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손진길 소설)

서배 할배55(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9. 22. 20:21

서배 할배55(작성자; 손진길)

 

덕천 사랑방모임의 5선비와 그 부인들은 아침 일찍 기상을 한다. 오늘은 동경역에 가서 오전에 열차를 타고 후쿠오카로 먼 길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안주인인 오문자가 차려주는 아침상을 받고 있을 때에 바깥주인인 박철이 모두에게 말한다; “오늘은 여러분들이 동경을 떠나는 날입니다. 언제 또 만날 수가 있을지 헤어지기가 참으로 섭섭합니다. 저는 일본땅에 조선사람이 별로 없던 시절 1872년부터 이곳 동경에서 집사람과 30년을 살아왔기 때문에 이렇게 여러 동포를 만나 함께 지내는 시간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이제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마치 혈육을 떠나 보내는 것 같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지며 잠시 울먹이던 박철은 자신의 감정을 애써 달랜 후에 말을 잇는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저는 두가지를 하고자 합니다; 하나는, 아침식사를 마치면 제가 이웃에 살고 있는 사진사를 급히 불러올 터이니 저희 집에서 함께 기념촬영을 하도록 합시다. 사실은 어제 벌써 사진사에게 출장을 부탁해 두었습니다. 사진이 나오면 제가 조선에 우편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또 하나는, 제 딸 박미자의 사진을 몇 장 안성기 선생에게 주려고 합니다. 안 선생 부부께서는 아직 미혼인 아드님에게 꼭 한번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서로 좋은 인연이 되어 이곳 동경에서 또 하나의 조선인 가정이 탄생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말을 듣자 함께 식사를 하고 있던 처녀 박미자가 얼굴을 붉힌다. 그 모습을 보고서 모두들 빙그레 미소를 띤다. 박철 선생이 먼저 식사를 마치고 재빨리 문간을 나선다. 그러면서 딸 박미자에게 말을 남긴다; “아빠가 빨리 촬영을 하도록 주선할 터이니 미자 너도 단체사진을 찍고 출근을 하도록 하려무나. 언제 이분들을 또 만나겠니…”.

조선에서 온 일행은 사진이란 반드시 사진관에 가야만 찍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가정집을 방문하여 기념촬영을 해준다고 하니 그것이 신기하다. 큰 후레쉬가 번쩍 터지면서 단체사진을 찍는 것이 한번 해볼 만 하다. 촬영이 끝나자 마자 박미자가 여러 어른들에게 공손하게 절을 하고서 출근길에 나선다.

그날 동경역까지 오경덕 선생의 누나인 오문자가 동행을 한다. 방문단의 짐이라도 들어주려고 한다. 그래서 도쿄역사 앞에서 또 한번의 이별장면이 연출된다. 집에서 여러 선비들이 집주인 박철과 나눈 석별의 인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얼마나 부인들이 서로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며 진한 이별의 정을 나누고 있는지 모른다. 모두가 그동안 서로 언니 동생이 된 모양이다.   

오전에 정해진 시간에 열차가 남쪽으로 출발을 한다. 상경을 할 때에 오경덕 선생이 낮열차를 타고 남행을 하게 되면 멀리 후지산을 볼 수가 있다고 하더니 과연 그러하다. 멀리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높은 산이 독불장군처럼 눈에 들어온다. 그 모습이 장관이다. 저렇게 독보적이면서 압도적인 풍광을 지니고 있으니 일본사람들이 그렇게 후지산을 좋아하고 또 자랑을 하는가 보다.

며칠 후 방문단 일행은 일본의 규슈 지방에 있는 후쿠오카 항구에서 배를 타고 조선의 부산항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동래에서 역참에 들러 말을 빌려 부인들을 태우고 여러 날이 지나 경주에 도착한다.

이왕 경주 읍내에 온 김에 일행들은 웃시장에 있는 돼지국밥 식당으로 향한다. 김춘엽의 여동생인 김경화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 그 국밥집을 찾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갑자기 11명의 손님이 한꺼번에 밀어 닥치자 김경화가 ‘어머머’하고 놀란다. 앞장을 서서 들어오고 있는 오빠 김춘엽과 올케 이가연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녀의 사촌 여동생인 김해련의 남편 오경덕이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녀의 고모인 김옥심의 딸이 되는 이채령의 부부도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그 밖에도 경주 오일장이면 그녀의 식당을 수년간 찾고 있는 단골들이 한꺼번에 밀어 닥치고 있다.

김경화는 모두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자리를 권한다. 그리고 급히 부엌으로 뛰어가서 남편 정진평을 데리고 나온다. 정진평도 참으로 반갑게 그들을 맞는다. 그때 선비 최사권이 점잖게 한마디를 한다; “주인장, 아무리 반가워도 돼지국밥을 한 그릇 씩 내오시게나. 다들 먼 길에 피곤하이. 오늘 밥값은 전부 내가 내도록 하겠네. 많이들 드시게나…”.

그 말을 듣자 모두들 ‘허허’라고 웃는다. 돼지국밥 값이야 누가 내더라도 상관이 없다. 그러나 그렇게 연장자이신 최사권 선비가 큰 소리를 치시는 것을 보니 이곳이 조선 땅 고향인가 보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져서 그렇게 한턱을 내시겠다고 호기를 부리시는 것이다.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려 선비 김춘엽이 일동에게 말한다; “다들 먼 길에 피곤하실 터이니 각자 집에 돌아가는 일정은 하루 미루시고 오늘은 저의 부모님이 계시는 집으로 가셔서 하루 유하시지요… 이곳에서 그리 멀지가 않습니다. 그곳에서 다리를 쉬시고 내일 다같이 헤어지도록 하십시다”. 모두들 ‘고맙다’고 말하면서 크게 고개를 끄떡인다.

경주 웃시장 근처 성동에 자리를 잡고 있는 김춘엽의 부친 김종민의 집은 상당히 규모가 크다. 김춘엽 부부가 일행을 인솔하여 대문을 들어서자 마침 집에 있던 김종민과 그의 아내 정해옥이 반색을 한다. 일행을 대표하여 연장자 최사권이 먼저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갑자기 이렇게 어르신을 찾아 뵙습니다. 아드님 내외와 함께 한달 가까이 일본을 방문하고 이제 경주 읍내에 도착하여 이렇게 다리나 쉬어 가려고 들렀습니다. 그동안 두분께서는 평안하시지요?”.

선비 최사권이 김종민 부부를 생각하여 그의 춘부장을 ‘어르신’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실제 나이로 따지면 김종민이 최사권보다 4살 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김종민이 민망하여 급히 대답을 한다; “허허, 같이 늙어가면서 최 선비께서 나를 나이 많은 늙은이로 부르고 있으니 참으로 민망허이… 잘 왔어요. 일본방문 이야기를 밤새 들려주시구려. 덕분에 공짜여행을 좀 합시다”.

그날은 김경화와 정진평 내외도 식당문을 평소보다 좀 일찍 닫고 집으로 온다. 방문단으로부터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모두들 그 집에서 하루를 쉬면서 일본 다녀온 뒤풀이를 하고 있다. 그 집에는 방이 많아서 김종민 내외가 하나, 딸 김경화 부부가 하나, 그리고 방이 서너 개나 더 있다. 굉장히 큰 집이다. 그래서 불편함이 없이 하루를 잘 지낸다. 그 집에는 이제 11살이 된 딸 정애라와 8살이 된 아들 정한욱이 있는데 그날만은 부모와 한 방에서 지내게 된다.

서배 아재 손상훈과 아내 이채령은 김경화 부부의 딸 정애라를 눈여겨본다. 조선의 나이로 11살이니 이제는 처녀의 티가 조금 나려고 한다. 그들 부부는 아들 손영주가 올해 조선나이로 18살이나 되었으니 6-7년 후에는 결혼을 시키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미리 정애라를 유심히 살피고 있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식사를 그 집에서 하고 모두들 작별의 인사를 한다. 그리고 한가지 약속을 한다. 두 달에 한번씩 만나는 내남 덕천 사랑방모임에 이제부터는 부부동반으로 참석을 하자는 것이다. 그곳에서 일본방문 때 나눈 이야기와 각자 실천하고자 하는 과업에 대한 경과를 보고하고 서로 돕는 방안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모두들 대찬성을 한다.  그것으로 일종의 사랑방모임 계중이 형성이 된다.

경주에서 내남으로 가는 사람들은 덕천에 살고 있는 선비 최사권 내외와 장인식 내외, 그리고 너븐들에 살고 있는 서배 아재 손상훈 내외이다. 또한 경주에서 외동 서배 마을로 가는 사람들은 김춘엽 내외와 안성기 내외이다. 그렇게 크게 두 패로 갈라지고 있다.

그들은 경주 읍내에 있는 역참에 말을 반납하고 이제는 30리나 되는 길을 터벅터벅 걸어서 집으로 간다. 남자들은 어깨에 봇짐을 지고 여인들은 머리에 짐을 이고서 걷는다. 그렇게 남부여대로 먼 길을 가고 있으니 참으로 힘이 든다.  

일본에서는 먼 거리는 열차를 타고 이동을 하고 가까운 거리는 전철을 이용하였는데 조선의 지방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시골 가는 길을 제대로 정비하지 아니하여 마차가 달리지를 못하고 기껏해야 소달구지가 덜컹거리면서 느린 속도로 짐을 나르고 있다. 사람들이 먼 길을 갈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역참의 말을 빌려서 사람을 태우거나 짐을 실어 나르고 있으니 불편하기 그지 없다.

그나마도 부산에서 경주까지 오는데 말을 빌릴 수 있는 역참이 조선시대에는 다음과 같이 11군데에 불과하다;

黃山道 (梁山) 仍浦(慶州) 奴谷(慶州) 輪山(梁山) 渭川(梁山) 德泉(彦陽) 堀火(蔚山) 
       肝谷(蔚山) 河月(機張) 蘇山(東萊) 休山(東萊) 新明(機張)
12

                  

  한마디로, 일본의 교통수단이 근대화되어 있다고 하면 조선의 교통수단은 전근대적인 것이다. 그러한 엄청난 격차를 새삼 느끼고 있는 방문단이다. 그러므로 빨리 조선을 근대화하고 산업을 발전시켜야만 한다. 그러한 책무를 다시금 무겁게 느끼고 있는 방문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