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43(작성자; 손진길)
조선의 내남 덕천 사랑방모임에서 일본 오사카를 방문한 10명의 부부들이 오경자와 배설의 저택에 머물면서 오사카는 물론 교토와 나라시까지 관광을 끝내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20세기초의 일본은 열차를 이용하면 엔간한 도시는 방문할 수 있도록 선로가 잘 놓여져 있어서 선진국다운 면모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조선에서 처음으로 해외로 나와서 일본여행을 하고 있는 그들은 그것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조선도 언젠가는 일본처럼 그렇게 기차를 타고 소도시까지 방문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만 당장은 자신들의 세대에 있어서는 그것이 어려운 일로 보인다. 조선의 산업근대화의 속도가 일본에 비해서 현저하게 느리다고 하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생각을 서로 나누면서 그들 10사람이 제8일째 되는 날 하루는 오경자 부부의 집에서 편히 쉬고 있는데 갑자기 동경에서 오경덕이 오사카로 와서 그 집을 방문한다. 조선에서 서로 아는 사람이 만나도 반가운데 해외에서 뜻밖에 만나게 되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특히 오경덕 선생은 자신들을 일본에 오도록 초청한 장본인이 아닌가?
오경자는 한 살 위의 친 오빠가 왔다고 너무나 좋아하고 반긴다. 보통 한 살 터울의 오누이는 서로 자주 싸운다고 하는데 오씨 네 집안은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다. 참으로 사이가 좋아 보인다. 어린시절과 젊은 시절을 충청도와 일본에서 함께 보낸 안성기와 장인식이 또 오경덕을 그렇게 반기고 있다. 덩달아 서배 아재 손상훈과 지주 김춘엽 그리고 선비 최사권도 옛날 사랑방 동지인 오경덕 선생을 만나서 우의를 다지고 있다.
그렇게 격한 환영인사가 있은 다음에 오경덕 선생이 모두에게 말한다; “제가 동경에서 손병희 선생을 만나서 함께 머물고 있는 동안에 여러분이 오사카를 먼저 방문하신 겁니다. 이제 오사카와 그 인근을 보셨으니 내일은 저와 함께 동경으로 이동을 하셔서 한 열흘 정도 머무시면서 그 일대를 관광하시면 되겠습니다”.
모두들 일본의 수도인 동경을 보게 된다는 생각과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손병희 선생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오경덕의 입을 쳐다보고 있다. 그가 말을 계속한다; “아시는 대로, 동경은 지금 일본의 중심입니다. 그곳에서 정치적인 일들이 모두 결정이 되고 있지요. 그래서 조선에서 온 지도자들도 동경에서 서로 만나고 있습니다. 그들을 해외에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짧지만 손병희 선생도 만나고 또 다른 조선의 지도자급 인물도 만날 수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과연 동경에서는 어떠한 조선의 개화사상가와 지도자들을 만날 수가 있을까? 그들이 꿈꾸고 만들고자 하는 조선은 어떤 나라일까? 덕천 사랑방모임을 수십년간 운영하고 있는 그들 5명의 선비들은 그러한 질문을 내심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날 오후에 그들 10명의 방문객은 오경자와 그 남편 배설 그리고 그 아들인 배종성과 작별인사를 나눈다. 관광은 7일간 하였지만 그 집에 머문 기간은 10일이나 된다. 그 사이에 상당히 정이 들었다. 더구나 조선이 아니라 외국에서 서로 만난 동포들이니 그 피와 정서가 서로 끌리고 있는 것이다.
선비들은 체면 때문에 내색을 크게 하지 아니하고 헤어지고 있지만 그들의 부인들은 그것이 아니다. 그 열흘 사이에 5명의 부인들은 오경자와 정이 많이 들었는지 서로 석별의 정을 나누면서 야단들이다. 손예진을 비롯하여 이채령과 이가연 그리고 최순옥과 이다연은 친자매와 작별을 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번갈아 가면서 오경자를 끌어안고 눈물로 이별을 고하고 있다.
오사카 역에 도착을 하여 오후 늦게 도쿄로 가는 열차를 타고 출발을 했는데 그 기차는 밤새도록 달린다. 다음날 아침 일찍 동경에 도착을 하고 있다. 캄캄한 밤시간에는 잠이 들었지만 날이 새고부터는 모두들 차창밖으로 보이는 일본의 풍경을 보느라고 정신이 없다. 동경으로 들어서고 있는지 거대한 도시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그때 오경덕이 먼저 일어났는지 이웃하여 앉아 있는 10명의 방문단에게 일일이 인사를 한다. 되도록 11명이 가까이 앉아서 여행을 할 수 있도록 기차표를 끊었기 때문에 그들 손님 10명은 오경덕 선생이 하는 말을 편하게 알아 들을 수가 있다; “모두들 잘 주무셨습니까? 좌석이 좁아서 불편했을 겁니다. 그래도 천리가 넘는 먼 길을 이 열차가 밤새 달려와서 아침에는 동경에 도착하게 되니 참으로 대단한 일이지요”.
천리가 넘는다는 말에 모두들 놀라고 있다. 자신들이 밤새 자고 있는 사이에 이 열차가 천리길을 달린 것이다. 사람이 걸으면 열흘 이상이 걸리는 거리이다. 그렇게 생각하여 모두들 놀라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 오경덕 선생이 한마디를 덧붙인다; “밤열차를 타고 왔기 때문에 동경으로 오는 도중에 있는 후지산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중에 동경에서 후쿠오카로 돌아가실 때에는 오전에 열차를 타시고 차창 밖으로 후지산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사시사철 눈을 이고 있는 후지산이 실로 장관입니다”.
조선의 남부인 경주 월성 지역에서 주로 살아온 일행들은 평생 여름에 눈이 덮인 산을 본적이 없다. 얼마나 산이 높으면 일년내내 눈을 이고 있을까? 그들이 궁금해하고 있는 것을 알고서 오경덕 선생이 알기 쉽게 설명을 한다; “조선에서 가장 높은 산이 북쪽 압록강과 두만강 사이에 있는 백두산인데 그 높이가 2,800미터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의 후지산은 그보다 1,000미터 정도 더 높지요”.
일본은 조선보다 산이 높고 골짜기가 더 깊다고 하더니 과연 그런 모양이다. 그렇게 높은 산이 북단도 아니고 일본의 중심부인 동경 가까이에 있다고 하니 그것이 놀라운 일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조선보다 땅이 더 긴 모양이다.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줄 오경덕 선생이 알고 있는지 친절하게 설명을 한다; “일본은 4개의 큰 섬으로 되어 있는데 그 길이가 조선보다 훨씬 깁니다. 조선은 3면이 바다이고 1면이 대륙에 붙어 있는 반도이지만 일본은 모두가 섬이고 대륙에 붙어 있지를 않아요”.
오경덕 선생의 설명이 이어진다; “땅의 넓이는 전체적으로 조선에 비하여 일본이 1배 반이 넘습니다. 인구도 거의 두배나 되지요”. 모두들 일본을 작은 나라라고 말하던 조상들의 인식이 상당히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땅도 인구도 조선보다 큰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그들은 선진국이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일본을 깔보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한 겸손한 생각을 가지고 그들은 이제부터 일본의 중심인 동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과연 앞으로 열흘 동안에 그들은 동경에서 누구를 만나며 무엇을 배울 수가 있을까?
아침에 열차에서 내리자 오경덕 선생은 일행을 인도하여 제일 먼저 우동집에 들린다. 일본은 도시마다 도처에 우동집이 있어서 여행자들에게 편리하다. 특히 역주변에는 식당이 많아서 더 좋은 것이다. 그리고 음식 맛도 조선사람들이 먹기에 별로 불편하지가 않다. 모두들 열차안에서 달걀 삶은 것을 먹고 가지고 온 차를 마시기는 했지만 그래도 덜컹거리는 기차여행으로 배가 고팠기에 참으로 맛있게 먹었다.
아침식사를 마치자 오경덕 선생이 일행을 인도하여 조금 다른 모습의 열차를 타도록 한다. 그것은 기차처럼 증기를 내어 품지 않고 아주 조용하게 거리를 통과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궁금해하는 그들에게 오경덕 선생은 그것이 전기로 움직이는 전차라고 말한다. 그것참 신기하다. 어떻게 전기로 그 쇠로 된 무거운 열차까지 거리를 신나게 달리게 하는가? 선로가 깔려 있는 거리, 그것도 전차의 지붕에는 높은 전봇대 사이에 굵은 전깃줄이 끊임없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면서 마냥 동화의 나라를 보고 있는 기분이다.
근대화 이전의 사회와 그 이후의 사회가 그렇게 다르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 조선에서 온 10명의 방문단은 조국도 반드시 그렇게 근대적인 모습으로 만들어야 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의식의 근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그들이 동경시내의 약간 변두리에 자리를 잡고 있는 오경덕 선생의 누나 오문자의 가게로 들어선 것은 오전 10시가 좀 지난 무렵이다.
전차에서 내린 그들을 오경덕 선생이 어느 길거리에 있는 쌀가게로 다짜고짜 데리고 들어가자 모두들 어리둥절했다. ‘어째서 오경덕 선생이 쌀을 사려고 하는가? 오문자의 집에 양식이 떨어졌는가?’고 의아하게 생각을 했는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다. 그 쌀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주인이 바로 오문자와 그의 남편인 박철이었기 때문이다.
벌써 오전 10시가 지났기에 가게 문을 열고서 손님을 맞고 있다. 그러므로 가게로 와야 오문자 부부를 만날 수가 있는 것이다. 오경덕이 먼저 가게로 들어서면서 “누나”라고 소리를 친다. 그러자 안에서 오문자가 나오면서 동생 뒤에 서있는 10명의 조선사람들은 본다. 그리고 놀란 듯이 소리를 친다; “어머머, 이게 누구야? 너 장인식과 안성기가 맞지?”. 호명이 된 그 두사람이 동시에 말한다; “맞아요, 문자누나, 저희들이 왔어요”.
그 소리를 듣고서 가게 안쪽에서 방문이 열리더니 50대초반의 남자가 나온다. 그 남자를 보더니 장인식과 안성기가 동시에 말한다; “철이 형, 저희들이 왔어요…”. 오문자의 남편 박철이도 너무 반가워서 그 말소리가 크다; “그래 인식이와 성기구나. 나이가 들었지만 너희들이 맞다. 잘 왔다, 아우들아”. 그들 세사람은 서로 손을 맞잡고서 어찌할 줄을 모른다. 벌서 그들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지고 있다. 사내들이라고 어찌 눈물이 없겠는가? 25년만에 상봉을 하게 되니 마치 이산가족을 만난 것과 같기 때문이다.
나머지 일행들이 다소 어리둥절해 하자 오경덕이 설명을 한다; “오문자 누나는 저보다 2살이 많지요. 그리고 매형은 또 누나보다 2살이 많아요. 후쿠오카에서 이웃하여 살다가 두 사람이 결혼하여 이곳 동경으로 와서 30년째 살고 있답니다. 그러니 저희들은 서로 형 동생으로 부르면서 한동네에서 자란 사이입니다”. 그 말을 듣고서 나머지 일행들도 눈물이 글썽인다.
여자들도 오문자에게 인사를 하려고 한다. 그때 오경덕이 일행을 향하여 말한다; “그러지들 말고 인사는 문자 누나 집에 들어가서 하시지요. 여기는 쌀을 사려고 손님들이 들락날락하는 가게입니다. 다들 저를 따라 오세요”. 맞는 말이다. 그래서 모두들 조용히 오경덕을 따라간다. 그 뒤를 오문자가 따른다. 그 남편 박철은 가게를 보아야 하기에 ‘먼저들 집으로 가 계시라’고 인사를 한다.
오문자의 집도 오사카에 있는 오경자의 저택과 비슷하다. 2층으로 되어 있는데 다다미 방이 여럿이다. 가게에서 십분 정도의 거리이다. 동경의 약간 변두리라고는 하지만 그 정도로 큰 저택을 소유하고 있자면 조선인으로서는 크게 성공을 한 셈이다. 오경덕 선생의 누나와 여동생은 참으로 억척인 모양이다. 한사람은 우동가게로 또 한사람은 쌀가게로 일본의 대도시에서 벌써 자리를 제대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사람도 머리가 좋고 부지런하지만 그래도 조선사람을 따라오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세계 어디에 가져다 놓아도 사실 조선사람은 생존이 가능한 반도출신이다. 서구의 역사를 보더라도 그렇다. 유럽에서 패권을 행사한 나라,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스페인이 모두 반도가 아닌가? 여름이면 무지하게 덮고 겨울이면 엄청 추운 반도 그것도 바다와 대륙을 모두 지니고 있어 변화가 극심한 반도이기에 그곳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법이다.
조선에서 일본을 방문하고 있는 10명의 사람들이 그 점을 오문자와 오경자의 집에서 묵게 되면서 실감하고 있다. 그러한 깨달음이 일본시찰을 통해서 그들이 얻게 되는 또 하나의 수확이라고 하겠다. 별다른 자원이 없는 조선이지만 그러한 반도에 살고 있는 조선사람들의 근성과 적응력이 장차 조선을 산업선진국으로 바꾸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들은 일본에 살고 있는 조선사람들을 보고서 어렴풋이 짐작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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