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41(작성자; 손진길)
11. 덕천 사랑방모임의 선비와 그 부인들이 일본 문물을 시찰하다.
1901년 늦여름의 후쿠오카는 아직 날씨가 무덥다. 부산보다 더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근대화가 빠른 일본에서는 후쿠오카에서 오사카로 가는 열차가 벌써 운행 중에 있다. 따라서 내남 덕천 사랑방모임의 5선비들은 부부동반으로 그 열차를 타고서 편하게 오사카까지 이동을 할 수가 있어 그곳에 있는 오경덕의 여동생 집을 쉽게 찾아가게 된다.
역사적으로 일본에서는 1868년에 명치유신을 하고 일본의 산업근대화를 이끈 세력들이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서남쪽에 있는 4개의 번의 젊은 관료들이다. 그들은 에도에 있는 막부가 서구세력의 무력시위와 개방압력에 시달려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을 때에 재빨리 밀항을 하여 유럽으로 건너가서 산업근대화의 방법을 배워온 사람들이다.
그들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번에서 서구의 문물을 이용하여 ‘부번강병책’을 실시한 결과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들 하급무사 출신의 젊은 관료들은 자신들의 번의 영주인 다이묘들을 설득하여 서남 4개번이 군사적으로 동맹을 맺도록 하고 기회를 보아 에도의 막부를 무너뜨리고자 한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일본이 산업근대화에 앞선 서구세력에 의하여 식민지가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무력혁명에 성공한 그들은 스스로 명치원로가 되어 막부를 폐하고 쇼군 대신에 천황을 세운다. 그리고 이제는 ‘부번강병책’이 아니라 전체 일본 열도의 산업화와 신민들의 의식의 근대화를 이끌게 된다. 그렇게 30년의 세월이 지나자 1901년의 일본은 서양의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동양에서 유일한 선진국이 된 것이다.
일본의 큰 도시 사이를 연결하고 있는 열차는 그 위풍이 당당하고 연육교와 큰 강을 가로지르고 있는 철교는 튼튼하기 그지없다. 그러한 열차를 타고서 긴 철교를 건너갈 때에 경주 월성에서 온 사랑방모임의 방문단은 하나같이 입을 떡 벌리고 다물 줄을 모른다.
고종황제가 1899년에 경인선 철도를 개통하고 1900년에 한강철교를 완공하고서 그토록 자신의 업적을 선전하였는데 그것은 일본의 발전상에 비추어보면 부끄럽기 그지 없는 것임을 일본을 방문한 그들은 이제 깨닫고 있다. 그렇게 자신들이 참으로 우물 안 개구리 신세였음을 체험하고 있는 자들이 사랑방모임의 5인사들이며 그들의 부인들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을 인도하고 있는 두 사람은 십대를 일본에서 보낸 적이 있는 장인식과 오경덕이다. 그들은 각각 내남과 외동에 있는 서당에서 생도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치고 있다. 장인식이 연장자인데 1854년생이며 내남 덕천의 천석꾼 최사권이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서당에서 오래 신학문 선생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안성기는 1856년생이며 외동 서배 마을의 서당에서 신학문 선생으로 일하고 있다. 그 서당을 크게 지원하고 있는 지주가 김춘엽이다.
장인식은 지주 최사권의 중매로 1877년에 최씨 문중의 딸 최순옥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아들 장철민이 1879년생이고 딸 장화옥은 1882년생이다. 아들은 작년에 결혼을 시켰고 그들 부부는 딸 장화옥의 신랑감을 물색하고 있는 중이다.
안성기는 그 재주가 비상하고 세상을 보는 눈이 탁월하다. 그래서 지주 김춘엽과 그의 부인 이가연이 자신들의 집안에 붙들어 두고 싶어했다. 이가연이 기회를 보아 자신보다 3살 아래인 여동생 이다연과 선을 보게 했더니 서로들 마음에 들어 한다. 그래서 일사천리로 혼사를 성립시킨 바가 있다.
안성기와 이다연은 슬하에 2남이 있는데 맏이가 1880년생인 안용환이고 막내가 1884년생인 안용운이다. 장남은 재작년에 결혼을 시켰고 지금은 안성기 부부가 막내인 안용운의 짝을 찾고 있다.
그들 사랑방모임의 최연장자는 1836년생인 선비 최사권인데 그의 부인은 남편보다 나이가 13살이나 적은 손예진이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는데 아들인 최경도는 1870년생이고 딸 최영란은 1873년생이다. 그들 모두는 성가를 한지 십년이나 된다. 최사권이 자신의 나이가 66살이나 되기 때문에 일본방문이 어렵겠다고 말했으나 부인 손예진이 강권을 하자 꼼짝하지 못하고 동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최사권은 자신이 60대의 노인이지만 일본을 방문하기를 참으로 잘했다고 이제는 말하고 있다. 책에서만 보던 산업화와 근대화의 모습을 일본에서 실컷 보게 되니 그것이 감격스러운 것이다. 역시 개화를 꿈꾸고 있는 시골 선비가 최사권인 것이다. 그러한 진취적인 성격의 최사권이기에 손병희 선생이 은밀하게 그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에 적극적으로 기금을 마련하여 지원을 한 바가 있는 것이다.
서배 마을의 지주인 김춘엽과 그의 부인 이가연도 자녀들을 성가시킨지 오래이다. 다만 서배 아재 손상훈과 이채령 부부는 1884년생인 손영주를 양자로 삼았기에 아직 조선의 나이로 아들이 18세이다. 손상훈은 자신이 24살이 되었을 때 늦게 결혼을 하였기에 아들 손영주도 그 정도의 나이가 되면 결혼을 시킬 요량을 하고 있다.
장인식과 안성기가 용하게 오경덕의 여동생이 경영하고 있는 오사카의 가게를 찾았다. 그들 부부는 우동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 가게이름이 ‘후지’였기에 쉽게 찾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 동네에서 꽤 오래 영업을 한 모양이다. 길거리에서 물어보니 그 가게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그렇지만 그 가게를 찾았을 때는 오후 늦은 시간이다.
장인식과 안성기가 대뜸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다. 그리고 여주인을 찾는다. 여주인 오경자가 한눈에 그 두사람을 알아보고서 ‘어머머’라고 탄성을 지른다. 오경자는 지난달에 자기 가게에 들른 오빠 오경덕이 조선에서 장인식과 안성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미리 언질을 준 바가 있기에 금방 알아본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서 안성기가 먼저 오경자의 손을 덥썩 잡는다. 그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한다; “경자야, 내 소꿉친구 경자야…”. 경자도 눈물을 글썽인다. 주위에 누가 보고 있는 것도 잊어버리고 대꾸를 한다; “성기야, 이게 도대체 얼마만이냐? 1876년말에 조선에 들어갔으니 4반세기만에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는구나…”.
그 모습을 보고서 옆에 서있던 장인식이 한마디를 한다; “경자야 이 오래비는 잊어버렸는 모양이다. 나는 조선에 그냥 돌아갈까 보다…”. 그제서야 오경자가 장인식을 보고 한마디를 한다; “나보다 2살이 많다고 지금도 꼬박꼬박 오래비 타령이시네. 건강해 보여서 참 좋네요”. 장인식과 안성기의 뒤를 따라 8사람이나 더 식당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서 오경자가 갑자기 바빠진다.
손님이 별로 없는 오후 늦은 시간이라 가게가 텅 비어 있다. 따라서 모두들 가게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도록 한다. 그리고 나서 부리나케 주방으로 뛰어간다. 오경자는 자신보다 열살이나 많아 보이는 남편 배설을 데리고 나와서 여러 사람에게 인사를 시킨다. 그리고 다시 주방으로 건너가서 순식간에 우동을 10그릇이나 만들어서 나온다.
오경자가 우선 우동을 한 그릇 씩 먹은 다음에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자고 말하기에 모두들 배가 고픈 시간이라 그렇게 한다. 우동은 조선의 국수처럼 금방 후루룩 먹을 수 있어서 간편하다. 그런데 그 우동 맛이 깊고도 은근하다. 우동 장사를 그곳에서 오래한 모양이다. 솜씨가 대단하다.
그 다음에 일본차를 마시면서 모두들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다. 배설과 오경자 부부는 특히 안성기 부부와 장인식 부부를 흥미롭게 지켜본다. 어린 시절은 충청도에서 십대는 일본에서 서로 이웃하여 지낸 참으로 오누이와 같은 사이이다. 그러므로 25년이 지나 다시 만나고 있으니 어찌 신기하지 아니하겠는가?
그리고 안성기는 자신과 동갑내기이며 가장 친한 여자 동무인 오경자를 열심히 쳐다보고 있다. 자신의 어린시절과 젊은 시절의 추억이 오경자의 얼굴에 고스란히 머물고 있는 것만 같아서 그러하다. 그때 오경자가 주방으로 가서 젊은이 한 사람을 데리고 나와서 여러 손님들에게 인사를 시킨다.
그리고 오경자가 모두에게 말을 한다; “저희 부부의 하나 뿐인 자식입니다. 이름이 배종성이고 1880년생이니 금년에 21살입니다. 아 참, 조선나이로는 22살이군요. 아직 결혼을 못하고 가게 일을 돕고 있지요…”. 그 말을 들으면서 장인식 부부가 유심히 배종성을 살펴본다. 자신들에게 시집을 보내야 하는 딸이 있기 때문이다.
오경자와 배설 부부는 그날 가게문을 평소보다 일찍 닫는다. 그리고 10명이나 되는 조선에서 온 손님을 모두 인근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간다. 다다미 방이 여러 개인 큰 집이다. 이층으로 되어 있는 그 집이 얼마나 넓은 지 모른다. 그곳에서 그 많은 손님들이 오래 머물 수 있도록 단도리를 한다. 친 오빠인 오경덕으로부터 부탁을 받은 바가 있기도 하지만 타국에서 오래 생활을 하고 있는 그들 부부는 조국에서 방문한 그 손님들이 참으로 좋은 것이다.
'서배 할배(손진길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배 할배43(작성자; 손진길) (0) | 2021.09.19 |
---|---|
서배 할배42(작성자; 손진길) (0) | 2021.09.19 |
서배 할배40(작성자; 손진길) (0) | 2021.09.18 |
서배 할배39(작성자; 손진길) (0) | 2021.09.18 |
서배 할배38(작성자; 손진길) (0) | 2021.09.18 |