하니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것은 기적의 볍씨와 같다. 우량품종이라고 하더니 참으로 대단하다. 모두들 입을 쩍 벌리고 있을 때에 손상훈이 말을 잇는다; “저는 우선 그 볍씨를 농사를 크게 짓고 계시는 지주이신 매형 최사권과 친구 김춘엽의 집안에 전파하고자 합니다. 아무쪼록 먼저 자신들의 논에 재배하여 수확의 증대를 확인하신 다음에 그 종자를 이웃에게 전파하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혹시 잘못 재배가 되어서 수확량의 감소가 발생하면 이웃의 원망을 크게 듣게 될 것이므로 그 점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충분히 알아 듣고서 최사권 선비와 지주 김춘엽이 말한다; “서배 아재, 걱정을 마세요. 평생 농사꾼들과 함께 살아온 우리들이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습니까? 얼른 그 기적의 볍씨나 주시구려. 언제 가지러 갈까요?”.

그러자 손상훈이 ‘허허’라고 웃으면서 한마디를 한다; “두 분은 혹시 제 마음이 그 사이에 변할까 염려하시는 모양입니다.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세요. 내일이라도 당장 소달구지에 실어서 보내 드릴께요. 대문들을 활짝 열어놓고 기다리고 계세요. 그리고 볍씨 값으로 장차 탁배기나 자주 받아 주세요”.

최사권과 김춘엽이 맞장구를 친다; “서배 아재 어디 탁배기 뿐이겠는가? 매번 경주 오일장에서 우리들이 돌아가면서 자네에게 술대접과 돼지국밥 대접을 평생 하겠네. 참으로 고마우이…”.

그 말을 듣자 서배 아재 손상훈도 너무나 감격스럽다. 이웃들이 모두 2할의 산미를 증산하게 되면 그 자리에서 소득이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조선의 농사꾼들이 그렇게 부자가 되면 나라의 힘이 그만큼 커지는 것이 아닌가?

95퍼센트 이상의 조선백성이 모두 농사꾼인 고종의 시대이므로 그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렇게 서로가 감격에 젖어 있을 때에 이번에는 이채령이 말문을 연다; “저와 여러 부인들은 그동안 조선여인들이 간편하게 입을 수 있는 큰 앞치마와 작업복을 여러 벌 구상했지요. 그 시작은 저희들이 일본에서 보았던 그 서구적인 큰 앞치마입니다. 그런데 그 작업은 저희들만 고안하고 만들어 사용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널리 많은 부인들에게 전파하고 배우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잠시 말을 끊고서 이채령이 좌중의 표정을 읽고 있다. 모두가 무슨 말이 나올까 궁금하게 여기고 있는 눈치이다. 그래서 말을 계속한다; “저희 부인들은 이미 합의를 했습니다마는 그 일의 실현을 위해서는 여러 남자분들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두 곳의 소학교에서 낮에는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저녁이 되면 주민들을 모아 놓고 기술교육을 좀 시켰으면 좋겠다고 하는 안건이기 때문입니다”.

남자분들이 모두들 ‘아 그런 것이구나!’하고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혹시 돈이 많이 드는 것이면 어떻게 하나’ 하고 미리 염려를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최사권과 김춘엽이 기분이 좋게 응답을 한다; “좋습니다. 저녁시간에 교실을 활용하여 그렇게 동네 부인들에게 여러분들이 양재기술을 전파하면 되겠군요”.

그런데 그것이 아니다. 이채령이가 야무지게 한마디를 한다; “시작은 그렇게 양재부터 하지만 저희들의 생각은 기타 여러 가지 기술교육을 소학교에서 어른들을 대상으로 실시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당장 필요한 농사교육도 있고 근대적인 과학기술을 보급하는 일이 전부 포함이 되겠지요. 그렇게 하자면 선생을 먼저 구하고 그 다음에는 실습자료도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의향을 묻고 있는 것이지요…”.

이거 보통일이 아니다. 부인들이 훨씬 먼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반대를 할 수는 없다. 그것이 이치에 맞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날 저녁에는 남자들이 따로 모여서 그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기를 시작한다. 그렇게 밤새 토론을 하라고 부인들은 아예 안방으로 자리를 옮기고 만다.

  1906년 가을걷이가 끝난 10월달에 덕천 사랑방에서는 그와 같이 또다른 근대화의 논의가 한창이다. 그것은 근대화라는 수확을 얻기 위한 조선의 시골 선비들의 몸부림이다. 일각에서는 최익현을 비롯하여 여러 선비들이 의병을 조직하여 총칼을 들고 항일 무장투쟁에 나서고 있는 피냄새가 나는 시국이지만 덕천 사랑방의 선비들은 그와 다르다.

그들은 그러한 단기적인 무장투쟁보다는 더 장기적이고 실효성이 있는 독립투쟁을 구현하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농업생산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근대적인 기술교육을 백성들에게 시키는 것이다.

1906년 가을이면 일제가 통감부정치를 가동하여 대한제국의 독립성을 거의 빼앗고 있는 때이다. 그렇게 대한제국의 명운이 다 되어가고 있는 시대에 조선의 시골에서는 새로운 기운이 움트고 있는 것이다. 시골의 선비들과 신학문 선생들이 모여서 산업과 교육과 생활의 근대화를 이루어 힘있는 조선을 만들고자 밤새도록 서로의 지혜를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