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51(작성자; 손진길)
다음날 오경덕 선생이 덕천 사랑방모임의 방문단 10명을 데리고 아사쿠사에 있는 사원과 신사로 간다. 도쿄에 오는 관광객이면 누구나 그곳을 방문한다고 말한다. 그들 뿐만이 아니다. 동경사람들도 가장 큰 절이 있는 그곳을 구경하기를 좋아한다. 그 절과 신사에서 모두들 자신들의 소원을 빌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불교의 절과 일본의 토착적인 신사가 사이 좋게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으며 그 둘이 일본인들의 종교생활의 중심이 되고 있는데 방문단의 눈에는 그것이 신기하다. 물론 조선에서도 불교의 사원에 민간의 전통적인 토속신앙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공간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일본처럼 별도로 큰 규모는 아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절의 수보다 신사의 수가 더 많은 것 같다.
일본사람들은 부처에게 복을 빌면서 동시에 신사에 모셔져 있는 조상들과 여러 신들에게도 복을 빌고 있다. 복을 비는 장소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리고 소원을 들어주는 신들이 분업화되고 전문화되어 있을 수록 더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사도 자신들이 모시고 있는 신의 전문분야를 선전하기에 바쁘다.
일본사람들은 신들의 전문분야에 맞추어 소원을 빌게 되면 그 효험이 더 확실하다고 믿고 있다. 그것은 일찍부터 산업의 분화와 제품의 세분화 그리고 생산기술의 전문화를 추구해온 일본사람들의 전통에 어울리는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도쿄의 유명한 사찰인 아사쿠사의 절의 이름을 ‘센소지’라고 달리 부르고 있다. 방문단 일행이 어째서 그렇게 불리고 있는지를 몰라서 어리둥절해 하자 오경덕 선생이 친절하게도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한다; “아사쿠사는 한자로 ‘얇은 천’ 자와 ‘풀 초’ 자를 쓰고 있는데 그것은 일본식으로 훈독을 하면 ‘아사쿠사’이고 그 소리를 일본식으로 음독을 하면 ‘센소’입니다. 그리고 ‘절 사’ 자라고 하는 한자는 그 일본식 음독이 ‘지’입니다. 따라서 ‘센소지’는 조선말로 하면 ‘천초사’인데 그 뜻은 ‘아사쿠사의 절’이지요”.
그 말을 들은 일행 중 김춘엽이 질문을 한다; “그러면 일본사람들은 절의 이름에 있어서는 훈독이 아니라 음독을 하는 모양이지요?”. 오경덕 선생이 즉답을 한다; “맞습니다. 일본에서는 절의 이름과 같은 고유명사는 구태여 훈독을 하지 아니하고 음독으로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이름을 한자로만 알고 있는 경우에도 반드시 어떻게 발음을 하면 좋은 지 당사자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것 참 조선말에 비하여 복잡하다. 그러자 일행 가운데 서너 명의 부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오경덕 선생에게 질문을 한다; “아사쿠사 지역이 어째서 ‘풀이 얇다’ 라고 불리고 있는지 혹시 아시나요?”. 오경덕 선생이 재미난 설명을 한다; “센소지는 600년경에 천태종을 받아 들여서 지은 절입니다. 그때 티벳어 ‘아샤쿠샤’가 들어와서 이 지역의 이름이 그렇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1,100년경부터 이곳에 수풀과 잡초가 많아서 ‘천초’ 곧 ‘아사쿠사’라고 불렀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기는 합니다마는 역시 시기적으로 티벳어가 이곳 지명이 되었다는 설명이 먼저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덕천 사랑방모임의 인사들이 아사쿠사에 있는 신사에서 본 것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일본사람들이 자신들의 소원을 빌기 위하여 붙여 놓은 명패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면 감사의 나무판 ‘에마’까지 나무에 달고 있다;
그렇게 기부를 하고 정성을 보이면 그들의 소원이 잘 이루어지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은 고급종교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 고등종교라고 한다면 현세적인 복을 비는 것보다는 영혼의 구원이나 영생 그리고 평등한 세상을 구현하고 인간의 권리를 신장하는 그러한 고상한 소망을 성취하기 위한 것일 테니까 말이다.
그날 하루 동안에 아사쿠사에 있는 불교사원과 토착적인 신사를 모두 구경을 하였더니 제법 많은 길을 걸은 것 같다. 그리고 관광객이 많아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하는 구간도 상당히 있다. 역시 일본에는 조선에 비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모양이다.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오경덕 선생이 한가지 아쉬운 점을 일행에게 말한다; “이곳 동경에도 축제인 마츠리 행사가 많습니다마는 여러분들이 머무는 동안에는 마침 행사가 없습니다. 그래서 강변과 해변에서 이루어지는 불꽃놀이 ‘하나비’를 구경할 수가 없어서 아쉽습니다…”. 그 말을 듣자 서배 아재 손상훈이 말을 한다; “저희들은 요행히 오사카를 방문하였을 때에 불꽃놀이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오사카 성 주변에서 하는 불꽃놀이 하나비가 일본에서는 가장 보기가 좋다고 하더군요”.
오경덕 선생이 동의를 한다; “강변이나 해변에서 하는 불꽃놀이 보다야 고성을 배경으로 하늘을 수놓은 하나비가 더 인상적인 것이지요. 한번 보셨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 말을 들은 방문단 일행은 십여 일 전에 오사카에서 보았던 하나비를 머리속에 다시 회상해본다. 지금 생각해도 일대 장관임이 틀림이 없다.
그렇게 지나간 오사카의 밤을 추억하는 동안에 그날 동경에서의 또 하루가 저물고 있다. 이제 덕천 사랑방모임의 방문단은 내일 하루만 도쿄시내를 관광하고 조선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자 한다. 벌써 조선을 출발한지 20일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조선의 시골에서는 농번기이므로 농사일이 한창 바쁠 것이다.
그렇게 농사일이 다시 걱정이 되는 것을 보니 조국을 떠나온 지 제법 긴 모양이다. 일본의 선진문물을 시찰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모두들 합의를 하여 적극적으로 일본방문에 나서고는 있지만 그래도 마음속에서 고향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역시 고향산천에서 이웃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서로 인정을 나누는 것보다 나은 것이 이국 땅에서는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고향과 타향은 다르다고 말했던가? 그날 방문단 인사들은 모두 고향생각을 하면서 오문자 부부의 집에서 단잠을 청하고 있다.
'서배 할배(손진길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배 할배53(작성자; 손진길) (0) | 2021.09.22 |
---|---|
서배 할배52(작성자; 손진길) (0) | 2021.09.22 |
서배 할배50(작성자; 손진길) (0) | 2021.09.20 |
서배 할배49(작성자; 손진길) (0) | 2021.09.20 |
서배 할배48(작성자; 손진길) (0) | 2021.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