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손진길 소설)

서배 할배53(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9. 22. 10:00

서배 할배53(작성자; 손진길)

 

13. 새로운 볍씨와 천석꾼의 꿈;

 

서배 아재 손상훈은 다음날 이른 새벽에 잠이 깼다. 옆에서는 사랑하는 아내 이채령이 아직도 잠에 푹 빠져 있다. 손상훈은 오늘과 내일이 지나고 모레가 되면 자신을 포함하여 덕천 사랑방모임의 5선비와 그 부인들이 일본방문일정을 모두 마치고 조선으로 돌아간다고 생각을 하니 잠이 일찍 깨인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을 방문한 20일 가까운 일정 가운데 많은 것들을 보았으며 또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 결과 이미 산업근대화를 이룬 일본과 비교를 하니 조국인 조선이 비록 1897년에 대한제국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였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그 격차가 엄청난 것이다. 빨리 조선의 산업을 근대화하고 국력신장을 하지 아니하면 멀지 아니하여 앞서가는 일본에 잡아 먹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동양에서 최초로 위로부터의 개혁과 개방 그리고 산업근대화를 이루어 세계가 놀라는 선진국이 된 일본을 무슨 수로 조선의 조정과 백성들이 따라 잡을 수가 있을 것인가? 그것이 조국의 숙제이자 방문단인 자신들의 할 일이다. 그 점을 생각하니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참으로 가슴이 답답하다.

서배 아재 손상훈은 개인적으로 11년 전에 돌아가신 선친 손성규로부처 천석지기 살림을 물려 받았지만 그것을 제대로 지키지를 못한 사람이다. 자신이 이를 악물고 재산을 지킨다고 노력을 하였지만 하늘이 무심했다. 수년간 계속하여 홍수가 나서 3대가 100년 가까운 세월을 투자하여 개간한 논과 밭이 많이 자갈로 뒤덮이고 만 것이다. 그것을 다시 개간하느라고 재물을 사용하다가 보니까 그만 800석지기의 살림으로 내려앉고 말았다.

어떻게 하면 다시 천석지기가 될 수가 있을까? 그렇게 자신의 가문부터 부흥을 시키는 것이 조선이 살 방도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의 것을 빼앗지 아니하고 다시 천석꾼이 될 수 있는 방법이 과연 무엇일까? 그렇게 자신이 성공할 수만 있으면 그만큼 이웃과 조선백성들이 부강한 나라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고민을 깊이 하다가 보니까 갑자기 전광석화와 같은 좋은 생각이 하나 섬광처럼 손상훈의 머리를 스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서배 아재 손상훈은 부친 손성규를 도와 어린시절부터 24살의 노총각이 될 때까지 한결같이 거랑가의 땅을 개간하여 논으로 만든 의지의 인물이다. 그리고 선친과 마찬가지로 타고난 농사꾼이다. 그러한 그가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의 후꾸오카 항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그곳의 논을 바라보고서 깜짝 놀랐다. 늦여름 논의 벼 이삭이 참으로 충실하고 하나같이 열매가 많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그 광경이 갑자기 자신의 눈 앞에 다시 펼쳐진 것이다.

일본의 큰 4개의 섬 가운데 서남쪽에 있는 규슈의 중서부에 후쿠오카가 위치하고 있다. 그곳 날씨가 경주 월성보다는 상당히 덮다. 그러므로 더 남쪽으로 느껴진다. 그 후쿠오카의 인근 시골의 논에서 익어가고 있는  늦여름의 벼 이삭이 충실하고 그 열매의 수가 상당히 많았다. 이제 가을로 접어 들고 있으니 조금 있으면 대단한 수확량을 보일 것이다.

조선의 내남 너븐들에서는 자신의 논에서 벼가 자라고 있지만 손상훈이 볼 때 일본의 벼만큼 튼실하거나 다수확품종이 아니다. 그렇다면 일본의 볍씨를 구하여 묘판에서 잘 키워 그 모를 가지고 모내기를 하면 곡수가 더 많이 날 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고 있다.

농사꾼인 자신이 평생 처음으로 외국에 나와서 일본의 논을 구경하면서 왜 진작에 그러한 생각을 못했을까? 마치 자신이 한 정신을 빼놓고 산 멍청이 바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조선의 앞날을 염려하다가 그만 자신의 본분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조국의 산업의 근대화와 국가발전은 각자가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의 발전을 이룬다면 그것이 모두 합하여 이루어지는 총화라는 생각이 비로소 드는 것이다.

그것이 애국애족이며 일본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라고 한다면 자신은 일개 농사꾼으로서 그것만이라도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그러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조목조목 정리를 해본다; 첫째, 조선의 산업근대화를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능력만큼 각자 선진화를 이루도록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각자 이곳 일본에 있는 동안에 찾아서 한번 토론하도록 한다. 둘째, 손상훈 자신은 농업을 근대화하는 방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이곳 동경의 날씨가 고향 내남과 비슷한 것 같으니 여기서 자라고 있는 벼를 살피고 그 볍씨를 조선으로 가지고 가는 방법을 모색해본다.

셋째, 고향에서 그 볍씨를 못자리에 뿌려서 모로 잘 키울 수만 있다면 시험적으로 모내기를 하고 그 소출을 재래종과 비교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손상훈은 그날 아침식사를 하면서 그 일을 공론에 부친다. 그 결과 모두들 찬성이다. 지금까지 너무 큰 주제와 과업에 눌려 있던 선비들과 그 부인들이 이제야 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그렇다 이제 이틀이 지나면 귀국하게 되겠지만 그 사이에 여기서 배워 구체적으로 조선에서 써먹을 수 있는 것을 각자 한가지씩 찾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합의가 되자 서배 아재 손상훈이 오경덕 선생에게 별도로 도움을 청한다. 오경덕 선생은 1877년 봄부터 1893년 봄까지 무려 16년간이나 서배 아재가 재정지원을 한 양삼마을 서당에서 생도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친 선생이므로 손상훈과는 무척 가까운 사이이다. 마치 그의 동생과 같다. 그러므로 서배 아재가 자신을 오늘 하루만 전적으로 좀 도와 달라고 요청을 하자 무엇인지도 모르고 쾌히 승낙부터 한다.

그날 서배 아재 손상훈은 오경덕 선생의 도움을 받아 동경 외곽에 있는 농촌지역을 방문한다. 계절이 늦여름에서 가을로 접어 들고 있기에 벼 이삭이 잘 여물었고 이제는 나락의 무게 때문에 벼가 고개를 수그리고 있다. 시골의 논을 찾아 걸으면서 특별히 열매가 많이 맺혀 있는 논을 찾는다. 그렇게 하루 종일 찾은 결과 두 사람은 두가지 품종을 발견한다;

하나는  늦게 익는 품종인지 아직 벼가 푸르른 빛을 띠고 있지만 이삭이 참으로 충실하고 그 열매의 수가 많다. 일종의 만생종이다;

또 하나는, 일찍 익는 품종이다. 그래서 벌써 누른 빛을 띠고 있는데 그것 역시 벼가 튼실해 보이고 열매의 수가 많다. 말하자면 조생종이다;

귀하게 발견한 일본의 다수확 품종들이다. 두 종류 모두 조선의 벼와 비교하면 2할 이상 다수확이 가능한 것들이다.

그 두가지 품종을 발견하고 서배 아재 손상훈이 크게 기뻐하자 오경덕 선생이 도움말을 주고 있다. 그가 일본에서 중학생으로 공부를 하면서 그러한 과목도 일부 배운 모양이다; “근대 산업선진국에서는 과학적으로 식물의 종자를 서로 교배하여 우수한 품종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한 종묘법으로 우량품종을 만들어 농사를 지어서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있지요. 그 결과 옛날에는 하루 한끼를 먹고 살던 일본인들이 이제는 하루 두끼의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는 손상훈은 일본의 명치정부가 참으로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백성들을 잘 먹이기 위하여 농산물의 품종개량을 하여 우량품종을 만들고 그것을 농가에 보급하여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있는 것이다. 조선에서는 아직도 하루 한끼 식사밖에 할 수가 없는 백성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벌써 모두가 하루 두끼의 식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날 서배 아재 손상훈과 오경덕 선생은 그 두 논에서 두가지 품종의 벼를 좀 얻어서 그 볍씨를 참으로 잘 간수를 한다. 그것을 가지고 조선으로 돌아가서 못자리에 재배하여 내년에는 모를 내어볼 생각이다. 좋은 결과를 가지고 두 사람이 저녁에 박철 선생의 저택으로 돌아온다.

내일은 각자 무엇을 일본에서 찾았는지 그리고  개인적인 조국선진화의 방법이 무엇인지를 다 함께 구체적으로 토론할 것이다. 그래서 두사람은 벌써 내일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