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손진길 소설)

서배 할배56(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9. 23. 01:22

서배 할배56(작성자; 손진길)

 

오경덕 선생은 김종민 어르신의 집에서 내남으로 가는  3부부들은 물론 외동으로 가는 2부부들 모두와 작별인사를 한다. 그리고 김춘엽의 부친인 김종민과 모친인 정해옥과 이야기를 좀더 나눈다. 그 이유는 오경덕의 부모가 경주에 들르게 되면 며느리 김해련의 숙부가 되는 김종민과 그 부인에게 꼭 안부를 전해 달라고 당부를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오경덕의 부모님은 본래 고향이 충청도이다. 그들은 천주교 탄압을 피하여 1865년에 멀리 일본에 가서 살다가 1876년에 강화도조약이 성립이 되자 비로소 부산 동래로 들어와서 산 것이다. 나중에는 고향이 그립다고 하여 충청도에 다시가서 살고 있다. 그런데 아들 오경덕이 내남 안심의 서당에서 신학문 선생으로 일하다가 김춘엽의 사촌 여동생과 결혼을 하게 되면서 그들은 월성 서배 마을 출신인 김종민 부부와 사돈지간으로 오래 지내고 있다.

언제나 사람의 뿌리와 그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오경덕 선생의 부모님이다. 따지고 보면 고경 오씨인 오경덕 선생의 부친은 경상도 영천이 그 본향이다. 그리고 밀양 손씨인 모친도 경상도 밀양이 그 본향이고 더 먼 뿌리는 신라의 6촌이므로 자연히 경주와 월성에 닿아 있다. 그러므로 오경덕의 부모는 경주 읍내에 살고 있는 비슷한 연배 김종민 부부를 진짜 고향분으로 생각하여 각별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오경덕 선생이 처삼촌인 김종민에게 부모님의 안부를 전하자 김종민 부부가 참으로 좋아한다. 같이 늙어가는 마당에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어느덧 1832년생인 김종민의 나이가 금년에 고희이다. 2살 연하인 부인 정해옥도 고희가 2년 남았다. 오경덕 선생의 부모도 비슷한 연배이다. 그러므로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서서 서로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안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마음의 애틋함을 잘 알고서 오경덕 선생이 부모의 안부를 그들에게 전한 것이다.

오경덕 선생이 처삼촌 김종민의 집을 떠나올 때에 김종민 부부는 그를 빈손으로 보내지 않는다. 질녀인 김해련에게 전해주라고 상당한 돈을 주면서 조카사위인 오경덕에게도 충청도까지 가는 여비에 보태라고 적지 아니한 용돈을 손에 쥐어 준다. 이제 살면 얼마를 살 것인가? 그 생각을 하면서 오경덕에게 부디 부모님을 잘 모시라고 말한다.

아직 총기가 남아 있는 김종민은 동갑내기 친구이며 매제인 이덕화를 생각하면서 조카사위인 오경덕에게 차제에 한 말씀을 더한다; “참 그리고 자네가 신학문 선생으로 오래 일한 그 양삼마을의 훈장인 이덕화 내외가 우리 내외하고 나이가 같네. 부산 동래에 살 때부터 자네 부모님이 이덕화 내외와도 친분이 있으니 고향에 도착하면  손상훈 내외에게 들은 그들의 안부도 부모님께 꼭 전해 드리도록 하시게나. 서로 늙어가는 마당에 소식을 들으면 좋아하실게야…”.

어느덧 그렇게 조선의 나이로 1901년이 되니 함께 고희가 되고 있는 김종민과 이덕화이다. 따라서 서배 아재 손상훈은 2달후 덕천 사랑방모임에서 친구 김춘엽을 만나자 어른들의 고희연을 어떻게 할지 의논을 한다. 그러자 그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선비 최사권이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여보게들, 한꺼번에 하시게나. 김종민 어른과 이덕화 어른은 서로 죽마고우이며 처남 매부지간이 아닌가. 그러므로 경주 읍내에서 한꺼번에 고희연을 하게 되면 얼마나 좋겠나. 그렇게들 하시게나…”.

그 참 좋은 의견이다. 그 말을 들은 김춘엽의 처 이가연과 서배 아지매 이채령이 손뼉을 치면서 좋아한다. 이채령과 이가연이 일가이며 또 소꿉친구이니 한꺼번에 어른들의 고희연을 치르자는 말에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다. 그러니 애처가인 서배 아재 손상훈이 당장 “그것이 좋겠다. 그렇게 하자”라고 말한다. 김춘엽도 좋아한다.

그런데 고희연을 어느 날짜로 할지를 고민한다. 그것도 금방 해결이 된다. 같은 달이지만 김종민이 며칠 앞선다. 그러므로 두분 다 섭섭하지 아니하도록 그 달 첫날에 고희연을 하기로 했다. 그날이 바로 그해 1901년 12월 1일이다. 날씨가 겨울이라 추울 것이므로 경주 성동에 있는 김종민의 저택에서 햇살이 따뜻한 한낮에 고희연을 하기로 결정한다.

덕분에 8월과 9월에 걸쳐 한달간 일본을 방문한 바 있는 5부부들이 그날 어른들의 고희연을 축하하기 위하여 다시 만나게 된다. 이제는 그들만이 아니다. 자녀들이 모두 모인다. 서배 아재 손상훈은 아들 영주를 데리고 간다. 김춘엽은 아들과 딸 그리고 손주들을 모두 데리고 온다. 김경화 부부도 자녀들과 함께 참석한다. 그 집 식구가 제법 많다.

  그 좋은 날 그 자리에서 참으로 인상적인 일이 발생한다. 덕천 사랑방모임의 좌장이며 연장자인 선비 최사권이 정종 몇 잔을 연거푸 마시고 판소리 사랑가의 한대목을 한다. 그것도 그날 고희를 맞이한 김종민과 이덕화를 마주 보면서 하다가 그 다음에는 그 두사람의 부인들과 자신의 아내 손예린의 눈을 보면서 그렇게 능청스럽게 창을 한다.

평소 다재다능하고 연예인 기질이 상당한 선비라고 경주 일원에 평이 나 있는 낭만적인 선비 최사권이라고는 하지만 벌써 나이가 66세이다. 그렇게 나이가 드신 분이 어째서 앞장을 서서 그날 그 자리의 분위기를 한껏 흥겹게 만드는 것일까? 그 이유가 곧 나타난다.

사랑가를 걸쭉하게 그리고 맛깔이 나게 한 곡 뽑아 분위기를 한없이 부드럽게 만든 다음에 선비 최사권이 좌중을 둘러보면서 말을 한다; “오늘 고희연을 맞이한 두 분에게 먼저 만수무강을 축원합니다. 그리고 부인과의 백년해로를 빕니다. 오늘 자녀분들과 자손들이 많이 모인 것을 보니 참으로 복이 많은 어르신들이십니다. 무병장수하심을 거듭 축하합니다”.

의례적인 말씀인 줄 알았는데 정작 본론을 최사권이 이제 말한다; “저도 4년만 있으면 고희가 됩니다. 그래서 요즘은 가끔 내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후손들을 위하여 무엇을 남기고 갈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오늘 고희를 맞이하신 두 어르신도 같은 마음인 줄 압니다. 따라서 저와 우리 사랑방모임 동지들의 결정사항을 하나 이 자리를 빌어서 여러 축하객들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말을 잠시 끊었던 최사권은 좌중이 자신의 말을 경청하는 것을 확인하고서 신중하게 계속 말한다; “그 내용은 이집 김종민 어르신의 자제인 서배 마을의 선비 김춘엽이 외동에 신식 소학교를 하나 개척하고자 하고 저도 내남 이조에 그러한 신식학교를 하나 만들고자 서로 결정한 것입니다”.

대단한 일이다. 시골 선비들이 앞장을 서서 신식학문을 아동들에게 가르치는 소학교를 만들겠다고 하는 것이니 말이다. 좌중은 숨소리조차 죽이면서 다음 말을 기다린다; “그러므로 이에 뜻을 같이하시는 분들은 누구나 자발적으로 도와 주시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워낙 자금이 많이 들어가는 근대적인 학교의 설립이므로 여러 독지가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여러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을 듣자 그날의 주인공인 김종민이 그 자리에서 말한다; “잘 알겠습니다. 오늘 저와 저의 친구 이덕화 옹의 고희연 자리에서 그러한 귀한 발표를 하시니 이 자리가 더욱 빛이 납니다. 따라서 저는 저의 고향인 외동에 소학교를 짓겠다고 하는 그 일에 적극 찬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고희연을 맞이하여 참으로 좋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신 존경하는 최사권 선비에게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서배 아재 손상훈이 오늘 고희연의 또 한사람의 주인공인 훈장 이덕화와 귓속말을 나눈다. 그러자 훈장 이덕화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그 자리에서 좌중을 보고서 말한다; “방금 저의 사위인 손상훈이 저의 체면을 보아서 그런지 귓속말을 했습니다. 오늘 저의 고희연 기념으로 크게 기부를 할 터이니 그 돈을 전액 최사권 선비가 주동적으로 설립하고 있는 내남 이조 소학교에 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늙은이가 평생 서당훈장을 하느라고 돈은 없지만 제자 하나는 잘 키운 모양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사위의 말대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종민과 이덕화를 바라보고서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축하객들이 박수를 친다. 얼마나 뜻이 있는 고희연인가! 조선의 앞날을 위하여 또 자손들을 위하여 고향에서 신식교육을 받을 수 있는 소학교를 짓겠다고 하고 또 그 일에 앞장을 서서 재정지원을 하겠다고 하니 말이다.

그렇게 조선의 근대화작업은 20세기초 지방에서부터 들불같이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조선의 앞날이 결코 캄캄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의식이 깨어 있는 선비들이 있으며 그들이 앞장을 서는 근대화 작업에 기꺼이 동참하고자 하는 민초들이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날 최사권은 오래간만에 교리 최부자를 찾아간다. 가주인 최현식이 반갑게 경주 최씨의 어른인 선비 최사권을 맞는다. 그 자리에서 최사권은 내남 이조에 신식 소학교를 하나 짓겠다고 말한다. 그 장소가 바로 조천 최부자의 고향이다.

그러므로 가주 최현식이 기쁜 마음으로 말한다; “집안의 어르신께서 그렇게 귀한 뜻을 밝히시니 제가 적극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필요하신 액수를 말씀하시면 그대로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 걱정 마십시오”.

참으로 시원한 대답이다. 따라서 그날 선비 최사권은 그 발걸음도 가볍게 내남 덕천에 있는 집으로 귀가를 한다. 그 길에 언제나 부인 손예진이 동행을 하고 있다. 그렇게 사이가 좋은 부부가 바로 최사권과 손예진이다. 그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고향과 지역사회를 위하여 참으로 좋은 일을 하고 있다.

덕천 사랑방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서배 아재 손상훈 부부도 그 일에 자발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그들이 함께 일본의 선진문물을 시찰하고 그 첫 열매를 이제는 그렇게 순조롭게 얻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그날 그 고희연 자리에서 손상훈의 아들인 손영주가 김경화 부부의 딸인 정애라를 처음 보았다. 11살이 된 그녀가 밉지 않게 보인다. 손영주의 나이가 어느덧 18세이므로 어린 처녀가 그 눈에 들어오는 모양이다. 그러나 한마디 말도 못하고 그냥 바라만 보다가 헤어진다. 양자이지만 그 아버지 서배 아재에 그 아들인 손영주이다. 똑같이 숫기가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