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57(작성자; 손진길)
다음해 1902년 봄이 되자 서배 아재 손상훈은 어디에 못자리를 만들까 고민을 하고 있다. 평소 재래종 볍씨를 뿌리는 못자리는 매년 하는 일이라 그 장소가 정해져 있다. 금년에는 그와 달리 일본에서 가지고 온 두가지 종류의 볍씨를 뿌릴 못자리를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
조선의 재래종이 아니라 일본에서 여러가지 우수 품종을 교배하여 만들어낸 육종학적인 우량종자이다. 그런데 그것이 두종류이다; 하나는 만생종이고 또 하나는 조생종이다. 손상훈이 오경덕 선생의 도움을 받아 그 볍씨를 구한 장소가 각각 다르다. 그러므로 서배 아재는 그 볍씨를 얻은 일본 동경 교외의 그 농촌의 위치와 환경을 고려하여 자신의 못자리를 만들려고 한다.
그는 한곳은 볕이 잘 드는 언덕배기 아래쪽으로 정한다. 그곳에 만생종 볍씨를 뿌리고자 한다. 또 한곳은 바람이 잘 통하는 평평한 들판에 못자리를 선정한다. 그곳에는 일본 조생종의 볍씨를 뿌리고자 한다. 그렇게 결정을 하자 그해 늦봄에 시험적으로 볍씨를 뿌려본다. 그리고 며칠에 한번씩 못자리 두 군데를 순찰한다. 잘 자라고 있는지를 거듭 확인하는 것이다.
모내기 철이 다가오자 재래종 볍씨를 뿌려서 대규모로 모를 키운 못자리에서는 예년처럼 모가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다. 옛날부터 농사꾼들이 못자리에서 모가 튼실하게 자라면 벌써 반농사는 성공을 했다고 말하는데 그것을 보니 손상훈은 굉장히 기분이 좋다. 역시 재래종이 조선사람의 마음에 편하고 좋은 것이다;
그 다음에는 손상훈이 조심스럽게 언덕배기 아래에 못자리를 만들어 둔 곳으로 가본다. 서배 아재가 깜짝 놀란다. 모가 며칠 사이에 너무나 잘 자라 있기 때문이다. 성공이다. 그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른다. 며칠 전에도 와 보았지만 이번에 보니까 모가 더욱 건강해 보인다. 이곳 내남의 언덕배기 아래쪽이 일본 동경 외곽의 그곳과 자연환경이 흡사한 모양이다;
그는 너무 좋아서 넓은 들판에 조밀하게 만들어 둔 별도의 못자리로 가본다. 그곳의 모는 며칠 전에 점검한 그대로 여전히 실패 반 성공 반이다. 그래서 손상훈은 힘이 들지만 실패한 모는 버리고 성공한 모만 따로 모은다. 그것을 모내기 용으로 시험적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물론 그는 두가지 종류의 일본 볍씨를 뿌려 못자리에서 키운 모를 각각 이앙할 논을 따로 정하고 있다. 재래종과 섞이지 아니하도록 사전에 조치한 것이다. 그렇게 그는 그해 세가지로 모내기를 하고 그 결과를 한번 지켜보고자 한다.
그해 가을에 서배 아재 손상훈은 조선 재래종인 경우 전년도와 비슷한 소출을 얻는다. 그런데 일본 볍씨를 뿌린 못자리 가운데 하나 곧 튼튼하게 잘 자란 모를 이앙하여 일반논에 모내기한 곳에서는 역시 일본에서 본 그대로 2할의 증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이 언덕배기 아래쪽 못자리에서 키운 만생종이다.
그렇지만 또 하나의 일본 볍씨인 조생종은 못자리에서부터 모가 잘 자라지를 못했다. 그것 가운데 그래도 나은 것을 골라 모아 일반논에 모내기를 했는데 그 결과 수확이 조선의 재래종 정도이다. 못자리에서부터 그 생육이 부진했던 것이지만 재래종과 같이 평년작은 되니 손상훈이 그 볍씨를 버릴 수가 없다. 그것이 만생종보다 그 수확이 훨씬 빠른 조생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손상훈은 그해 가을에 벼 베기를 하면서 그 종자를 따로 모은다. 조선의 논에서 일단 한해 자랐으니 어느 정도 적응력이 생겼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볍씨를 사용하여 내년에 다시 농사를 짓는다면 분명 소출이 나아질 것이다. 환경이 달라지게 되면 벼도 생물체이므로 그 풍토에 맞게 자체 면역력을 갖추게 되는 법이다.
벌써 나이가 50이 넘은 손상훈은 경험이 많은 농사꾼이며 특히 도전정신이 아직 젊은이만큼 강하다. 그러므로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반드시 당대에 2할의 증산을 이루어 선친 손성규가 물려준 천석지기의 재산을 되찾고자 한다. 그는 800석지기로 내려 앉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요컨대, 서배 아재 손상훈은 그 일본의 종자를 토착화하여 성공을 거두고 다시 천석지기가 되고자 한다. 나아가서 그 우량종자를 조선에 널리 보급하고자 한다. 그것이 경험 많은 농사꾼인 자신이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전국적으로 2할의 산미가 증산이 된다면 조선의 국력이 그만큼 커지는 것이다.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서배 할배 손상훈의 보국안민이며 산업의 근대화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1903년 봄에 그는 다시 도전을 한다. 이번에는 두가지 종류의 일본 볍씨를 뿌린 두 군데의 못자리에서 싱싱한 모가 자라난다;
그리고 가을 수확기가 되자 조생종인 벼에서도 1할의 증산이 이루어진다. 그것을 보고서 손상훈은 희망을 가진다. 그래서 다음해 1904년에 다시 도전을 한다. 늦은 봄에 따로 못자리를 만들어 모를 키운 결과 잘 자라고 있다. 그것으로 일반논에 모내기를 했더니 그가 예상한 대로 그해 가을에 조생종의 벼에서도 2할의 증산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1904년 가을은 서배 아재 손상훈과 그의 아내 이채령이 잊을 수가 없는 해이다. 선친이 물려준 천석지기의 명예를 되찾은 해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아들 손영주를 결혼시키고 나중에 천석지기의 살림을 그에게 물려주게 되면 자신의 사명을 집안에서 온전히 감당하는 것이 된다.
내남 너븐들 뒷산 선영에서 아들과 자손들이 대대로 번성하는 것을 지켜보겠다고 하신 선친 손성규의 소원이 그렇게 볍씨의 종자개량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 생각을 하면서 서배 아재 손상훈 부부는 그해 가을 추수를 끝낸 후에 아들 손영주를 데리고 선친의 산소와 구왕골 앞산에 있는 모친 이숙임의 산소를 찾아간다.
그렇게 조상의 음덕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 순박한 너븐들의 지주가 손상훈이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사랑하는 아내 이채령이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의 대를 이어갈 손영주도 어느새 21살이 되어 믿음직한 청년으로 자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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