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손진길 소설) 96

서배 할배46(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46(작성자; 손진길) 오문자 부부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방문단 일행은 내일 일정에 대하여 의견을 조율한다. 그 결과 자신들은 관광에 해당하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고 내일은 당장 조선의 근대화와 관련하여 언론과 교육 그리고 군대의 양성에 관한 시찰이 가능하면 좋겠다고 의견을 모은다. 그러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유는 다분히 우에노 공원에서 본 정한론자 사이고 다카모리의 동상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일본의 유신정부에 반대를 하여 난을 일으킨 자의 동상을 어째서 그곳 동경의 중심지 공원에 세워놓은 것일까? 그것은 일본이 산업근대화에 성공을 하게 되면 그때는 명치원로들이 사이고 다카모리의 주장 곧 조선정복이라고 하는 이상을 자신들이 버리지 아니하고 반드시 현실화하겠다는 다짐으로 보이기..

서배 할배45(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45(작성자; 손진길) 다음날 아침식사가 끝나자 오경덕은 내남 덕천 사랑방모임의 5부부를 인도하여 동경시내 관광에 나선다. 그가 가장 먼저 방문단을 이끌고 간 곳이 천황이 살고 있는 황궁이다. 그 안까지는 들어갈 수가 없으므로 황궁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과 해자를 보면서 그 바깥길을 다 함께 걷는다. 길을 걸으면서 오경덕 선생이 방문단에게 설명을 한다; “역사적으로 동경은 본래 에도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을 통일하고 쇼군이 되면서 그의 영지인 에도는 1600년대부터 막부정치의 중심이 됩니다. 그러나 1868년 명치유신으로 막부시대가 끝나자 교토의 천황이 일본의 상징이 되면서 1869년에 이사를 하여 에도 성의 주인이 되지요. 따라서 에도는 동경으로 그 이름이 바뀌고 맙니다”. 오경덕 선생..

서배 할배44(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44(작성자; 손진길) 12. 그들이 동경에서 보고 들은 것들; 그 날은 오문자의 남편 박철이 쌀가게를 평소보다 일찍 닫고 집으로 온다. 25년만에 만난 고향 후배 장인식과 안성기의 근황이 궁금한 것이다. 그리고 그 두사람과 함께 자기 집을 방문하고 있는 일행들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처남인 오경덕을 통하여 미리 이야기를 들은 것이 조금 있지만 그것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박철은 혼자서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오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와 아내 오문자 사이에는 외동딸 박미자가 있는데 그녀와 함께 집으로 오고 있다. 동경 시내에서 작은 회사의 경리로 일하고 있는 그녀가 마침 일찍 퇴근을 하고 쌀가게로 왔기에 부친 박철과 함께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그날 따라 오문자는..

서배 할배43(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43(작성자; 손진길) 조선의 내남 덕천 사랑방모임에서 일본 오사카를 방문한 10명의 부부들이 오경자와 배설의 저택에 머물면서 오사카는 물론 교토와 나라시까지 관광을 끝내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20세기초의 일본은 열차를 이용하면 엔간한 도시는 방문할 수 있도록 선로가 잘 놓여져 있어서 선진국다운 면모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조선에서 처음으로 해외로 나와서 일본여행을 하고 있는 그들은 그것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조선도 언젠가는 일본처럼 그렇게 기차를 타고 소도시까지 방문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만 당장은 자신들의 세대에 있어서는 그것이 어려운 일로 보인다. 조선의 산업근대화의 속도가 일본에 비해서 현저하게 느리다고 하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생각을 서로 나누면서 그들..

서배 할배42(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42(작성자; 손진길) 오경자와 배설의 집에서 묵게 된 덕천 사랑방모임의 선비 5명은 자신들이 들고 온 여행용 짐을 이층의 다다미 방에서 풀고 난 다음에 아래층 응접실에 모인다. 얼마 후에 그들의 부인들이 각자 조그마한 선물보따리를 하나씩 들고서 역시 응접실을 찾는다. 그리고 그 집의 안방 마님인 오경자에게 한사람 씩 자신들이 들고 온 선물들을 전한다. 조선에서 멀리 일본의 오사카까지 들고 온 그 선물들을 풀어보고서 오경자가 남편 배설과 함께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모른다. 그 가운데에는 자신들이 일본에서 구할 수가 없었던 좋은 품질의 김과 미역과 멸치 그리고 조선의 고약과 버선과 노리개 등이 잔뜩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안성기가 갑자기 오경자의 남편인 배설을 보고서 ..

서배 할배41(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41(작성자; 손진길) 11. 덕천 사랑방모임의 선비와 그 부인들이 일본 문물을 시찰하다. 1901년 늦여름의 후쿠오카는 아직 날씨가 무덥다. 부산보다 더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근대화가 빠른 일본에서는 후쿠오카에서 오사카로 가는 열차가 벌써 운행 중에 있다. 따라서 내남 덕천 사랑방모임의 5선비들은 부부동반으로 그 열차를 타고서 편하게 오사카까지 이동을 할 수가 있어 그곳에 있는 오경덕의 여동생 집을 쉽게 찾아가게 된다. 역사적으로 일본에서는 1868년에 명치유신을 하고 일본의 산업근대화를 이끈 세력들이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서남쪽에 있는 4개의 번의 젊은 관료들이다. 그들은 에도에 있는 막부가 서구세력의 무력시위와 개방압력에 시달려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을 때에 재빨..

서배 할배40(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40(작성자; 손진길) 1898년 말부터 1901년 사이에 대한제국이 실시한 주요한 정책은 세가지이다; 첫째, 고종은 1898년 12월에 독립협회를 해산하고 1899년 12월에는 만민공동회를 불법이라고 선포한다. 그 이유는 독립협회가 중심이 되어 만민공동회를 열어 그동안 영국식의 입헌군주제를 실시하자고 계속 여론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이 그러한 민주적인 개혁을 싫어한다. 그렇게 되면 일본이 조선을 집어삼키기가 참으로 힘들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고종에게 입헌군주제가 아니고 전제군주제를 하는 것이 낫다고 그 편을 들어준다. 그러한 일본의 깊은 속셈을 모르고 고종이 그만 독립협회를 해산하면서 서재필을 미국으로 추방한다. 그리고 만민공동회의 모임을 불법화하고 만다. 그것으로 대한제..

서배 할배39(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39(작성자; 손진길) 오경덕 선생이 내남 덕천의 천석꾼 최사권의 사랑채 옆방에서 손병희와 함께 일주일간 머무는 사이에 서배 아재 손상훈과 덕천 서당의 신학문 선생인 장인식은 매일 저녁에 그 집에 들른다. 그리고 밤새도록 선비 최사권과 함께 오경덕 선생은 물론 손병희 선생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오래 이야기를 나눈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리고 있다; 조선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위해서는 올바른 방향설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왕실과 조정이 주도하는 그러한 형식의 근대화는 백성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여 일본이나 구미의 열강과 장차 경쟁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왕실과 조정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백성들이 스스로 나라의 주인의식을 가지고 조국의 근대화..

서배 할배38(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38(작성자; 손진길) 1897년 10월 12일에 고종은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조선의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선포한다. 그날은 민비가 일본의 낭인들의 손에 살해가 된 1895년 10월 8일로부터 따지면 꼭 2년 5일째가 되는 날이다. 그러므로 고종은 차제에 억울한 죽임을 당한 민비를 ‘명성황후’로 부르도록 추존의 황명을 내리게 된다. 고종이 ‘칭제건원’을 한 시기는 조선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견제하고자 하는 국제적인 여론이 발생을 하고 또한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 세력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미묘한 때이다. 그러므로 고종은 나름대로 점진적 성격의 개혁을 일부 추진하게 된다. 예를 들면, 전국의 토지를 조사하여 세수를 확대하고 근대적인 토지소유의 관계를 확립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

서배 할배37(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37(작성자; 손진길) 10. 대한제국 시대와 너븐들 사람들 1896년 2월 11일부터 고종이 조선의 궁궐을 버리고 왕세자와 함께 러시아공관에 가서 공사 베베르가 지휘하는 러시아 군대의 보호 아래 안전하게 기거를 하고 있자 국내외에서 크게 보아 두가지의 견해가 나타나고 있다; 첫째로, 얼마나 일본의 강압과 위협이 심했으면 조선의 왕이 견디지를 못하고 러시아군대가 지키고 있는 러시아공관으로 피신하여 신변의 안전을 도모하고 있겠느냐?는 동정론이다. 그것은 1895년 10월에 일본의 낭인들이 조선의 궁궐을 침입하여 민비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기에 단번에 이해가 될 수 있는 대목이다. 둘째로, 아무리 살해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하더라도 일국의 왕이라고 하면 그렇게 자신의 안위만을 도모해서는 안된다고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