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손진길 소설)

서배 할배49(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9. 20. 13:09

서배 할배49(작성자; 손진길)

 

1895년 을미사변 이후부터 1901년 지금까지 벌써 5년 이상 일본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권동진 선생의 일본과 조선에 대한 이야기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일본의 정부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산업근대화를 이루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에 대하여 섬뜩한 시사를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날에는 본래 동경시내의 관광에 나서려고 했으나 그 계획을 뒤로 미루고 하루동안 덕천 사랑방모임의 동지들과 그 부인들은 오경덕 선생은 물론 집주인인 박철 선생과 함께 대토론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일본에 와서 보고 들은 것을 총 정리하면서 오후 늦게야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첫째로, 오경덕 선생의 주장을 모두가 수긍했다. 그는 일본이 1868년 명치유신 이후 지금까지 일본 열도의 산업근대화를 위해서 구미의 열강으로부터 선진기술을 도입하는 한편 엄청난 자본을 빌려왔다는 것이다. 그 결과 공장에서는 많은 생산이 이루어졌는데 문제는 그 상품을 팔 시장이 해외에 별로 없다는 것이다.

벌써 구미의 열강들이 세계의 식민지를 거의 석권하고 있다. 후발산업국인 일본은 자신들이 생산하는 물건을 팔 수 있는 시장을 해외에서 얻기 위하여 이제는 구미의 선진국과 전쟁을 해야만 한다. 그 전쟁이 바야흐로 조선에서부터 시작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피할 수가 없는 일본과 조선의 운명이다.

둘째로, 권동진 선생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은 역사적으로 조선을 보호국으로 생각하고 있는 청국만 전쟁을 통하여 물리치면 자연히 조선을 자신들의 식민지로 삼을 수가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1894년부터 2년간 청나라와 전쟁을 하고 일본이 이겼으나 결과는 그것이 아니다.

조선이 무주공산이 아니라 그 땅을 일본이 차지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러시아를 비롯한 서양의 열강들이 존재하고 있다. 분석을 해보면, 얼지 아니하는 항구를 찾고 있는 러시아는 직접 조선을 차지하고자 하며 기타 구미의 열강은 일본이 장차 시장을 찾아서 청국과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으로서는 구미의 열강을 안심시키는 한편 조선을 차지하려고 하는 러시아를 무찌르는 것이 조선반도를 차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 작업을 이제는 일본의 내각이 실시하고자 한다. 따라서 외교적으로 구미의 열강들과 타협을 이루게 되면 반드시 일본은 러시아와 전쟁을 하고 조선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셋째로, 권동진 선생은 어제 자신이 생각하는 일본과 조선의 미래전망을 이야기하면서 방문단에게 한가지 숙제를 주고 갔다. 그것은 일본인들의 정신세계를 알기 위하여 일본의 유명한 사찰과 신사를 찾아보고 또한 전통적인 축제 마츠리에 대하여 깊이 생각을 해보라고 한 것이다.

그 점에 대하여 일행들은 서로 토론을 한다. 그들이 조선의 부산항을 떠나 일본의 후쿠오카에 도착하였을 때에 마침 그곳에서 마츠리를 구경한 적이 있다.

그리고 교토에서는 유명한 두개의 사찰인 금각사와 은각사를 방문하였고 또한 여우신사로 알려지고 있는 후시미 이나리 신사도 살펴보았다.

그러므로 내일은 동경에 있는 사찰과 신사도 한번 방문을 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일본에 오래 살고 있는 박철 선생이 그 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먼저 진술하고 또한 10년간 살아본 경험이 있는 장인식 선생과 안성기 선생이 의견을 보탠다. 그리고 오경덕 선생과 서배 아재 손상훈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여 방문단은 나름대로 다음 두가지의 결론을 잠정적으로 도출하고 있다;

그 하나는, 조선에서는 사찰이 번성하고 토속신앙이 그만 못한데 비하여 일본은 그 반대라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신사가 사찰보다 더 번성하고 있으며 특히 명치유신 이후에는 신도가 극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분업화된 여러 신과 천황으로부터 현세적인 복을 엄청 바라는 일본인들의 정신상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또 하나는, 일본은 부락의 축제인 마츠리가 발전하여 근대적인 모습으로 역시 성행하고 있다. 그것은 개인보다는 부락이나 국가에 소속이 된 강한 집단의식을 가지고 현실문제를 타개하고자 하는 그들 나름대로의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한 일본의 집단주의가 이웃나라에 대하여 강력한 침략주의로 나타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어느 정도의 결론에 이르게 되자 방문단 일행은 이웃나라 일본이 두려운 상대라고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어떻게 하면 일본에서부터 시작이 되고 있는 조선에 대한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가 있을까? 그 방법이 과연 무엇일까? 그 점에 대한 토론을 하느라고 그날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다.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일본이 국가주도로 경제를 성장시키고 군비를 강화하여 이웃나라를 식민지로 삼아 자신들의 국가발전을 도모하고 있다고 한다면 조선은 그러한 야만적인 방법을 선택하지 말고 수준이 높은 발전을 이루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방법이 무엇일까? 그것은 물질문명만 발전시키지 말고 그것을 올바르게 인도할 수 있는 정신문화를 동시에 발전시켜 나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웃나라를 정복하여 그 자원을 약탈하지 아니하고 모두가 다 함께 잘 살수 있는 그러한 방법으로 경제성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한 상호 의존적이고 보완적인 발전방향을 모색하자면 근본적으로 물질보다는 인간의 가치가 존중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식민정책을 추진하는 오늘날 구미의 침략적인 제국주의 사상을 뛰어넘어야 한다.

예를 들면, 하늘의 생명의 기운이라는 천주를 인간들이 겸손하게 모시고 다 함께 평등한 세상을 구현하자고 하는 동학사상이 더 나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말들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방문단 일행이 그동안 자신들도 모르게 손병희 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