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손진길 소설)

서배 할배48(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9. 20. 07:17

서배 할배48(작성자; 손진길)

 

동학의 제3대 교주인 손병희 선생과 그의 아우인 손병흠을 전송하고 오문자의 집으로 돌아온 덕천 사랑방모임의 10명의 방문단은 오경덕 선생과 함께 내일의 일정을 논의한다. 5명의 선비와 그들의 부인들은 하나같이 내일은 본래의 계획대로 손병희 선생이 추천을 한 우국지사 권동진 선생을 만나서 그의 말을 들어보는 시간으로 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일행들의 간식거리로 과일을 챙겨서 들고 오던 오문자가 마침 그 말을 듣고서 한마디를 한다; “내일은 제가 쌀가게를 하루 종일 볼 터이니 우리 미자 아빠를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 양반도 평소에 조선의 지도자급의 인사에게서 조선의 정확한 형편과 그 발전방향에 대하여 항상 듣고 싶어 한답니다”.

모두들 그것이 좋겠다고 찬성을 한다. 이제 남은 문제는 어디서 권동진 선생을 만나서 토론을 하는가? 하는 것이다. 어디가 좋을까? 다른 사람에게 말이 새나가지 아니하는 장소가 좋다. 그 말을 듣고서 역시 오문자가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 “제가 내일 아침에 일찍 점심식사 준비도 해놓겠습니다. 그리고 마실 것과 간식거리도 미리 준비해 놓을 것이니 안심들 하시고 우리집에서 그 분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시지요. 그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좋은 생각이다. 불감청고소원이라고 모두들 그렇게 느끼고 있으면서도 차마 오늘에 이어 내일까지 이틀 동안이나 그렇게 신세를 지기가 어려워서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다들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렇게 허락하여 주신다면 저희들은 참으로 감사하지요. 고맙습니다. 미자 어머니”.

그날 저녁에 오경덕 선생이 권동진 선생에게 전화연락을 한다. 다행히 통화가 되고 그의 허락을 얻었으므로 내일 아침 일찍 그를 데리러 가겠다고 한다. 내일 11시 정도에 만나서 권동진 선생의 이야기를 듣기로 결정하고 다들 오늘밤은 내일 아침 늦게까지 잠을 푹 자두기로 했다. 하루 종일 손병희 선생과 이야기를 나누느라고 모두 피곤했던 모양이다.

다음날 오전 10시 50분 쯤에 오경덕 선생이 권동진 선생을 인도하여 도착을 했는데 그의 첫인상이 상당히 강건해 보인다.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한다. 그리고 연장자인 선비 최사권이 조선에서 온 방문단을 일일이 그에게 소개를 한다. 먼저 집주인인 박철 선생을 권동진 선생에게 소개를 하자 박 선생이 고개를 숙여 절을 한다. 그러자 권동진 선생도 그에게  마주 절을 한다.

그 모습을 보고서 소개와 인사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으로 생각을 했는지 선비 최사권이 말을 한다; “먼저 모두들 자리에 앉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부터는 제가 소개를 하더라도 그저 그 자리에서 고개만 까닥하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한꺼번에 일어나서 마주 절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이 소개를 하기에 편할 것 같습니다”. 다들 좋다고 한다. 그래서 일사천리로 소개를 하고 인사까지 끝낸다. 그 참 편리하고도 좋은 소개법인 것 같다.

소개와 인사가 끝나자 권동진 선생이 자기 소개를 간략하게 한다; “저는 안동 권씨이고 이름이 권동진입니다. 저는 어제 여러분들을 만났다고 하는 충청도 갑부 이상헌 선생과 동갑입니다. 1861년생이지요. 제가 보기에 여러분들은 모두 저보다 연장자로 보입니다만…”. 그 말을 듣자 모두들 동학교주인 손병희 선생이 아직 자신의 정체를 그에게 밝히지 아니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서배 아재 손상훈이 먼저 말문을 연다; “저희들 방문단은 내남 덕천의 지주 최사권 어른의 사랑방에 모여서 그동안 조선의 앞날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먼저 산업근대화를 이룬 일본을 시찰해보고자 이렇게 왔습니다. 그리고 충청도의 지주인 이상헌 선생을 여기서 만난 것은 그분과 동향인 오경덕 선생이 저희들의 동지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숨을 쉰 손상훈이 말을 잇는다; ”참, 그리고 저희들의 나이는 지도자인 최사권 선비께서 1836년생이시고 저와 여기 김춘엽 선비 그리고 이집 주인장인 박철 선생이 모두 1851년생입니다. 신학문을 가르치시는 장인식 선생이 1854년생이고 안성기 선생은 1856년생이지요. 대표로 선생님을 모시고 온 오경덕 선생은 1855년생입니다. 모두들 권동진 선생님에 비하면 나이가 많은 것이 맞군요. 허허.. 그러나 괘념치 마시고 선생님께서는 오늘 저희들에게 좋은 가르침을 베풀어 주시기를 삼가 바랍니다”.

그 말을 듣자 권동진 선생이 숨을 한번 크게 내쉰다. 그리고 호기스럽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면 여러 형님들과 형수님들 앞에서 저의 신상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그리하여야 저의 말씀을 단번에 알아들으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충청도 괴산에서 태어났지만 한양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19살이 되자 조선에서 처음 만든 신식군대의 간부양성학교에 들어가서 2년간 교육을 받고 1881년에 장교가 되었습니다”.

특이한 경력이다. 과거를 보지 아니하고 무관으로 출세를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행은 흥미를 가지고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후 저는 함안군수도 역임하고 무관으로 거문도 첨사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 사이에 뜻밖에도 일본을 방문하여 신문물을 접하고 3년간 관비유학생의 신분으로 일본의 육군의 제도와 군대의 운영을 배울 수 있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895년 을미사변에 연루가 되어 일본으로 피신하여 오랫동안 망명객이 되고 말았지요…”.

조선에서 자신의 포부를 모두 펼쳐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는지 그는 ‘후유’라고 한숨을 쉰다. 그러면서 자신 있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일찍이 조선에서 무관생활을 했고 또한 일본의 군부 및 그들의 군대의 조직과 운영을 연구하다가 보니까 이제는 군사력을 통하여 그 나라의 미래를 보는 안목이 조금 생긴 것 같습니다. 멀리 조선에서 방문단이 오셨으니 그 점을 조금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방문단은 처음 듣는 귀한 말씀이라 정신을 집중한다. 그러자 권동진 선생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본은 명치유신을 통하여 산업근대화를 이루면서 동시에 강력한 신식군대를 만들었습니다. 그 무기체계도 근대화했지요. 그 결과 1894년에 청국과 전쟁을 하여 승리를 하고 조선의 동학농민군도 쉽게 제압한 겁니다. 그러나 1895년에 불란서와 독일의 지원을 받은 러시아의 군사적인 압력에 견디지를 못하고 외교적으로 굴복을 하게 됩니다. 요동을 청국에 되돌려주고 전쟁배상금을 대폭 삭감하고 만 것이지요. 그때부터 일본은 러시아를 무력으로 제압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만약 러시아를 물리치게 되면 명실공히 조선은 일본의 것이 되고 말지요”.

모두들 숨을 죽이고 듣고 있다. 그야말로 경청을 한다. 그러자 권동진 선생이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일본이 러시아와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선결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영국과 불란서 그리고 독일과 미국 등이 러시아와 일본과의 전쟁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하는 약속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약속을 받아 내기 위하여 일본의 내각은 비밀리에 군사 외교적으로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그러한 의문을 가질 것으로 이미 알고서 권동진 선생이 설명을 계속한다; “저는 일본의 군대에 3년간 위탁생으로 있으면서 일본인 장교를 몇 사람 친구로 사귀었습니다. 그들이 지금은 군부에서 실무적으로 상당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들에게 얻은 정보에 의하면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미의 산업선진국들이 식민지를 개척하는 이유가 그들이 생산한 상품을 식민지에서 소비시키고 동시에 공장을 돌리기 위한 자원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모두가 식민지를 얻기 위하여 전쟁을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점에 대하여 권동진 선생이 설명을 한다; “산업선진국들이 해외에서 식민지를 개척하는데 있어서 군대를 동원하여 전쟁을 하지만 가급적이면 선진국들 사이에서는 전쟁을 하지 아니하고자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서로가 차지할 식민지를 합리적으로 미리 배분을 하고 있지요. 이제는 일본이 아시아에서 그 합리적인 배분의 방법을 구미의 열강들과 미리 합의를 하면 되지요”.

그럴 듯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 권동진 선생의 탁견이 계속된다; “예를 들면, 불란서는 지금 인도지나 반도를 모두 집어 삼키고자 합니다. 일본이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미국은 태평양에서 스페인이 지니고 있던 식민지를 필리핀까지 자신들이 모두 차지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일본이 그것을 인정하면서 미국에게 조선에서 손을 떼도록 사전에 합의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영국과 독일은 중국의 자원과 시장을 탐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것을 먼저 인정을 해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일본은 러시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그 점에 대하여 권동진 선생이 명쾌하게 결론을 짓는다; “구미열강이 일본과 러시아 사이의 전쟁에 간섭만 하지 않는다면 일본의 군대는 넉넉하게 러시아를 극동에서 물리칠 수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러시아는 유라시아에 걸친 큰 나라이기에 지리적으로 큰 약점을 지니고 있지요. 서쪽은 유럽에 동쪽은 아시아에 있으니 그들의 군대가 아무리 막강하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극동에서 발생하는 전쟁에 모든 군대를 동원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러시아는 유럽의 선진국들에게 잡아 먹히게 되고 말지요…”.

그렇다. 참으로 정확한 예견이다. 그가 군부의 실무자에게서 얻은 정보를 분석해보면 일본의 내각이 그러한 전략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점을 조선의 조정과 백성들은 전혀 모르고 지내지 않는가? 조선은 이웃나라와 국제정세 그리고 전쟁의 역사에 대하여 무지하기 때문에 그 장래가 캄캄한 것이다. 그와 같은 사실을 깨닫고 방문단 일행은 다시 한번 몸서리를 치고 있다.

권동진 선생의 설명과 예견에 대하여 무어라고 반박을 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다. 그렇게 조선의 미래가 전개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은 모두들 한숨을 쉬면서 일방적으로 권동진 선생의 강의만을 들었다. 점심식사를 일찍 마치고 서너 시간 열강을 토한 권동진 선생이 오후 4시가 되자 시내 다른 곳에 모임이 있다고 하면서 일어선다.

모두들 그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에서 배웅을 한다. 캄캄한 조선에도 그와 같은 군사전문가가 있다는 사실과 그의 이야기를 자신들이 오늘 들을 수가 있었다는 것이 참으로 행운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날의 일정을 모두 끝내고 있는 방문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